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12월호 (통권 685호)

에볼루션 가든으로 이어지는 진화 타임라인 벽 ©Kendal Noctor
인터뷰 키스 제닝스 런던 자연사박물관 부동산, 프로젝트 및 마스터플랜 디렉터, 에드먼드 파울스 필든 파울스 공동대표, 닐 데이비슨 J&L 기번스 파트너 × 윤예림 기자
지난 7월, 런던 자연사박물관 안에 숨죽여 있던 6천여 평 부지가 개관 140년 만에 탈바꿈했다. 서쪽의 기존 정원과 잘 활용되지 않던 동쪽 잔디밭을 개조해 야생 서식지 면적을 대폭 확대하고, 소박한 건물 두 채를 새로 지었다. 단순한 녹지의 개념을 넘어 ‘도시자연’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런던 자연사박물관 정원은 시민과 야생생물을 비롯한 온 지구를 껴안는다. 도심 한복판에 새롭게 열린 자연이 어떻게 생동하고 있는지 프로젝트를 주도한 런던 자연사박물관과 건축가, 조경가에게 들었다.

네이처 디스커버리 가든의 연못 풍경
윤예림(윤): 런던 자연사박물관(이하 자연사박물관)이 주도하는 도시자연 프로젝트(Urban Nature Project)의 일환으로 기획된 일이다. 이 일의 목적과 건축가・조경가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설명해 달라.
키스 제닝스(제닝스): 현재 도시에는 변화하는 지구에 맞춰 도시 내 자연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크게 결여되어 있다. 자연사박물관은 도시자연을 연구할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도시자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 일환으로 자연사박물관 정원을 사람과 야생생물 모두가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자유로운 녹지 공간으로 개방했다. 새 정원은 ‘살아있는 연구소’로서 도시자연 복원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닐 데이비슨(데이비슨): 자연사박물관은 자연 및 도시에 서식하는 여러 생물과 인간 간의 관계를 재형성할 수 있는 정원을 구상하고 있었다. 도시자연 변화를 관찰 및 기록하고, 관련 연구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적 움직임의 연장선이었다. 디자인 철학이 비슷한 건축 스튜디오 필든 파울스와는 오래전부터 조경가와 건축가로서 협업의 기회를 찾고 있던 참이었는데, 기회가 생겨 바로 뛰어들었다.
에드먼드 파울스(파울스): 건축설계 팀에게는 최고 수준의 접근성, 생물다양성 확장, 매해 5백만 명의 방문객이 지구의 과거-현재-미래를 배우고 도시에 서식하는 생물을 탐구하는 공간, 역사적 유산인 기존 건축과 조경에 호응하는 공간 등의 목적이 제시됐다. J&L 기번스와 긴밀하게 협력해 정원의 변화를 주도했으며 조경과 통합된 건물로서 가든 키친과 네이처 액티비티 센터를 조성했다.

에볼루션 가든
윤: 자연사박물관은 1800년대 알프레드 워터하우스의 작품인 건물과 이후 각기 다른 양식으로 증축된 고생물학관(1976), 다윈센터(2005)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기존 건물들과 새 정원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도록 했나?
제닝스: ‘자연을 위한 성당’이라 불리는 상징적인 건물이자 1등급 건축 유산인 알프레드 워터하우스의 건축을 존중하는 것을 건축과 조경의 핵심 원칙으로 삼았다. 워터하우스는 건물 동쪽에 과거(멸종) 생물종을, 그리고 건물 서쪽에 현재(생존) 생물종을 뒀는데, 이를 정원의 주제별 배치에 반영했다.
파울스: 새 건물들의 높이 또한 워터하우스의 기존 건물과 상응하게 디자인했다. 특히 인접한 크롬웰 거리와 엑시비션 거리 모두에서 보이는 가든 키친을 설계할 때는 워터하우스의 19세기 랜드마크를 비롯한 박물관 건물들이 어우러지는 주요 전망을 세심하게 고려했다. 워터하우스 건물과 고생물학관 사이, 거의 방치되고 있었던 대지 북쪽에 자리 잡은 가든 키친의 높이는 워터하우스 건물의 주춧돌 높이와 일치한다. 시설 뒷면은 고생물학관의 지하실에 완전히 가려져 숨겨 있다.
또 다른 건물인 네이처 액티비티 센터는 워터하우스가 정원의 서쪽 가장자리에 따로 설계한 건물인 관장실을 반영해 설계됐다. 이전에 우리 스튜디오를 직접 설계하면서 목재 프레임을 이용한 합리적 구조를 실험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 필든 파울스 스튜디오(2016)를 발전시킨 유형이기도 하다. 정원을 향해 열린 형태를 취하며, 북쪽과 남쪽 방향에 극적으로 돌출된 목재 프레임 경사지붕을 얹었다. 이 시설은 지붕에서 강우량을 재는 한편, 건물 주변에 서식하는 자연을 학습할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된 공간을 제공한다.

협곡벽, 루이스 편마암 레이아웃 ©Feilden Fowles

디플로도쿠스 청동 조형물 ‘Fern’
윤: 신축한 두 건물은 모두 석재 또는 목재로,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방식으로 지어졌다.
파울스: 정원의 두 건물은 선형적 평면, 모서리의 입구, 겹겹이 쌓여 하중을 견디는 석재 외관, 강조된 목재 프레임 지붕 등 여러 모티브를 형제자매처럼 서로 공유하고 있다. 본래 유행을 타지 않도록 이런 단순하고 원시적인 언어를 의도했으나, 회전되고 살짝 장식된 모서리 기둥 같은 미묘한 디테일은 워터하우스의 걸작에서 볼 수 있는 활기차고 재치 있는 장식들에 대한 긍정의 표시이기도 하다. 건물을 견고하게 지어 단단하고 튼튼하며 투박한 모습을 의도하면서도 동시에 필든 파울스가 추구하는 ‘로-테크’ 건축 접근 방식과 교외의 단순한 토속 건축적 어휘가 떠오르도록 했다.
제닝스: 이번 프로젝트는 디젤 사용과 폐기물이 없도록 하고 여분의 현장 재료를 모두 재활용하는 등 건설 현장의 지속가능성부터 현지에서 조달한 목재 등의 천연 재료와 저탄소 건축자재 사용 등 재료에 대한 지속가능성, 그리고 빗물을 수집하고 조경에 물을 공급하는 식의 지속 가능한 물 전략까지 종합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했다.

네이처 디스커버리 가든의 야외 교실

네이처 액티비티 센터 ©Kendal Noctor
윤: 다른 주제로 구성된 동쪽과 서쪽의 정원은 각각 어떤 특징을 가지나?
파울스: 정원 전체의 디자인 개념은 워터하우스 건축의 테마와 구성에서 영감을 받았다. 워터하우스 건물은 내부 배치뿐 아니라 외관에도 동쪽에는 멸종된 생물로, 서쪽에는 현존하는 자연으로 정교하게 장식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구성 개념은 과거부터 현재, 미래의 자연을 동쪽의 에볼루션 가든, 서쪽의 네이처 디스커버리 가든, 그리고 다윈센터 뜰로 구분한 우리 설계안에 반영돼 있다.
제닝스: 고식물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박물관의 연구원 폴 켄릭 박사가 에볼루션 가든의 디자인 팀과 함께 작업했다. 지질시대에 따라 암석들을 세밀하게 배치해 1m 길이마다 지구의 5백만 년에 해당하는 시간이 흐르도록 한 진입로는 캄브리아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타임라인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대별 암석들은 ‘협곡벽’으로 구성됐고, 그 외에도 군데군데 놓인 커다란 바위나 벤치, 자갈 멀칭 등 다양한 형태로 조경에 통합된 암석들을 발견할 수 있다. 협곡벽과 진화 타임라인 벽에는 최소 26개의 지질학적 연대를 대표하는 암석이 사용됐으며 암석들은 두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국 구석구석에서 조달해왔다. 27억 년 전 형성된 루이스 편마암, 대륙의 형성과 해체로 인한 지각의 거대한 움직임을 알려주는 화강암, 얕은 열대 바다에서 형성돼 화석으로 가득한 석회암 등이다.
식물들은 에볼루션 가든 전체에 특징적인 장소감을 조성하고 방문객이 진화 과정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치됐다. 정원 입구에는 오르도비스기 시대의 이끼와 간풀이, 고대 석탄 숲에는 대형 양치식물이 등장하고, 정원 후반부에는 백악기 시대에서 기원한 꽃들이 출현한다. 또 런던이 한때 아열대기후를 경험했던 것을 기억하며 한구석은 에오세 시대를 대표하게 했다. 고사리, 울레미소나무 등 쥐라기 시대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식물들로 둘러싸인 쥐라기 정원 중심에는 실물 크기로 쥐라기 후기에 살았던 공룡, 디플로도쿠스 청동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다. 데이지과의 풀과 꽃은 타임라인 마지막 부분에 등장해 신생대 초원의 확산을 묘사한다. 그 외에 5억 4천만 년 전부터 이어져온 각종 생물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청동 동물 조각상 등으로 표현했다. 타임라인 끝에는 인간 발자국이 등장한다.
데이비슨: 정원 곳곳에 마련된 벤치 일부는 구운 백악이나 그램피언 화강암 또는 퍼벡 석회암과 같이 각 지질 시대에서 채취한 암석을 직접 깎아 만들었다. 네이처 디스커버리 가든은 미래의 도시 숲이란 설정 안에서 현재 영국에 존재하는 다양한 서식지 유형을 전시하고 기후 적응에 대한 미래적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에서 기존 서식지 조직에 대한 분석이 수행되어 종합한 현장 정보를 기반으로, 이미 번성하고 있지만 새로운 개입을 통해 개선될 수 있는 작은 인공 서식지들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탐구했다. 그 결과 기존 야생생물 정원 내 연못, 습지대, 초원을 이전하고 숲과 울타리 서식지를 개선하는 서식지 재배치 전략을 마련할 수 있었다.

네이처 디스커버리 가든의 소리 수집기

오디오 및 환경 데이터 수집을 위한 센서를 설치하는 모습
윤: 런던은 도시 면적의 약 20%가 공공 녹지다. 켄싱턴 가든스, 리젠트파크와 같이 풍부한 정원과 녹지를 도시 전역에 보유하고 있는데, 자연사박물관 정원은 공공에게 어떤 다른 의미를 가지는가?
데이비슨: 사실 자연사박물관 근처에는 하이드파크와 켄싱턴 가든스를 제외하고 공공 녹지가 거의 없다. 따라서 지역사회에 접근이 용이한 녹지 공간이 매우 필요했다. 자연사박물관 정원은 사우스 켄싱턴 도심부에서 박물관 방문객과 지역 주민 모두에게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점심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되어줄 뿐 아니라 야생생물 서식에 매우 필요한 녹지 공간을 제공한다.
제닝스: 변모한 정원의 두 야외 갤러리인 에볼루션 가든과 네이처 디스커버리 가든은 탐구 활동에 최적화된 도시자연이다. 박물관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지질 역사의 광범위한 규모에 대한 감각을 기르고, 지구 식물들의 대표적 변화들에 대해 배우고, 생물 진화와 지질학적 과정들 사이의 관계를 읽어내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네이처 디스커버리 가든은 우리의 마을 및 도시 안에서 아주 가까이에 서식하지만 기이하고 보기 드문 야생생물들에 대해 더 자세히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런 점에서 정원은 지구의 옹호자를 양성하려는 박물관의 뜻과 맞닿는다. 이곳은 박물관 소속 과학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도시자연 복원의 최선책을 가장 활발하게 개발하는 도심 현장이 될 것이다. 생물다양성의 보호를 논할 때 대부분은 숲이나 교외 공간에 주목하지 않나? 하지만 도시자연을 연구하면 야생생물이 마을 및 도시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인간 행동이나 기후 변화와 같은 요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앞으로 도시 공간을 어떻게 관리해야 생물다양성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알려주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프로젝트에는 박물관과 아마존 웹 서비스(AWS)의 협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정원에 설치한 25개 센서 네트워크는 정원 곳곳에서 오디오 및 환경 데이터를 수집한다. 새와 박쥐의 울음소리, 비와 바람 소리, 연못의 수중 소리는 물론 교통 소리와 같은 사람이 만든 소리까지 모두 수집된다.

정원의 야생생물
윤: 프로젝트는 숲이나 교외, 시골 지역에 비해 도외시되곤 하는 도시자연의 회복을 강조한다. 교외와 달리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의 자연을 위해서는 어떤 접근이 필요하며, 자연사박물관 정원이 생물다양성을 확보한 방법은 무엇인가?
제닝스: 자연사박물관의 기존 정원인 ‘야생생물 정원’은 여러 중요한 생물들의 서식지였다. 1995년부터 기록된 전문가들의 자료에 의하면 기존 정원에 서식하는 동물종, 식물종, 균류종의 수는 약 3,500종이다. 이번 5에이커 부지의 총체적 변화는 부지 전체의 생물다양성을 강화하면서 서식지를 보호하려는 목적에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 부지 내 서식지 면적을 두 배로 확장했고, 습지대 면적은 60% 늘렸다. 그리고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기존 연못을 메운 다음 다시 굴착해 휠체어 두 대가 지나갈 만큼 넓은 수로를 추가로 확보했다. 공사 기간 동안 기존 연못의 생물들은 연못 물과 함께 임시 연못에 따로 옮겨 보존했다가 공사가 끝난 후 정비를 마친 연못으로 다시 옮겨왔다. 전체 과정에서 박물관 소속 과학자들이 수질과 생물다양성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했고, 생물들은 임시 연못에서도 번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 연못에는 이미 개구리, 도롱뇽, 잠자리, 원앙 등이 새로운 터전을 꾸리며 번성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네이처 디스커버리 가든은 삼림, 초원, 관목, 갈대밭, 산울타리, 습지 등 다양한 서식지에서의 풍부한 생물다양성을 보여준다. 도시 맥락 안에 이런 서식 환경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것이다.
데이비슨: 도시환경에 거주하는 인구가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양질의 접근 용이한 녹지 공간과 자연과의 연결은 도시 거주자들의 생활환경 개선과 좋은 도시계획의 전제 조건이다. 도시자연 프로젝트는 다채로운 서식지 유형과 기법을 소개함으로써 도시자연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참여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도시 공간을 재구성해 생물다양성을 높이고, 도시의 기온을 낮추며,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활동과 과학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고무적인 사례 연구라 할 수 있다.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 특히 젊은 층에게 자연에 대한 애정을 심고 미래의 자연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품게 하는 것이다.
©Feilden Fowles + J&L Gibbons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