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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주장하는 건축: 또 다른 조건을 찾아서 | 구체적인, 현실적인, 설득적인: 에스티피엠제이

이승택, 임미정
사진
배지훈(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에스티피엠제이
진행
방유경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4년 12월호 (통권 685호) 

 

인비저블 반(2015) ©stpmj 

 

디졸빙 아치(2016)​ ©stpmj

 

건축물의 디자인은 실체적이고 분명한 여러 가지 (제약)조건에 대한 결과다. 대지의 크기와 건폐율에 따라 건축물의 바닥면적이, 대지의 지역 지구에 따라 층수나 높이가, 주도로와 접한 곳에 주차장 출입구가, 주변의 교통수단과 사람들의 이동에 따라 주 출입구가, 내부 공간의 용도와 규모에 따라 코어의 크기가, 향이나 조망에 따라 개구부의 위치와 크기가, 주변 풍경에 따라 건축물의 입면 재료가 각각 결정된다. 이는 보편적으로 고려하는 기본 조건으로, 그 안에 건축가의 임의적이고 습관적인 취향이나 건축주의 주관적 의견이 충분히 개입될 수도 있는 ‘느슨한’ 조건이다. 보편적 조건 안에서의 디자인 접근은 타 건물과 유사한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언급된 기본 조건을 넘어 건축가의 새로운 관점과 생각이 투영된 보다 ‘엄격하고 설득력 있는’ 조건(변수)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조건은 주변에 존재하는 고유한 특징의 발견으로부터, 사용자를 위한 프로그램과 공간 유형으로부터, 구조의 합리성으로부터, 재료의 감성과 가능성으로부터, 사회적·문화적 현상으로부터, 환경적 기능성과 기후변화로부터, 일정과 예산을 조절하는 전략으로부터 도출된다. 이 다른 조건(변수)이 프로젝트를 본질적으로 다르게 만들고 건축가 개인의 만족을 넘어 다수의 호응과 지지를 얻는 내러티브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새로운 관점을 주장하는 건축을 좋아한다. 주장하는 건축은 애매하거나 그저 침묵하는 건축이 아니다. 분명하고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기에 때로는 시끄럽고 논쟁적이다. 건축물 자체의 품질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서 시행착오를 거쳐 검증된 다른 모드(방식)의 생각들에 관한 것이다. 주장하는 건축은 오랫동안 의심 없이 행해져 온 습관을 숭배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현상을 살피는 습관에 주목한다. 숙련된 생각과 경험보다 날것의 거침을 존중한다. 주장하는 건축은 주장 그대로를 읽는 사람에게 메시지로 전달한다.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개념에 으스대지 않는다. 주장하는 건축은 분별력이 있지만 예민하거나 까다롭지 않다. 다양한 원인에 대응하는 탄력적인 태도를 추구한다. 세련된 분절과 표현, 그럴듯한 비평적 시각보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이다. 주장하는 건축은 눈길을 끌지만 거만하지 않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stpmj

 

조건: 특별한 장소성(자연)과 구조물의 관계

 

인비저블  반(2015)

인비저블  반은 특별한 물리적 장소성이 만들어내는 자연과 구조물과의 시각적 관계에 대한 프로젝트이다. 대지는 빽빽하게 형성된 나무 군락 내부이고 어디에 구조물을 두더라도 자연과의 관계 설정은 쉽지 않았다. 비슷한 직경의 나무들이 비슷한 간격을 두고 방사형으로 배치되면, 중심까지 여러 켜가 생긴다. 때문에 그 중심에 반사 효과를 갖는 오브제를 두면 구조물에 반사된 면과 구조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면이 시각적으로 거의 일치하는 착시 효과가 발생한다. 이로써 사람이 만든 물리적 구조체는 자연 속에서 사라지면서 구조물과 자연(주변 풍경)의 관계를 재설정한다.

 

 

©stpmj

 

조건: 날씨 변화와 재료의 상관 관계

 

디졸빙 아치(2016)

디졸빙 아치는 제주만의 미세기후에 대한 탐험이다. 제주에 여름 두 달 동안 설치되는 임시 파빌리온이었기 때문에 같은 기간 지역의 기후 특징에 주목했다. 동기의 과거 기후를 파악하여 높은 습도와 우기(실제로 전시 기간의 70~80% 동안 비가 내렸다)가 프로젝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조건(변수)이 되었다. 물에 녹는 암염으로 블록을 만들어 쌓는 조적식 볼트 구조를 적용해 전시해놓은 동안 블록이 서서히 녹아내리며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제주의 미세기후는 설치 작업을 변화시켜 매 순간 다른 공간과 풍경을 경험하도록 유도하는 매개체가 된다.

 

 

 

조건: 작품 속의 작품을 위한 소리 통제

 

고요의 틈(2022) 

여러 전시가 동시에 진행되는 넓은 전시 공간에서, 책을 하나의 작품으로 품어야 하는 구조물을 만들 때 중요한 인자는 소음일 것이다. 흡음성이 뛰어난 재료인 펠트를 가득 쌓아 벽을 만들면 소리의 움직임과 차단 정도에 따라 한 공간 안에서 느슨한 경계를 형성하여 공간 구분이 가능하다. 입구로 진입하면 외부의 소리가 단절되면서 오롯이 활자에 집중할 수 있는 책상 앞에 앉게 되는 공간을 제안했다. 고요의 틈은 커다란 전시실 내 청각을 제어하는 고립된 섬이자 힐링 장소가 된다.

 

 

©Song Yusub 

 

조건: 내외부 유형의 변화와 형태적 가능성 

 

쉬어하우스(2016)

쉬어하우스는 초원처럼 보이는 원시적 풍경 속에 존재하는 작은 집이다. 참조할 주변 맥락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처한 상황과 주어진 조건 안에서 건축적 유형에 집중했다. 개인 주거 형태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제사와 차례를 지낼 수 있는 소실점이 있는 무대와 같은 공간 구조, 집의 환경적 성능, 빠듯한 공사 일정 등 복합적 조건을 해결해야 했다. 이에 목구조를 바탕으로 박공지붕을 원형으로 삼는 전통적 창고, 헛간의 형상에서 평면을 비틀었다. 평면의 어긋남으로 남쪽으로 깊은 처마를 내어 직사광선을 차단하고 북쪽으로는 소나무 숲을 바라보는 테라스를 만들어 환경적 성능을 높인 단면(입면) 유형이 제안되었다.

 

 

 

조건: 정해지지 않은 대지와 주택의 구성 원리

 

보통집(2021)

단독주택을 계획하면서 대지가 정해지지 않았거나 변경될 수 있을 때의 결과물을 보편성과 특별함 사이에 어떻게 위치시킬 수 있을지 주목했다. 건축주가 이주하려는 지역의 여러 택지개발 필지들을 조사하여 제한 조건들을 평균값으로 일반화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화된 집을 계획했다. 가족 구성원과 생활 패턴을 고려하여 거실, 주방, 목욕탕(온실) 등 주로 사용하는 공간을 중심에 두고 양쪽으로 방과 테라스로 영역을 확장시켜 계단의 형태를 갖는 단순한 외형이 만들어졌다. (정해지지 않은) 필지의 보편적 특성을 기반으로 본질적이고 기본적 원리에 입각하여 계획된 보통집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전원 마을에 의도된 오브제로 그 특별함을 드러낸다. 

 

 

 

조건: 보존과 철거에 대한 결정

 

구의살롱(2019)

옛 건물을 대수선(리모델링)할 때 어떤 가치를 보존하고 유지할 것인가는 건축가가 가진 기준과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지향하는 소비 트렌드로서의 ‘레트로 현상’과는 구분된다. 구의살롱은 시대를 대변하는 집합체적 양식으로서의 가치를 기준으로 건축적 요소의 위계를 나누었다. 이에 따라 층별 독립적 진입 구조, 외부의 건축적 요소들, 1층의 벽과 바닥에 존재하는 축조 방식이나 디테일, 지하 화장실의 흔적, 지금은 사용되지 않지만 건물 시스템으로서 존재하는 여러 배관들은 모두 당시를 유추하고 환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집합체적 양식’으로서 보존되었다.

 

 

 

조건: 치열한 면적 확보가 요구되는 건물에서의 구조 보강

 

페이스리프트 상도(2020)

최근 많이 이루어지는 대수선의 공간적 요소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철제 기둥과 빔(철골 보강)의 조합이다. 보편적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구조체의 하중을 전달하는 기초 부분 보강을 위한 장비가 들어서기 어려운 상황이나, 작은 바닥 면적과 낮은 층고로 인해 기둥과 보에 의한 공간 손실조차 아쉬운 상황이라면 다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페이스리프트 상도는 부분적으로 철근콘크리트 벽체를 보강해 내부 사용 공간을 최대로 확보하고 동시에 내진구조도 해결하면서 대수선의 클리셰로 대변되는 철골 부재를 의도적으로 감추며 대수선의 흔적을 지우는 도구가 된다. 

 

 

 

조건: 파사드가 된 코어

 

커피믹스 송파(2021)

커피믹스 송파는 빛과 소음을 엄격하게 통제해야 하는 바리스타를 위한 교육시설과 카페 등 커피 관련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5개 층 건물이다. 이 때문에 도심지 내에서 도로와 면한 일반적인 근린생활시설의 태도나 정면성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취한다. 학원인가를 위한 층별 면적 확보를 위해 최소화된 코어를 전면에 둔 것은 주변의 어수선한 맥락(새마을 시장, 정육식당, 고물상, 참기름집, 맞은편 합필 필지의 대규모 개발 가능성)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정면성을 갖기 위함이며, 동시에 예민한 감각을 요하는 내부 프로그램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stpmj 

 

조건: 대지의 불확실성과 디자인의 안정성

 

부여 공공도서관·생활문화센터(2022~진행 중)

프로젝트의 제목인 ‘유적지 위에서’란 표현은 문화 유적지의 위치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맞닥뜨릴 대지의 불확실성에 대해 탄력적 디자인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법론에서 출발한다. 커다란 바닥면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환영하는 단일 매스의 공공건물 또는 여러 건물들을 세밀하게 조정해 배치하는 확정적 배치로는 그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설계 단계 이후 진행될 문화재 조사의 유적 발굴 위치에 따라 건물의 기초도, 건물들의 유기적인 배치도 변경될 수 있어 초기의 건축 개념이 관철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디자인의 개념을 유지하고 차후 실행 단계에서 발생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건물의 접지면을 최소로 줄이고 주요한 프로그램은 지면에서 띄웠다. 추후 발견될 유적의 위치에 따라 기초와 연결되는 코어의 위치가 능동적으로 변경될 수 있는 평면 방식을 제안했다. 

 

 

 

조건: 새로운 산업에 대응하는 공용 공간의 유형

 

메가 플로어(2024)

메가 플로어(서울 AI 허브)는 4차 산업이라 일컫는 인공지능 개발기업 및 연구소를 위한 공간이다.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공간의 성격 및 특성이 구체화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러 분야가 융합될 수 있는 산업의 가능성을 고려해, 공용 공간의 사용 및 구조는 기존 업무시설과는 달라야 했다. 기업체의 개별적인 공간의 틀은 유지하되 나머지 공용 공간은 그 구성을 집약하고 (일례로 바이오 센서 테크놀로지가 착장된 드론의 활용 범위를 테스트할 수 있게) 바닥면적과 높이에 자유로움을 더하고자 했다. 각 분야 간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고 산업의 발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중성적이고 유연한 공간이 필요하다.

 

고요의 틈(2022) 

 

쉬어하우스(2016) ©Song Yusub

 

내년이면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작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된다. 그 기간 동안 진행했던 모든 프로젝트가 ‘주장하는 건축’이 될 수는 없었다. 그중에는 자본의 논리에 밀려, 건축주의 취향에 밀려, 스스로 부족했던 경험에 밀려 우리가 발견한 조건, 변수들이 실체화되지 못했거나 그 설득력이 약화된 경우도 많았다. 건축가가 설정하는 방향의 초기부터 완성까지의 과정에는 합리적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교훈도 얻게 되었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설득하고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 구체적인 ‘또 다른’ 조건과 기준을 정하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우리만의 ‘접근법’이자 ‘안내서’가 되었다. 그 조건이 프로젝트를 다르게 만들고 설득력과 호응을 얻어낼 수 있음을 경험을 통해 학습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의 반추가 앞으로 우리의 주장하는 건축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이길 바란다.​ 

 

보통집(2021) 

 

구의살롱(2019) 

 

페이스리프트 상도(2020) 

월간 「SPACE(공간)」 685호(2024년 12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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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피엠제이
에스티피엠제이(stpmj)는 서울과 뉴욕에 위치한 아이디어 기반의 설계사무소다. ‘도발적 현실주의’라는 비전 아래 일상에서의 근본적 아이디어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여 주거, 문화, 상업 시설 등에 적용하고 있다. 동시에 공공예술, 전시, 설치 작업을 통하여 건축의 경계를 탄력적으로 넓히는 실험을 하고 있다. 뉴욕건축가연맹에서 수여하는 젊은건축가상(2012), 뉴욕건축사협회에서 수여하는 신진건축가상(2016)을 비롯해 한국 젊은건축가상(2016), 김수근 프리뷰상(2016), 디자인 뱅가드상(2017), 건축문화대상(2019), AIA 뉴욕 디자인 어워드 대상(2020, 2019, 2017), 서울시 건축상(2021) 등을 수상했다. 이승택은 고려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GSD)에서, 임미정은 연세대학교,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RISD), 하버드대학교 GSD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각각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겸임교수,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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