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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과 활용의 기준점을 찾아서: 흑린각

사진
김창묵(별도표기 외)

「SPACE(공간)」 2026년 2월호 (통권 699호)

 

 

검은 비늘의 집(黑鱗閣). ‘흑린각’은 회색빛의 일식 기와와 불탄 적송목의 표면이 검은 비늘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목포 원도심에 자리한 적산가옥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은 근대건축유산의 복원과 활용, 현재와 미래로 이어진다. 이 대화에 흑린각 복원을 진두지휘한 김경인(경관디자인 공유 대표)과 근대문화유산 연구자인 서동천(국립목포대학교 교수)이 함께했다. 편집자

 

 

번화로에서 바라본 흑린각의 정면. 나가야 특유의 스케일과 비례감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지붕, 외벽, 창호, 돌출 창(1층)과 돌출 난간(2층) 등을 그대로 복원했다.

 

 

​인터뷰 김경인 경관디자인 공유 대표 × 서동천 국립목포대학교 교수 × 방유경 기자

 

 

방유경(방): 1920년대 중반에 지어진 일식 가옥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건물을 어떻게 발견하게 됐는지, 어떤 연유로 매입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김경인(김): 전주에서 태어나 한옥마을에서 자랐다. 덕분에 군산, 대구, 인천, 포항 등 근현대 역사의 정취가 남아 있는 지역을 가족과 자주 여행했다. 목포에 처음 방문했던 2017년, 조용한 원도심에 늘어선 적산가옥을 둘러보며 이중 한 곳을 잘 고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흑린각을 발견하게 됐다. 비늘판벽과 회벽 외장으로 마감된 목포의 여느 일식 가옥과 달리, 간판 뒤로 후퇴(set-back)된 2층 입면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쳐 쓰는 입장에서 보면, 합벽되어 있는 두 건물의 소유주가 한 명이고 양옆 건물과 이격되어 있어 필지, 소유 관계가 복잡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서동천(서): 1897년 개항된 목포의 번화로는 일본인들의 주요 상업 가로로 조성된 길이다. 도로를 따라 연속된 가로 입면을 형성하는 마치야(町家)와 나가야(長屋)▼1가 주로 들어섰는데, 2층을 후퇴하는 방식은 일본에서도 옛날 방식이다.▼2 관동대지진(1923)으로 대부분의 목조건물이 무너지거나 불에 타 사라졌고, 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목조나 조적조가 아닌 간판건축▼3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역사 도시인 교토에서는 2층이 물러난 목조건물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도쿄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흑린각은 비슷한 시기에 들어선 주변 건물과 달리, 일본의 전통 목조건축 입면 방식을 고수했다는 점에서 특이한 사례였다. 

 

 

 

목포시에서 조성한 공원을 마주하고 있는 흑린각의 배면 

 

 

방: 건물은 일제강점기 사진 엽서를 단서로 추정할 때 1924년 완공된 상태였고, 토지대장상 1935년에 처음 등록되어 1958년 증축된 기록이 있었다. 신축이나 단순 리모델링이 아닌 원형 복원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원형’의 기준은 어떻게 설정했나?

 

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인근 적산가옥과 등록문화유산들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현황을 먼저 조사했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서울이 아닌 목포에만 존재하는, 원도심의 정체성을 가진 건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원형 복원을 결정하게 됐다. 하지만 간판과 덧씌워진 마감으로 누더기가 된 건물을 보며 원래 모습을 상상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도면 등 실물 자료가 없어 막막하던 찰나, 뜻밖의 곳에서 중요한 자료를 발견했다. 흑린각 바로 옆에 있는 갑자옥 모자점을 목포시에서 매입해 재생하기 위해 가림벽을 설치했는데, 이 벽에 부착한 1930년대 사진에 흑린각의 모습이 담겨 있었던 거다. 서둘러 목포시에 문의해 원본 사진을 구하고, 목포근대역사관을 찾아가 흑린각 일대의 풍경이 담긴 옛 사진을 추가로 확보했다. 한국학중앙연구소에서 구축했던 일제강점기 데이터베이스를 뒤지는 한편, 전문가 자문도 받아가며 사진 속에 등장했던 최초의 모습을 ‘원형’으로 보고 복원에 착수했다.

 

 

 

흑린각 2층. 가운데 부분이 외엮기 흙벽을 재현한 부분이다.

 

​불에 탄 지붕 구조목 표면이 비늘처럼 보이는 흑백사진.  

 

 

방: 기존 설계도면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남길지 공간, 구조, 재료 등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리모델링 과정은 실제로 어떤 순서로 진행됐나?

 

김: 처음 흑린각을 발견했을 당시 내외부가 패널로 덧붙여진 상태라 건물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건물을 매입할 때 과거 2층에 화재가 났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겉으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료 조사를 병행하며 가장 먼저 부분 해체를 진행했다. 덕분에 내부 마감 재료와 상태, 구조, 2층의 화재 상황 등 구체적인 실체를 확인하고 설계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시공하면서 뒤늦게 설계 변경을 하는 등 난리가 났을 것이다. (웃음) 실제로 내부 벽체가 대나무를 엮어 중깃을 세우고 흙을 섞어 채운 외엮기 흙벽임을 발견하는 등 현장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서: 부분 해체는 문화유산 복원 계획을 세우기 전에 현재 건물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건물의 일부를 뜯어서 확인하는 과정이다. 흑린각 같은 개인 소유의 건물에서 부분 해체를 진행한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문화유산 중에서도 근대문화유산의 경우 ‘보존’이 아닌 ‘활용’에 방점을 두고 계획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분 해체가 반드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진행하지 않고 있다. 해체 중 예상 못했던 것들이 발견되면 공사를 중단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기 위한 조치 같기도 하다. 부분 해체를 의무화하는 규제나 법안도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김: 원형 복원은 ‘원래 구조를 살린다, 원래 부재를 활용한다, 원래 재료를 재현한다’는 원칙 아래 진행됐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외엮기 흙벽은 100년을 견디다 주저앉은 상태라 그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내부 벽 선에 맞춰 흙벽 일부를 재현해 그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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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린각 2층. 가운데 보이는 벽이 두 건물이 합벽된 벽체 선을 살린 부분이다. 

 

흑린각 1층에서 뒤편의 공원을 바라본 모습. 1층 내부 기둥은 가급적 원형을 살리고자 동바리이음으로 보강했다. 2층 마루는 최대한 보존했으나, 1층 바닥은 보존 가치가 높지 않아 콘크리트 폴리싱으로 마감했다. 

 

 

방: 원래 흑린각은 건물 두 동이 합벽된 구조라고 들었다. 건물 상태를 확인한 이후 설계와 시공 등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김: 원형 복원이 결정된 상태에서 건물을 두 개로 나눌지 하나로 합칠지 고민이 많았다. 쉽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목포시에서 2021년 우리 건물 후면 일부가 뒤편에 있는 공원 땅을 침범했으니 해당 부분을 철거하라는 통보를 전달했다. 대지 경계를 침범한 건물 한 동의 후면을 철거할 경우 잘려 나간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막막했다. 최초 기록에 등장하는 1924년의 복원과 현재 2022년의 디자인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때 전통이란 과거의 것을 미래로 보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흑린각에서 무엇을 미래로 보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인 교토를 찾았다. 교토 애플 스토어(2018)에서 모듈을 도입해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을 보며 우리 작업에 적용해 보았다. 철거하며 잘려 나간 입면에 1m 모듈의 유리벽을 세우고 내부 벽체를 터서 두 동을 하나로 합쳤다. 그러자 목재(과거의 재료)로 충실하게 구현한 1924년의 정면과 유리와 철제 프레임(현대의 재료)으로 재해석한 2022년의 배면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공존하게 됐다. 지붕도 1924년 당시 일식 기와를 얹은 부분, 1958년 증축하면서 슬레이트로 씌운 부분, 2022년에 새로 덧댄 부분을 영역별로 구분해 재료를 달리 표현했다. 내부 공간 또한 세 시점(1924년, 1958년 증축, 2022년 복원)에 따라 기둥, 벽, 바닥 등 부재와 요소들을 구분했다. 여러 시간대가 공존하는 풍경이 이렇게 완성된 것이다.

 

방: 개인적으로 불에 탄 구조목이 노출된 2층 천장이 흑린각의 시간성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부분이라 느꼈다. 내부의 흙벽과 기둥 구조물, 바닥 등 건물 곳곳에도 부재별로 특징과 건축 시기를 기재해두어 박물관 안에 들어온 듯했다.

 

김: 부분 해체 과정에서 2층 지붕의 피해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됐고 구조기술사를 찾아가 불에 탄 구조목의 존치 여부에 대해 자문을 받았다. 다행히 구조체로 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국가유산실측설계 기술자와 함께 설계를 진행하고, 국가유산수리 기술자와 논의해 2층을 노출 천정으로 시공했다. 긴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 힘들게 살렸는데, 다시 가릴 수는 없지 않나. (웃음) 검게 탄화된 적송 표면에서 ‘흑린각’ 이름을 떠올리게 됐다.

 

서: 한옥에서 천장을 열어 서까래를 노출하는 것과 달리, 일본 주거 건축에서는 천정을 막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따라서 천정반자를 얼마나 치밀하게 마무리하는지, 얼마나 화려하게 하는지가 기술력과 미감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로 여겨진다. 이런 이유로 일제강점기 일식 주택 복원 시 지붕 노출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흑린각은 단순히 일식을 따르지 않고 2층 지붕의 그을린 목재를 드러내며 지붕 구조를 노출해 한식과 일식의 접점을 형성했다. 일식 주택과 한옥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미감의 공간감이 생겨난 것이 복원의 큰 수확이라고 느꼈다.

 

 

 

부분 해체 후 흑린각(2021년 11월 14일 촬영) ©Kim Gyungin​

 

1932년 12월 25일 목포신보사에서 발행한 『개항만 35주년 기념 목포사진첩』에 수록된 사진(목포시 소장) Image courtesy of Kim Gyungin 

 

 

방: 이처럼 개인이 여러 전문가들과 협업해 복원한 사례는 정말 드문 일인 것 같다. 목포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로서 이 과정을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다.

 

서: 흑린각은 개인 소유자가 리모델링을 진행했지만, 주변 건물과 달리 섬세한 과정을 거쳐 문화유산급으로 복원됐다. 흑린각처럼 똑같이 할 수는 없어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지역에서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실상 사료 연구, 부분 해체, 전문가가 참여한 자문·설계·시공까지 모든 단계가 건물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발굴하는 과정이었다. 근대문화유산을 복원·수리할 때 ‘가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게 되는데, 가치 발견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매력’이 아닐까 싶다. 400년 된 일본 건설회사인 다케나카공무점은 근대건축을 복원하고 활용하는 작업을 ‘매력 재생’이라 명명했다.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는 작업을 ‘매력’으로 치환한 근거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대중과 소통하는 공감대 안에서 ‘역사’와 ‘매력’이 결을 같이 한다고 본 관점 자체가 매력적이라 느껴졌다. 일본에는 자국 건설업계를 100여 년간 이끌고 있는 5개 건설회사▼4가 있다. 자기 회사의 역사만 정리해도 일본 건축사가 나오는 곳들이다. 300~400년 전부터 성곽, 궁, 사찰들을 직접 짓고 관련 도면 등 자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회사별로 별도의 문화유산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곳들에서 국가 차원의, 국보급 건조물의 복원과 보수 사업들이 진행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영세한 문화유산 보수 업체와는 역량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김: 우리가 작업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어려움은 근대건축에 대해 축적된 자료나 연구가 빈약하다는 점이었다. 문화재 관련 시공사, 설계사에 의뢰하면 알아서 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들도 자료가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기둥 초석을 만드는 과정부터 설계도면 없이 현장에서 시공사와 많은 것을 협의하며 결정했다. 이런 자료들을 회사와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일본의 이야기를 들으니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흑린각의 정면(위)이 일식 주택의 형태를 그대로 복원한 반면, 배면(아래)은 현대적 해석을 더해 일식 주택의 모듈(1m의 기둥 간격)에 맞춰 유리 창호로 마감했다.

 

 

​방: 지난해 6월과 10월, 흑린각을 조성한 과정을 정리한 책을 펴내고 전시도 진행했다. 현재 전시 이후 비어 있는 상태인데, 다음 단계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김: 출판과 전시 모두 흑린각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지역 주민들, 전문가 등 관련자들이 와서 보고 리모델링이나 계획에 참고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현재는 목포다움을 경험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원래 취지에 맞게, 목포의 낮과 밤을 누리는 체험형 숙박시설을 준비하고 있다. 목포 9미, 재래종 무화과와 같이 목포만의 식문화를 경험하는 것, 주변 거점 공간들과 연계하는 방법도 차차 모색하고자 한다. 

 

서: 관동대지진 때 무너진 3층을 복원해 개장한 시미즈 건설의 도쿄 스테이션 호텔, 1968년 철거됐던 1894년 건물을 그대로 복원한 다케나카공무점의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 모두 자신들이 지었던 건물의 ‘매력’을 재생하는 복원을 통해 상업적 성공을 이룬 사례들이다. 흑린각 역시 잘 복원된 것을 넘어서, 목포에 안착해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좋은 사례로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 그래야 대중도 행정도 움직일 수 있다.

 

방: 책의 마지막에 “공공은 정확할 수 있어도 섬세하긴 힘들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섬세함으로 완성한 노력이 빛을 발해 제2, 제3의 흑린각에 누군가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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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치야(町家)는 단독주택의 저층에 상업 기능이 결합된 일본의 전통적인 목조 상가주택이다. 나가야(長屋)는 일본의 전통적인 장방형 연립주택으로, 여러 세대가 거주하는 임대 형식의 주거다. 각 세대가 도로변에서 진입하는 개별 입구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2  2층이 후퇴한 양식을 즈시니카이(厨子二階)라고 하고, 동일한 입면으로 올라간 경우를 혼니카이(本二階)라고 한다.

3  마치야나 나가야의 목조 입면 위에 서양식 재료를 덧붙여 마감한 건축물로 방화 성능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4  일본의 건설업계를 100여 년간 이끌고 있는 다섯 곳의 건설회사는 시미즈 건설(清水建設), 오바야시구미(大林組), 다케나카공무점(竹中工務店), 가지마 건설(鹿島建設), 다이세이 건설(大成建設)이다. 이들은 ‘슈퍼 제너럴 콘트랙터’의 약자인 ‘슈퍼제네콘’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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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PACE(공간)」 699호(2026년 02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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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인
김경인은 환경이 사람의 인지, 사고,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해온 경관 및 공간 전문가이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25년 이상을 도시 공간, 공공 공간, 학교 공간, 노인 공간에 이르기까지 ‘사람 중심의 공간’을 주제로 활동해왔다. 경관 전문가로서 목포 원도심의 근대건축 흑린각(HEUKLINGAK, 黑鱗閣)을 매입·복원하며, 건축 보존을 도시 기억과 가로경관을 되살리는 실천으로 제시했다.
서동천
서동천은 국립목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다. 일본 도쿄대학에서 건축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중일 비교분석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건축사와 도시사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근대 한국 건축과 일본 건축의 비교 연구, 동아시아 개항도시의 비교 연구, 건축에 있어서의 역사성과 지역성이 연구의 주요 테마다. 저서로는 『복고와 서양화 사이에서』, 역서로는 『일본조선비교건축사』, 『일본 건축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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