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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내려앉은 민들레 홀씨가 피운 이야기꽃

최정화 ×김금영 객원기자
자료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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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MCA 현대차 시리즈 2018: 최정화 – 꽃, 숲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Sep. 5, 2018 – Feb. 10, 2019

최정화, '민들레', 생활그릇, 철 구조물, 지름 9m, 2018

 

김금영(김): 많은 사람들이 최정화 작가를 ‘플라스틱 연금술사’라고도 부른다.

최정화(최): 연금술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긴 하지만 사실 어떻게 불리느냐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과학자, 예술가, 수학자 등 세상에 수많은 이름들이 있는데, 이들 모두가 세상에 이야기를 전달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이 역할이 중요하다.

 

김: 올해 전 세계에 몰아친 플라스틱 대란 속에서 작업이 유독 더 주목받은 측면도 있지 않나?

최: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대란은 오늘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플라스틱을 존중하지 못했기에 생긴 현상이다.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나온 재료로 만든, 즉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자연의 일부라고도 볼 수 있다. 이를 인공 화학물질로만 여겨 나쁘게 취급해, 마구 버리는 등 사용법 자체가 잘못돼 있었다. 그걸 이제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의도로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건가?

최: 경각심보다는 태도 이야기다. 1990년대 초 일상 속 조화와 생화를 대하는 아주머니들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 조화와 생화를 같게 여기며, 화분에 꽂고 과일도 매다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에서 어떤 대상을 비교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모두 존중하는 태도를 봤다. 이런 태도를 배우고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대상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느꼈다. 당시 소쿠리, 컵 등 어느 집에서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플라스틱을 활용해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최정화, '꽃의 향연', 생활그릇, 290×​75.5×​122cm, 2015 


김: 플라스틱뿐 아니라 돼지머리, 제사용 과자, 조화 등 미술 작품 소재로 잘 활용되지 않는 것들을 작업에 꾸준히 사용했다. 현재는 예술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많이 형성됐지만, 작업 초창기 때는 이상하게 보는 시선도 많았을 것 같다.

최: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이게 뭐야?”라고 물었다. 하지만 예술은 답을 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이거 예술 맞아?”, “이래도 예술이야?” 등 다양한 질문과 이야기가 오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지금은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몸소 느낀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간 덕분이 아닐까?

 

김: 식기 7,000여 개로 구성된 대형 설치 작업 ‘민들레’를 만들기 위해 공공미술 프로젝트 ‘모이자 모으자’를 진행했다. 3월부터 서울, 부산, 대구를 돌며 시민들에게 직접 생활용품을 기증받았다.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겠다.

최: 이번뿐 아니라 과거에도 꾸준히 진행해온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가 있다. 다리가 없는 플라스틱 의자, 그리고 등받이가 없는 나무 의자를 노끈으로 묶어 개조한 의자 사진을 봤을 때 큰 울림을 느꼈다. 내 작업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의자다. 각각의 의자는 망가져 있었지만 두 의자가 모여 하나의 완성된 의자가 됐고, 여기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됐다. 예술도 이래야 한다. 제각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은 한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난 그 이야기가 모이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식기를 모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집에서나 식기를 흔히 사용한다. 밥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서 식기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겼다. 사람들의 사연 하나하나를 적은 식기를 모았고, 직접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모은 식기들까지 다 합쳐 ‘민들레’를 만들었다. 쉽지 않았지만 필요한 과정이었다.

 

김: 식기로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중 왜 꽃이었는가?

최: 채호기 시인의 ‘해질녘’에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태양이 한 마리 곤충처럼 밝게 뒹구는 해질녘, 세상은 한 송이 꽃의 내부”. 단순히 꽃의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에 주목한 거다. 사람들의 마음에 꽃을 피우고 싶었다. 씨앗이 발화해 꽃을 피워 생명력을 뿜어내듯 사람들의 이야기꽃이 미술관에 활짝 피길 바랐다. 쉽게 접근하자면 사람들이 흔히 마음을 전할 때 꽃을 주지 않는가?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꼭 꽃으로 볼 필요도 없다. ‘민들레’를 보고 혜성 같다는 사람도, 우주선 같다는 사람도 있다. 보고 싶은 대로 보면 된다.

 

김: ‘민들레’ 덕분에 미술관 마당이 관광명소로 바뀌었다. 오늘도 사람들이 ‘민들레’ 앞에서 기념 촬영을 많이 하더라.

최: 바란 바다. 난 스스로를 ‘디지털 작가’라고도 한다. 작업 자체는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이뤄졌지만, 작업을 본 사람들은 스스로의 기억을 갖고 돌아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 네트워크를 통해 디지털 세계에서 이야기를 공유하고 끊임없이 확산한다. 수많은 사연을 지닌 식기들로 핀 꽃을 보고 새로운 이야기꽃이 또 피는 셈이다. 그래서 민들레는 수많은 생각을 녹여내는 ‘디지털 용광로’이기도 하다. 또 난 내 작업을 짬뽕, 비빔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러 재료가 들어갔지만 어느 하나 겉돌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비벼지지 않았는가.

 

최정화, '세기의 선물', 철 구조물, FRP, 크롬도장, 가변설치, 2016


김: 미술관 마당에 거대한 꽃이 피었다면 미술관 내부엔 울창한 숲이 있다. ‘민들레’처럼 생활용품을 사용해 만들어진 꽃탑 146개로 구성된 ‘꽃, 숲’이 설치된 공간이 특히 인상적이다. 밝았다가 어두워지는 전시장 중간에 마련된 길을 걸을 때 꽃탑의 그림자들이 비치는데 마치 드로잉 같다.

최: 이번 전시를 준비할 때 공간과 동선에 각별히 신경 썼다. 전시 공간은 물질계와 빛의 세계가 모이는 곳이다. 앞에서 본 꽃탑은 입체지만 암전이 시작될 때 꽃탑 뒤쪽에 마련된 길을 걸으면 꽃탑의 그림자가 나타나면서 입체였던 꽃탑이 평면 드로잉으로 환원된다. 늘 흔하게 봤던 작품의 앞모습뿐 아니라 차마 못 봤던 뒤와 옆모습까지 보여주면서 평범했던 미술관 공간을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이 길을 ‘명상의 길’이라고도 부른다. 한 면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빛과 어둠은 서로가 있기에 존재하고, 쓸모없는 것에도 찬란함이 분명 존재하며, 침묵은 때로는 비명을 품고 있고, 죽음과 생도 순환하기에 하나다. 그래서 밝았다가 어두워지고, 조용했다가 소리가 들리게 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미술관 벽을 친숙한 색동 벽지로 덮는 등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면서 가급적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꾸렸다.

 

김: 밥상 탑, 밥공기로 만들어진 ‘꽃의 향연’과 무쇠 솥, 항아리 등으로 구성된 ‘알케미’, 유아용 플라스틱 왕관을 활용한 ‘어린 꽃’, 결혼식장 장식에서 착안한 ‘세기의 선물’, 빨래판을 사용한 ‘늙은 꽃’ 등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배열 방식이다. 오브제들을 정성스럽게 쌓았다. 이 작업들뿐 아니라 많은 작업들에서 수많은 재료들의 재조합 방식으로, 쌓기를 활용한 게 많다. 최정화 작가에게 쌓는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최: 모든 직립하는 것은 쌓여 있다. 빛도 쌓이고, 물질도 쌓인다. 난 작업으로 마음을 쌓았다. 과거에 어머니들이 부뚜막 위에 물 한 그릇을 올려놓고 비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염원이 하늘에 닿기를 바라며 마음을 쌓은 것이다. 오늘날에도 모든 종교에 탑이 있고, 등산을 가도 사람들이 작은 돌멩이를 하나하나 쌓으며 소원을 비는 모습이 흔히 보인다.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쌓는 행위를 통해 마음을 쌓아왔다. 내 작업에서 쌓는 행위는 하늘로 통하는 입구로의 길과도 같다.

 

최정화, '어린 꽃', 플라스틱 왕관, 철 구조물, 가변설치, 2016~2018


김: 그런데 쌓는다는 건 아래에 있는 걸 밟고 올라간다는 의미도 있지 않은가?

최: 그렇게도 느낄 수 있구나. 새로운 의견을 들어서 기쁘다. 작품에 관해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래서 전시가 시작되면 스케줄이 되는 날마다 꼭 전시장에 가서 미술관을 관리하는 분들, 도슨트 분들을 통해 관람객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물어본다. 가끔 관람객들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럴 때 매우 기쁘다.

 

김: 이번 전시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평이 있는가?

최: 모든 사람이 내게는 사부다. 특히 기억나는 건 “눈길, 손길, 마음길”이다. “눈으로 작품을 보고, 손으로 작품을 만지고 싶고, 마음으로 작품을 느꼈다”는 이야기였다. 듣고 감탄했다. 작품을 완성하는 건 관객이고, 나는 단지 그 장을 마련할 뿐이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이 다른 이야기들이 존중받길 바란다. 전시를 볼 때 위축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에 오답은 없다. 예컨대 ‘민들레’를 보고 “이거 우리 집에 있는 그릇인데?”, “난 이게 더 좋은데” 등 의견을 자유롭게 내는 게 중요하다. 이건 스스로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과도 같다. 이번 전시에서 내가 노린 건 사람들끼리의 대화다. 나무와 나무가 만나면 숲이 되듯 사람과 사람이 만나도 숲이 될 수 있다.

 

김: ‘민들레’가 정말 민들레 홀씨처럼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새로운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최: 진짜 바라는 바다. 사람들에게 작업에 대해 설명할 때 “유어 하트 이즈 마이 아트(Your heart is my art)”라고 한다. 이 바람이 민들레 홀씨에 담겨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최정화
최정화는 〈뮤지엄〉(1987)을 비롯해 〈썬데이서울〉(1990), 〈쑈쑈쑈〉(1992) 등 다양한 그룹전을 조직한 바 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올로올로(1990), 스페이스 오존(1991), 살바(1996), 꿀(2010) 등 음료와 음악, 전시, 공연, 세미나까지 어우러진 젊은 세대들의 공간을 만들어내며 현대미술과 대중문화를 긴밀하게 연관시켰다. 민중미술과 모더니즘이라는 양극화에서 벗어나 시대를 읽고 조형 어법을 찾아온 최정화는 1990년대 이후 역동적으로 변모한 한국 사회에서 클럽문화와 대중문화를 현대미술의 영역에 접목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의 지평을 확장하고, 국제무대에서 지역성과 보편성을 담아내는 작가로 주목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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