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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부터 1까지, 건축은 과정이다-1

조재원
사진
진효숙
자료제공
공일스튜디오
진행
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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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공간)」 2023년 10월호 (통권 671호) ​ 

 

조재원(공일스튜디오 대표)은 건축은 과정이라 말한다. 대부분의 건축물은 도시·사회의 영향 아래 끊임없이 변화하며 건축가는 그 경로의 특정 지점에 개입하는 행위자다. 그는 다양한 주체와 함께 과거의 것에서 가치를 발굴하고 적합한 프로그램과 공간, 사용 규범을 제안하며 제안한 의도가 지속되도록 기록, 공유하면서 경로의 가닥을 다듬는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 안에서 민간과 공공 건축물 할 것 없이 사람들을 모으고 소통이 가능한 ‘플랫폼’ 공간을 일군다. 공동에 의한, 공동을 위한 서사를 만드는 조재원. 이번 특집에서 다룬 그의 리노베이션 작업 과정은 건축물의 과거와 미래 사이에 선 건축가의 역할을 단계별로 보여준다.

 

건축은 실체가 아닌 과정이다 


​“생명은 실체가 아닌 과정이다.”

‐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중에서 

 

건축은 사회 생태적인 유기체다. 한 대지의 물리적 환경을 기반으로 구축된 조직(물리적, 비물리적 환경, 행위자와 행위들을 포함)을 0이라고 하자. 그리고 새로운 행위자와 만나 변화를 만드는 의사결정과 그에 따르는 사건들이 연속돼 마침내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1이라고 하자. 이 과정은 …-0-1-0-1-…로 

진화를 거듭하며 대지의 역사를 이어간다. 건축가의 계획은 한 대지가 맞는 변동의 시간에 새로운 거주자가 새로운 장소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때까지의 경로에 개입하는 강력한 의지 중 하나로 작동한다.

 

이 글은 공일스튜디오가 계획했던 세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각각의 리노베이션 대지가 기존의 상태 0에서 전환된 상태 1에 이르는 시점까지의 일련의 사건들을 복기해 ‘과정으로서 건축’을 재현하고자 한다. 세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각각 샘터사옥을 공공일호로, 강동그린나래복지센터(이하 강동그린나래)를 발달장애인 보호 작업장과 복지 복합시설로, 통의동 6번지 근린생활시설을 대우재단사옥 오르비스(이하 오르비스)로 전환한 작업이다.

 

(왼쪽) 공공일호(변경 전, 샘터사옥), (오른쪽) 공공일호(변경 후) ©tabial studio​ / Image courtesy of 00 Ground  

 

(왼쪽) 강동그린나래(변경 전)​, (오른쪽) 강동그린나래(변경 후) ©Lee Hyunjin

 

(왼쪽) 오르비스​(변경 전)​, (오른쪽) 오르비스​(변경 후) / Image courtesy of Daewoo Foundation

 

대지가 맞는 새로운 기회

대지가 켜켜이 쌓아왔을 시간을 본다. 건축 과정은 미래의 기반이 될 많은 자원이 집중되는 시간이다. 자원을 집중해 뜻을 이루려는 주체에게도, 대지에게도 새로운 기회의 순간이다. 대지에 투영된 의지와 집중된 자원을 동력으로 대지가 이어온 서사의 바통을 받아 새로운 챕터를 여는 출발선에 있는 것이다.

 

샘터사옥은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이 이전한 후 월간지 「샘터」를 창간한 전 국회의장 김재순이 건축가 김수근에게 설계를 맡겨 주변 도시 조직이 자라나기 이전인 1979년 완공됐다. 건물 1층을 필로티로 띄우고 작은 광장과 길을 조성해 주변 도시로의 확장과 연결의 유전자를 품고 지어졌다. 이후 40년간 도시 건축으로 공공의 가치를 구현하며 주변의 도시가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데 상징적인 구심이 됐다. 건물의 새로운 소유주 공공그라운드는 이런 장소의 유산을 이어가면서 미래의 도시 유전자를 심고자 했다.  

 

​강동그린나래는 리노베이션 이전 10년간 장애인의 보호 작업장이자 주변 지역의 노약자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왔던 노유자 시설이었다. 지역에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시설이 확충되어왔기에 위탁운영 사업자 변경을 계기로 발달장애인의 보호 작업장과 복지 서비스에 중점을 두는 시설로 성격을 전환하게 됐다. 새로 위탁운영을 맡게 된 한국자폐인사랑협회의 후원 기업인 베어베터와 그 대표가 리노베이션을 지원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가진 공간 전환을 꾀할 수 있었다.

 

통의동 6번지 근린생활시설은 2003년 소유주의 업무 공간이자 임대를 위한 공간으로 지어졌다. 현재는 최대 250%인 용적률이 신축 당시에는 300%였기 때문에 인접한 가로변 건물 중 상대적으로 큰 규모다. 비영리재단인 대우재단이 사옥을 옮겨오며, 이곳을 업무 공간만으로 혹은 이윤을 위한 임대 공간이 아닌 재단이 오랫동안 지켜온 공공가치를 사회와 소통하는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했다. 

 

(왼쪽) 샘터사옥을 완공한 1979년 혜화동 항공사진​​, (오른쪽) 샘터사옥 리노베이션을 앞둔 2017년 혜화동 항공사진​

 

 

(위) 리노베이션 전 통의동 6번지 근린생활시설 북측 전면 가로 전경​​​, (아래) 리노베이션 전 통의동 6번지 근린생활시설 남측 전경


기억의 인수인계


리노베이션 대상은 새로운 소유주를 맞아 새로운 용도를 가능케 할 구조적 변화를 기다리는 비워진 건물이다. 때로는 불합리해 보이는 기존 건물의 구조, 공간 구획, 동선체계 등에서 의미 있는 질문과 답을 찾는 것은 대지의 지난 기억을 추적하는 동시에 잠재된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기억의 인수인계 과정은 한 대지의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고 새로운 용도를 대지와 기존 건축물의 잠재성을 통해서도 정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샘터사옥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근현대건축 문화유산이기에 리노베이션의 화두는 ‘보존’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을 보존할 것인가? 리노베이션은 이 질문을 묻고 답하는 과정이고, 이를 충실히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7년 9월 28일, 샘터사옥에서 건축의 관리와 운영을 맡았던 담당 임원과 2012년 증축설계를 했던 이로재(대표 승효상)의 임원, 새로운 건물주 공공그라운드의 책임자와 예비 입주사 한 곳의 대표까지 모여 기억의 인수인계를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 40년의 기억과 지켜온 가치가 공간에 실재한다는 것을 이 장소를 가꿔갈 새로운 행위자들이 인지하게 된 자리였고, 공간을 변화시킬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한 ‘기억의 배치도’를 얻게 된 자리였다.​​

 

새로운 위탁운영 기관이 선정돼도 시설운영 조직과 보호 작업장 근로자의 고용은 그대로 유지된다. 변경 전후의 공간을 이어서 운영하고 사용할 구성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전의 공간을 점유하고 사용했던 공간 규범과 그 배경이 됐던 맥락과 필요를 이해하고자 했다. 또한 리노베이션 계획 과정이 단지 물리적인 환경개선이 아니라 새롭게 도입되는 가치와 규범으로 전환을 도모하는 공간 형식을 찾는 과정이 될 것임을 공유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통의동 6번지는 경복궁 서측 담을 향한 전면도로에 면해 북악산을 바라보고, 남측은 한옥지구에 면해 원경으로 강북도심의 풍경을 바라보는 입지다. 최고높이제한 내에서 지상 5개 층까지 조성해 최대 연면적을 확보했지만 그 때문에 층고가 낮았다. 남북으로 긴 세장한 평면에 임대를 염두해 둘로 나눈 구획까지 더해져 입지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아직 구현되지 못한 옥상에서 막힘 없이 열리는 역사도심의 풍경 길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리노베이션의 중요한 단서가 됐다. (글 조재원 / 진행 박지윤 기자)

 

 

 

 

 

강동그린나래 현장답사 자료(2020년 11월 17일)

 

 

샘터사에서 인계받은 옛 도면과 세부 변경 기록들

 

 

샘터사옥의 기억의 인수인계 현장(2017년 9월 28일)

 

월간 「SPACE(공간)」 671호(2023년 10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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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
조재원은 공일스튜디오 대표다.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적정하고 지속 가능한 가치를 더하는 사회적 공간을 탐구하고 실현하는 데 관심을 두고 일하고 있다. 다음 세대의 미래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지금의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조직할 수 있는 건축과 도시의 계획과 가버넌스로 관심사를 넓혀가고 있다. 2010년 제주 돌집 플로팅L로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 2011년 대구 어울림극장으로 공공디자인대상, 그리고 2016년 코워킹플랫폼 카우앤독으로 서울시건축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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