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4월호 (통권 689호)

도봉구 방학동의 촘촘한 도시 조직 속 도깨비마당. 복잡한 주변과 반대로 하얗고 차분한 모습이다.
바쁘게 짐을 나르는 상인과 신선한 봄나물을 골라잡는 할머니, 커다란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뿌연 연기와 이들 사이를 지그재그로 지나가는 자전거. 복작거리는 방학동 도깨비시장의 틈에서 도깨비마당을 찾았다. 소란한 배경 속 기존 공영주차장 위에 조용히 자리 잡은 흰색 박스는 길가의 나무 그늘 같아서 오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자연스레 이끌고 있었다.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열린 공공시설이 가진 변화의 가능성을 플롯건축사사무소(공동대표 김명재, 최여진)에게 들어본다.
인터뷰 김명재, 최여진 플롯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 윤예림 기자

기존 도깨비시장 공영주차장을 리노베이션한 도깨비마당
윤예림(윤): 도깨비마당은 2022년 서울시가 주최한 ‘감성여가공간 서울쉴틈 찾기 공모’에 당선되며 시작됐다. 가로, 주차장, 공원, 천변, 공공청사 내외부 등 시민이 자유롭게 접근 가능한 서울 내 공공 공간이면 모두 대상지가 될 수 있었던 아이디어 공모다. 대상지를 정하는 과정 자체가 프로젝트의 큰 부분이란 의미다. 어떤 계기로 도봉구 방학동을 찾게 됐나?
김명재, 최여진(김, 최): 서울시 시민 생활공간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을 발굴하고 적합한 디자인을 제안하는 공모였다. 방학동을 대상지로 삼은 것은 이전에 도봉구 마을건축가로 활동하며 비슷한 과업을 수행했던 경험 덕분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제도지만 서울시에서는 주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소규모 공공시설의 공간 개선을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각 자치구마다 마을 단위의 공간 정책을 자문, 기획하는 마을건축가를 배정했다. 개선이 필요한 공간을 발굴해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는 일도 마을건축가의 일 중 하나였다. 도깨비마당은 그때부터 간직하고 있던 아이디어다. 당시에 도봉구 곳곳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도깨비시장 공영주차장의 잠재력을 알아봤다. 언젠가 실현할 수 있을까 꿈꾸고만 있었는데, 너무나 딱 들어맞는 아이디어 공모를 만나 여기까지 왔다.
윤: 도깨비시장 입구에 위치한 공영주차장을 리노베이션했다. 이곳이 마을의 쉴 틈이 될 수 있으리란 가능성을 어느 지점에서 발견했나?
김, 최: 도깨비시장은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전통시장이다. 언제나 북적이며 삶의 에너지가 넘친다. 도깨비시장 공영주차장 북측과 면하는 작은 공원도 마찬가지다. 이곳을 처음 찾은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폭염경보가 내렸고 몇 걸음 걷기조차 힘겨울 정도로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대상지를 발굴하겠다고 방학동 주변을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주차장 앞의 쓰러져가는 벤치 하나와 계단에 삼삼오오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을 봤다. 동네 한 바퀴를 다 돌고 다시 왔는데도 똑같이 여럿 앉아 있었다. 다른 날 저녁에 와봐도 같았다. 뒤의 공원을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분도 늘 많았다. 보통 그렇게 더운 날은 길거리에 사람이 없지 않나? 이곳은 작지만 시장 입구, 공원과의 연계, 주차장이라는 특성으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였다. 더욱이 항공사진을 보면 집들이 빽빽하고 외부 공간이랄 것이 사실상 여기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 기존 시설과 공원을 최대한 활용해 누구에게나 개방된 질 좋은 외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후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점은 방학동이 서울 내에서 노인 인구 비율과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생활수준이 열악할수록 외부 공간의 사용도나 커뮤니티의 끈끈함 정도는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제안한 모델이 더욱 잘 작동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아마 강남구였다면 이렇게 디자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깨비마당 항공사진. 증축부에 적용한 그리드 시스템은 공간을 하나로 읽히게 하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도깨비마당의 1층 벤치. 누구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코너다. 붉은 벽돌을 사용해 기존 입면과 조화를 이룬다.
윤: 변경 전 공영주차장과 주변의 상황은 어땠나?
김, 최: 도깨비시장 공영주차장은 지하 2층 규모의 주차장과 그 옆에 달린 단층 관리실로 구성된 시설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주민들의 요구로 기능이 여러 차례 더해져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1층에는 주민 카페가 들어섰고, 주차장 상부에는 마을 자치 활동을 담기 위한 컨테이너 유닛이 증축되면서 점차 규모가 확장됐다. 초기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채워져 활발히 운영됐지만 팬데믹으로 장기간 운영이 중단되면서 관리가 어려워졌고 시설은 노후됐다. 또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던 프로그램들은 그 취지는 좋았으나 특정 단체가 공간을 점유하면서 오히려 닫힌 공간으로 인식되어버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북쪽 공원은 방치된 건물 뒷면과 완전히 단절된 채 이용되고 있었다. 우리는 우후죽순으로 지어진 컨테이너들을 모두 철거하고, 기존의 프로그램을 수용하되 유연함과 개방감을 확보한 공간으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열린 쉼터를 디자인하기로 했다.
윤: 건물 앞면에는 벽돌 벤치로 소규모 쉼터를, 뒷면에는 주차장의 경사를 이용한 계단식 쉼터를 조성했다. 공원과 연결된 계단식 쉼터는 자연스럽게 건물 2층의 마당으로 이어진다. 여러 외부 공간의 역할을 각각 어떻게 구상했나?
김, 최: 다양한 형태의 열린 공간과 쉼터에 대해 마주침의 정도를 고려했다. 먼저 1층 벤치는 가장 작은 제스처지만 프로젝트의 시작을 이끈 핵심이기도 하다. 기존 입면 재료인 붉은 벽돌을 사용해 기존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누구나 잠시 혼자 쉬어갈 수 있는 코너가 되길 바랐다. 둘째로 건물의 북측 배면은 주차장 램프 상부의 지붕 경사를 조정해 계단형 쉼터를 조성했다. 이곳에선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휴식도 하고 담소도 나누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기존에 공원에서 일어나던 행위가 확장되기를 기대한 것이다. 계단형 쉼터 끝에 도달하게 되는 마당은 짧은 휴식을 넘어 머무르며 상호작용하는 공간으로 계획했다. ‘마당’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도깨비마당은 외부 공간에 포커스를 둔 프로젝트다. 가운데에 마당부터 크게 그려놓고 설계를 시작했다. 애초에 외부 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붕을 덮을 이유도 없었다. 마당을 중심으로 배치된 서로 다른 크기의 박스들은 문이 모두 열려 있는 모습을 기본이라 가정하고 계획했지 닫힌 방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외부 활동을 지원하는 잠깐의 보호처 같은 개념이다. 서로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문을 열어놓으면 하나가 되는 공간 구조로 유연하게 활용이 가능하다.

©Plot Architects

도깨비시장 공영주차장 기존 입면(위)과 변경 후 입면(아래)

도깨비마당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상상한 다이어그램. 주민들의 변화하는 요구에 언제든 대응할 수 있도록 고민했다. 그리드 시스템은 공간의 유기적 사용을 가능하게 한다.
윤: 세 개의 박스와 마당으로 공간이 분절되어 있지만 외관으로는 단일한 박스로 읽힌다. 이전에 섬처럼 존재하던 컨테이너 모듈을 희고 평평한 하나의 요소로 통합했다. 증축부에 적용한 그리드 시스템이 이러한 통합을 도왔을 것이다.
김, 최: 주변을 둘러보면 도시 조직이 굉장히 작다. 아파트는 거의 없고 저층 주택들이 촘촘한 거리에 간판부터 시장까지 생활 풍경이 아주 복잡하다. 이곳에서 도깨비마당이 커뮤니티 시설로서 커다란 존재감을 갖길 원했기 때문에 아예 이질적 존재가 되기로 했다. 그러려면 혼잡한 주변과 반대로 하얗고 차분해져야 했다. 따라서 건물을 분절하기보다는 주차장 진출입구와 관리실을 아우르는 하나의 박스를 얹었고 이것이 시각적 인지성을 주길 바랐다. 이때 그리드는 공간을 하나로 읽히도록 하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그 안에 어떤 부분을 채우고 비우냐에 따라 공간의 활용은 달라지지만 전체적 모습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복병은 주차장과 관리실 건물의 지붕이 각기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를 하나로 보이게끔 깨끗하게 정리하기 위해 기존 상태를 낱낱이 조사하면서 상세 도면을 여러 장 끊어 그린다고 꽤 고생한 기억이 있다.
그리드 시스템은 공간의 유기적 사용을 위해 적용한 것이기도 하다. 기존 시설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변화해온 것처럼, 시대 흐름과 주민들의 변화하는 요구에 언제든 대응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가능성을 담은 공간을 만들고자 고민했다. 처음엔 정말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어보려고도 했다. 작은 공공 사업의 예산과 여건으로는 역부족이었지만. (웃음) 그리드는 그에 못지않게 다양한 가능성을 품는다. 구체적으로 이곳에서 공연을 한다면, 전시를 한다면, 마켓이 열린다면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가능성의 확장을 상상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디자인을 완성해나갔다.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그림이지만 앞으로 얼마든지 가능할 거라 믿고 있다.
윤: 재료와 구조를 선택할 때 고민은 무엇이었나?
김, 최: 철근콘크리트조 건물 위에 철골조를 증축한 구조로, 기본적인 구축 방식은 기존의 컨테이너 박스와 다르지 않다. 좁고 번잡한 골목 안에서 증축하는 공사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100% 건식 시공을 염두에 뒀다. 시공비도 5억 원가량이 안되었던 터라 어떤 영세한 업체가 시공을 맡게 되더라도 보완이 가능하고 현장의 실수가 최소화될 수 있는 방안을 미리 고안하면서 재료를 지정하고 디자인했다.
지붕재는 그리드 콘셉트를 표현하면서도 그늘을 줄 수 있고, 무겁지 않으면서 투명하고, 솔리드하지 않은 재료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격자 FRP 패널은 면이 그리드 패턴으로 뚫려 있어 차분한 메탈패널의 벽체와 바닥에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그림자를 띄운다. 여름에 그 패턴이 특히 선명해지는데, 나뭇잎 그림자 같아 보이지 않냐며 발주처를 설득했다. (웃음)

도깨비마당 2층 모습. 외부 공간인 마당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크기의 박스들을 배치했다.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문을 열어놓으면 하나가 되는 공간 구조다.
윤: 완공 이후 실제 사용되는 모습을 지켜보니 어떤가?
김, 최: 가장 잘 사용되는 것은 역시 1층 벤치다. 오후 시간쯤 되면 장 보러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나 등산객들이 많이 앉아 있다 간다. 준공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고 연출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고 실제로 촬영날 현장에 앉아 있던 주민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찍은 것이다. (웃음)
사실 이전 컨테이너 박스에서 주민 자치로 운영하던 프로그램들에 이미 좋은 것이 많았다. 디자인 초기에는 그런 기존 프로그램을 많이 반영했다. 예를 들어 공유주방은 어르신과 함께 시장에서 장을 봐와 같이 요리를 해 먹는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안한 것이다. 운영 주체가 도봉구로 바뀌면서 프로그램적으로 많은 내용을 덜어냈지만, 공간의 용도와 사용 방식을 규정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두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궁무진하게 사용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점심에 주민분들이 텀블러에 믹스커피를 타와 오순도순 시간을 보내다 가기도 하고, 저녁에 방범 순찰 봉사자들이 쉬었다 가기도 하고, 정기적으로는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치매 상담이나 도봉구 마을관리 사무소의 모임 장소로 쓰이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길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이를테면 바로 앞에 신선한 재료가 넘치는 시장도 있는데 마당에 비닐 깔고 김장 행사를 열면 멋질 것 같다. 한편에는 고추랑 마늘도 말리고. (웃음) 운영 주체의 대범함과 창의성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산상 엘리베이터를 교체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다. 80~90대 노인분들은 여기까지 올라오기 쉽지 않다.
윤: 두 사람의 상상에서 기획되고 실현된 프로젝트다. 이러한 아이디어 공모에서 건축가와 서울시는 어떻게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실천해가나?
김, 최: 건축가로서 다시는 못 해볼 프로젝트 아닐까. (웃음) 대개 면적, 프로그램 등 따라야 하는 지침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제약 조건 없이 대지 선정부터 건축가의 제안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다 보니, 건축가의 디자인 의도가 적극적으로 반영될수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실험적일 여지가 많았다. 최대로 가능한 건축면적이 200m2가 넘었는데 정작 내부 면적이 80m2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협력했던 서울시 미래공간기획관은 그런 부분들에서 우리의 디자인 의도를 잘 파악했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줬다. 한편으론 공공의 기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공모 사업이 시작되던 시기에는 소규모의 공공 프로젝트들에 많은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도깨비마당이 시범 사업으로 시작된 만큼 현재 진행하고 있거나 앞으로 진행될 후속 사업이 적극적으로 일궈진다면 좋을 것이다. 도깨비마당처럼 일상의 작은 공공 공간들이 시민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길 바란다.

건물 북측의 공원과 연결되는 계단형 쉼터. 기존에 공원에서 일어나던 행위가 확장되길 기대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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