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2월호 (통권 699호)

〈Phantom-22〉(2025) 전시 전경, 마르타 갤러리 ©Erik Benjamins
건축과 회화를 전공한 김민재의 가구 작업은 미술의 조형적 감각과 건축에서 비롯된 구조적 사고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뉴욕을 기반으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그는 가구를 의인화하거나 인체와 생명체, 건축적 형상을 모티브로 삼고, 한국적 정서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작업에 중첩시킨다. 이러한 다양한 맥락의 작업이 단순히 ‘한국성’이나 ‘건축적 가구’라는 단일한 키워드로 정리되기는 어렵다.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지 않는, 세분화되며 개인적인 서사의 반영으로 조직되는, 그러면서도 동시대의 감각을 기민하게 담아낸 그의 작업은 고정된 범주 바깥에서 확장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건축을 출발점으로 가구, 조각, 건축적 폴리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기능과 용도를 넘어선 조형 언어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김민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 김민재 작가 × 김혜린 기자
김혜린: 건축과 회화를 전공했고, 건축가로 3년간 스튜디오 지안카를로 발레(현 스튜디오 발레 데 발레, 이하 지안카를로)에서 일했다. 건축가에서 작가이자 가구 디자이너로 업역을 옮긴 과정이 흥미롭다.
김민재: 대학원 졸업 후 지안카를로에서 실무를 시작했는데, 그때도 집의 뒷마당과 지하실을 작업실로 활용하며 개인 작업을 병행했다. 이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 시기에 업무 시간이 줄어들면서 개인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인테리어 붐과 함께 가구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던 흐름도 맞물려 자연스럽게 작업 영역을 옮기게 됐다.
김혜린: 작품의 재료로 유리섬유와 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특별히 이러한 재료를 택한 이유가 있나?
김민재: 특정 재료에 관한 선호는 없다. 유리섬유와 목재는 건축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접한 재료들이다. 목재는 학교에서 충분히 다뤄볼 수 있었고, 유리섬유 역시 프로젝트를 통해 실험해본 재료로, 집이나 옥상에서도 작업할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고 느꼈다. 또 유리섬유는 천과 같은 물성을 지니지만, 레진으로 경화되는 과정을 거치면 구조와 형태가 형성된다. 일반적으로는 몰드를 제작한 뒤 유리섬유를 여러 겹 적층해 경화시키는 방식으로 사용되지만, 이 과정을 단순화하기 위해 구조를 미리 짜두는 방식을 택했다. 재단기를 이용해 유리섬유를 여러 겹 붙여 누비면 구조를 형성하는 동시에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누빔선을 스티치, 색상, 패턴 등의 변주를 통해 디자인 요소로도 활용한다. 또 내가 사용하는 레진은 파라핀 성분으로 인해 왁스 처리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광택으로 마감이 되는데, 그런 자연스러운 물성이 좋았다.

〈SEOUL〉(2025) 전시 전경, 레이어 스튜디오
김혜린: 유리섬유를 가공하는 방식이나 가구를 직접 조각하는 과정이 수공예적이다.
김민재: 회화를 전공했고, 기본적으로 손으로 작업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지금도 직접 제작을 우선으로 하지만 이러한 즉흥성이 포함된 작업 방식을 일반적인 제작이나 공사 현장에서 반영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런 이유로 작업을 맡기게 될 때는 작업 초반 기본 구조나 틀을 집성할 때 목수에게 맡기고 마감은 직접 작업실에서 진행하는 편이다.
김혜린: 디자인을 구상하고, 구현하기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치나?
김민재: 단체전이나 클라이언트 작업처럼 수행해야 할 과업이 있을 경우에는 그 방향에 맞추려 한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인테리어 실무를 거치며 형성된 성향인 것 같다. 공간 안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작품보다는, 주어진 환경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디자인 프로세스에서는 먼저 규격과 비율로 기본적인 틀을 잡고, 그 안에서 클라이언트의 요구나 해당 구성 안에서 직관적으로 와닿는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개인전의 경우에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나 관심사에서 시작해, 관객에게 어떤 인상을 주고 싶은지를 먼저 고민한다. 이후 스케치를 거쳐 3D 작업으로 크기, 치수, 규격을 확인하고, 설정한 형태가 사용 가능한 재료와 도구 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구현 가능한지 고려하며 디자인을 조정한다. 이 과정에서 전체의 약 80%가 결정되고, 나머지 20%는 실제 작업을 진행하며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작업 과정에 의도적으로 여지를 많이 남겨두는 편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늘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에 유연하게 대응하려 한다.

작업실에 앉아있는 김민재 ©Justin Kaneps

〈IYKYK〉(2022) 전시 전경, 니나 존슨 갤러리 ©Dominik Tarabanski
김혜린: 김민재의 작품은 각각의 가구들이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
김민재: ‘가구가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건, 내 나름의 농담이기도 하다. 작업을 할 때 사람이나 동물 같은 생명체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차용하기도 하지만, 가구를 의인화한다고 생각하고 작업할 때가 있다. 사람을 만날 때 첫인상을 통해 ‘이 사람은 이런 느낌이다’라고 판단하듯, 작업을 하다 보면 가구의 인상을 파악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 것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형태를 좀 더 과장할 때도 있고, 제목을 붙여서 느낌을 공유하기도 한다. 또 의인화를 하면 사람들과 더 소통하기도 쉽다. 일반적인 오브제를 뛰어넘어서 존재감과 영혼이 있기를 바란다.
김혜린: “동시대적 표현주의와 아방가르드적인 틀 속에서 전통과 재래식 문화에 대한 향수를 짙게 드리운 작업”(「SPACE(공간)」 689호 참고)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대해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민재: 전통과 재래식 문화 같은 한국성에 대한 고민은 건축을 공부하던 시절부터 고민해온 주제였다. 건축과 미술 모두 서양사의 큰 틀 안에서 교육을 받다 보니 동시대 건축이나 미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해 똑같은 아쉬움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의 경우 해외에서 생활하며 좀 더 증폭된 부분도 있다. 이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의 초기 작업에 관한 외부인들의 시선과도 관련이 있다. 당시 한국적인 요소를 드러내지 않고 작업했음에도, 작업 자체보다는 ‘한국 작가’라는 정체성에 스토리텔링이 덧붙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서구에서 나의 아이덴티티만 가지고 작품을 확대 해석하는 접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차라리 한국적인 것을 본격적으로 고민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대답이 전시 〈IYKYK〉(2022)다. IYKYK는 ‘If you know you know(아는 사람은 알거다)’의 약어다. 그걸 비틀어서 ‘If you korean you know(한국인이면 알 거다)’로 바꾼 거다. 달항아리, 교의, 제기 등 한국 사람들이면 다 알 수 있는 요소들로만 전시를 구성하고자 했다. 어떻게 보면 개인적 관심뿐만 아니라 필요와 외부적 자극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조형 의자 시리즈 (2023) ©Dominik Tarabanski
김혜린: 한국의 전통적 요소뿐만 아니라 일상적 풍경에도 주목한다.
김민재: 우리가 흔히 하이엔드로 인식하는 전통뿐만 아니라, 점차 사라져가거나 이전 세대가 의도적으로 멀리하며 벗어나고자 했던 문화까지 주목하려고 한다. 부모님 세대가 기피하는 재래식 생활양식 같은 과거 한국의 모습과 토착적이고 생활감 있는 모습에 관심이 있다. 앞으로 이를 작품에 담아가려고 늘 관찰하고 있다. 전통 시장이나 한국의 부둣가 풍경을 레퍼런스로 삼기도 하는데, 마이애미에서 열린 개인전 〈Ba-Da(바다)〉(2024)에서는 작은 스케일의 가구 여러 점을 모아 배의 형상을 띤 설치 작품 ‘Tong Tong Bae(통통배)’를 선보이기도 했다. 작품에 사용된 조명 요소와 레진의 텍스처, 페인트 색감은 가족여행에서 본 바닷가의 풍경들을 참고해 구성했다. 아버지 고향이 부산인데 가족여행을 갈 때면 늘 바다를 찾곤 했다.
김혜린: 2020년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활발히 작가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 〈SEOUL〉(2025)에서는 서울의 어떤 면모를 보여주려 했나?
김민재: 의자와 램프 두 가지 요소로 만들었던 전시다. 조명은 이전 작업의 연장선인데, 우유갑 윗부분의 접히는 구조를 가지고 집의 지붕과 같은 형태를 만든 거다. 조명에 집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한 건데, 조명의 기능상 빛이 들어오는 것 또한 상징적이라고 생각했다. ‘서울 의자’는 소반의 다리 형상이나, 한국 건축에서 자주 보이는 선을 차용해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고 싶었다. 또 내가 작가로서 한국에서 하는 첫 발표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싶었기에, 전시의 제목을 ‘서울’로 지었다. 20대 때부터 미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내가 한국 출신이고, 서울에서 자랐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고,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스스로의 뿌리를 좀 더 확실하게 얘기하는 한편,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에 대한 욕구를 담고 싶기도 했다. 전시 외에도 작품과 서울의 풍경을 함께 담아 이러한 주장들을 확실히 담아내고자 했으며, 전시 자체보다 사진을 찍는 행위에 더 큰 의의를 둔 작업이었다. 사진작가 장미와 논의 끝에 인왕산을 장소로 잡았고, 이러한 행위를 좀 더 과장하기 위해 의자를 지게에 지고 인왕산에 오르는 것까지를 수행적 퍼포먼스로 구성해 사진으로 남겼다.

‘Tong Tong Bae(통통배)’ 군상, 〈Ba-Da(바다)〉(2024), 니나 존슨 갤러리 ©Jacob Holler

김민재 & 최건혁, ‘적아지경’, 나무, 레진, 아크릴, 라커, 유리섬유, 카메라, 모니터, 라즈베리 파이, 66×70×180cm, 2025
김혜린: 〈Welt | My allee: me, meme-세기말의 안빈낙도〉(2025)를 위해서는 공예작가 이규한, 코드 아티스트 최건혁과 레지던시에서 3개월간 함께 생활하며 작업했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도전한 부분이 있나?
김민재: 평소 인터랙티브한 작업을 좋아하는데 가구 작업 역시 사용하고 접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이 발생하지만, 그 특성상 일정 수준 이상으로 확장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디지털 작업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최건혁과의 협업을 통해 보다 확장된 인터랙티브 경험을 구현할 수 있었고, 여러 아이디어를 실제 작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나무 프레임에 유리 대신 모니터와 카메라, 컴퓨터를 넣어 작동하게 한 거울이나, 주물 작업을 한 알루미늄에 시침과 분침 대신 스크린과 컴퓨터를 설치한 시계, 가구와 포토부스를 결합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한 ‘적아지경’ 등 단순히 가구를 사용하는 차원의 상호작용을 넘어 좀 더 다른 감각과 영역으로 확장된 작품들을 만들었다.
김혜린: 초기 전시에서 조명이나 의자 등 작은 스케일의 가구 작품들을 주로 전시했다면, 〈Phantom–22〉(2025)에서는 건축적인 폴리를 활용하기도 했다.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로 작업을 확장할 생각이 있나?
김민재: 나에게는 작업이 욕구 실현의 방식인 것 같다. 첫 전시였던 〈I Was Evening All Afternoon〉(2021)에서는 20대에 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느껴왔던 서구 디자인이나 라이프 스타일의 관습적인 요소들을 패러디하며, 그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을 표했었다. 라운지 의자나 데이베드,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기도하는 의자 등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유형의 가구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소유하거나 일부가 돼보고 싶다고 느꼈다. 이방인으로 작업을 하거나 존재했기 때문에 이런 소유의 욕구들이 작업으로 표출됐던 것 같다. 이후에도 이러한 접근 방식이 지속되는 것 같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 정의하고 싶은 것, 혹은 소유하고 싶은 것들을 작품으로 표출한다. 〈Phantom-22〉 역시 그러한 욕구가 내포된 전시였다. LA에 대한 인상과 크리티시즘을 담은 한편, 건축적 장치를 활용해서 공간을 내부와 외부로 나눴다. 외부 공간은 직접 작업한 조각으로 채웠는데, 이런 조각들은 실용성이나 기능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작업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기도 하다. 가구 디자인으로 출발해 작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가구에 한정됐다고 느끼고 있다. 이런 틀을 깨고 싶다. 또 기회가 된다면 다시 건축 쪽으로도 영역을 넓혀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방(房), 스스로 그러한〉(2024) 전시 전경, 아름지기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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