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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건축학도의 쉬는 시간

글
20기 SPACE 학생기자(김수경, 김예림, 이현수)
사진
정덕명, 최하연, 이종찬, 전세빈, 이지윤
진행
박지윤 기자

건축학도의 삶은 언제나 설계와 함께하는 듯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설계의 공백기가 찾아온다. 누군가는 졸업 후 그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졸업 전시를 끝내고 해방을 경험한다. 또 다른 이는 학과의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휴학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 이 시기들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다시 설계로 돌아가기 위한 호흡이자 각자의 시선을 확장하는 과정일 수 있다. 우리는 건축학도 다섯 명을 인터뷰했다. 이 기록은 단순히 ‘어떻게 쉬고 있나’에 대한 응답에 머물지 않고 각자가 경험하는 공백기가 앞으로의 설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건축적 사고의 토양이 되는지를 암시한다. 

 

 

20기 SPACE 학생기자(김수경, 김예림, 이현수) X 건축학도 정덕명, 최하연, 이종찬, 전세빈, 이지윤

 

 

 

① ‘왜’, ‘무엇을’, ‘어떻게’를 채우는 시간

도시∙공간 콘텐츠 매니지먼트 그룹 ‘어반플레이’에서 ‘공간 콘텐츠 기획자 스쿨’ 참여_명지대학교 정덕명


'어반플레이'의 '공간 콘텐츠 기획자 스쿨' 성과공유회 참여 사진

 

 

학생기자: 지금의 쉼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정덕명(정): 학교에서의 5년 내내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주어진 프로젝트를 그저 처리한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무엇 때문에 건축을 배우고 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건축을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왜’, ‘무엇을’, ‘어떻게’에 대한 빈칸은 충분히 채우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사회로 나오기 전의 공백기를 학문으로서 요구되는 건축의 틀에서 잠시 벗어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과거 건축기획 수업을 통해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고 경험되는가’에 흥미를 느꼈던 기억을 떠올렸고, 건축을 지나치게 물리적인 결과물 중심으로만 사고해 온 것은 아닐지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공간을 하나의 콘텐츠로 기획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 공간 콘텐츠 기획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기자: 가장 인상깊었거나 시선을 넓혀준 경험은 무엇인가요? 

정: 전시 기획안을 준비하며 전시 총괄 담당자로부터 받았던 피드백이 기억에 남습니다. “‘​공간’​콘텐츠 기획이라 할지라도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보다 관람자가 무엇을 하게 만들지, 전시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가 우선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공간을 동선이나 체험 요소 중심의 구성 문제로 접근하였으나, 이 피드백을 계기로 전시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제로 하고 설계는 그 의도를 시각화하는 매개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또 서로 다른 전공 배경을 가진 팀원들과의 협업 속에서, 같은 주제를 두고도 각자가 떠올리는 아이디어의 형태는 전혀 달랐습니다. 결국 이를 조율하는 과정 또한 ‘어떻게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를 먼저 합의해야만 가능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설계란 형태를 만드는 작업 이전에 메시지와 사고를 조직하는 일이라는 점을 다시 실감하게 되었고, 이는 기존의 설계 중심 경험과는 또 다른 시선의 확장으로 다가왔습니다.

 

학생기자: 쉼을 통해 새로운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나요? 

정: 사고하는 방식과 관심의 중심이 보다 분명해졌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도면과 형태, 물리적인 완성도의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집착해 왔다면, 지금은 공간이 전달하는 메시지와 경험의 구조를 먼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단순히 ‘건축을 좋아한다’는 감각이 아니라, 어떤 질문을 전제로 한 건축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사람인지를 조금씩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형태를 만드는 행위 자체보다, 공간이 어떤 맥락 속에서 기획되고 어떤 경험과 의미를 전달하는지를 설정해 나가는 과정에 더 큰 흥미를 느낀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설계 수업에서 개념으로만 알고 있던 내용을 전시 기획을 통해 직접 경험하며 실감하게 된 부분이었습니다. 

 

학생기자: 지금 쉼을 고민하고 있는 건축학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 학생으로서의 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형태의 쉼이라고 느꼈습니다. 휴학이나 졸업 이야기를 꺼내면 흔히 “그래서 뭐 해?”라는 질문을 자주 듣게 되는데, 그 말은 때때로 당장 무언가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쉼은 반드시 뚜렷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시간이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드문 기회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길이 정말 나에게 맞는지 불안하거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제 또래의 건축학도가 있다면 ‘건축’이라는 단어에 너무 이른 한계를 두지 않아도 괜찮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② 설계를 벗어나 바라본 나의 건축

연합 동아리 ‘아키텐’에서 전시 기획 디자인 활동 참여_성신여자대학교 최하연


(좌) '놂: 건축입장권' 실물 포스터 사진 (우) 서울공예박물관 앞에서 진행된 실제 전시 전경

 

 

학생기자: 지금의 쉼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최하연(최): 2학년이 끝난 후 휴학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건축에 관한 깊은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디자인과 내 공간디자인 전공으로 소속된 특성으로 인해 시각, 영상, 공간 등 여러 분야의 디자인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건축·공간 디자인은 결과물에 따른 논리 구조가 명확해서 좋았습니다. 감각적, 주관적인 면보다 형태, 배치, 구조, 동선 모두가 왜 이렇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이유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오는 해방감도 있었습니다.

특히 2학년 때는 건축 연합 동아리 ‘아키텐’에서 건축학도들과 교류하며 이전엔 부족했던 건축과 디자인의 경계, 본질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었고, 건축학과에 대한 동경심과 함께 설계에 매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건축을 좀 더 좋아하고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분명해졌고, 이를 위한 시간으로 쉼을 선택했습니다.

 

학생기자: 가장 인상 깊었거나 시선을 넓혀준 경험은 무엇인가요? 

최: 휴학 당시 동아리 활동에서 만난 건축학도와 나눴던 대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분은 학부 4년이 지난 후 다른 분야의 지식이 깊을수록 더 좋은 건축을 할 수 있음을 체감하고, 휴학을 해 더 풍부한 설계를 위해 마케팅, 브랜딩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설계 위주의 건축을 동경했었고, 더 잘 해내고 싶어 휴학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한 발짝 떨어져 관망하는 자세로 다양한 교양과 함께 제 주전공에 관한 공부도 시도하는 그분의 모습이 신선함과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단순히 건축사와 건축가를 위주로 해오던 공부 이상으로, 관심 있던 다른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시간을 쓰며 시야를 넓히게 되었습니다.

 

학생기자: 쉼을 통해 새로운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나요? 

최: 1년 동안 설계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건축과 연관된 여러 요소와는 더 가까워졌다고 느낍니다. 건축을 인쇄물, 그래픽 등 시각 디자인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건축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을 담아 작업하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됐습니다.

건축 연합 동아리 ‘아키텐’에서 진행한 전시 그래픽 및 포스터 디자인 또한 건축을 ‘놀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본 여러 작품을 포괄해 시각화한 작업입니다. 대중에게 다양한 건축적 경험과 매력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였기에, 특정 이미지를 연출하기보다 시각적인 활력, 역동성이 느껴지도록 작업했습니다. 

물론 복학하여 설계 수업을 많이 듣다 보면, 생각이 또 바뀔 수 있겠죠. 하지만 이번 쉬는 시간은 어쩔 수 없이 화면 속에서만 머무르는 설계보단, 무엇이든 실물로 구현해 내는 디자인 작업을 더 좋아한다는 결론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얻을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학생기자: 지금 쉼을 고민하고 있는 건축학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 얼마 전 박찬용 에디터가 서울 주택을 매입해 7년 간 이를 수리하는 이야기를 담은 『서울의 어느 집』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수전, 손잡이 등 모든 요소를 발품 팔며 찾는, 자신이 그리는 삶을 위해 오랫동안 ‘건축’을 하는 셈인 것이죠. 결국 건축은 단순히 완성도 높은 설계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건축과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가치가 공간에 드러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유한 정체성이 수많은 건축가 사이에서 경쟁력을 부여해 주는 수단인 만큼, 쉬는 시간 동안 본인만의 삶의 길을 찾아가다 보면 더 좋은 설계를 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③ 관심을 선명히 하는 또 다른 배움

SSK 인턴_명지대학교 이종찬


SKK 사무실 전경

 

 

학생기자: 지금의 쉼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종찬(이): 학부 2학년 때 참가했던 공모전을 계기로 지속 가능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여러 공모전과 전공 수업을 거치면서 그 관심이 점점 더 선명해졌습니다. 전공 수업에서는 주로 단열 시스템이나 열 관류율처럼 제로에너지디자인의 이론적 내용에 집중하게 되는데, 실제 실무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구현되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갈증이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휴학을 결심했을 때는 ‘인턴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막연히 갖고 있었고, 어떤 곳에서 경험을 쌓을지 찾아보던 중 「SPACE(공간)」에 업로드 된 SSK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환경적응 건축을 지향한다는 소개를 보고, 지속가능성과 에너지 관점에서 분명 배울 점이 많겠다는 확신이 들어 지원했고, 인턴으로 합류하면서 쉼이자 배움의 시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학생기자: 가장 인상깊었거나 시선을 넓혀준 경험은 무엇인가요?

이: 회사에서는 설계공모의 법규 및 규모 검토부터 디자인 스터디, 모델링, 그리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중간 설계 납품 도서 작성까지 정말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장면을 딱 집기보다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제 시야를 많이 넓혀주었다고 느낍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을 꼽자면, 설계의 초기 단계인 배치와 조형을 고민하는 시점부터 제로에너지디자인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사실상 필수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초기부터 이런 내용이 녹아든 건축과 그렇지 않은 건축은 완공 후 에너지 성능이나 공간의 질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건축 시장에서는 제로에너지디자인을 ‘허가를 위한 스펙 맞추기’ 정도로만 보는 시선도 남아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컸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건축이 에너지와 환경까지 통합적으로 다루는 작업이라는 것을 몸으로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학생기자: 쉼을 통해 새로운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나요? 

이: 이번 경험을 통해 앞으로의 방향이 완전히 선명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스스로의 진로에 대해 질문해 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되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의 시간들이 건축설계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달려온 시간이었다면, 휴학과 인턴 과정은 한 발자국 물러나 제 삶 전체를 바라볼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동안 건축설계 이외의 진로를 진지하게 상상해 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번 쉼의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직장에 갈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고등학생 이후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나에게 허락된 여러 방향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고민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자체가 앞으로의 선택을 조금 더 주체적으로 만들어 줄 시작점이라고 느낍니다. 

 

학생기자: 지금 쉼을 고민하고 있는 건축학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휴학을 했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특별한 성과를 꼭 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었다면,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쉼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또 쉼을 단순한 휴학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전공과 무관하더라도 하고 싶은 활동이 분명히 떠오른다면, 그때는 잠시 학업을 멈춰두고라도 과감하게 도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10년, 20년 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더라도, 그 시간은 분명 의미 있는 기억과 경험으로 남아 앞으로의 삶을 지탱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④ 건축의 디테일을 향하여

파리 소재 건축∙인테리어 설계사무소 인턴_이화여자대학교 전세빈



(좌) 실내건축 서적과 창문을 통해 포이는 파리 (우) 주택을 개조해 사용하는 사무소 전경

 

 

학생기자: 지금의 쉼을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전세빈(전): 나만의 ‘특별함’을 만들고자 프랑스에서 일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건축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생각과 경험을 쌓아왔는지가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 제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건축의 디테일이었습니다. 미니멀한 이미지로 소비되는 건축을 넘어, 문화적으로 적층 되고 연속성을 지닌 디자인 언어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재료를 다루는 방식이나 풍부한 건축적 언어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도 컸고요.

마침 대한민국 건축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한국건축가 협회와 프랑스 건축 수출협회가 공동 주관한 프랑스 인턴십 프로그램에 연수자로 선발되었습니다. 학부를 마친 후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실무를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은 제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곧바로 취업하기보다 시야를 넓히고 스스로를 재정비할 수 있었던 점이 특히 의미 깊었습니다.

 

학생기자: 가장 인상깊었거나 시선을 넓혀준 경험은 무엇인가요?

전: 근무했던 사무소에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국적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있었고,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건축을 공부한 시니어 건축가들과의 교류가 기억에 남습니다. 예를 들어 호텔 프로젝트에서 가구의 패브릭을 선택할 때, 여러 공급업체의 다양한 패턴을 비교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배경을 가진 건축가의 디자인 판단은 매우 직관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이 건축가를 직접 인터뷰하며, 건축과 삶, 일을 대하는 태도도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브라질에서 건축을 시작해 이탈리아에서 가구 디자인을 공부하고, 현재는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커리어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프로젝트를 설명할 때 하나의 요소가 아니라, 여러 요소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디자인이 발전해간다고 이야기한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 역시 그런 태도로 건축을 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학생기자: 쉼을 통해 새로운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나요? 

전: 프랑스에서 인턴십을 마친 뒤에는 한국에서의 실무를 본격적으로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일하는 동안 주변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실무 환경 차이를 자주 물었지만, 학부 졸업 후 바로 프랑스로 갔기에 명확한 답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실무를 시작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통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체감했고, 건축의 디테일과 재료 사용에 대해 배울 것이 여전히 많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지금은 배우고 싶은 분야를 중심으로 진정성 있고 차분하게 실무를 익혀가고 싶습니다.

 

학생기자: 지금 쉼을 고민하고 있는 건축학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돌이켜보면 학부 시절 쉼 없이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졸업설계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제 관심사를 다시 들여다보고, 재정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배움과 깨달음을 많이 얻었습니다. 건축은 긴 호흡으로 자신을 다져가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 스스로의 가능성과 특별함을 믿고, 각자의 속도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⑤ 여행에서 시작된 사유의 시간

유럽 여행과 인턴_성신여자대학교 이지윤


(좌) 템스강과 폴 세인트 대성당, 타워 브릿지 사진 기록물 (우) 유럽 도심과 파리 퐁피두 센터 스케치 기록물

 

 

학생기자: 지금의 쉼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지윤(이): 항상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디자인의 본질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해 왔습니다. 디자인으로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건축·공간 디자인과 서비스 디자인 등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논리와 체계성이 강한 디자인 위주로 방향성을 찾아갔습니다. 

워낙 해가 바뀔 때마다 하고 싶은 것이 변해 고민스러웠기도 했으나, 학부 3학년 때 교내 스터디와 건축 연합 동아리 ‘아키텐’ 활동을 하며 건축가로서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건축·공간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 함께 사고하고 작업하는 과정에서 느낀 몰입과 안정감이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다양한 분야를 경험한 끝에, 졸업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건축·공간 디자인을 더욱 깊게 공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대학원, 취업 등 미래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공부를 하고 싶었기에 쉼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학생기자: 가장 인상 깊었거나 시선을 넓혀준 경험은 무엇인가요? 

이: 연초에 떠났던 유럽 여행입니다. 당시 필요한 시기에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워낙 고민과 불안이 많은 성격인 데다 제게 1순위는 늘 진로였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인턴, 공모전 등 ‘생산적인 행위’에 시간을 더 쏟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면 한 나라, 한 도시에서 쓸 수 있는 시간과 재화가 한정돼 있기에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후회가 없기 마련입니다.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취미들을 미뤄놓으면서까지 고민했던 진로에서 잠시 멀어져,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도시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꼭 해보려고 했습니다.

‘건축 기행’이라는 이름 아래에 떠난 여행이지만, 그때 본 수많은 멋진 건축물보다 그 도시만이 보여주는 거리 풍경과 사람들의 분위기가 제 건축적 취향과 사고를 확고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작은 것에도 전전긍긍하고,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얻은 것보다 저 자신을 위해 보낸 시간이 가장 소중하고 기억에 남습니다.

 

학생기자: 쉼을 통해 새로운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나요? 

이: 지난 한 해 동안 여행 외에도 다양한 건축 행사 스텝, 건축사사무소 인턴 등 건축 실무와 관련된 여러 활동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실무와 현장의 이야기를 가까이 마주할수록 점점 건축과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택받기 위해 설계 공모에 출품하며 끊임없이 경쟁하는 환경 속에서 경주마처럼 달리는 모습은 공허함을 주었고, 실제 현장에서 클라이언트의 한마디에 시공이 좌우되는 현상을 경험하며 건축가란 직업은 그동안 열망하던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하는 삶’과는 멀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쉼은 저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현실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깊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설계 외에도 저마다의 이상과 목표를 지니고 있었던 주변 건축학도들의 모습, 그토록 원하던 직업의 본질과 현실을 마주하며 건축 설계보다 제 역량을 더 잘 살릴 수 있는 방향성이 있을 것이라 느꼈습니다. 지금은 설계 위주보단 물리적인 공간과 시나리오 기반의 서비스를 결합하는 형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생기자: 지금 쉼을 고민하고 있는 건축학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적어도 2주 이상의 여행을 꼭 해보면 좋겠습니다. 직접 나라와 도시를 선택하고 자기만의 계획으로 긴 여행을 떠나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설계와 학교 성적만을 바라보며 달리다 보면 내 생각과 미래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게 됩니다. 무조건 남들 가는 대로 따라가지 않고 내가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직업의식 등 진정한 꿈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쉬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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