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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미와 박정현, 현재의 건축 비평을 말하다: ‘한국건축비평의 회복’

글
박지윤 기자

「SPACE(공간)」 2025년 10월호 (통권 695호)

 

8월 28일, 서울건축포럼에서 주최한 ‘한국건축비평의 회복’ 두 번째 자리가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열렸다. 비평가로 소환된 이다미와 박정현은 아크로마키 건축사사무소와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의 작업을 비평 대상으로 삼았다. 이번 자리에서 비평에 대한 정의, 그리고 회복할 비평의 존재 여부에 관한 논의를 진척하지는 않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가능한 새로운 비평의 방식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이세웅, 최연웅, 박정현, 임진수, 이다미, 현명석. ©Lee Sowoon 

 

 

‘변신’해 ‘오염’시키기

이다미(건축사사무소 플로라앤파우나 대표)는 ‘변신의 문제’라는 제목 아래 건축가, 건축주, 비인간 등 다양한 관점을 교차시키며 건축을 읽고, 건축가를 영웅으로 만드는 단선의 서사를 경계하며 상상과 우연의 서사 또한 긍정하는 비평 방식을 택했다.

 

제목 속 변신은 당장 카프카의 『변신』(1915)을 소환하고 싶게 만드는데, 카프카는 소설 속 벌레를 인간보다 하등한 것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이후 문학계는 더 이상 벌레를 인간보다 아래에 두지 않고, 벌레를 긍정하거나 벌레와의 구분을 무화했다. 이제 변신은 인간을 다른 존재로 비유하는 도구를 거쳐 ‘기꺼이 다른 존재가 됨’이 되었다. 이를 이다미가 말한 “모름을 통한 새로운 앎에의 의지”와 느슨하게 연결하자면, 건축가인 자신은 “건축주, 건축가의 동료들, 만들기의 수행적 동료들, 지나가는 행인들, 이 모든 사건을 목격하는 건물”의 시선을 모르고, 기꺼이 이러한 대상으로 변신해 비평할 의지를 다진다. 이에 더해 건축가가 아닌 이다미로서의 특이성을 덧붙이자면, 또한 박정현(「미로」 편집장)이 토론에서 최신 유행의 담론과 비평에 참여한 이다미를 의식하면서 자칭 “헤테로 중년 남성”이라 한 것에서 이를 과감하게 유추한다면, 퀴어적인, 새로운, 여성적인 태도를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 하나 주목하고 싶은 키워드는 ‘오염’이다. 이다미가 해당 책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오염은 『세계 끝의 버섯』(2021)의 중심 용어로, 여기서 저자 애나 칭은 송이버섯이 자본주의를 오염시킴으로써 다양성을 확보한다고 주장한다. 송이버섯은 벌목, 산불, 군사기지 등 인간 활동으로 파괴된 숲에서만 잘 자라는 생물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아닌 숲의 생태 시스템에 의존하며, 시스템화된 소위 공장 노동자가 아니라 비공식적 노동자들, 예를 들어 미국 오리건의 난민, 이민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의해 채집된다. 채집의 단계를 거쳐 수출과 판매에 직면할 때 비로소 송이버섯은 신자유주의의 체제에 귀속된다. 여기서 버섯의 오염이 뜻하는 바는 자본주의가 완전한 시스템으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그 주변부에서 계속 간섭하고 교란한다는 말이자, 자본주의적 상품 세계와 비자본주의적 생태 시스템이 완벽히 분리되지 않고 서로 침투하고 얽히며 혼종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긍정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송이버섯은 이다미의 비평 속에서 건축가의 역할 혹은 비평의 방법론으로 대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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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미가 아크로마키 건축사사무소 세 자매의 집(2022)의 매스 구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Screenshot from YouTube 

 

 

먼저, 아크로마키 건축사사무소(대표 임진수, 이하 아크로마키)의 세 자매의 집(2022)을 비평하면서는 건축가, 건축주, 그리고 이를 비평하는 화자인 자신의 시점을 더했고, 2, 3층의 좌우 대칭 평면 구조를 박완서의 「닮은 방들」(1974)을 동력으로 삼아 동질성, 낯섬 등의 이야기로 이어갔다. 세 자매 집은 1, 2, 3층을 각각 첫째, 둘째, 셋째가 사용하고 있으며 지하 1층에는 셋째의 작업실이, 1층에는 과거 함께 거주했던 아버지의 공간과 대지 형상의 틈을 타 작게 마련된 서재가 있다. 이를 보고 이다미는 막내가 집의 가장 높고 낮은 곳을 오가고, 첫째는 돌봄에 적합한 곳에 자리하는 공간 구조를 짚으며, 이를 유교 가부장주의, K-장녀의 공간, 자매들 사이의 작은 위계 등으로, 그리고 서재를 ‘자기만의 방’으로 손쉽게 읽어내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스치듯이 언급한다. 또한 좌우 대칭 평면 구조를 두고서는 「닮은 방들」을 언급하는데, 소설은 처음 아파트로 이사해 살던 주인공이 옆집과 자신의 집, 옆집 여자와 자신이 동질해지는 것을 느끼며 절정을 향해 가다 옆집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으로 끝난다. 이다미는 이 마지막 순간을 다름이 동질해지려는 힘이 극한까지 도달했다가 탁 풀린 상태로 읽으며, 이것이 오히려 무구한 처녀의 상태처럼 보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구하기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여지, 새로운 앎의 의지를 세울 수 있다고 느꼈으며, 이것이 세 자매의 집의 단순한 쌍방의 구성, 그리고 계단식 아파트와 다른 듯 닮은 평면 구성을 갖고 새로운 것을 말할 수 있겠다는 힌트가 됐다고 말했다. 평면 자체는 개념적으로 구성(건축가)되어 있지만 경험적으로는 사선으로 시선이 연결돼 존재를 감각하는 정도로 흘깃 보이는 경험(건축주)을 유발하고, 이 사선의 경험은 3, 4면에 자리한 창들로 인해 포착되지 않고 쌩끗 날아가버린다(화자). 또한 사각 박스가 아닌 다른 형태로 평면에 변주를 주지 않은 점을 단적인 예로 들며, 아파트 평면이 ‘부정적인’ 흔적처럼 남겨진 것이 흥미로웠으며, 낯섬을 추구하는 목적은 자칫 자본주의의 논리에 포섭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부정적인 흔적처럼 남기는 것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다미가 세 자매의 집의 평면과 내부 경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Screenshot from YouTube 

 

 

다음으로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공동대표 이세웅, 최연웅, 이하 아파랏체)에 대해서는 정체성과 관련한 용어인 부치와 펨을 들고 와 인식의 이야기와 연결 짓고, 그간 파사드와 기능으로 읽혀온 아파랏체의 작업들을 열, 이슬, 비라는 비인간이 건물에 작동하는 지점에 주목해 풀이했다. 이다미는 차리숙소(2017)가 떠올리게 한 파르테논은 부서진 지붕을 완성하고 싶은 욕구를 일으키고, 그것 자체에 완성에 다가가려는 감각이 있다고 해석하며 이 욕구와 감각이 차리숙소 지붕의 성격과 공명한다고 말한다. 또한 펨과 부치가 여자, 남자, 혹은 여자이면서 여자 혹은 남자가 되는 등의 상황에서 이를 인식하는 구조가 하나가 아님을 비유하며, 차리숙소의 지붕과 파사드 또한 이러한 엉긴 인식들이 가동된다고 해석했다. 특히 그들의 작업 속 ‘얼굴’의 모티프는 확정적이지 않으며, 측면으로 시선이 흐르면서 얼굴이 변이하는 순간, 후면의 내밀한 얼굴 등 복합적 상황에 따라 은은하게 다양한 얼굴을 만들고, 은근슬쩍 얼굴에 대한 기대를 배신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장식과 비인간의 논의로 나아가, 단열선을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있는 기둥의 디테일들, 차양의 기능을 하지만 그늘이 아니라 빗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강조하는 방식 등을 언급했다. 

그 와중에 장식이 있는 그곳에서 열, 이슬, 비 등의 비인간적인 요소의 흐름이 퍼포먼스로 작용하고, 이것이 기능과 긴밀하다는 점에서 절박한 것을 장식한다는 지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설계는 구체 중심으로 하게 되지만 아파랏체의 경우 단열재나 빗물의 흐름이 우선하는 순간이 있고, 이러한 설계를 점점 즐기는 듯 보인다고 정리했다.​ 

 

 

박정현이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 홍은주택(2019)의 파사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Screenshot from YouTube 

 

 

건축과 건축 비평의 공통 운명

박정현은 ‘건축 비평의 알리바이’라는 제목으로 건축을 둘러싼 맥락, 경향, 참조점 등의 논리를 쌓아 건축물을 비평했고 뒤이어 자신이 앞서 한 것은 비평이 아니라 비평이 존재한다는 알리바이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현시점 비평의 한계를 주요하게 분석했다.​ 

 

일단, 박정현은 아크로마키의 하남 에이덴 사옥 및 주차타워(2025, 이하 에이덴 사옥, 본지 64~87쪽 참고)로 시작했다. 하남 미사강변 신도시 남쪽 끝단에는 용적률을 최대한 맞춘 일련의 매스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그 가운데 법적으로 용적률 70%를 주차장으로 사용해야 하는, 나머지 7, 8층은 사옥으로 사용되는 에이덴 사옥이 위치한다. 그에 따르면 이 사옥은 루버의 부착 방법, 기능상 필요한 난간 등 모든 디테일들이 팽팽한 리듬과 규율을 갖춘 외관의 격자 리듬을 강화하고 보존하는 데 동원된다. 하지만 이러한 질서는 아무런 맥락도 없는 곳에 세워져 보는 이는 없지만 따르는 것이자 필지 바깥으로 확장될 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규율을 잡는 것이다. 이처럼 에이덴 사옥이 가시성을 과시하고 있다면, 세 자매의 집은 좀처럼 내부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여러 매스로 분절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속을 알 수 없고, 세심하게 조율된 가구, 개구부의 크기와 위치로 내부에서 다채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지만 간단한 평면적 구성으로 이를 예상하기란 어렵다. 박정현은 이러한 단서로 말미암아 아크로마키의 작업이 잘 조율된 평면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아파랏체의 작업에서 주요하게 주목한 것은 파사드다. 그는 차리숙소, 파주뜰(2017)에서 연상되는 아돌프 로스의 주택 작업들을 경유해 연희공단(2018), 홍은주택(2019)에서 보이는 ‘얼굴’로 나아간다. 그러면서 이러한 얼굴이 경험적으로는 인식되지 않고, 건축 사진이나 도면에서 읽힌다는 점에서 ‘관념적 얼굴’임을 지적하며 차리카페(2022, 「SPACE(공간)」 663호 참고)로 가닿는다. 차리카페에서는 특히 뛰어난 성능을 가진 파사드를 짚었고, 이와 연관해 빗물 선홈통이 철골 기둥 두 개마다 반복적으로 하나씩 배치되어 파사드를 훨씬 다채롭게 만든다는 점을 언급했다. 박정현은 이러한 건축적 해석 가운데 기존 도시를 내버려둔 채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것이 한국의 거의 유일한 도시계획이라는 점, 이 계획의 이데올로기는 신시가지에 그 시대마다 유행하는 프로그램을 뿌려놓는 것이라는 점 등 도시와 관련한 거시적 흐름을 언급했다. 또한 잘 짜인 평면을 추구하는 전통적 흐름이 있고 이것이 고전적 또는 보자르적이라고 불렸다는 점, 표면과 비폭, 뼈대를 둘러싼 말이 뒤엉킨 텍토닉 논쟁이 떠오른 점, 참조는 4.3 그룹 또한 행해왔고 비교적 최근 ‘버내큘러’가 이 참조 목록에 추가된 점 등 건축적 논의에서 위의 작업들을 어느 좌표에 위치시킬 수 있을지 힌트를 제공했다. 그렇지만 이것을 세세하게 개별의 건축 작업과 연결해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해 보인다. 왜냐하면 박정현이 “프로젝트 설명을 요약하거나, 보강해 재서술하고, 선례와 개념을 찾아본 뒤 기존의 것과 견주고, 방문했을 때의 인상을 전달하고, 건축가가 언급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최근에 유행하는 인문학적 담론으로 건축을 포섭하려고 하는 시도만으로 충분한가”를 질문하며 자신이 앞서 한 것이 비평이 아니라고 자인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 발표에서 무게를 둔 논의는 비평의 내용보다는 비평의 불가능성에 대한 자평이었다. 그는 도시 속 건축의 개별성은 공공성, 자본 축적 논리 등의 압박을 받으며 녹아 없어지고, 도시를 벗어난 사유원, 메덩골 정원 등은 생활과 정치에서 분리돼 유사 예술처럼 소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이 건축의 자율성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는 비평 또한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건물의 특징을 억지로 찾아내는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박정현은 “건축의 한계를 확정하고, 건축을 소비하고, 비평의 범위를 제한하는 이 힘을 가로지르지 않고서 건축 비평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건축 비평이 존재한다는 알리바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강연에서는 특히 두 비평가가 같은 건축적 요소에 다른 언어로 반응하고, 한쪽이 창작과 해석의 경계를 허물었다면 한쪽은 전통적이기에 믿음직한 비평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한편, 모더레이터를 맡은 비평가 현명석은 토론에서 건축물에 대한 비평을 두고 “이다미의 압승”이라 평했다. 이는 이다미가 문화 전반에서는 익숙하지만 “남초”인 건축계에는 낯선 언어를 들고 와 건축의 외연과 사고를 넓혔다는 점을 높게 산 것이자, 박정현이 건축물 비평보다는 비평의 역할, 그리고 지금의 현실에서 어찌할 수 없는 비평가의 무력감을 주요하게 펼쳐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월간 「SPACE(공간)」 695호(2025년 10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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