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2월호 (통권 687호)

초읽기부터 아카이빙까지,
혹은 동시대 읽기에 관하여
마감 전야, 따박따박 흘러가는 시간. 사실 ‘초읽기’란 지금 나의 심정이다. 이번 호가 짚어내는 다양한 시간과 시각을 매끈하게 이어보려던 노력을 포기하고, 이러한 이야기가 모이게 된 경로를 솔직하게 옮기기로 한다.
지난해 11월 말 목천문화재단에서는 건축가 김석윤의 구술집 출간기념회가 열렸다. 제주에서 50년간 건축을 해온 그를 만나기 전, 출판사의 배려로 교정지 상태의 책을 미리 받아보았다. 김석윤 선생의 구술 기록은 담담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1945년생인 선생이 제주에 설계사무소를 개소했던 1970년대 중반은 중문 단지 개발 계획이 수립되던 시점으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관광지로서 제주의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하던 때다. 서울에서 학업과 실무를 하고 제주로 돌아온 선생은 한라산국립공원시설 보완계획, 용두암 휴게소 계획 등을 진행하며, 제주 개발의 흐름과 당신 작업의 행보를 함께 하며 제주 건축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또한 제주 민가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토속건축 어휘를 이 시대의 보편적 어휘로 재해석하는 평생의과제로 이어진다. 특히 안팎거리 집을 제주도 모체건축으로 규정하며, 현무암이나 화산송이 등 지역의 재료를 꾸준히 실험하고, 제주 특유 지형에 대해 탐구하는 등 김석윤 선생이 천착해온 ‘제주성’은 지금 많은 건축가들이 제주에서 작업하며 붙잡는 화두들이 출발하는 토대처럼 보였다. 12월에는 제주 김건축 사옥에 자리 잡은 제주문화포럼 세미나실에서 두 번째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서울과 제주의 동료 건축가나 학자들뿐 아니라 제주의 많은 후배 건축가들, 제주문화포럼 인사들로 북적였던 행사의 풍경은 건축문화계 안팎을 아울렀던 그의 너른 품을 짐작하게 했다. 구술집은 단순히 한 선배 건축가의 행보를 따라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간 우리의 관심이 서울의 관점에 국한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제주라는 지역, 그곳의 작업에 관심은 많지만 제주에 상륙한 외국 건축가나 서울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건축가들의 관점에만 머물렀던 것 아닌지, 정작 제주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데 소홀했다는 각성이었다. 그러한 생각을 출판기념회 전 선생과 진행한 짧은 인터뷰 ‘지금부터는 제주의 입장, 건축가 김석윤의 50년’(본지 98~101쪽 참고)으로만 남기기에는 아쉬웠다. 기자들에게도 앞으로 제주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자는 취지를 공유했다.
한편 박지윤 기자는 ‘제주’라는 독특한 지정학적 공간에서 (시)공간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이런 생각에 호응했다. 평소 시대를 감각하는 새로운 건축 담론의 출현에 목말라했던 그는 ‘다른’ 생각을 키우며 작업을 하는 건축가들을 찾았다. 그렇게 기획된 「SPACE(공간)」 2월호 특집 ‘지금 초읽기작이 말하는 것’에 전재우(하이퍼스팬드럴), 오연주, 정해욱(미드데이), 현승훈(다랑쉬 건축사사무소), 신재희(재희 신 MSc Arch ETH SIA), 이다미(건축사사무소 플로라앤파우나), 이렇게 다섯 건축가 팀이 모였다. 그리고 서재원(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손종남(오피스툴 건축사사무소), 송률(수파 슈바이처 송 건축사무소)이 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여기서 ‘초읽기작’이란 소위 신축으로 통용되는 초기작과 구분되며 기념품부터 인테리어와 리노베이션까지, 지금 시대에 유효한 담론을 던지는 ‘건축’을 아울러 칭하기 위한 조어다. 널리 유통되는 담론으로 정돈되기 전, 펄떡이는 날것 그대로의 생각을 들어보고자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기획이다.
이러한 여정은 동시대를 읽고자 하는 열망과 연동된다. 글로벌한 시대, 활발한 연결로 시차가 줄어들고 다양성마저 줄어드는 것 같지만, 여전히 각자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경험되고 그 안에서 유의미한 새로움이 싹틀 거라는 희망 섞인 열망이다.
편집장 김정은
「SPACE(공간)」 2025년 2월호 (통권 687호) 목차
004 EDITORIAL
006 NEWS
020 FEATURE
지금 초읽기작이 말하는 것
What the Harbinger Project Sets Forth
022 FEATURE: WORK
가성비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 하이퍼스팬드럴
The Economy Barcelona Pavilion – HYPERSPANDREL
026 FEATURE: WORK
객체 긍정의 공간 - 미드데이
A Space of Affirming Objects – Midday
030 FEATURE: DIALOGUE
그들의 이중 코드_ 전재우, 정해욱 × 서재원
Their Dual Codes_ Chon Jaewoo, Jeong Haewook × Suh Jaewon
036 FEATURE: WORK
4대에 걸친 삶의 공간 - 다랑쉬 건축사사무소
A Space Spanning Four Generations – DARANGSHE ARCHITECTS
040 FEATURE: DIALOGUE
오프(off)된 방식들_ 현승훈 × 손종남
Off-Centre Approaches_ Hyun Seunghoon × Son Jongnam
044 FEATURE: WORK
다중저자로서의 토속건축 - 재희 신 MSc Arch ETH SIA
Vernacular Architecture as a Multi-Author Collaboration – Jaehee Shin MSc Arch ETH SIA
048 FEATURE: WORK
불순하고 잉여로운 어떤 필요 - 건축사사무소 플로라앤파우나
A Certain Impure and Surplus Need – Flora and Fauna
052 FEATURE: DIALOGUE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_ 신재희, 이다미 × 송률
In Search of Lost Languages_ Shin Jaehee, Lee Dammy × Ryul Song
058 FEATURE: ESSAY
초읽기작의 저변에 흐르는 것_ 박지윤
What Underpins the Harbinger Project_ Park Jiyoun
062 FEATURE: CHRONICLE
초읽기작 건축가 연보
Chronicle of Architects in the Harbinger Project
066 PROJECT
미지의 - 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
MIGIUI – architect-K
076 PROJECT
카페 루티니아 - SGHS 설계회사
Café Routinia – SGHS
084 REPORT
조정자로서의 건축가: 건축사사무소 더사이의 느슨한 완결_ 이진오 × 김수영 × 최진석
Architect as a Mediator: Loose Completion of Architects Office The SAAI_ Lee Jinoh × Kim Soo-young × Choi Jinseok
098 REPORT
지금부터는 제주의 입장, 건축가 김석윤의 50년_ 김석윤, 우동선 × 김정은
Jeju’s Position from Now: 50 Years of the Architect Kim Seokyoun_ Kim Seokyoun, Woo Don-Son × Kim Jeoungeun
102 VENICE BIENNALE INTERVIEW: Interview on the 3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2
세 번째 커미셔너, 김종성_ 김종성 × 김정은
Third Commissioner, Kimm Jong Soung_ Kimm Jong Soung × Kim Jeoungeun
114 RELAY INTERVIEW: I AM AN ARCHITECT
장면을 상상하고 만드는_ 차재 × 김보경
Imagining and Creating Scenes_ Cha Jae × Kim Bokyoung
120 SERIES: The Possibilities Inherent in Extinction, Mid-Size City Forum 07
세계적 중소도시: 동질성의 균열_ 이장환, 이상현
Global Mid-Size City: Cracks in Homogeneity_ Lee Janghwan, Lee Sanghyun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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