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2월호 (통권 699호)

조립2공장에 설치된 오석근의 ‘배치와 재배치 04’
한국지엠 부평2공장
2025. 10. 16. ~ 11. 30.
인터뷰 김은희 경인콜렉티브 대표 × 방유경 기자
한국지엠 부평2공장(이하 부평2공장)은 2022년 11월 26일 실적 부진, 사업성 악화를 이유로 가동이 중단됐다. 기계가 돌아간 지 60년 만의 일이다. 〈모터타임즈: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다〉▼1는 이 사건 위에서 출발한다. 전시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자동차 부품이 조립되고 형체를 얻어가는 사이, 초 단위로 통제되는 노동의 서사가 공간과 기계 속에 어떻게 각인되었는지 면밀히 기록하고 조명한다. 거대한 스펙터클의 세계에 균열을 내듯 노동 현장에 개입한 이번 전시의 함의와 가능성에 대해 기획자인 김은희(경인콜렉티브▼2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유경(방): 2023년 부천 아트벙커 B39(이하 아트벙커)에서 열린 〈소사공단: 기계를 짓는 공장〉(이하 〈소사공단〉)에 이어, 2025년에는 부평2공장을 무대로 삼은 장소특정적 전시 〈모터타임즈: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다〉를 기획했다. 예술가로서 공장과 같은 산업시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은희(김): 인생의 많은 시간을 인천, 부천 지역에서 살았던 터라 공단이나 공장은 내게 익숙한 장소였다. 제조업 기반의 도시에서 공장은 도시와 사람을 연결하는 집단 기억의 장소다. 공단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가족, 이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공장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 제조업이 쇠퇴하며 경인로 일대에서 사라지고 있는 철공소를 그림으로 옮기는 개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2020년에는 부천시에서 마을 지도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 소사공단에서 유일하게 아파트로 개발되지 않고 남아 있었던 삼양중기에 호기심이 생겨 사업 담당 주무관과 답사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주물 공장이 세워졌던 인근 지역의 역사, 기계·토목 관련 용광로와 대형 주물들이 폐허처럼 남은 스펙터클한 풍광을 마주하며, 문득 ‘이 공장을 잘 이해하면 부천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후 공장 한 켠에 공간을 얻어 사라지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현장에 있던 기계, 사용 흔적, 기계·건축 도면 등을 힘닿는 대로 정리하고 수집했다. 그리고 이 기획이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공 예술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공장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건축가, 아키비스트, 시각예술가 등 지인들과 함께 기록할 수 있었다.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이 모여 경인콜렉티브가 만들어졌다.

차체2공장에 설치된 양정욱의 ‘빛을 만드는 모양’

전시 투어 당시 조립2공장에 설치된 김은희의 ‘플랜트그라피_컨베이어’(왼쪽)
방: 〈소사공단〉 진행 과정을 지켜본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에서 찾아와, 당시 가동이 중단된 부평2공장의 아카이빙을 요청했다고 들었다. 기획자이자 참여 작가로서 두 전시 사이에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 〈소사공단〉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짓는 과정’을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휴먼스케일을 넘어서는 거대한 공장의 공간적 현실뿐 아니라, 그 속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노동의 역사는 ‘노동운동의 역사’로 기록된다. 실제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성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 있다. ‘공장노동=3D’라는 뭉뚱그린 표현 안에 어떤 디테일이 있었는지 드러내고 싶었다. 공장은 10대 후반에 돈을 벌기 위해 모인 기능공들이 숙련공으로 성장한 역사의 배경이었고, 이들의 성장사는 곧 기술이 축적되고 발전한 산업의 역사이기도 했다. 따라서 현장에서 나온 수집 자료, 작업 일지 등을 나열해 눈에 보이도록 가시화하는 것이 전시의 중요한 포인트였다. 반면 〈모터타임즈: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다〉는 전시 제목에서부터 지향점이 달랐다. 우리가 수집한 물건이나 작품보다는 ‘공장’ 자체가 주인공이라고 인식했다. 멈춰 있는 공장에 들어가서 그 공간을 경험하고 감각하는 과정 자체가 전시의 핵심이었다. 공장은 어떤 설명을 덧붙이거나 논할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기술과 노동이 집약된 정수’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작가들이 작품을 걸고 기계미학을 논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방: 전시는 공장 내 홍보관 로비에 선보인 아카이브 자료와, 가동을 멈춘 조립2공장 및 차체2공장에 설치한 커미션 작업으로 구분된다. ‘무엇을 어떻게 아카이브할 것인가’가 중요한 방향키였을 것 같다.
김: 우리의 아카이빙 대상은 ‘공장이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먼저 거대한 공장의 구조를 체화해 익히고 그 속에서 노동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폈다. 엔진-프레스-차체-도장-조립-정비 순으로 이어지는 생산 공정을 따라 기계 종류와 작업자들이 일하는 체계와 구조, 플로도 인터뷰하고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컨베이어 시스템의 생산 효율성이 불합리한 노동을 강요한다는 사실도, 현장의 요구가 시스템의 결정권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도 마주했다. 120초 단위의 반복 노동 속에 주어지는 20초의 빠듯한 휴게 시간, 작업자들이 숙련도를 높여 열 명이 하던 일을 여덟 명이 처리할 수 있게 되자 두 명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 이야기 등, 거대 기계의 일부가 된 노동 현장의 서사들을 정리할수록 전시가 대규모 산업시설이 주는 산업, 기계미학에서 한발 더 나가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아카이브 과정에서 매달 공정별로 한 명씩 집중 인터뷰한 소식지를 배포하기도 했다. 부평2공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공정 흐름에 따라 꽉 짜인 공장 공간이 점차 몸을 조이듯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고, 이것이 곧 전시 구성의 콘셉트로 연결됐다. 컨베이어 벨트를 중심으로 영역을 구분해 공장을 기록하며 기계장치나 생산시설에 집중했지만, 그 안에 기계화된 인간의 신체와 시간,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녹이고자 했다.

조립2공장에 설치된 ‘Re: Assy’(김은희, 최혁규 기획 및 연출, 이야기 영상 촬영)

전시 투어 당시 차체2공장에 설치된 김은희의 ‘플랜트그라피_모터피아’(진수진 협력)
방: 현장 전시는 ‘공장의 몸’, ‘자동차의 몸’, ‘노동자의 몸’이라는 소주제에 맞춰 자동차 제작 공정의 역순으로 진행됐다. 작가의 인솔 아래 자동차 공장을 탐험하듯 90분간 진행된 투어 형태의 전시 경험 또한 새롭게 다가왔다.
김: 전시에서 공간 경험의 중요성을 〈소사공단〉 때 느꼈다. 당시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전시장(아트벙커)의 내력을 고려해 우리가 수집한 무용한 쓰레기들을 펼쳐놓자는 기획이었다. 거대한 공장과 기계에 쌓인 기름때와 먼지를 탁본해 실물 크기로 전시하고, 노동자들이 사용하던 안전모와 작업복, 장비, 작업 일지, 사보, 설계도면, 서류 등을 가져왔다. 전시의 물성과 흐름 역시 쓰레기가 저장고에 들어갔다가 소각되는 공정에 맞춰 구성했다. 전시 콘텐츠와 전시 공간이 감각적으로 연결되자, 전시의 내용과 메시지가 더 깊이 전달된다는 것을 학습했던 것이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은 전체 규모(30만 평)도 다르지만 시설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 ‘멈춘’ 공간이란 점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소사공단과 삼양중기의 실체가 전시에서 사라진 유령과 같았다면 부평2공장은 활동을 잠시 멈춘, 현존하는 대상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닫힌 공장의 문을 열고 그 안에서 전시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목표였다. 학부 때 건축을 전공한 탓인지, 전시 공간을 구획하고 동선을 계획하는 과정이 시퀀스에 따라 공간 경험을 설계하는 건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시가 답사나 공연처럼 다가온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투어를 안내하는 작가인 우리들이 해설자나 변사 같은 역할을 하는 거다. 공장 안에서도 무대처럼 보여줄 곳에만 조명을 켜고 조도를 낮추는 등 동선 안에 있는 모든 환경들이 철저히 계획된 장치들이었다. 빈 공장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오석근), 컨베이어 벨트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뒷모습을 담은 드로잉(김은희), 부평2공장에서 마지막으로 생산된 트랙스 차량을 정비 마스터들이 분해하는 영상과 함께 부품을 계열별로 재배치한 설치작(김은희, 최혁규 기획·연출), 차체공장 노동자들의 하루를 상상하며 이들의 속마음을 표현한 설치작(양정욱), 노동 과정에서 상처입은 신체를 촬영한 사진 연작(오석근), 노동의 피로를 덜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만든 의자들을 방석 형태로 재현한 설치작(민운기)까지. 전시된 작업들은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공장에서 사라진 존재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환기한다.
방: 전시는 끝났지만 해당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 중이다. 전시를 마친 소회는 어떤지, 부평2공장을 무대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알려 달라.
김: 우리의 첫 번째 관객은 일반인이 아니라 수천 명에 달하는 공장 노동자들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했다. 그리고 우리가 작업하는 무대 역시 ‘살아 있는 공장’이라고 인식했다. 노동자들과 만나 인터뷰하면서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하게 됐는데, 사무실에서 대화할 때보다 자신들이 근무했던 컨베이어 벨트에서 대화할 때 더 진솔하고 현장성 있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대화하며 기록을 남기는 과정은 노동자들에게 과거를 직시하고, 우리 노동사와 산업발전사에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작업이 현실에 개입하는 실천적이고 수행적인 아카이빙이라고 느끼게 됐다. 물적인 구조와 노동자들의 경험을 매칭하는 현장 중심의 아카이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그 의미를 확장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는 이전까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노동자들이 직접 발화할 수 있는 무대나 장치를 만들고 이를 기록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멈춘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언어로 그 공간을 계속 바라보고 이를 이미지나 영상, 전시나 강연 등의 형태로 선보이는 것이다. 이런 사건들이 계속 이어지고, 이를 종합한 결과물이 이미지 아카이브 형태의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차체2공장에 설치된 민운기의 ‘노동자의 자리’
_
1 이 전시는 부평구문화재단,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가 주최하고 경인콜렉티브가 주관해 개최됐다. 부평2공장에서 진행된 현장 전시에 앞서, 부평아트센터 갤러리꽃누리에서 군수산업도시에서 자동차산업의 도시로 성장한 부평의 역사를 따라가며, 산업과 도시가 맞물려 변화하는 과정을 아카이빙한 것을 소개하는 전시가 2025년 9월 26일부터 11월 2일까지 진행됐다.
2 경인콜렉티브는 경인 지역 일대 공업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 조사하고, 예술적 방식으로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기획자, 예술가, 연구자 등이 모여 만든 문화예술집단이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