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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농도 | 중소도시포럼 02

이장환
자료제공
중소도시포럼
진행
윤예림 기자
데이터
이상현

「SPACE(공간)」 2024년 4월호 (통권 677호) 

 

급격한 인구 감소로 중소도시의 체계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에 대해 도시·건축계는 충분히 알고 있나? 중소도시의 재건을 위해서는 이제껏 답습해온 재생과 활성화의 관성에서 벗어나 변화를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시각이 필요하다. 중소도시포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공적 연구 대상에서 쉬이 배제되어온 수도권 밖의 현상을 주시하고, 위기를 대신할 도시·건축적 대안을 찾는다. ​

 

[Series] 소멸의 가능성, 중소도시포럼 

01 수도권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02 도시 농도

03 도시 천공

04 소거 계획

05 덧대기 건축

06 세계적 중소도시

07 탄력적 중소도시

08 환상적 중소도시

09 중소도시의 밖​ ​ 

 

중소도시의 새로운 정상 상태 

 

뚜벅이 여행자로 경상남도의 작은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영영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열린 상점도 행인도 하나 없는 한낮의 거리를 거닐었던 기억은 얼핏 낭만적이었던 것도 같지만 달리 생각해 보니 제법 처연한 신세다. 이러한 풍경은 여느 중소도시에서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중소도시포럼이 그 원인과 현상을 ‘옅어진 도시 농도’의 개념으로 설명하며 ‘이중적 공간 구조’의 한국 중소도시에 유효한 해법을 상상한다.

지방 중소도시는 지금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그중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것은 걸어 다니는 사람이 확연하게 줄어든 길거리 풍경일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한두 도시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전국 중소도시 어디를 가보든 텅 빈 길거리의 모습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대다수의 논의와 담론들은 이를 인구 감소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 감소만이 이러한 현상의 유일한 원인일까?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면적은 계속해서 확장되어갔다. 그 결과 도시 내 인구밀도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중소도시포럼은 인구 감소와 도시 면적 확장 모두에 주목한다. 그리고 두 현상이 결합하며 만들어내는 인구밀도의 ‘옅어짐 현상’과 그로 인한 도시성의 약화가 중소도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중소도시의 인구, 시가화지역 면적, 도시 농도 변화(1970년대~현재). 인구가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면적은 계속해서 확장되어왔다. 

 

인구수

지방 중소도시 인구수는 지난 50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통계에 따르면 1975년 기준 전라북도 남원의 인구수는 17만 5,203명에 달했으나 현재 인구수는 7만 6,781명으로 1975년에 비해 56.2%가 감소했다. 전라북도 김제, 경상북도 영천, 문경, 영주, 충청북도 제천, 충청남도 논산, 공주, 강원도 삼척의 인구수는 1975년 대비 각각 63.2%, 45.7%, 57.3%, 42.4%, 23.4%, 48.7%, 44.2%, 55.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통계를 분석해보면 이러한 인구 감소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소도시의 인구 전망은 도시의 연령대별 인구 구성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는데,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부분의 도시에서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례로 1975년까지만 해도 남원의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4.8%에 불과했지만 2022년에는 전체 인구의 30.6%가 65세 이상 고령자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 밖의 중소도시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고령인구 비율을 보이고 있다. 2022년 기준 김제, 영천, 문경, 영주, 제천, 논산, 공주, 삼척의 고령인구 비율은 각각 33.4%, 29.6%, 32.7%, 29%, 24.2%, 27.5%, 27.1%, 26.3%로 대부분의 도시가 국제연합(UN)이 규정한 초고령사회의 고령인구 비율 기준인 20%를 초과하고 있다. 

도시에서 고령인구 비율이 높더라도 도시 내 출생자 수가 많고 도시로의 신규 유입 인구가 많다면 인구 감소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출생자 수와 인구 유·출입 통계는 인구 감소 현상과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중요한 변수들이다. 

먼저 인구 유·출입 통계를 살펴보면 최근 5년간 중소도시의 인구 유출 대비 유입 비율은 정체돼 있으며 몇몇 도시에서는 인구 유입보다 유출 비율이 오히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인구 유출 비율이 높은 도시는 남원, 영주, 제천, 논산, 공주, 삼척으로 인구 유출 대비 유입 비율이 각각 1:0.95, 1:0.97, 1:0.98, 1:0.92, 1:0.99, 1:0.91이고, 인구 유출 대비 유입 비율이 정체하고 있는 도시는 김제, 영천, 문경으로 인구 유출 대비 유입 비율이 각각 1:1.03, 1:1.02, 1:1로 나타난다. 또한 인구가 유출되는 주요 연령대는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20~30대의 젊은 층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음으로 출생자 수 통계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도시에서 출생률이 낮게 나타난다. 반면 고령화로 인한 사망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일례로 2022년 남원의 출생자 대비 사망자 수는 275명:1,064명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보다 약 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 밖의 중소도시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비율을 보이는데, 김제, 영천, 문경, 영주, 제천, 논산, 공주의 출생자 대비 사망자 수 비율은 각각 350명:1,195명, 532명:1,407명, 266명:1,101명, 337명:1,379명, 461명:1,353명, 402명:1,609명, 343명:1,356명으로 나타난다. 만약 지금과 같은 출생자 대비 사망자 수의 비율이 계속된다면 중소도시의 축소는 불가피하다. 앞선 수치를 바탕으로 30년 후 중소도시 인구를 추계하면 현재 인구의 약 3분의 1 이상이 추가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1975년 기준, 인구의 약 4분의 3이 사라지는 것이다.

 

중소도시의 텅 빈 가로 경관 

 

도시 면적

중소도시의 인구수는 감소함에도 도시의 공간적 범위는 크게 확장했다. 1990년대 이후 대다수의 중소도시에서 도시 외곽에 대규모 신규 택지개발 사업을 시행했고, 이로 인해 중소도시의 면적이 크게 넓어진 것이다. 일례로 1975년까지만 해도 남원의 시가화지역 면적은 9.1km2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3년 시가화지역 면적은 

24.6 km2에 이른다. 지난 50여 년간 시가화지역 면적이 2.7배 증가한 것이다. 다른 지방 중소도시에서도 이와 비슷한 공간적 확장이 일어난다. 김제, 영천, 문경, 영주, 제천, 논산, 공주의 시가화지역 면적은 1975년도에 비해 각각 2.2배, 3.6배, 2.5배, 4.1배, 5배, 2.8배, 2.1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공간적 범위의 확장은 다음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먼저 도시 외곽에 신규 택지개발을 하면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다. 이 과정에서 구도심에 위치한 법원, 시청사, 경찰서, 버스터미널 등과 같은 각종 공공 및 집객 시설들이 신규 택지지역으로 이전한다. 이후 건축사사무소, 행정사사무소, 변호사사무소, 법무사사무소, 측량사무소, 식당, 은행 등과 같이 공공 및 집객 시설과 연관된 프로그램들이 함께 이전해 오면서 신규 택지지역에 또 하나의 경제 중심지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일자리와 자본이 몰리는 새로운 지역이 형성되면 구도심의 젊은 경제활동 인구가 그곳으로 빠져나가는 연쇄 작용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도시의 공간적 범위가 넓어지고 많은 시설들이 이전한다 하더라도 모든 시설이 새로운 경제 중심지로 옮겨가는 것은 아니다. 기존 전통시장 상권과 일부 공공시설들은 계속해서 구도심에 남아 있다. 그 결과 이전까지 구도심에 하나로 존재하던 경제 중심지가 신규 택지지역으로 분화하면서 중소도시는 구도심과 신규 택지지역으로 양분된 이중적인 도시 공간 구조로 변모하게 된다.

 

수도권 밖의 출생자와 사망자 수 추이(1985~2022년). 출생률은 감소하는 반면 고령화로 인한 사망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농도의 옅어짐

이중적 도시 공간 구조로의 변화는 이전까지 좁은 면적 안에 모여 있던 인구를 확장된 지역으로 분산시킨다. 그리고 이는 도시의 총 인구수가 감소하는 상황과 결합하면서 도시 전반의 인구밀도를 끌어내린다. 다시 말해, 과거에 좁은 면적 안에 몰려 있던 인구가 넓어진 공간으로 분산되면서 인구밀도가 옅어지는 것이다.

옅어진 인구밀도는 시가화지역 면적이 넓지 않았던 1990년대 이전의 상황과 2023년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남원의 경우 1975년 시가화지역 인구밀도는 1만 9,888명/km2이었지만, 2023년에는 3,431명/km2으로 0.2배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그 밖의 중소도시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김제, 영천, 문경, 영주, 제천, 논산, 공주의 2023년 인구밀도는 1975년에 비해 각각 0.2, 0.2, 0.2, 0.1, 0.2, 0.2, 0.3배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인구밀도의 옅어짐은 구도심과 신규 택지개발 지역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신규 택지개발 지역의 경우 인구 증가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개발된 택지가 많아짐에 따라 인구밀도가 옅어지게 되는 반면 구도심은 신규 택지개발 지역으로 인구가 유출되면서 인구밀도가 옅어진다. 

이렇듯 특정 지역을 가리지 않고 도시 전반에서 나타나는 옅어짐 현상은 도시가 가져야 할 일정 수준 이상의 밀도와 프로그램적 응집성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앞서 기술한 고령인구의 증가, 출생자 수의 감소, 인구 유입 감소와 같은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중소도시의 ‘새로운 정상 상태’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20년간 중소도시의 도시 농도 옅어짐 현상. 인구 감소와 도시 면적의 확장이 함께 일어나면서 인구밀도가 옅어지고, 이는 도시성 약화를 불러온다.

 

도시성 약화

옅어짐 현상은 도시성의 약화를 의미한다. 도시성 약화는 중소도시 길거리를 걷다 보면 쉽게 경험할 수 있다. 평일 낮 시간에도 구도심과 신규 택지지역 가릴 것 없이 중심 가로에서 사람을 보기 어렵다. 어쩌다 지나는 사람이 있더라도 대개 고령자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인구밀도 감소에 그치지 않고 도시 기능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소도시 내 이동성의 개념을 바꾸는가 하면 도시 프로그램의 배치 방식까지 바꾸고 있는 것이다.

먼저 이동성에 대해 살펴보자. 신규 택지지역으로 분산된 기능과 넓어진 도시 면적으로 인해 도시에서 교통이 갖는 중요성은 과거에 비해 더욱 중요해졌다. 그렇지만 중소도시에서 대중교통 체계가 갖는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도시 면적이 넓지 않아 좁은 지역 안에 인구가 모여 있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중소도시에서 운행하던 시내버스는 많은 승객을 짧은 운행거리 안에서 수송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시 면적이 넓어지고 인구수가 감소한 지금, 시내버스는 이전보다 넓은 면적을 운행해야 하지만 승객 수는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그 결과 버스 운영업체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운영업체는 수익성을 담보하기 위해 버스노선 운행 횟수를 제한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지방 중소도시에 가면 버스 배차 간격이 1시간 이상인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하루에 2~3대만 운행하는 노선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렇듯 중소도시의 대중교통 체계는 약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개인 중심의 자가용 문화가 대체하고 있다. 이제 중소도시를 방문하면 구도심과 신규 택지지역 어디서나 심각한 주차난을 경험하게 된다. 가로변 노상주차가 중소도시의 일상적인 풍경이 된 것은 물론이다. 나아가 자가용 문화는 도시를 보행자 중심에서 차량 중심 체계로 바꾸어 놓으면서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더욱 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음으로 도시 프로그램의 배치 방식을 살펴보자. 도시 외곽의 신규 택지개발은 이전까지 구도심에 밀집되어 있던 프로그램을 신규 택지지역으로 분산시켰다. 그 결과 구도심의 프로그램 밀도는 크게 떨어진다. 신규 택지지역이 개발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전 층이 프로그램으로 가득 차 있던 구도심 상업건물이 이제는 1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층이 공실로 남아 있다. 심지어 옅어짐 현상이 심한 중소도시에서는 1층 상가마저 프로그램으로 채워지지 않고 공실 상태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구도심 가로변은 내용물 없이 속이 텅 빈 상태의 건축 형태만으로 구성된 가로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주거건물은 상업건물과 또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도심 내에 위치한 주거건물의 경우 많은 수가 단독주택 유형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단독주택 유형은 건물 소유 관계가 아파트 유형처럼 집단적이지 않고 단일하다. 따라서 건물주가 사망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경우 건물 자체가 빈집으로 남게 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빈집으로 남게 된 단독주택은 관리상의 문제와 각종 민원 등의 문제로 점차 철거의 수순을 밟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고령인구의 증가로 인해 철거되는 건물의 양이 증가하면서 궁극적으로 도시의 물리적 형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전의 도시 형태가 점진적으로 분해되고 해체되는 것이다.

이렇듯 분산된 도시 기능, 내용물 없는 건축 형태, 해체되어가는 도시 형태는 개인화된 자가용 문화와 결합하면서 중소도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이제는 중소도시에서 밀집한 프로그램과 보행 중심의 가로환경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분산된 프로그램과 옅어진 밀도 그리고 자가용 중심의 개인화된 삶의 방식이 도시의 새로운 전제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개발압력이 낮고 저밀도 환경으로 변해가는 중소도시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화를 명확히 인식하고, 변화의 힘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옅어짐 현상 자체를 수용하고, 개인화된 자동차 문화를 수긍하며, 해체되어가는 도시 형태를 인정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새로운 형태의 도시 모델을 탐색해야 할 것이다. 

 

수도권 밖의 인구구조 변화 예상 그래프. 지금과 같은 출생자 대비 사망자 수의 비율이 계속된다면 중소도시의 축소는 불가피하다. 

 

지금 우리는

중소도시의 전제 조건이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중소도시에 개입하는 전략은 이와 반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쇠퇴하는 중소도시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에서 벌어지는 각종 도시재생 사업들을 살펴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중소도시 재생사업은 대체로 가로활성화 계획을 통한 구도심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로활성화 계획은 특정 가로를 선정해 그곳의 가로환경을 정비하는 동시에 가로에 테마를 부여해 색을 입히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가로변에 위치한 특정 건물을 선정해 앵커시설로 활용함으로써 가로에 활력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일정 밀도가 담보된 도시에서나 효과적인 전략이다. 인구밀도가 옅어져 고령자 외에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모습조차 보기 어려운 조건에서 이러한 계획은 작동하기 어렵거나, 기껏해야 인위적으로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마치 평일 낮 시간대에는 개장 전의 영업장처럼 사람이 전무하다가 주말이 되면 몰려드는 외지인을 대상으로 반짝 영업하는 테마파크처럼 말이다. 또한 이러한 계획은 장소가 갖는 고유한 감각과 시간성 그리고 재료적 무게감과는 무관하게 특정 스토리텔링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실제 거주민의 삶, 다시 말해 그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삶의 일상성으로부터 괴리될 가능성이 높다.

도시 쇠퇴와 관련해서 앞선 가로활성화 계획과는 또 다른 방식의 전략이 최근 논의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의 축소도시 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압축도시’ 개념이다. 일본의 압축도시 개념은 2014년 제정된 ‘입지적정화 계획’으로 구체화됐는데, 여기서 말하는 압축도시는 도시 내 특정 지점에 공공, 의료, 편의 시설을 집적시켜 효율을 꾀하고, 그 외 지역에서는 점진적인 소멸을 제도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도시를 압축적으로 계획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계획은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충분히 설득력 있는 개념임은 분명하지만, 일본 중소도시의 특수한 도시 맥락에 기인하고 있어 우리나라 중소도시의 도시 구조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일본의 중소도시는 지진 등 각종 자연재해와 일본 특유의 거주 문화로 인해 주거지역 대부분이 단독주택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도시의 중심과 주변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시 중심부에는 철도역과 상업시설이 위치하고 그 주변부에는 단독주택으로 구성된 주거지역이 넓게 펼쳐져 있어 마치 미국 교외지역에서 볼 수 있는 도시 스프롤(urban sprawl)과 유사한 도시 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도시 구조에서는 교통과 각종 인프라가 이미 갖춰진 도시 중심부에 주요 기능을 집중하고, 주변부는 점진적으로 소멸하게 만드는 전략이 일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중소도시는 상황이 다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도시가 하나의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중소도시는 신규 택지개발로 인해 대부분의 도시가 두 중심부를 갖는 이중적인 도시 공간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두 중심부는 위계가 동등하거나 어떤 경우 신규 택지지역이 더 우위를 차지한다. 이러한 우위는 신규 택지지역에 위치한 건물 유형에서 비롯한다. 신규 택지지역은 고층 아파트 단지와 대형마트 등과 같이 견고하고 큰 구조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점진적인 소멸을 기획하기 어려운 반면 구도심은 단독주택 유형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순차적인 철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중소도시는 견고한 건물이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중심부는 철거가 용이한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동시에 주요 교통시설인 철도역은 주로 도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일본 중소도시와 달리 중심과 주변의 관계가 모호한 도시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도시 구조의 모호성으로 우리나라 중소도시에는 일본의 압축도시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다. 도시를 공간적으로 압축하기 위해 도시 기능을 어디에 집중하고, 어디를 소멸하도록 할지에 대한 결정이 어려운 탓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쇠퇴하는 도시에 활력을 부여하는 방식을 통한 도시재생 사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봐왔다. 또한 일본의 압축도시 개념은 한국 중소도시의 도시 구조와 통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적용이 쉽지 않다. 이제는 이와 다른 방식의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인구 감소와 도시 쇠퇴의 과정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밀도가 옅어지고 있는 중소도시의 소멸 과정 그 자체에서 전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소멸의 과정을 추적하며 그 안에서 개입이 필요한 부분을 찾고, 그곳에  선택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도시의 형태와 삶의 방식을 차츰차츰 조정해가는 일. 곧 소멸의 과정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들에 기민하게 대응하며 능동적으로 계획하는, 브리콜라주와 같은 방식을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중소도시의 공공 및 집객 시설의 분포. 우리나라 중소도시는 신규 택지개발로 인해 구도심과 신규 택지지역으로 양분된 이중적인 도시 공간 구조로 변모했다. 

월간 「SPACE(공간)」 677호(2024년 04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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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환, 이상현
이장환과 이상현이 결성한 중소도시포럼은 대도시권역 밖의 변화를 관찰하고 잠재된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 그룹이다. 이장환은 어반오퍼레이션즈 대표로 도시, 문화, 건축 전반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으며 홍익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서울건축학교(SA)를 졸업했고 델프트 공과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우수 졸업했다. OMA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며 카타르 국립중앙도서관 설계와 더불어 다수의 아시아, 유럽, 중동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상현은 대구광역시 도시디자인과 주무관이자 독립 도시연구가이다.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와 델프트 공과대학교 도시대학원을 졸업했고, 이후 팜보트 어반 랜드스케이프에서 도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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