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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링 기반 디자인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자료제공
유아이에이 건축사사무소
진행
김정은 편집장

「SPACE(공간)」 2024년 2월호 (통권 675호) 

 

​건물을 세우는 일이란, 달리 말하면 중력과 싸우는 일이다. 건축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을 다루며 개념을 공간으로 구현하는 사람이라면, 구조 엔지니어는 그 개념부터 함께 탐색하는 동행이다. 그러한 동행자로, 건축가 위진복(유아이에이 건축사사무소 대표)은 구조 엔지니어 정광량(CNP동양 대표)을 꼽는다. 구조에 기반해 건축의 개념이나 형태를 끌어내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 건축계에서 보기 드문 관계다. 두 사람을 만나 구조 개념이 공간으로 조직되는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더불어 클라우드 설계에 참여한 홍석규(큐앤파트너스건축사사무소 대표)도 함께해 영국에서의 교육과 실무 경험을 나눴다.

 

이태원 해방촌의 신흥시장에 ETFE로 만든 클라우드(유아이에이 건축사사무소+큐앤파트너스건축사사무소 설계, 2022)는 답답하고 어두운 아케이드를 가볍고 밝은 공기 충전식 경량 구조로 바꾼 사례다. ©Shin Jaeik

 

구조 엔지니어와 건축가의 협업

김정은(김): 정광량은 평소 여의도 파크원, 인천 포스코 타워 송도, 부산 해운대 LCT 등 주로 대규모 프로젝트의 구조를 맡아왔다. 위진복과는 어떻게 작업을 함께 하게 된 것인가? 규모나 성격이 다른 작업이지 않나?

위진복(위): 내가 리처드 로저스 사무실에서 일할 때 진행한 여의도 파크원을 계기로 만났다. CNP동양에서 에이럽(Arup)과 함께 구조를 맡은 프로젝트다. 

정광량(정): 당시 거의 매달 영국에 가서 협의를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위진복이 한국에 들어왔다고 인사를 왔길래, 그때부터 일을 함께 하게 된 거다. 우리 회사는 규모가 크다 보니 소규모 건축물을 주로 설계하는 소위 아틀리에 사무실과는 협업하기 힘들다. 하지만 평소 디자인이 좋은 건축물을 지원하는 구조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위진복에게서 그런 가능성을 봤다. 그래서 규모가 작더라도 같이 하게 된 것이다. 유럽에서는 구조를 건축 디자인에 표현하고 싶어 하는 건축가들이 꽤 있다. 특히 AA 스쿨 출신들이 그렇다. 

홍석규(홍): 나는 2005년에, 그리고 위진복은 2003년에 AA 스쿨을 졸업했다. 당시 학교 정책이 구조 테크니컬 스터디를 통과 못하면 졸업을 못 했다. 마지막 졸업작품을 할 때 왜 이 구조를 써야 하고 그 구조가 프로젝트를 어떻게 도와주는지 그 연관성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 교육 덕택에 구조를 중시하는 태도가 생긴 것 같다. 

위: AA 스쿨에서 내 선생이 하니프 카라(Hanif Kara)였는데, 지금은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GSD)의 교수인 그는 AKT II라는 유명한 구조 엔지니어링 회사의 공동 설립자였다. 실제 구조 엔지니어들에게 교육을 받으면서 나 역시 건축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정: 사람들이 하이테크 건축이라고 불렀던 노먼 포스터, 리처드 로저스, 렌조 피아노의 작품은 구조가 중요하다. 유럽에서 지난 50여 년간 이들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이러한 건축가들과 함께, 세실 발몽(Cecil Balmond) 같은 엔지니어나, 에이럽이나 뷰로 하폴드(Buro Happold) 같은 회사가 성장한 거다. 명성이 있는 구조 엔지니어로 남으려면 구조를 중시하는 건축가가 있어야 한다. 나 혼자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태원 해방촌의 신흥시장에 ETFE로 만든 클라우드(유아이에이 건축사사무소+큐앤파트너스건축사사무소 설계, 2022)는 답답하고 어두운 아케이드를 가볍고 밝은 공기 충전식 경량 구조로 바꾼 사례다. ©Shin Jaeik
 

번들 기둥과 콘크리트 기초 디자인이 발전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다이어그램 ©UIA + Q&Partners Architects 

 

김: 다른 건축가들과 협업할 기회는 없었나? 

정: 조병수의 트윈트리 타워와 현대자동차 천안글로벌러닝센터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해외 건축가의 국내 프로젝트를 맡는 경우가 많다. 마리오 보타의 남양 성모성지 대성당이나 니켄세케이의 HD현대 글로벌 R&D 센터, 헤르조그&드 뫼롱의 현대자동차 미래항공 모빌리티, 최근에는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성수동 K-프로젝트 등을 했다. 국내 소규모 건축사무소와는 구조 설계비 때문에 함께 일하기 쉽지 않다. 설계공모를 통해 공공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설계비가 적으니 설계자가 좋은 엔지니어와 일하기 어렵다. 한두 번은 비용이 적어도 지원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설계사무실에 엔지니어링을 뒷받침할, 즉 실시설계와 상세 디테일을 작업할 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건축 교육이 그를 뒷받침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영국처럼, 성장하는 젊은 건축가들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고 대형 설계사무소와만 일하게 되는 거다. 한편으로는 설계자와 감리자를 분리하는 법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설계도면이 어떻게 구현되는지에 대해 경험해봐야 하는데, 건축가가 현장 경험이 적다. 

홍: 계약 관계도 한국과 유럽이 다르다. 유럽에서는 구조 엔지니어와 기계 및 전기 엔지니어, 이렇게 다른 연관 컨설턴트들이 클라이언트와 직접 계약을 하기도 한다. 극단적으로는 건물이 무너졌을 때 건축가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연관 컨설턴트와도 공유한다.

정: 건축가는 본래 디자인적인 의무를 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경우는 건축가가 구조 엔지니어링을 계약상 협력 업무로 주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이들을 분리하게 되면 설계비가 낮아진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책임을 나누고 전체 파이를 키우며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현재 법적인 틀 안에서 설계자와 엔지니어 간의 관계는 ‘협력’이라는 용어로 업무가 진행되듯이 건물의 디자인은 건축과 구조가 함께 협력해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구조에 기반한 디자인을 하기보다는 다 그려놓고 해결을 하란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김: 그러면 두 사람의 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

정: 위진복 같은 경우는, 설계를 시작할 때부터 직원들을 모두 데리고 우리 사무실에 와서 건물의 디자인적인 부분을 함께 토론하며 설계의 방향을 잡아나간다.

위: 내가 생각하는 아이디어가 구현이 될지 감을 잡는다. ‘아 거기까지 가도 되겠구나’ 하고 검증을 받으면서 난이도를 조정하며 설계를 해나가는 거다. 정광량은 나의 디자인 파트너로서 대부분 프로젝트의 결정적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는 협업 관계라고 생각한다. 구조는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해결의 수단이 아니라, 건축을 조직해낸다. 

정: 예를 들어, 2025 오사카 엑스포 한국관의 경우 고난이도의 구조가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건축을 풀어갈 수 없다. 엑스포 전시관이란 6개월간 쓰는 임시 건물이다. 오사카 엑스포에서는 ‘행사가 끝나면 짐을 다 싸서 가져가라’, 즉 철거해 원상 복구하는 것이 기본 전제다. 또 다른 문제는 부지가 매립지란 거다. 매립지에는 기초를 깊게 만들 수 없으니 건물이 가벼워야 하고, 나중에 해체해서 가져가려면 모듈화해야 한다. 그래서 9×9m로 모든 걸 모듈화했다. 또 전시시설이니 대공간이어야 한다. 게다가 오사카는 강진 지역이면서 바람도 세다. 그러니 경량구조물이 날아가지 않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즉 구조적인 시스템이 건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위진복은 나에게서 그런 기본전제를 확인하고 구체적인 설계를 발전시킨다.

 

©Shin Jaeik  

ETFE를 두 개의 막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 공기를 불어넣은 공기 충전식 구조는 조이스트 같은 서브 구조물 없이 상부를 덮을 수 있어서 경량 구조를 가능케 한다. ©UIA + Q&Partners Architects 

 

소재의 물성에 따른 구조의 변화 

김: 이태원 해방촌에 있는 신흥시장에 ETFE(Ethylene tetrafluoroethylene)로 만든 캐노피, 클라우드(2022)를 만들었다. 기존 2층 슬래브 높이에 슬레이트와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들어진 아케이드 지붕을 건물 옥상 위로 올리고, 답답하고 어두운 아케이드를 가볍고 밝은 공기 충전식 경량 구조로 바꾼 사례다. 

위: ETFE는 열가소성 불소수지 소재로 매우 가볍고, 유연하고, 일광 투사율이 높으며 내구성이 탁월하여 식물원, 아케이드 등의 건축물에 유리 대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신흥시장에 적용된 방식은 ETFE를 두 개의 막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 공기를 불어넣은 공기 충전식 구조로 조이스트 같은 서브 구조물 없이 상부를 덮을 수 있어서 경량 구조를 가능케 한다. ETFE 시스템의 디테일을 풀어야 했기 때문에 ETFE 클래딩 시스템을 설계, 제조 및 설치하는 벡터포일텍(Vector Foiltec)에서 일했던 홍석규와 함께 설계하게 됐다. 

홍: 일반적인 구조물은 대개 중력과의 싸움인데, ETFE처럼 인장 막구조(tensile membrane structure)를 쓰는 경우는 바람이 위로 불어서 부상하는 인양력과의 싸움이다. 

위: 원래는 기둥을 건물 벽에서 지지하도록 해 가볍게 만들고자 했으나 서울시에서 건물에 앵커를 박는 등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마치 삼각대처럼 까치발을 한 독립 기둥 다발이 된 것이다. 각 건물의 개구부 위치를 고려하고 구조적 안정성을 검토하며 시장 상인들 및 주민들과 일일이 소통하고 조율하는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홍: 하나의 두꺼운 기둥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펼쳐지는 기둥을 받치는 기초는 같은 양의 콘크리트를 쓰더라도 얇고 넓게 제안했다. 이때 새로 매립되는 우ㆍ오수관을 파악하여 기초의 두께나 면적을 계산하는 일 역시 복잡한 디자인 과정이었다. 

김: 국내에서 ETFE는 아직 많이 쓰이지 않는 것 같다. 2018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코어건축사사무소+그라프트 오브젝트 설계)이나 서울식물원의 온실(더_시스템 랩 설계) 정도다. ETFE가 많이 쓰이지 않는 이유는 고가이기 때문인가?

홍: 영국에서는 주거시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용도시설에서 ETFE를 사용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시청사의 측면에 일부 쓰였지만, 식물원인 에덴 프로젝트(그림쇼 아키텍츠 설계)나 베이징올림픽 국립수영센터인 워터큐브(PTW 설계)처럼 물성의 장점을 활용해 파사드를 대체하는 재료로 쓰인 경우는 많지 않다. 「건축법」 상 ETFE가 불연성 재료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ETFE 파사드가 유리보다 더 안전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건물 안에서 화재가 나면 결국 질식해서 사망에 이르는데, ETFE의 경우 일정 정도 이상의 열이 닿으면 구멍이 뚫려 연기가 빠져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정: 혹은 식물원이나 수영장 등에 쓰였을 때는 내부에 탈 소재가 없다. 우리나라는 내화규정이 상당히 엄격하다. 그렇다 보니 그 자체로 내화 구조인 콘크리트 구조물을 제외하고 구조체를 노출해 구조미를 건축에서 표현하기 어렵다. 그간 우리는 내화 성능 설계가 용납되지 않았는데 2021년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내화 성능 설계를 통해 내화피복을 줄일 수 있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그 법이 적용된 첫 번째 사례가 HD현대 글로벌 R&D 센터(「SPACE(공간)」 669호 참고)다. 내화피복 없이 날렵한 격자 철골 프레임을 그대로 노출했다. 

홍: 또 다른 이유는 기후 때문인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결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ETFE 시스템이란 공기 쿠션(방)을 만드는 건데, 이 쿠션을 2개, 3개, 4개까지 만들 수 있다. 그럼 첫 번째 공기 방과 네 번째 공기 방의 온도 차이가 나면서 단열효과를 낸다. 

정: 그러니까 유리냐 ETFE냐 그 재료만으로 비용을 따질 수 없다. 일단 유리를 쓰면 그것을 지지하는 구조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ETFE라는 신기한 재료가 나오면서 대공간 구조물을 경량 구조로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클라우드의 경우도 이런 형태를 유리로 만드는 것은 비용을 떠나서 불가능하다. 

 

©Kyungsub Shin

 

스트레스드 타워(유아이에이 건축사사무소 설계, 2015)​ ©UIA 

 

자연의 힘을 이용한 디자인

위: 버크민스터 풀러의 “힘과 싸우지 마라, 그것을 이용하라”는 말을 좋아한다. 삼성동에 위치한 업무시설인 스트레스드 타워(2015)는 압축력(stress)의 흐름을 입면의 패턴 디자인으로 이용한 사례다. 

정: 폭이 좁은 대지에서 남측 입면은 막고 싶고, 북측 입면(선릉 방향)은 열고 싶다고 했다. 후면 남측 입면은 코어로, 전면 북측 입면은 선릉뷰로 개방감을 고려하여 횡력 저항에 의한 압축력의 흐름을 입면 디자인과 접목해 디자인했다.  

위: 이 건물은 북측에 선릉공원에서의 문화재 규제 27도 앙각을 적용받는 대지에 최대 용적률을 확보하면서, 자유로운 임대 공간이 필요했고, 공사비도 경제적이어야 했다. 

정: 나에게 로비와 지하주차장에서 기둥 수를 줄이고, 보를 없앴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슬래브에 포스트텐션 시스템을 적용해 내부에 보와 기둥을 없앤 플랫 슬래브를 만들었다. 노출된 천장에 보가 없으니까 층고가 낮아도 시원하게 느껴진다. 트윈트리 타워(「SPACE」 552호 참고)가 포스트텐션 시스템이 적용되어 긴 스팬을 보 없이 만든 대표적인 건물이다.

위: 포스트텐션 공법은 콘크리트를 양생한 뒤에 미리 삽입된 강선을 당기면 강도가 높아지는 원리다. 철근 양을 적게 쓸 수 있다. 

홍: 한국에서 포스트텐션 공법을 많이 쓰지 않는 이유가 어떤 약점이 있기 때문인가?

정: 공학적인 약점이 있는 것은 아니고, 일종의 사회적 문제인데,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공법이 잘 쓰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공사의 관행적 측면이 강하다. 한편으로는 철근이나 콘크리트 관련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설계자가 인력 운용 과정까지 잘 이해하고 반영해서 설계를 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UIA

 

아치 주차장(유아이에이 건축사사무소 설계, 2020~). 호수로의 시야를 개방하기 위해, 주차장 건물에 대형 개구부를 아치 구조로 만들고 개구부 상부는 매달리는 형태가 되었다.​ ©UIA 

 

아치, 구조가 곧 디자인

위: 지금 공사 중인 아치 주차장(2020~)은 구조가 그대로 건축의 콘셉트이자 형태로 드러난 경우다. 화성 동탄의 호수공원 앞 대지에 주차장을 짓는 프로젝트다. 

정: 가끔 호수공원에 가보곤 하는데, 처음 위진복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 대지에 건물이 들어서면 도로에서 호수 쪽으로의 시야를 다 가려버리더라.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뚫자고 해서 주차장 건물에 대형 개구부를 아치 구조로 만들고 개구부 상부는 매달리는 형태가 된다. 사실 주차장 설계라는 게 10m 모듈에 차가 3대 정도 들어가고, 기둥을 배치하고, 장식적인 외장을 넣는 정도가 설계자가 흔히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구조적인 방법으로 시민들의 접근성을 차단하지 않는 해법을 찾은 거다. 한국에서 저 정도 규모 건물에 대형 아치를 쓴 사례는 테헤란로의 아크플레이스 뿐이다. 그 정도로 사례가 없다.

위: 구조미의 정점은 교량이다. 떨어지긴 했지만 ‘양재고개 녹지연결로 조성사업 설계공모’(2017)에 모노코크 셸형 구조(monocoque shell type structure)를 적용한 안을 제출했다. 원래 하나의 자연녹지였던 우면산과 말죽거리공원을 연결하는 통로라는 의미에서 ‘우마랑(牛馬廊)’으로 이름 지은 생태연결로를 만드는 제안이었다. 우리 안은 보행로와 녹지연결로를 분리하는 원칙하에, 단면 아치가 큰 아치가 되어 쌍으로 가다가, 중간에서 만났다 떨어지며 횡력에 저항하고, 보행로는 수직으로 분리되어 그 아치에 매달린다. 생태녹지 관리를 위해 빗물도 아치 구배에 맞게 자연스럽게 저수되어 사용할 수 있고, 프로그램적으로 보행과 생태환경이 분리된다. 구조적으로 간결하면서 완결성 높은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홍: 한국에서 다리는 건축이 아니라 토목에 속한다. 그런데 영국 같은 경우는 많은 건축가가 교량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다리 설계가 건축 공모전으로 나왔던 거다. 아마 인도교라 그런 것 같다. 

위: 나는 이런 특별한 기회에 다리 디자인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이번 기회에 건축가들도 교량 설계까지 업역을 넓힐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정: 노먼 포스터 같은 건축가가 다리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행교라고 해도 교량은 교량이다. 교량은 엔지니어링적 관점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셸형 구조인 모노코크는 구조체이면서 외피가 따로 필요 없어 별도의 콘크리트로 인한 하중의 증가가 없는 구조, 외피 일체형이다. 달걀껍질처럼 그 자체로 구조적 안정성을 가지고 있어서, 자동차나 항공우주 산업에서 활용된다. 포르셰 파빌리온(헨 설계)에도 쓰여서 매끄러운 형태를 구현한다. 

위: 둔탁하고 두꺼운 보통의 토목 교량보다 형태적으로 날렵하고 곡선미가 있으면서도 구조적으로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 건축적 미학에 적합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선되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공모 이후 양재고개 녹지연결로 사업이 무산되면서 건축가들이 교량을 설계해볼 기회마저 함께 사라진 것 같아서 더 아쉬웠다. 

 

©UIA + Lee Eunhee + Ahn Geunyoung 

 

‘양재고개 녹지연결로 조성사업 설계공모’(2017)에 제출한 모노코크 셸형 구조를 적용한 안 ‘우마랑’(유아이에이 건축사사무소+이은희+안근영 설계). 단면 아치가 큰 아치가 되어 쌍으로 가다가 중간에서 만났다 떨어지며 횡력에 저항하고, 보행로는 수직으로 분리되어 그 아치에 매달린다.​ ©UIA + Lee Eunhee + Ahn Geunyoung

 

건축가와 엔지니어의 동행을 위해

김: 정광량은 2023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8회 ‘구조 엔지니어 세계회의’의 준비위원장이기도 했다. 구조 관련 국제적 이슈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정: 최근 소규모 건축물에서는 지속가능성이나 탄소제로가 대전제이겠지만, 대형 건물의 경우는 초고층빌딩과 대공간에 대한 관심이 크다. 1980년대 이후 30여 년간 중국과 두바이가 부상하면서 초고층빌딩이 많이 지어졌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뉴욕의 경우도, 상업시설의 20%가 비어 있다. 이제 그 상업시설을 호텔이나 주거시설로 바꿔야 한다. 초고층이란 한번 지으면 100년은 가야 한다. 이렇게 수명이 긴데다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르는데, 용도를 확정해서 지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생긴 거다. 그래서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ouncil on Tall Buildings and Urban Habitat)의 주요 이슈는 유연성이다. 다양한 건축적 용도를 유연하게 받아줄 수 있는 구조 시스템이 필요하단 말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서울시에서 여의도, 강남 등에 초고층 아파트를 짓겠다고 이야기하는데, 같은 블록 안에 70층짜리 초고층 아파트와 30~40층짜리 아파트를 같은 개념과 원칙으로 지으면 곤란하다. 초고층빌딩과 일반 고층빌딩은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다르게 접근해야 추후 재개발도 가능하다.   

대공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포츠경기장 같은 대공간이 얼마나 자주 쓰이는지 생각해 보라. 어떤 행사가 끝나면 계속 용도를 변경해 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대공간은 좀 정형화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디자인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용적률을 더 주는 정책을 펼치는데 적절한 비용과 시공성을 고려해야 한다. 자하 하디드의 건물처럼 눈에 띄는 건축은 도시에 한두 개면 된다. 대형 건물의 디자인은 겸손하게 접근하는 것이 이 시대에 적합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김: 마지막으로 엔지니어로서 건축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정: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을 다루는 일이다. 중력, 바람, 온도 등이 어떤 힘인지 이해해야 한다. 20여 년 전 대학에서 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가 나눠지면서 각자 다른 나라가 되었다. 건축가가 제대로 대접받아야 함께 일하는 엔지니어도 대접을 받는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 건축가, 큰 범위에서 ‘건축’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현실에 대해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건축가가 엔지니어링을 이해하고, 엔지니어가 건축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통해 함께 역할을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  ​ 

 

©UIA + Lee Eunhee + Ahn Geun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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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복
위진복은 한국에서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실무를 한 후, 2000년부터 10여 년간 런던에서 AA 스쿨 졸업 후 마이클 홉킨스와 리처드 로저스 사무실 등에서 일했다. 2009년부터 서울에서 유아이에이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프로젝트마다 요구되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통해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건축 작업을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테헤란로에 구조역학을 구현한 업무시설인 스트레스드 타워, 기하학적 완결성을 보여준 광주 유니버시아드 수영장, 버려진 컨테이너를 재활용해 창업 인큐베이터로 브랜딩한 고려대학교 파이빌 99, 홍익대학교 인근에 간판을 새롭게 조직하는 상업 건물 벤트가 있다. 최근 공기 충전식 멤브레인으로 새롭게 엔지니어링한 신흥시장 아케이드 클라우드로 한국건축가협회상과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정광량
정광량은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현대건설과 (주)동양기술개발공사(신종순 연구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1995년 (주)동양구조안전기술(현 (주)CNP동양)을 설립한 후 초고층, 대공간 등 다양한 프로젝트의 구조설계를 진행하며 BIM, 3D 스캐닝, PC 시스템과 같은 4차 산업기술을 활용한 안전관리에 힘쓰고 있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을 역임하고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 회장을 거쳐 현재 국제협력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건축 분야의 성장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전국기술사대회 장관 표창장 및 대상, 대한민국 엔지니어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여의도 파크원, 부산 롯데 타워, 송도 포스코 타워, 해운대 LCT, 삼성동 GBC, 인천공항,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 평창올림픽 피겨경기장 등이 있다.
홍석규
홍석규는 2005년 AA 스쿨을 졸업한 후 FOA, 톤킨 리우, 벡터포일텍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후 서울에 큐앤파트너스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고, 2012년부터는 명지대학교, 고려대학교, 남서울대학교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어 건축 교육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건축 유형학 기반의 설계를 통해 지속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UIA와 협업한 작업 클라우드로 2022년에는 한국건축가협회상을, 2023년에는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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