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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전시의 새로운 문법, 텍스트 너머의 텍스트: 수건과 화환

자료제공
수건과 화환(별도표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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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공간)」 2025년 12월호 (통권 697호) 

 

 

예술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장르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하이브리드화, 다변화, 탈중심화의 흐름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전시 공간 또한 마찬가지로 신생 공간이나 메타버스, 가상현실을 비롯한 온라인으로 확장되며 주류ㆍ비주류를 넘어 다양한 예술을 포용하는 열린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다. ‘수건과 화환’은 다분야의 텍스트들을 포용하며, 이를 다층적 형태로 풀어나가는 온·오프라인 전시 플랫폼이다. 분석 미학자, 만화 평론가, 디자이너, 각 분야의 비평가, 독립출판 작가, 공간 문화 연구자부터, 코딩 혹은 수어문학 등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필진까지. 이들은 수건과 화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새롭게 ‘읽히기를’ 의도한다. 동시대 전시의 문법을 다시 쓰는 수건과 화환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았다. 편집자

 

 

 

〈텍스트 뷔페 Text Buffet〉(2024) 전시 전경 

 

〈파츠 가설소〉(2025) 

 

 

인터뷰 이예현 수건과 화환 디렉터 × 김혜린 기자 

 

 

김혜린(김): 어떤 계기로 전시 플랫폼을 운영하게 되었나?

이예현(이): 학부 때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했다. 하지만 예술 활동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에 한계를 느껴 자퇴했고, 한국에 돌아와 인쇄소에서 일하기도 했고, 사립 미술관에서 학예연구원으로 지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0년도부터 ‘신생 공간’이라 부르는 소규모 전시 공간의 형태에 매력을 느끼며 서울 전역의 전시 공간을 탐방했다. 그러다가 기존 전시 공간의 형식적 전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식을 직접 찾기 위해, 2021년 후암동에서 오프라인 전시 공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동시대 전시 공간의 역할과 형식을 탈피한 전시 방식을 모색하기 위해 후암동에서는 실험적 전시를 많이 다뤘다. 또한 간판이나 포스터, 리플릿 등을 만들지 않고 관람객이 오면 일일이 응대하는 등 관계 중심의 운영을 지향했다. 그곳에서 2년간 운영 후, 지금의 성북동 운우미술관으로 공간을 옮겨 본격적으로 ‘텍스트’ 중심의 플랫폼으로 전환하여 운영 중이다.

 

김: 텍스트 중심의 플랫폼을 기획하게 된 연유가 궁금하다.

이: 텍스트가 모든 장르를 아우를 수 있다는 점과 예술적 매체로 활용했을 때 전시 공간의 역할이 확장될 수 있는 지점이 좋았다. 후암동에서 공간을 운영하며 비평, 기획서 등 다분야에서 텍스트를 다루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했다. 그들을 위한 전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다양한 장르의 텍스트들을 전시하는 <텍스트 뷔페 Text Buffet>(2021~2022, 2024)로 이어졌다. 텍스트를 ‘뷔페’처럼 골라 담아서 읽는 전시로, 관람객들이 트레이에 원고를 담아서 순서대로 그것을 조합해서 읽고, 퇴장할 때 두고 가도록 했다. 텍스트를 독서가 아닌 작품처럼 제한된 공간과 시간 내에 감상하도록 유도했다는 점에서 글을 읽는 전통적 방식과 차별점이 생긴다. 이 전시를 기점으로 텍스트를 매개로 하는 전시를 지속적으로 하게 됐다.

 

 

 

운우미술관 외관 

 

〈텍스트 뷔페 Text Buffet〉(2024), 관람객이 텍스트를 뷔페처럼 고를 수 있다.  

 

 

김: 텍스트는 전시로서 존재해야 하는 필연적 이유가 없다. 오히려 출판이 더 자연스럽기도 하다. 

이: 시각예술을 베이스로 하다 보니 텍스트도 공간 안에서 하나의 가시적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독서보다는 감상에 가까운 텍스트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새로운 감상 방식을 유도하고, 그것을 전시 기획이자 동선으로 활용한다. 또 텍스트가 조금 더 적극적인 매체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으로 인쇄되고 끝나는 것이 아닌, 텍스트가 유통되는 전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수건과 화환에서는 텍스트를 조금 더 과정과 경험을 거쳐서 보도록 의도한다. 작품마다 최적화된 방식이 다르지만 기존 방식을 탈피하려 한다. 현재는 전시가 외부로도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낱장 단위의 텍스트 ‘언바인드’를 시리즈로 출간하기도 한다.

 

김: ‘수건과 화환’은 무엇을 뜻하나?

이: 전시를 하면 날짜가 정해지고, 막이 오르는 순간, 비로소 작가와 사회간의 관계 맺기가 시작된다. 그런 과정이 일종의 운동회나 은퇴식 같은 행사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행사에서는 답례품으로 이름과 날짜가 새겨진 수건을 나눠주고, 화환을 보내지 않나. 그 사물들이 전시와 연결된다고 생각해 은유적으로 지었다.

 

 

 

〈파츠 가설소〉(2025), 왕은지, ‘CT01’, 80×425×800mm 

 

〈파츠가설소〉에서 옆으로 밀어 숨겨진 단어를 확인하는 데 쓰인 파츠 

 

 

김: 오프라인 공간의 운영 방식은 어떻게 되나?

이: 전시가 운영되는 동안은 운영자가 항상 상주한다. 전시의 본질은 관람객과 작가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단순 작품만 보여주고 끝나는 전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작가가 본인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과 커리어를 쌓는 경험의 과정이 드러나는 게 전시의 형태라면 전시 공간이 좀 더 그런 역할이나 책임을 할당받아야 하지 않나 싶다. 여러 명의 작가가 참여한 <텍스트 뷔페 Text Buffet>의 경우에도 작가들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관람객들에게 설명한다. 물론 이외에도 관람객들과 함께 전시 공간의 역할에 대한 담론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곳에서의 전시 자체가 많은 대화를 파생시키는 것 같다. 

 

김: 주로 어떤 사람들이 이 공간을 찾아오나?

이: 참여작가의 지인들과 예술을 전공하는 대학생,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주 관람객들이다. 특히 그래픽 디자이너나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들이 많이 방문하는 것 같다. 주로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이런 소규모 예술 공간에 방문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에 관한 전시와 실험적인 전시 등도 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오기도 한다.

 

 

 

낱장 텍스트 시리즈 언바인드 

 

 

김: 보통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전시가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이: 공간을 방문한 관람객과 전시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뜻이 맞는 것 같으면 함께 흥미를 느끼는 주제를 정한 뒤 전시로 풀어내기도 한다. 최근 전시인 작가 윤마리의 <머리에 거미가 사는 여자(Soma)>(2025)도 그렇게 시작했다. 작가와 대화 중, 본인이 글을 썼는데 발표는 하고 싶지만, 이를 기록의 형태로 남기고 싶지는 않다고 하더라. 글을 써내려 가고 싶은 충동과 기록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럼에도 공유하고 싶은 욕망을 출판의 형태를 깬 ‘구두(口頭) 출판’을 제안받아 전시 공간에서 담아냈다. 프랑스의 문학단체인 울리포의 일원이 처음 시도했던 실험으로, 글을 읽는다는 행위가 출판을 대체하는 작업이다. 또 가구 디자이너 왕은지의 <파츠 가설소>(2025) 또한 텍스트와 관련된 가구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시에서 듣고, 텍스트와 가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조형성을 탐구하는 전시를 함께 기획했다. 이 공간에서 전시를 하는 방식이 다양해서 매번 다르게 전개된다. 다만 작가의 작품만 가지고 하는 전시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가도 기획자라고 생각하고 함께 협업한다. 

 

김: <구현되지 못한 기획서의 고독한 장소, 로쿠스 솔루스>(2022)처럼 전시 기획 자체에 대한 전시를 하기도 했다.

이: 레이몽 뤼셀의 『로쿠스 솔루스』(1914)에서 착안한 전시다. 공상적인 SF 소설이지만 집요할 정도로 현실적 묘사가 두드러지는 작품인데,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들이 텍스트를 통한 구조화를 거쳐 핍진성을 획득하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이런 문학적 장치를 실현되지 못한 전시 기획서들에 접목시켰다. 관람객이 공간에 들어서면 『로쿠스 솔루스』를 보며 전시 기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구현되지 못한 기획서들을 읽으며 전시를 상상하게 된다. 

 

김: 필진을 직접 섭외하기도 하지만, 온라인으로 텍스트를 투고받기도 한다. 선정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 처음에는 선정 기준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기준을 세우면 오히려 검열이나, 배제의 문법이 되는 것 같다. 다만 기존의 장르를 벗어난 참신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고른다. 또 투고를 하면 선정 여부와 상관없이 작가들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다. 글을 어떻게 읽었는지 소감을 말하고, 발전 지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후암동에서 열린 〈텍스트 뷔페 Text Buffet〉(2021~2022) 전시 전경 

 

〈구현되지 못한 기획서의 고독한 장소, 로쿠스 솔루스〉(2022), 전시 기획서가 담긴 트롤리 

 

 

김: 전시를 온라인 플랫폼이나 실물 텍스트의 형태로 아카이빙 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아카이빙 작업을 한다. 

이: 후암동 공간에서는 ‘기록보존인’ 시스템을 운영했다. 후암동 공간에서의 철칙이 사진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관람객들에게 ‘기록보존인’이 되어줄 수 있는지 의향을 묻고, 동의하면 명함을 나눠준 뒤, 웹사이트에 기록보존인의 이름을 적었다. 그 사람들한테 전시에 대해 물어보면, 그들이 전시에 대한 기억을 풀어내는 거다. 이미지를 통해 투명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록이 아닌 경험이 구전을 통해 전달되는 것을 의도했다. 

 

김: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아카이빙 작업이 있나?

이: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지금은 사라진 전시 공간을 추모하는 아카이브 박스를 만들고 있다. 신생 공간은 계약 만료로 쉽게 사라져 시한부처럼 인식된다. 이런 소모적 인식이 안타까워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공간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3D 도면을 만들고, 그곳에서 이루어졌던 전시에 대한 경험이나 공간의 동선을 서술한다. 건축물대장을 통해 면적 등을 추적하기도 하고 어떤 공간인지, 운영자는 어떤 모습이었고, 운영 방식은 어땠는지, 월세는 얼마였는지 등을 세밀하게 기록한다. 현재 후암동 공간을 포함해 네 곳의 전시 공간을 아카이브 박스로 만들었다. 일종의 ‘전시 공간들의 공동묘지’를 만들고 싶다.​ 

 

 

 

사라진 전시 공간 아카이브 박스 

 

〈머리에 거미가 사는 여자(Soma)〉(2025) 구두 출판 모습 ©Park Juwon 

 

 

 

 

월간 「SPACE(공간)」 697호(2025년 12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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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현
이예현은 ‘텍스트’를 시각예술 매체로 삼는 전시 공간 ‘수건과 화환’을 운영하며, 이를 통해 전시·출판·오브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탈형식적 실험과 상업성의 새로운 접점을 탐구하며, 예술이 사회적 현실 속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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