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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증언하는 유고슬라비아

박세미 기자
자료제공
뉴욕현대미술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향하여: 유고슬라비아의 건축 1948~1980>은 뉴욕의 현대미술관(이하 MoMA)에서 열리고 있는 건축 전시다. MoMA는 1932년부터 건축부를 창설하여 세계 건축의 중요한 이슈들을 국제적인 관점으로 다루어오고 있는데, 이미 1960년대 유고슬라비아를 주제로 일련의 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1969년 열렸던 <유고슬라비아: 리포트> 이후로 근 50년 만이다. 그 사이 유고슬라비아라는 국가는 사라졌다. 다행히 건축과 도시 구조물들은 오늘날의 7개국 영토에서 살아남아 2018년 7월 15일, MoMA의 전시 무대에 올랐다.

이번 전시의 공동 큐레이터인 마르티노 스티에를리(MoMA 수석 큐레이터)와 블라디미르 컬리치(플로리다 애틀랜틱대학교 교수)는 사회주의 국가였던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건축이 어떻게 유토피아적 이상을 구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는지 탐구한다. 특히 1948년부터 1980년의 기간에 집중하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화된 도시를 재건하고 국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강력한 건설 기간으로, 유고슬라비아의 독특한 정치적 입장과 맥을 같이 한다. 1948년은 소비에트 연방과의 짧은 동맹 이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이하 티토)와 이오시프 스탈린 사이의 분쟁으로 코민포름에서 제명된 유고슬라비아가 제3의 길을 걷기 시작한 해이며, 1980년은 오랜 독재자 티토가 사망한 해다. 티토는 냉전의 이분법을 피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추구했기 때문에 유고슬라비아는 티토의 독재 아래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국가의 공식 정책은 노동자 집단이 중요한 의사 결정권을 가진 ‘자주관리사회주의’에 의해 작동되고 있었다. 경제관리에 있어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사회의 구성원에게 자율적 운영을 맡긴다는 측면에서 유고슬라비아의 사회주의는 소련의 방식과는 달랐다. 민족과 문화의 다양성과 국가의 통합이라는 과제가 맞물리면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건축에는 유고슬라비아의 급진적인 다원주의와 하이브리드적인 이상주의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마르티노 스티에를리는 “역사적으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건물의 양산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간과되어왔던, 냉전 시기로 분열되어온 건축사의 한 장면을 이해하도록 돕는다”며, “시민들의 삶의 질을 바꾸고 사회를 개선시키는 건축의 힘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을 때 건축 역시도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이는 서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던 현대건축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파괴와 학살로 묘사되었던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기존 인식을 건축을 통해 보다 낙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전시는 지역 기록보관소, 개인 소장품, 박물관에서 수집된 400여 개의 드로잉, 모델, 사진 및 영상들이 현대화(Modernization), 글로벌 네트워크(Global Networks), 일상생활(Everyday Life), 정체성(Identities)이라는 네 개의 주제 아래 구성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향하여> 전시 전경, (사진: 마틴 섹) 

 

안드리야 무트냐코비치, 코소보 국립대학교 도서관, 1971 ~ 1982, 프리슈티나, 코소보, (사진: 발렌틴 젝, 2016)

에드바르트 라우나카르, 혁명광장(현 공화국 광장), 1960 ~ 1974, 류블랴나, 슬로베니아, (사진: 발렌틴 젝, 2016)
 

 

전시를 여는 첫 번째 주제는 ‘현대화’로 군대 퍼레이드, 응원하는 행인들, 노동자들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세 개의 흑백 영상을 시작으로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기술적인 발전, 사회의 새로운 인프라를 탐구한다. 아발라 TV 타워(Avala TV Tower), 폴류드 스타디움(City Stadium Poljud), 즐라티보르 호텔(Zlatibor Hotel), 페트롤 주유소(Gas Station Petrol), S2 오피스 타워(S2 Office Tower) 등이 여기에 포함되는데, 대규모 공공시설은 물론 호텔 및 사무실 타워와 같은 민간 건축들이 전국적으로 빠르게 올라갔으며, 콘크리트 건축 기술의 진보로 대담한 형태가 가능하게 됐음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개념은 시민들의 전반적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표준(Social Standard)’ 정책이다. 교육, 의료, 문화 서비스는 소련 블록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시계획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유고슬라비아는 이러한 서비스를 국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했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건축이 필요했기 때문에 국가는 건축가들에게 건축학·유형학적으로 충분히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사회적 표준’의 개념이 나타난 배경에는 티토의 ‘노동자 자주관리’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가 있다. 소련의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정부에 직접적으로 반대하면서, 유고슬라비아의 경제 자원의 관리는 국가에서 지방분권 노동자의회로 옮겨졌다. 특히 문화적 자율성과 예술적 자유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고,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들에게는 자주관리 원칙을 실천하는 데 있어 더 큰 역할이 부여됐다. 결국, 건축에서 ‘사회적 표준’은 거대한 개발 프로젝트와 개별적인 공간 경험을 조화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발현된다. 이러한 사회적 표준 건축물들은 대도시 외곽에서 전통 농촌 사회의 현대화 허브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유고슬라비아의 붕괴 후 거의 30년이 지났지만, 이 건물들은 여전히 지역사회 기반시설의 핵심 요소들이다.

두 번째 주제 ‘글로벌 네트워크(Global Networks)’에서는 건축의 수입과 수출, 아드리아해 관광사업 기반시설을 통한 국가의 자율적인 대외정책, 그리고 후기식민주의 시대의 비동맹운동의 리더십이 만들어낸 건축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의 재건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데, 1963년 강진이 도시를 강타한 후 유고슬라비아 정부와 유엔의 공동 재건 계획으로 시작됐다. 이를 계기로 유고슬라비아에는 여러 저명한 국제 건축가들이 모여 들었고, 유고슬라비아의 맥락에 맞는 모더니즘 건축이 촉발됐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1964년 스코페의 새로운 마스터플랜을 설계하기 위한 국제 연합대회에서 우승한 일본 건축가 단게 겐조였다. 도시 중심지를 설계한 단게 겐조의 안은 부분적으로만 실현됐지만, 이는 일본의 메타볼리스트 운동이 해외에서 처음 적용된 것이었다. 동시에 양쪽 진영에서 온 건축가들이 수많은 중요한 도시 건물들을 설계하며 냉전 시기의 정점에서 스코페를 국제적인 건축박람회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세 번째 파트 ‘일상생활(Everyday Life)에서는 사회주의 소비자 문화의 틀 안에서 집단주거의 혁신적인 형태와 현대 디자인의 출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고슬라비아의 현대화는 대규모 도시계획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 영역도 변화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기존 주택들의 파괴와 이후 급격한 도시화로 발생한 주택 부족난은 조립식 콘크리트 건설 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평면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이와 함께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류블랴나와 자그레브와 같은 도시에서 열렸던 일반적인 주택 전시회로 인해 저렴한 현대 가구와 가전제품이 보급됐다. 유고슬라비아의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첫 번째 주택 가구 디자인 부서에서 일해온 니코 크랄이 디자인한 가구들, 특히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렉스 접이식 의자도 볼 수 있다. 이어 유고슬라비아의 마지막 대규모 도시계획 중 하나인 스​플리트 3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1970년대 지어진 스플리트 3은 약 5만 명의 주민들에게 주택을 공급했는데, 생활, 일, 여가를 위한 공간과 보행자 거리가 조화롭게 결합된 주택 모델 사례다.

마지막 주제인 ‘정체성’에서는 유고슬라비아의 다양한 지역성과 반파시즘 투쟁에 바탕을 둔 국가의 통합 사이에서 건축과 건축 규모의 조각품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다룬다. 제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들은 당시의 반파시스트 투쟁을 기념하는 구조물로서 유고슬라비아의 가장 중요한 공동의 역사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중심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이 기념비들은 건축으로 확대된 조각으로서만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코르둔과 바니자 시민 봉기 기념비, 인민해방운동 전사 기념비, 일린덴 봉기 기념비, 수트제스카 전투 기념비를 통해 유고슬라비아의 건축적 상상력과 독자적 이념을 극적으로 전달하고 전시는 끝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향하여> 전시 전경, (사진: 마틴 섹)
 

 

MoMA가 이 전시회를 예고했을 때, 일부 지역매체는 구 유고슬라비아 각지에 퍼져 있는 수백 개의 파시즘 희생자들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사람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다루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대중들에게 스포메닉(spomenik)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기념비들은 형태적인 측면에서 마치 외계의 물체처럼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에 기념비가 지닌 복합적인 맥락과 의미들이 간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들은 이러한 복합성을 인지하고 기하학적인 형태 및 추상적인 형태를 최대한 많이 모아놓기보다 소수의 기념비들을 선별해 선정적으로 유통될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었다.

이 전시의 임무가 세계 건축 역사의 장 안에서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유고슬라비아 건축에 대한 새 물길을 만들어주는 것과 비극적 종말에 가리워진 독자적인 혹은 긍정적 성취를 드러내 보이는 것에 있다면, 전시는 성공적이다. 유고슬라비아의 경우 민족 간의 잔인한 학살을 끝으로 역사가 기록되었기 때문에, MoMA는 연대기 순이 아닌 주제별로 전시를 구성하여 흥망성쇠의 모델을 피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획의도가 전시장 안에서 효과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몇 가지 장치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발렌틴 젝의 사진이다. MoMA는 유고슬라비아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여주는 데 기존의 사진, 도면, 스케치, 모형, 영상 이외에 기획의도를 밝혀줄 새로운 소스가 필요했고, 스위스 출신의 사진작가인 발렌틴 젝에게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을 작가적 시선으로 새로이 촬영해 줄 것을 의뢰했다. 발렌틴 젝은 표현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2년 동안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그리고 코소보 영토를 포함한 이전 유고슬라비아 국가들을 일곱 차례 방문하여 촬영했다. 발렌틴 젝의 사진들은 여전히 남겨져 있는 건축물을 포함하여 전쟁 중에 파괴되었다가 복원된 건물들, 혹은 폐허로 남은 것들을 증언한다. 여기서 그의 사진이 웅변적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낮은 채도와 무미건조한 분위기 때문인데, 마치 구 유고슬라비아가 햇빛이 없는 곳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발렌틴 젝은 여름의 푸른 하늘보다 겨울의 회색 하늘을 선택했다. 그의 사진은 콘크리트의 물성과 형태적 과감함을 포착하는 데 집중하면서 전시장의 전체 기조를 만든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전시장에 새로 선보여지는 모델들 역시 발렌틴 젝의 사진들과 함께 모노 톤을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벽의 색은 회색, 베이지처럼 차분한 색상에서 노랑, 분홍, 빨강처럼 밝은 색으로 다양하게 변주된다는 점이다. 이는 사진과 작품을 오히려 돋보이게 하고 주제가 달라질 때마다 관람객을 안내한다. 이 색상 벽의 역할이 가장 두드러지는 영역은 바로 ‘일상생활’ 부분이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의 3분의 2 지점까지 나열된 강렬하고 아름답지만 견고하고 냉소적인 콘크리트 건축물에 취해 그 너머의 일상에 대해서는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 번째 섹션 ‘일상생활’에 진입해 노랑 벽으로 둘러진 공간 한가운데 전시된 의자와, 텔레비전, 라디오, 전화기, 포스터 등의 다채로운 색상과 마주치면서 유고슬라비아 인들의 과거 일상생활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때 전시장을 들어오기 직전에 마주쳤던, K67키오스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콘크리트가 아닌 빨간색 스틸로 만들어진 경쾌한 디자인의 키오스크 또한 이 전시의 일부라는 것, 즉 유고슬라비아 건축의 한 단면이라는 사실을 지각하게 된다. K67은 1967년 사샤 제인 마크티그가 론칭한 모듈러 시스템 키오스크로 스키-리프트 부스, 길거리 음식점, 구두 가게 등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는 스트리트 퍼니처였다.

전시는 이렇게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기념비부터 대중적 감각의 오브제들까지 유고슬라비아의 야심차고 모험적이었던 건축을 정치적 실패와 비극적 종말로부터 일정 간격 떨어뜨려 놓는다. 유고슬라비아의 정치적 실험은 결국 실패했지만, 그들의 건축은 살아남아 다민족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동의 공간과 역사를 창출해 낸 건축과 도시계획의 능력을 입증한다. 물론 이 전시가 사회주의 현대화의 주된 언어로서 선택된 콘크리트 건축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구 유고슬라비아의 전통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현대건축을 풍부하게 만들었는지, 버내큘러 건축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와 같은 유고슬라비아 도시·건축 전반의 심도 있는 탐구를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MoMA가 최근 선보였던 <라틴 아메리카의 건설: 건축 1955~1980>(2015)와의 연장선상에서 그동안 노출되지 않았던 현대건축 세계를 조명하고, 특정 시기의 매력적인 건축 탐험을 선사했다는 측면에서 국제적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미술관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였다.​ 

 

미오드라 지브코비치, 수트제스카 전투 기념비, 1965 ~ 1971, 텐티스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진: 발렌틴 젝, 2016) 

 

우글리샤 보구노비치, 슬로보단 자니치, 밀란 크리스티치, 알바라 TV 타워, 1960 ~ 1965, (1999년 파괴, 2010년 재건), 알바라 산, 베오그라드 근처, 세르비아, (사진: 발렌틴 젝, 2016) 

 

밀란 미헬리치, S2 오피스 타워, 1972 ~ 1978, 류블라냐, 슬로베니아, (사진: 발렌틴 젝, 2016)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향하여> 전시 전경, (사진: 마틴 섹)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향하여> 전시 전경, (사진: 마틴 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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