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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가지의 국가정체성: 건축의 일본을 정의하다

최원준(숭실대학교 교수)
사진
코로다 타케루
자료제공
모리미술관(별도표기 외)
background

Japan in Architecture: Genealogies of Transformation

Mori Art Museum, April 25 - Sep. 17, 2018​​ 

 

원대하고 야심찬 기획이다. ‘일본의 건축’이 아닌 ‘건축의 일본’. 풀어 쓰자면 건축에 내재된 일본성, 건축의 역사를 통해 살펴본 일본의 정체성이다. 세계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혹은 세계화 시대이기에, 국가의 정체성, 특히 그 문화적 정체성은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통합된 시장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문명에 맞서 지역의 고유한 속성들을 보존해야 한다는 문화적 당위성을 넘어, 국가가 정책, 군사, 재정 활동의 엄연한 단위인 현실에서, 정체성의 모색을 통해 내부적으로 소속원의 단결과 합의를 도모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이며, 다만 경계할 것은 이를 국수적 배타주의로 이끄는 정치적 남용이다.▼1 집단의 정체성을 논하는 데 있어 모두가 공유하는 삶의 환경을 조성하는 건축만큼 효과적인 분야는 없으며, 더구나 일본에게 건축은 주변국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여전히 세계적으로 우위를 점유하고 있는 영역이 아닌가.

 

‘목조의 가능성’ 섹션 전경

 

9개의 주제, 100개의 작품, 400여 개의 전시물

일본의 대표적 부동산개발 기업가인 모리 미노루 회장이 2003년 도쿄 롯본기힐즈에 설립한 모리미술관은 2007년 <르 코르뷔지에>전, 2012년 <메타볼리즘>전, 2016년 <노먼 포스터>전 등 건축 주제의 전시회를 간간이 개최해왔다. 개관 15주년 기념전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난조 후미오 관장의 말대로 “일본이라는 국가의 새로운 정체성 구축에 기여”한다는 목표로▼2 일본 건축사학계의 원로 후지모리 테루노부 도쿄대학교 명예교수의 감수하에 40대 중심으로 구성된 미술관 큐레이터와 건축사학자의 협업으로 총 5년의 준비 기간에 걸쳐 기획되었다.

1,500㎡의 공간에 펼쳐진 전시회는 일본 건축의 전체 역사를 대상으로 하지만 시간적 단위가 아닌 9개의 주제로 구성되었다. ‘목조의 가능성’과 ‘건축으로서의 공예’는 주재료와 이에 기반해 발전해온 구축술과 표현, ‘평온한 지붕’과 ‘연이은 공간’은 형태와 공간적 특성, ‘초월의 미학’과 ‘공생하는 자연’은 철학적 자세, ‘열린 절충’과 ‘발견된 일본’은 해외와의 영향 관계, ‘모여 사는 모습’은 건축의 사회학을 조명하는 등, 건축을 논하는 물질적, 이론적 차원을 두루 섭렵하고자 한 의지가 드러난다. 이러한 주제하에 선별된 100개 작품의 종류도 마찬가지여서, 건축 작품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이와 더불어 잡지, 저서, 가구, 연구, 구법, 심지어 태블릿용 건축설계 앱 등을 포괄하여, 환경의 조성에 관계된 모든 행위의 총체로서 건축을 정의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각 작품은 건축을 재현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매체로 전시되었으며, 특히 도면과 같이 일반인이 읽기 어려운 방식은 지양하여 전시의 대중성을 확보했다.

주요한 전략의 하나는 실물 크기의 재현으로, 최근 규모가 큰 건축 전시회에 자주 도입되고 있는 방식이다.▼3 실제의 건축은 없고 오직 그 재현물이 있는 건축전의 한계를 극복하는 시도로, 본 전시회에는 교토의 국보 다실 타이안을 실물 크기로 옮겨왔다. 다도의 명인 센 노 리큐가 극도로 절제된 행위에 기반해 설계한 공간이기에, 방문자에게 독특한 신체적 경험을 제공하는 사례다. 이 복제 건물은 일본에서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목공술을 교육하고 있는 사이타마 모노츠쿠리대학에 의해 시공되었는데, 비주류인 전통의 영역도 그 명맥을 온전히 이어갈 수 있는 폭넓은 사회적 기반을 함께 드러낸 기획이다. 지금은 철거된 단게 겐조 주택을 1:3 크기로 재현해놓은 모형, 또 비디오와 화이버 레이저 기술을 활용하여 다실, 아파트, 나카긴 캡슐타워 등의 내부 공간을 실제 크기로 구현한 설치 작품 ‘스케일의 힘’도 기존의 전시 방식을 확장한 사례다. 이렇듯 방문자에게 시각을 넘은 공간적 경험을 제공하는 주요 전시물들은 관람에 강약의 리듬감을 제공하였으며, 전시회의 전체 동선 중간 지점에 위치한 카가와현 청사의 가구들은 실제 휴식처로서의 역할을 겸했다. 약 5개월의 전시기간에 총 50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했다는 사실은 전시가 폭넓은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건축으로서의 공예’ 섹션 전경

 

전시체계의 메시지

전시체계의 큰 틀은 명료하게 읽힌다. 전시장 입구에 적힌 9개의 주제를 인지한 방문자는 실별로 각 주제를 접해간다. 벽면에는 높은 층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3열에 걸친 전달체계가 설정되어 있다. 상단에는 9개 주제하의 세부 주제가 적혀 있고, 그 밑에는 이와 관계된 주요 인용문과 작품 이미지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해당 작품의 다양한 전시물들이 그 아래 관람자의 눈높이에 배치되어 있다. 장 제목, 절 제목 등으로 나뉜 책의 구조를 공간적으로 적용한 것으로, 작품들 사이의 관계와 이야기를 넌지시 제시한다.

이것이 효과적인 이유는 각 주제/단위실 내 작품들이 시대순 등 일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품별 해설은 건축가 자신이나 전시회 큐레이터, 외부 전문가들의 것이 혼재되어 있어, 해당 주제와의 상관성을 직접 드러내지 않기도 한다. 하나의 작품이 해당 주제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기에,▼4 관객들의 자율적인 열린 해석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다만 ‘그 유전자가 가져온 것’이라는 전시회 부제가 보여주듯, 하나의 주제 안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시대를 잇는 속성이다. 시대를 초월한 작품 간 연속성은 전시회 저변에 깔려 있는 메시지로,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전시 전략도 찾아볼 수 있다. ‘초월의 미학’에서는 스크린에 의한 외부 경관의 제어가 공통적으로 돋보이는 교토의 18세기 다실 코호안 보센과 마에다 카이스케의 주택 겸 갤러리 사진을 모서리의 마주보는 벽면에 배치했다. ‘연이은 공간’ 섹션에서는 17세기 별장 가츠라리큐와 후지모토 소스케의 N주택 내부 공간 사진을 병치시켜 다중의 켜로 구성된 공간적 유사성을 강조했다(도록에도 같은 전략이 사용되어 이러한 쌍이 펼친면으로 수록되어 있다).

 

‘건축으로서의 공예’ 섹션에서는 교토의 국보 다실인 타이안을 실물 크기로 옮겨왔다.

 

지금은 철거된 단게 겐조 주택을 1:3 크기로 재현해놓은 모형이 ‘연이은 공간’ 섹션에 전시되어 있다.

 

관계의 정체성

한 집단의 고유한 속성에 대한 탐구는 필연적으로 타자와의 관계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정체성은 나라는 인식인 동시에 타인이 나를 받아들이는 방식이기도 하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섹션인 ‘발견된 일본’이 대표적으로 이 문제를 조명한다. ‘발견된’이라는 표현은 피동형으로 겸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서양 중심의 세계 건축에 미친 일본의 영향에 대한 이야기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서서히 공들여 구축된다. 네 번째 ‘건축으로서의 공예’ 섹션에서는 브루노 타우트가 1930년대에 일본에 머물며 생산한 노트와 설계 작품이 제시된다. ‘모여 사는 모습’에서는 농림성 적설지방 농촌경제 조사소의 연계사업으로 샬로트 페리앙의 감수하에 제작된 가구(사실 이 가구가 해당 섹션의 주제인 일본식 커뮤니티와 갖는 관련성은 분명하지 않다)가 전시되어 유럽 근대건축운동의 주요 인물과의 직접적 접목 지점을 예시한다. 제목 자체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여섯 번째 ‘열린 절충’ 섹션은 ‘발견된 일본’과 쌍을 이루는 부분으로, 일본이 해외로부터 받은 영향을 우선적으로 논한다. 중국과 한국이 불교와 건축술의 전파국으로 그 글에 잠시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문호개방 후 전파된 서양 건축에 대한 일본의 자체적인 융합과 변종의 성과를 보여준다. 사실 유사한 기후조건과 건축재료, 생활문화를 지녀온 한국과 중국은 ‘목조의 가능성’, ‘평온한 지붕’, ‘공생하는 자연’ 등의 특성을 공유하지만, 전시회에서 삼국의 차이는 조명되지 않는다.

대신 주목하는 것은 서양과의 관계다. 그리고 차이보다는 유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가 흔히 서구적 문화와의 차이를 통해 정체성을 모색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5 ‘발견된 일본’은 일본 건축을 근대 서구의 대중에게 처음으로 알렸던 1893년 시카고박람회의 일본관, 안토닌 레이몬드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일본 내 작업과 같이 익히 예상했던 작품뿐 아니라, 1954년 뉴욕현대미술관 정원에 지어졌던 일본식 정자나 『일본의 건축』(1955) 출간 등 서구에서 일본 건축에 대한 문화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사례들을 확장하여 소개한다. 아울러 전시회 도록에 수록된 전시회 기획자의 글들은 서양 근대건축의 주요 인물들이 일본 전통건축에서 받은 영향을 구체적 예시를 통해 논한다. 전시장 벽면에 적힌 레이몬드의 언급, “나는 근대건축의 원칙을 일본에서 배웠다”라는 글귀가 이 내러티브의 정점일 것이다. 단지 서구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점에서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 근대건축운동의 모체에 일본 건축의 유전자가 포함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현대 사례로 이토 도요와 SANAA가 각각 대만과 프랑스에 설계한 작품 외에 영국 건축가인 존 포슨과 데이비드 아자예, 스페인 RCR아키텍츠의 유럽 작품까지 등장시킨 것은, 오늘날 세계 건축의 주요 흐름에 일본 유전자가 이식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러한 탈아시아적 시각은 호류지와 고대 그리스 신전의 상관성을 논했던 일본 건축사학계의 선구자 이토 츄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니,▼6 그 자체도 하나의 전통이요 유전자라 할 수 있겠다.

 

‘공생하는 자연’ 섹션 전경

 

드러낸 이야기와 숨어 있는 힘

전시 작품 100선에는 단게 겐조, SANAA, 타니구치 요시오, 반 시게루 등 널리 알려진 건축가들의 작업이 복수로 선정되어 있고, 해외 건축가의 해외 건축 작품, 즉 일본과는 인적, 지역적 연계가 전혀 없는 작품도 포함된 반면, 독특한 기계미로 널리 알려진 다카마스 신이나 공업적 생산과 표상을 도모했던 하라 히로시, 야마모트 리켄 등의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선택은 곧 다른 하나의 배제이며, 특정한 내러티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에 어긋나는 작품들은 선택받지 못했을 것이다. 메타볼리스트 이소자키 아라타와 기쿠다케 키요노리의 작품도 그 실험성에 주목하기보다는 전통 목구조 형식을 차용한 사례로 소개되었음을 상기한다면, 본 전시회가 전달하는 주제는, 비록 건축의 다양한 속성에 걸쳐 있다 하더라도, 규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대를 잇는 유전자를 논하며 정체성을 모색하는 것은 비단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뿐 아니라 미래의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며, 규범은 방향을 설정하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 적절한 위치에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전시의 세부 내용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수백 년의 역사를 재현할 수 있는 다양한 건축 자료의 현존,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섬세한 보존체계, 비주류의 영역도 전문화된 교육체제를 갖춘 두터운 사회적 하부구조, 그리고 건축문화에 대한 국가적 규모의 진지한 성찰을 도모하는 사립미술관의 존재다. 이러한 기반이 일본 건축의 힘이며, 앞으로도 일본 건축의 국제적 위상을 이어줄 것이다.​ 

 

‘초월의 미학’에서는 스크린에 의한 외부 경관의 제어가 공통적으로 돋보이는 교토의 18세기 다실 코호안 보센과 마에다 카이스케의 주택 겸 갤러리 아틀리에 비스크 돌의 사진을 모서리의 마주보는 벽면에 배치했다.

 

‘열린 절충’ 섹션 전경

 

 

1. 주디스, 존 B.. ‘좌파가 국가주의에 대해 놓치고 있는 것’, 「뉴욕타임스」, 2018년 10월 15일자.

2. 후미오, 난조 . ‘인사말’, 『건축의 일본 전: 그 유전자가 가져온 것』, 2018, p. 5.

3. 뉴욕현대미술관이 정원에 벅스민스터 풀러(1941), 마르셀 브로이어(1949)의 주택이나 뒤에서 소개될 일본식 주택(1954~1955)을 지으며 이러한 시도를 선도했고, 2008년 열린 ‘홈 딜리버리’는 이러한 전통을 잇는 기획이었다. 최근에는 규모가 큰 건축전에 자주 도입되고 있으며, 작년 런던 바티칸미술관에서 열린 ‘일본주택: 1945년 이후의 건축과 삶’에는 니시자와 류에와 후지모리 테루노부의 주택이 실물 크기로 지어진 바 있다.

4. 센 노 리큐의 다실을 예로 든다면 ‘건축으로서의 공예’ 섹션에 속해 있지만 ‘목조의 가능성’, ‘초월의 미학’, ‘연이은 공간’ 등 다양한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도록은 주제별 장 말미에 해당 주제와 연관성이 있는 타 섹션의 전시물, 그리고 전시회에 소개되지 않은 주요 작품의 목록을 연대표로 제시하고 있다. 보다 많은 텍스트를 담고 있는 전시도록은 전시회의 보조물이라기보다는 독자적인 프로젝트로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5. 이러한 관점에서 기술된 최근의 저술로 이상헌의 『한국 건축의 정체성: 서양 건축과의 차이를 통해 보다』(2017)가 있다.

6. 츄타, 이토. ‘호류지건축론’, 「건축잡지」 83호, 1893년 11월. 


최원준
숭실대학교 건축학부 부교수로 건축사와 건축 이론 및 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건축역사 및 이론 전공)를 받았다. 이로재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건축・계획・보전대학원 연구원으로 박사 후 연구를 진행하였다. 현재 목천건축아카이브에서 한국 근현대건축 아카이브 구축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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