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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No. 676 2024년 3월호 리뷰

19기 학생기자
진행
김지아 기자

 

 


시간의 이정표

박지홍(세종대학교 건축학과)

「SPACE(공간)」 3월호에서는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의 건축가로 초청된 조민석(매스스터디스 대표)의 작품을 돌아본다. 또한 그에 대한 박정현 건축비평가와 존홍(서울대학교 교수)의 의견을 함께 살펴본다. 단순히 형태를 갖추어 짓는 것뿐만이 아니라 깊고 꾸준한 대화를 한 건축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오설록 티뮤지엄 증축과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 증축은 단순히 태의 변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함께 자라온 건축이다. 오설록 티뮤지엄과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는 주변과의 관계성을 반영하기 위해 생산 공장의 위치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건축물들은 지난 12년 동안 여덟 번에 걸쳐 순차적으로 지어졌지만 단일한 개념을 공유하여 통일감을 갖는다. 찻잎의 생산 및 제조 공정 과정을 포괄하며 위생 기능을 구별해 구성했다. 부지는 한라산과 제주 바다를 포용하는 관람의 창을 제공한다. 내부에서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요소는 건물의 주요 부분 중 하나다. 현무암을 사용한 벽돌을 통해 과거의 것을 미래로 투영하여 축적된 증거를 제시한다. 조민석은 제주의 자연과 과거의 기억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며 이전의 것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노력을 해왔다. 건물의 위치에서부터 공간, 재료까지 오랜 기간 대상에 관해 고민하는 숙고의 시간이 들어갔다. 오설록 티뮤지엄과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는 이제 제주의 또 다른 시간의 이정표로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여백이 이끌 공간

글 차윤주(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

파빌리온은 대상지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대부분의 파빌리온은 현장의 맥락들을 끌어모아 그들의 중심이 되고 싶어 한다. 파빌리온이 놓임으로써 새로운 공간감을 형성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며 매스, 재료, 컨셉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뽐낸다. 과거에 파빌리온은 전시장으로 존재하며 상업적인 가치를 지녔다. 그러니 대중을 매료하기 위해서 시각적으로 발전하여 커다란 오브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공간의 우위를 차지해야 했을 테다. 더욱 예술성과 조형성을 추구하며 화려해진 파빌리온은 분명 그 장소에 활기를 불어넣기는 하지만, 과연 이것이 한국인에게도 필연적인 파빌리온일까? 우리는 ‘파빌리온’이 외래어임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제껏 서양의 정의에 따른 파빌리온들은 사람들의 눈길이 파빌리온에 모이도록 진화해왔다. 그러나 동시대에 한국에서는 파빌리온이라 부를 만한, 정자는 어떤 식으로 주변과 호흡해왔는가?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정자의 공간감을 만끽했는가? 우리는 이에 대한 답을 선조들이 남긴 문학작품과, 현존하는 정자에서 찾을 수 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는 정자에 가보면, 정자들은 하나의 쉼터가 되어 기둥들은 주변 경치를 담는 프레임이 된다. 또한 내부는 텅 비어있어 공작새마냥 꼬리를 쫙 펴는 꼴은 아니다. 그 장소에서 주변을 조망하거나 내부에서 일어날 행위들에 초점을 둔다. 

이런 한국의 파빌리온은 어쩌면 조민석 건축가가 표현하고자 한 안티-파빌리온이 아닐까? ‘군도의 여백’은 파빌리온의 중심을 비워두고 보이드들을 주변의 매스들과 연결하고, 직관적인 이미지보다는 그 속에서 어떤 행동들이 일어날지에 집중하였다. 조민석 건축가는 동양이 말하는 여백의 미를 인터뷰에서 언급했는데, 이런 요소들이 전통적 정자와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오브제가 되는 매스가 아닌, 파편적 매스들과 그 속의 행위를 잇는 보이드. 무의 보이드가 실질적으로 공간을 주도하는 것이다. 

처음 공개된 두 장의 렌더 이미지만 보았을 때는 이전의 서펜타인 파빌리온들에 비해 너무 수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찍은 이미지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조민석 건축가가 파빌리온에 담고자 한 바를 알고나니 더욱 내부가 궁금해진다. 안티-파빌리온은 어쩌면 나에겐 이미 친숙한 개념인데, 영국에 이 개념이 놓여 주변의 어떤 맥락을 잇는지, 개별적인 매스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할 지, 과연 어디서부터 발을 들여야하고 어디로 다음 한 발을 디딜지 이것저것 상상하니 더 재밌는 파빌리온 같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실제로 방문해봐야 공간감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아쉽기도 하지만, 이 기사는 사람들의 구미가 당겨 예고편으로서 성공한 듯하다. 이 흐름을 이해하고 보면 파빌리온의 이름을 곱씹어보면 모든 요소를 총망라하는 제목이다. 심지어는 색, 재료, 층고같은 세부적인 부분까지 모두 담긴 이름이라 느껴진다. 

건축학과 학생으로서 우리의 현대적 건축이 무엇인지 배울 좋은 작품이 하루 빨리 공개되어 도면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싶다. 실제로 파빌리온을 볼 수 있다면 하루 종일 구석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에 집중하는지 관망하고 싶기도 하다. 안티-파빌리온과 보이드의 주도성이 공간감을 어찌 이끌지 기대가 된다.

 

 

 

 

형성, 구성, 완성

이덕언(부산대학교 건축학과)

벽 하나를 세우는 것은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건축이란 재료를 세우거나 쌓는 행위를 일컫는다. 따라서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행위다. 혹자는 재료를 세우거나 쌓는 행위에 집중해 건축을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건축은 그러한 행위를 통해 우리 인간이 향유할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조금 더 고차원적인 행위다. 그렇다면 공간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한자 해석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빈 곳 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건축이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는 행위이듯 공간 또한 더 고차원적인 의미를 지닌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태초의 지구를 상상해보자. 지구는 하나의 공간이다. 시간이 흘러 나무 한 그루가 생겼다고 하자. 나무의 울창한 잎에 가려 생긴 그림자는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새로운 공간이다. 그럼 이제 누군가가 돌로 담을 쌓아 자신의 사면을 막았다고 해보자. 담의 내부는 누군가가 쉽게 들여다 볼 수 없는 사적인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그 돌담 위에 지붕을 올려보자. ‘실내’ 공간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처럼 우리는 시대의 발전을 거듭하며 새로운, 효율적인, 혹은 더 나아가 감동을 주는 공간을 창조해왔다. 이렇듯 건축과 공간은 함께 존재하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근대건축의 거장 중 한 명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자신이 설계한 공간이 자신의 의도대로 쓰여야 한다며 가구를 직접 디자인하고 배치하기를 원했다. 이렇듯 건축가는 의도를 가지고 설계를 하며, 그렇게 형성된 공간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인테리어나 가구배치까지 관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축복인지 악재인지 모르게, 학문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하나의 학문 안에서도 더 세부적인 분야로 나뉘게 되었다. 한 분야에 천착해 발전을 이루기 위해 당연한 과정이었지만, 원래는 하나의 부서에서 처리하던 일들이 여러 부서가 협업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건축 또한 그러하다. 공간을 ‘형성’ 하는 건축이 있고, 건축으로 형성된 공간을 ‘구성’ 하는 실내건축, 인테리어 등이 있다. 이러한 분류는 ‘건축’이라는 행위에 많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가져왔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좀 더 쉽게 건축을 누리고 참여할 수 있는 접근성을 가져왔지만, 건축가가 끝없는 고민 끝에 형성한 공간을 의도와는 다르게 구성해 ‘건축’이라는 행위가 가진 의미를 완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이번 「SPACE(공간)」 3월호 에 소개된 임태희(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 대표)는 이러한 현대 건축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건축과 실내공간을 잇는, 즉 형성된 공간을 올바르게 구성하는 역할을 자처하며 더 나은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공간은 ‘커피를 볶는 행위를 하기 위한’ 로스터리처럼 특정한 목적을 지닌 공간일 수도 있고, 컨벤션센터처럼 때마다 목적이 바뀌는 공간일 수도 있으며, 특정한 목적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든 공간일 수도 있다. 이러한 모든 공간을 다룰 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공간은 건축이라는 행위를 통해 이미 ‘형성’ 되어있다는 것이다. 사무실을 목적으로 지어진 공간에 도서관을 만들 수는 없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책이라는 거대한 고정하중이 있기 때문에 보다 높은 강도로 지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간의 ‘구성’ 을 다루기 위해서는 선행하는 공간의 ‘형성’ 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점을 임태희는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인터뷰에서 건축가와 협업할 때에 주로 어느 단계에 참여하냐는 질문에 임태희는 이렇게 대답했다. “서로 신뢰하는 관계라면 가능한 빠르게 협업하는 게 유리하다. ‘내부 공간이 이러해야 하니 건축은 어떠해야 한다’고 좌지우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건축을 깊이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뱉은 한 문장에 앞에서 말한 내용이 모두 담겨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공간의 형성, 즉 건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업을 전개해 나간다. 보여주기 식의 디자인, 유행에 따르는 인테리어를 지양하고, 건축 안에서 일어날 행위들을 고려해 공간을 섬세하게 다듬는 것, 그것이 그의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오래가는 인테리어’ 다. 옷을 잘 입는 사람은 기본 아이템에 투자한다는 말이 있다. 유행하는 옷들은 유행하는 당시에는 빛나고 예뻐 보이더라도, 한 철이 지나고 나면 입지 못한다.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기본 아이템들은 장식보다는 기능과 본질에 충성하기에 항상성을 지닌다. 오래가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의 공간은 정성 들여 만든 기본 아이템 같았다. 

건축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담백하게 오래가는, 사용자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임태희의 공간은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본질에 집중한 그의 공간은, 유행에 편승하는 사회 속에서 그 어떤 공간보다도 트렌디해 보인다. 

 

 

 

 

 

이토록 역설적인

진윤수(경희대학교 철학과, 주거환경학과)

침묵이 필요했다. 소리는 침묵할수록 뚜렷하게 들렸고, 공간은 비워낼수록 채워졌다. 역설적인 ‘소리- 침묵, 비움-채움의 관계’는 조금만 들여다보면 모호하고도 명확하게 납득된다. 이분법적 분류가 불러올 오해와 우려는 잠시 접어 두고, 비교적 분명한 대립점에 위치한 것들의 실제 만남은 아주 높은 확률로 기발하고, 특별하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가능성의 시도라는 점에서 기발하고, 기본기를 갖추는 것 너머의 디테일이 가미되어 특별하다. 보이지 않는 음악은 물성을 가진 건축으로 가시화된다. 청각적 음악과 시각적 건축은 공간과 시간적 맥락 속에 펼쳐진 채로 흐르고 있다. 정적인 건축과 동적인 음악의 역설적 만남. 이 만남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몹시 유용하게 현실화된 공간이 있다. 

건축은 삶의 모든 순간에 전제된다. 고로 그 시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물질적 기록과도 같다. 건축물의 형태, 사람들의 기억이 담긴 총체는 우리 삶의 실상 그 자체를 보여주는 정확한 지표다. 꾸밈없이, 혹은 이리저리 편집하여 이 땅에 뿌리를 내린 건축은 삶의 찰나들이 온전히 기록되어 있기에, 결코 시간적 맥락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날부터 축적된 전통성과 고전적 기법과 같은 ‘본질’에 시간의 흐름과 맞닿아 있는 시대정신의 ‘디테일’이 더해져 의미를 피워낸다. 현실을 촘촘히 담아내면서도 낭만과 희망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은 종교 건축. 한국 종교 건축의 본질과 현 위치에 대한 고민으로 만들어진 남양 성모성지 대성당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다.

종교 건축의 본질은 설교의 전달, 종교인들을 위한 집단 결속의 장이다. 따라서 해당 종교와 무관한 비종교인에게는 발 디딜 기회가 없는 폐쇄적 공간이었다. 이처럼 기본에 충실했으나 시대라는 디테일이 고려되지 않은 종교 건축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가령, 정기적 미사와 전례 이외에 비어 있게 되는 넓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 같은 것일 테다. 과거와 달리, 종교 건축은 더 이상 설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여러 장르의 음악이 연주되고, 문화활동이 활발한 개방적 공간으로 확장되는 흐름 속에 서있다. 

남양 성모성지 대성당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다채로운 공연이나 연주가 가능한 확장된 종교 건축이다. 특히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초기 설계 의도와 다른 방향의 시대 변화를 수용한 점이 흥미롭다. 침묵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공간이 다수의 사람이 모여 소리로 가득 찬다는 것은 역설적이었지만, 바로 그 점을 활용했다. 외부 소리의 유입, 내부 소리의 유출 모두를 하나의 음향 자체로 인식하게끔 한 것이다. 마치 야외 연주홀에서 바람 소리, 빗소리가 배경음처럼 자연스럽게 깔리며 정제된 음원과는 또 다른 감상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종교 건축의 역할이 팽창되며 그 속에 담기는 음향 설계가 무척 중요하다. 사실 남양 성모성지 대성당은 아치형 천장, 반원형 측면 제실 등 음향 설계에 불리한 곡면 구조를 가진다. 그럼에도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종교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 이외의 공간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확장성을 기술적 보완과 적절한 재료 활용으로 극복했다. 음향 설계에서의 짧은 잔향과 긴 잔향, 그 둘을 위한 설계는 다르다. 초기 접근부터 구조, 재료까지 다른 방향을 향하는 듯한 두 가지의 음향을 하나의 공간에서 유연하게 선보이고자 한 확장의 시도는 분명 시간 속에서 흐르고 있다. 형태적 제약을 보안하고 닫힌 문을 열어두겠다는 의지가 종교 공간의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한다. 

침묵이 필요한 이들을 반겨줄 때 이곳이 소리로 가득 채워졌던 공간이라는 사실은 그 고요함을 더욱 극대화한다. 다른 것들의 공존이 과연 가능하냐는 물음에 그들은 이만큼 훌륭하고도 이토록 역설적으로 가능하다고 확장성으로 응답한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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