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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성 바깥으로 빠져나간 이야기들: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글
방유경 기자
자료제공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SPACE(공간)」 2025년 11월호 (통권 696호)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린송현녹지광장, 광화문광장, 서울도시건축전시관 등 서울 도심 일대에서 진행 중이다. 9월 26일 개막한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매력도시, 사람을 위한 건축’이다. 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은 토마스 헤더윅(헤더윅 스튜디오 디렉터)은 인간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건축물의 ‘외관(façade)’에 주목했다. 「SPACE(공간)」는 이러한 주제 의식이 전시 현장의 기획과 실행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더불어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대중성’을 중요하게 내세운 이번 행사가 건축 전시의 내용과 형식 측면에서 드러낸 한계와 도전은 무엇이었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휴머나이즈 월 너머로 보이는 일상의 벽. ©Bang Yukyung 

 

 

올해로 5회차를 맞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이하 서울비엔날레)는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토마스 헤더윅이 총감독으로 선정되며 시작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대중을 사로잡는 창의적 조형 언어를 선보여온 그가 서울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을지에 대한 기대와, 스타 건축가의 명성에 기댄 일회성 이벤트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였다. 실제로 헤더윅은 노들 글로벌 예술섬 국제지명설계공모에서 당선된 직후인 2024년 6월 이번 서울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위촉됐다. 건축계 내부에서 논쟁 거리였던 해당 설계공모의 뒷얘기(「SPACE(공간)」 677호, 680호, 684호 참고)는 차치하더라도, 그가 짧은 시간에 어떻게 서울의 도시 건축을 이해하고 해석해 대규모 전시를 꾸릴지에 대한 호기심과 의심이 여전히 교차하는 상황이었다. 

 

올해 서울비엔날레의 주제인 ‘매력도시, 사람을 위한 건축’은 헤더윅이 오래도록 천착해온 문제이기도 하다. 풀어쓰자면, 인간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축이 곧 (사람을 위한) 인간적인 건축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전시 서문에서 비엔날레를 통해 “건물의 외관이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건축과 우리의 감정이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이야기”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관점은 자신의 저서 『HUMANISE』(2023)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국내에서 『더 인간적인 건축』(2024)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에는 헤더윅이 안토니 가우디의 카사 밀라 전경 사진이 수록된 책을 펼쳐 든 모습이 서두에 등장한다. 그는 평평한 현대식 건물의 ‘따분함’과 대조되는 가우디 건축의 입체적 특징에 주목하며, 장인 정신이 깃든 외관이 “수억 명의 행인에게 제공해온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은 감히 헤아릴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그가 주장하는 인간적인 건축이 ‘인간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건물의 표면’을 매개로 전개된다면, 서울을 무대로 한 비엔날레에서 그 메시지가 어떤 매체와 형식을 통해 구체화되고 표현되는지, 나아가 대중들과 어떤 접점에서 소통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관람의 포인트라 할 수 있다. 

 

 

개막 행사에서 발표하고 있는 총감독 토마스 헤더윅. Image courtesy of Seoul Biennale of Architecture and Urbanism 

 

 

전시는 크게 주제전, 도시전, 서울전, 글로벌 스튜디오로 꾸려졌다. 먼저 헤더윅이 이끈 주제전은 ‘휴머나이즈 월’과 ‘일상의 벽’ 두 부분으로 나눠 열린송현녹지광장(이하 송현광장)에서 펼쳐진다. 이번 비엔날레의 핵심 작품이기도 한 휴머나이즈 월은 이름처럼 건물의 외관을 드러내는 상징적 요소인 ‘벽’으로 제안됐다. 길이 90m, 높이 16m에 이르는 철골구조물에 1,428장의 강판을 비늘처럼 덧붙여 완성한 이 벽은 리본을 꼬듯 가운데 부분이 비틀려 있어 둥근 개구부를 형성하며, 전시가 펼쳐진 송현광장의 안과 밖을 연결한다. 헤더윅은 인간다운 도시 건축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이 벽면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소통 창구, 즉 ‘대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한편 휴머나이즈 월 너머에는 공원 안쪽으로 수많은 벽들이 잔디밭 위에 우뚝 서 있다. ‘일상의 벽’이라 불리는 이 섹션은 길이 2.4m, 높이 4.8m의 벽을 재료, 질감, 무늬 등에 차이를 두어 창의적으로 제작한 ‘입면 목업’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초대된 24개 팀은 셰프, 주얼리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 건축가 등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물의 입면을 제작해 달라는 총감독의 요청에 따라 물, 나무, 벽돌, 진흙, 곰팡이, 천, 콘크리트, 플라스틱, 스틸 등 다채로운 재료와 조합 방법이 등장했다.

 

하지만 전시 현장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개별 작업의 특징이나 이야기보다 주제전의 형식과 공간적 구성이었다. 너른 야외 공간에는 거대 구조물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설치 작업이 일정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시민들은 거대한 휴머나이즈 월의 독특한 형태에 이끌려 벽면을 따라 안과 밖을 거닐었고, 강판에 적힌 문구를 읽거나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메시지를 읽고 ‘소통’하기에 이 벽은 너무 거대하다. 가까이에서 내용을 파악하기에는 고개가 아프고 강판에 반사된 햇빛에 눈이 시리며, 멀리 떨어져서 보려면 내용이 읽히지 않는다. 그저 미끈한 유선형의 구조물이 인식될 뿐이다. 헤더윅은 개막 포럼에서 휴머나이즈 월이 실은 자신이 26년 전 영국 블랜번역을 배경으로 구상했던 꼬인 벽 개념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하며 스케치 한 장을 보여주었다. 앙증맞아 보이던 라인 드로잉이 거대한 크기로 현실화된 모습 사이의 간극은 이런 것일까?​ 

 

 

주제전이 열린 열린송현녹지광장 일대 모습. ©Bang Yukyung 

 

 

전시의 형식과 내용이 불일치한다는 느낌은 일상의 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은 벽 앞에 서서 사진을 찍거나 벽면 뒤에 적힌 작품 해설을 찾아 읽기도 했지만 이 역시 잠시뿐이었다. 너른 들판에 세워진 이 벽들은 체험하는 공간적 설치물이 아니라 평면적 이미지, 곧 SNS 인증샷의 배경으로 소비됐다. 사방으로 열린 공간에 작품을 설치하면서 왜 굳이 ‘한 면만 가진 특정 크기의 벽’이라는 형식의 제한을 두어야 했을까? 이 벽들은 광장의 스케일에서 볼 때 작지만 (실물은) 작지 않고, 서로 떨어져 있는 간격이 애매해 각자의 영역을 존중받지 못한다. 24개 벽을 세우면서도 벽과 벽이 만나 어떤 창의적인 대화를 이끌지에 대한 관계적 고려는 더욱 보이지 않는다. 벽의 뒷면 역시 오로지 작품 정보를 기재한 밋밋한 가벽처럼 처리되었다.

 

그밖에 다른 전시들은 주로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진행됐다. 가장 넓은 공간인 지하 3층에서 열린 도시전과 서울전은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는데, 전체적으로 얇게 비치는 패브릭 커튼으로 공간을 구획한 점이 눈에 띈다. 도시전의 경우 ‘매력적인’ 외관을 가진 해외 25개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전시 공간을 그리드 패턴으로 구분하고 그 위로 커튼을 매달아 건물의 입면이 도열한 네모 반듯한 도시 블록 안을 걷는 듯한 풍경을 연출했다. 실제 건축물의 입면을 경험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이를 커튼에 실물 크기로 출력해 수직적 공간 경험으로 재구성한 것은 전략적 선택으로 읽힌다. 이와 반대로 층고가 낮은 안쪽 전시장에서 펼쳐진 서울전은 서울시의 도시 건축 정책을 대표하는 주요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고정된 스틸 패널벽과 여기에 설치된 LED 영상, 그리고 수평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동식 커튼을 활용해 전혀 다른 공간 경험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 형식과 공간구성 전략과는 별개로, 두 전시 모두 내용적 측면에서 볼 때 빈약함을 노출하고 있다.​ 

 

 

일상의 벽 전시 전경. ©Bang Yukyung 

 

 

도시전의 경우 건물 자체에 대한 간략한 글과 사진, 도면 등의 자료를 기단 형태로 바닥에 정리했지만 전시 주제에 맞춘 특화된 설명이나 분석이 아닌 일반적인 개요에 가깝다. 한편, 서울시에서 전시 작품 리스트를 확정한 상태로 기획된 서울전은 다수의 프로젝트가 미실현작인 탓에 렌더링 이미지와 조감도를 보여줄 수밖에 없어 건축물의 현장성을 체험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두 전시에서 건물 외관에 대한 논의가 커튼 속 이미지로 압축되어 개별 건축물들이 도시 공간에 미친 영향력이나 쟁점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전시 공간 경험으로만 치환됐다는 점, 하나의 공통된 주제 아래 기획되었음에도 서울과 해외 프로젝트 사이의 연관성이나 확장성을 보다 심도 있게 분석해 드러내지 못한 점은 리서치 기반의 이전 비엔날레 전시들을 상기할 때 아쉽게 다가온다.

 

헤더윅은 특히 이번 비엔날레에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가 쉽게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드는 데 중요한 방점을 두었다. 전시에 참여한 한 큐레이터는 내부자들의 잔치에서 벗어나 대중과 호흡하는 비엔날레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이번 전시가 남긴 유의미한 변화였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전문가들만 해독할 수 있는 정보의 나열, 리서치 중심의 기존 건축 전시가 지닌 난해함에 대한 주장에는 공감한다. 서울비엔날레처럼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도시 차원의 이벤트라면 더욱 그렇다. 대중성을 전면에 내세운 토마스 헤더윅이 총감독으로 선정된 이유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의 결과일 것이다. 그럼에도 비엔날레의 내용과 형식, 매체의 선택에 있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비엔날레가 지속 가능한 플랫폼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대중과 전문가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다양한 층위의 메시지와 정교한 언어 구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서울비엔날레는 “서울을 무대로 세계 도시의 현안을 살피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2017년 출범했다. 별도의 비엔날레 재단이나 운영조직 없이 서울시의 지원으로 유지되는 행사인 만큼 “국내외 전문가, 행정기관, 시민 등 도시를 살아가는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서울의 미래를 그리는 장을 제공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로 시작됐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건축물의 따분한 외관을 바꿔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자’는 화두를 내세운 이번 서울비엔날레에서 서울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매력적인 건축물의 외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에 적합한 건축적 대안에 대한 논의는 대중뿐 아니라 전문가와 행정가들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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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진행된 도시전 전경. ©Bang Yukyung 

 

 

이에 대한 비판은 내부에서도 포착됐다. 한국 태생의 작가로 ‘창작 커뮤니티 프로젝트’에 초대받아 송멜로디와 함께 ‘세상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선보인 마야 웨스트는 주제전의 기획에 대해 “분단된 국가에 와서 거대한 장벽을 가볍게 세우는 것은 판단력과 미감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하며, 헤더윅이 한국이나 서울과 아무 관련이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했을 뿐이라고 밝혔다.▼1 또한 서울에 기반을 둔 아티스트 듀오 김치앤칩스의 일원으로 지난 서울비엔날레에 참여해 송현광장에서 미디어월 ‘리월드’를 선보였던 엘리엇 우즈 역시 부지의 역사—일제강점기와 현대사에서 각각 일본과 미국의 통제를 받으며 110년 동안 닫혀 있다가 2022년에야 시민들에게 개방된 송현광장—를 고려할 때 “‘벽’의 선택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2

 

건축물의 입면은 보고, 읽고, 경험하는 건축 공간의 일부다. 조각품처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뗐다 붙이거나 쉽게 갈아엎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건축의 표면은 표상과 생산이라는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논쟁적 대상이었고, 긴 역사 속에서 건축가는 표면의 앞과 뒤를 상상할 수 있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다. 역으로 말하면 공간과 맥락이 존재해야 벽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의적 실험을 위한 목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일상의 벽처럼 구조와 재료의 논리, 공간의 특성 등 맥락이 제거된 상태에서 매력적인 벽을 만들라는 주문은 어떤 의미일까? 비엔날레라는 건축적 상상력을 드러낼 수 있는 무대에서 한정된 틀과 조건에 맞춰 작업해야 했던 참여자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느껴진다.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자는 논의가 왜 벽으로, 이미지로 환원되어야 했는가? 이곳에서 건축은 조각도 공공예술도 아닌 쓰임을 잃은 무엇이 되었다.

 

이번 비엔날레가 공개된 후 한국의 20~30대 젊은 건축인들을 사이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K-일상의 벽’ 챌린지(#kwallchallen)가 회자되고 있다. 이 챌린지를 시작한 하이퍼스팬드럴(대표 전재우)은 휴머나이즈 월과 일상의 벽을 패러디한 ‘개드립벽’을 게시했다. 렌더링 이미지를 보면 평범한 노출콘크리트 벽 앞에 안내판이 놓여 있고, 그 안에는 해당 벽에 대한 특별한 ‘드립’[If you find this wall boring, you probably have a small w*ener. 의역하면 "이 벽이 따분해 보인다면 당신은 애송이(아마추어)다"]이 적혀 있다. 이는 전시 기획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풍자이자, 비엔날레 바깥에서 움직이는 건축가들의 대안적 전략을 드러낸다. 가상의 프로젝트를 상정함으로써 역으로 현실 세계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확보해나가는 이들의 작업이야말로 헤더윅이 언급한 유머로 무장한 매력적인 건축의 모습이 아닐까.​ 

 

 

서울전 전경. Image courtesy of Seoul Biennale of Architecture and Urbanism 

 

 

한편, 도시와 건축에 반응하는 다양한 대중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이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시각화한 글로벌 스튜디오의 기획은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온라인을 통해 시민들과의 접점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건축가들이 쉽게 지루하다고 재단한 아파트 단지와 같은 무미건조한 일상 공간을 일반인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느끼는지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보여주는 인터랙티브 미디어월이 서울도시건축전시관 한 귀퉁이에 소극적으로 마련된 탓에 그 파급력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을 활용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도시 공간에 대한 논의를 아카이빙하려는 도전과 발견의 토대 위에서 서울비엔날레의 방향성을 논의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토마스 헤더윅의 야심찬 기획으로 꾸려진 이번 서울비엔날레는 쉽고 즉각적으로, 감각적으로 소통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정작 도시 건축 담론이 놓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내용의 깊이를 갖추지 못한 채 개막됐다. 근본적으로 그가 던진 메시지는 서울의 현실과 동떨어진 메아리에 그쳤고,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에서 그 메시지를 드러낼 적확한 매체와 표현 방법도 다 강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곱씹어보자면, 삭막한 도시에서 인간다운 공간과 건축이란 무엇인지, 동시에 대중성을 지닌 건축 전시와 도시를 무대로 펼쳐지는 비엔날레의 형식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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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ristina Yao, ‘Seoul creatives brand Heatherwick’s Humanise Wall “a profound lack of judgment”’, Dezeen 3 Oct. 2025, https://www.dezeen.com/2025/10/03/heatherwick-humanise-wall-seoul-biennale/, accessed 17 Oct. 2025.

2 Ibid.​

월간 「SPACE(공간)」 696호(2025년 11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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