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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지구의 건강한 공존: 텍토닉 카르마

배형민
자료제공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진행
한가람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3년 10월호 (통권 671호) ​ 

 

 

부분과 전체 다이어그램 

 

비평가와 건축가, 큐레이터와 작가가 긴 시간을 두고 문제 의식을 공유하며 함께 좋은 일을 도모할 때가 있다. 나는 이런 관계를 ‘인연’이라고 부르고 싶다. ‘인연(카르마)’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된 불교 용어다. ‘인(因)’은 어떤 결과의 직접적 원인을 뜻하고 ‘연(緣)’은 외적인 환경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나무의 발원인 씨앗을 ‘인’이라고 한다면, 씨앗과 나무의 성장을 좌우하는 햇빛, 공기, 토양은 ‘연’이다. 씨앗과 나무의 ‘인’은 변하지 않는다. 반면 그들의 환경 ‘연’은 변한다. ‘인’이 결정된 것이라면 ‘연’은 열려 있는 불확실의 영역이다. 그래서 인연은 언제나 변화를 전제로 한다. 

 

조남호와의 인연은 건축의 재료와 구법으로 시작됐다. 건축가로서 그의 꾸준한 작업과 다른 한편 비평가와 기획자로서 생겨난 나의 관심에서 비롯됐다. 조남호의 일관된 태도와 작업 이력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그의 건축에 대해 내가 처음 쓴 글은 2009년 봄 「중앙선데이」 연재에 게재된 짧은 원고였다. 당시 대표작인 교원그룹 도고 게스트하우스(2000, 이하 교원게스트하우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게스트하우스는 여러 겹의 공간이다. 가까운 경치와 먼 경치가 어우러져 있고, 넓은 지붕면의 막힘과 투명한 라운지의 유리 공간이 어우러져 있는 깊은 공간이다. 라운지로 들어간다. 집 밖에서 보았던 넓은 지붕이 집 안에서는 높고, 경사진 나무 천장으로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낸다. 로비에는 다섯 개의 기둥이 가로지르고 있다. 각각의 기둥에서 나무가지가 네 개씩 뻗어나가 넓은 지붕면의 보와 서까래를 받치고 있다. 부재가 가늘고 재료가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거추장스럽지 않다. 이 구조재를 글루램(glulam)이라고 부른다. 나무 각재를 여러 겹 접착하여 만든 가공 목재로 구조적인 성능이 뛰어나고 화재에도 잘 견딘다. 목재 단면의 치수를 2인치 단위로 하기 때문에 2×4, 2×6 등 표준화된 서구식 공업 목재다. 길고 가는 부재로 쓸 수 있고 넓고 얇은 판으로 쓸 수 있다. 공간을 감싸주기도 열어주기도 하는 목재의 속성을 이용하여 건축가는 깊고 투명한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러 겹의 공간’, ‘깊고 투명한 공간’. 필자는 근대적인 텍토닉의 관점에서 교원게스트하우스 공간의 특성과 구법 간의 관계에 대해 서술했다. 이런 관심은 조남호와 함께 했던 프로젝트에서도 이어졌다. 2015년 필자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건축 컬렉션과 개관 프로그램의 기획자로 일할 때였다. 1:1 실물 건축 부재를 모으는 소장품 기획과 건축 요소를 디자인, 제작, 소장하는 ‘건축생산워크숍’을 발상했다. 건축생산워크숍의 첫 번째 주제를 목재로 선정하고 조남호와 구마 겐고를 초대했다. 당시 조남호의 주제는 ‘가벼움과 무거움’이었다. 가벼운 표준 각재가 전통 가구식 목구조의 보와 기둥의 기능과 감성을 가질 수 있는가? 조남호는 이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구축적 공간체’(2015)라고 불렀다. 60×60mm 각재를 기본으로 이를 네 개씩 모아 기둥과 보로 조합하는 우레탄 커넥터를 개발했다. 각재를 접착시켜 무거운 구조부재를 만드는 기성 방식을 넘어 각재 요소의 비례와 가벼움이 살아있는 구축체계를 개발했던 것이다.  

 

 

교원그룹 도고 게스트하우스(2000) ©Kang Ilmin 

 

조남호와의 인연은 이번 「SPACE(공간)」 프레임에 게재된 ‘숨쉬는 폴리’(2023)로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제5차 광주폴리의 총감독으로 가장 먼저 참여 요청을 한 건축가가 조남호였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구축적 공간체’의 경험을 배경으로 친환경건축을 가변형 목재 시스템으로 개발해 이동이 가능한 폴리를 요청했던 것이다. 조남호는 이런 제안을 수용하면서도 첫 미팅에서 바로 ‘숨쉬는 폴리’를 제안했다. 이 주제는 인왕산 숲속쉼터(2020)의 지붕에서 부분적으로 시도했던 외피 디자인을 프로젝트의 전체 주제로 접근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가 ‘숨쉬는 폴리’를 만들고 있던 2022년 여름, 서울숲 공공미술 작품공모에서 역시 숨 쉬는 건축을 주제로 한 설계안이 당선됐다. 서울숲의 ‘에코로지컬 매트릭스; 숨쉬는 그물’(2023, 이하 ‘숨쉬는 그물’)과 광주 구도심의 ‘숨쉬는 폴리’는 독보적인 목조 설계 시공 컨설턴트로서 건축가와 오랜 기간 작업을 한 수피아건축(대표 이주석)과 함께 구현했다. ‘숨쉬는 폴리’에서는 이병호(한국부동산원 실장)라는 뛰어난 환경 디자인 컨설턴트의 조력으로 숨 쉬는 건축의 구체적인 엔지니어링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무산된 2013년 은평 미래도시주거 사업 이후 ‘숨쉬는 폴리’로 10년 만에 다시 협업을 하게 된 것이다. 좋은 인연은 서로 만나 기운을 확산시킨다.

 

건축이 숨 쉰다는 것은 근대건축이 추구해왔던 환경 패러다임을 뒤집는다.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듯 건물이 환경과 적극적으로 조응한다는 것이다. 살림집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위, 아래, 옆으로 보호막을 만들고 적절하게 개구부를 만든다. 벽, 지붕, 바닥이 구성하는 공간의 양태에 따라 집이 환경과 조우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집과 인접한 땅과의 관계는 일상적으로 인식하지만, 집이 훨씬 넓은 세상과 연결돼 있음은 망각한다. 집을 지을 때 건폐율과 용적률, 인동 간격, 높이 제한 등 근대기에 제도화된 건축법규와 도시계획이 작용한다. 공공을 위한 공간적인 제약은 발상했지만 에너지에 관한 한 건물은 독립된 에너지계로 설정됐다. 자본주의의 논리와 생산체제는 건물이 외부 환경으로부터 최대한 밀폐돼야 하고 총체적인 에너지 소모와 관계없이 가장 값싼 방식으로 재료를 수급하게 했다. 건축 설비, 단열과 방수를 비롯한 건축자재 산업은 외부의 공기, 열, 습기를 차단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실내 공기의 기계적 순환이 20세기의 보편적 시스템으로 정착했다. 자연 환기는 1990년대에 비로소 유럽을 중심으로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지만 최대한 밀폐된 건물의 내부 환경이 여전히 전제됐다. 기후변화를 의식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건물의 에너지는 일반적으로 그 자체의 에너지에 국한해 산출한다.

 

 

인왕산 숲속쉼터(2020) ©Kim Yongsoon

 

‘구축적 공간체’(2015) ©Yoon Joonhwan

 

 

건물은 독립된 에너지계가 아니다. 건물이 자기 효율을 위해 사용하거나 거부하는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확장된 에너지 생태계 속에서 건축을 접근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건축설계의 방법과 태도는 물론 건축에 대해 말하는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전 과정평가 기제는 점차 발달하고 있지만 에너지를 넓게 보면서 건축을 보는 실천체계는 산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환의 과정은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물론 아니며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번 「SPACE」에 게재된 조남호의 세 프로젝트는 이런 전환의 과정을 탐색하는 현장이다. 조남호의 숨 쉬는 건축은 교원게스트하우스와 ‘구축적 공간체’와 이어지면서도 또 다른 목재의 속성인 ‘약함’에서 발상됐다. 물론 약함은 가벼움과 함께하는 성질이다. 나무는 미세한 공극이 많은 분자구조를 가졌다. 동시에 단순하고 반복적인 분자사슬의 고분자화합물로 무게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강한 재료다. ‘숨쉬는 그물’, ‘숨쉬는 폴리’는 각 프로젝트의 조건에 따라 목재의 약한 속성을 다르게 이용했다. ‘숨쉬는 그물’은 경량 목재가 벌집 모양의 구조 단위로 구성된다. 공연장의 음향을 위한 형식이기도 하며 여러 생명 현상을 받아들이는 장치다. 나무 분자구조의 다공성이 건축 형태의 다공성으로 이어지고, 열린 건축 형태는 생태계와 호흡하는 기능으로 이어진다. 바람과 소리, 햇빛과 씨앗을 받아들이면서 공원 속에 자리한 명확한 건축 존재다. 

 

‘숨쉬는 그물’과는 다른 조건 속의 ‘숨쉬는 폴리’는 다른 디자인 방법론을 적용했다. ‘숨쉬는 폴리’는 작은 동네 야외공연장의 지원시설로 열 명 내외가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실내 공간으로 설정됐다. 일견 폐쇄적인 건물로 느껴질 수 있으나 동네 주민의 휴식을 위한 공공시설 역할을 한다. 일조와 태양에너지의 효율에 따른 배치, 자연 환기를 도모하는 실내 공간과 개구부의 구성, 나무 각재와 투습력이 뛰어난 셀룰로오스(재생 종이) 단열층으로 구성된 벽체, 숨 쉬는 건축의 여러 면모를 갖춘 프로젝트다. 실내 공간이 중요해지면서 당초 목표했던 해체-조립을 통한 이동이 아니라 구조체 전체가 움직이는 것으로 귀결됐다. 이동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전체 구조물을 수피아건축의 인천공장에서 제작했고 그 결과 정교한 디테일이 구현될 수 있었다. 

 

‘가볍다’, ‘무겁다’, ‘강하다’, ‘약하다’, ‘열려 있다’, ‘닫혀 있다’. 교원게스트하우스부터 ‘숨쉬는 폴리’까지 건축가와 비평가가 사용한 말들은 사물의 감각에 대한 수식어이자 계량적으로 도출되는 상대적 수치다. 주관적 경험이자 사물의 속성에 대한 표상이다. 19세기부터 이러한 관계를 텍토닉이라고 부른다. 조남호와 필자의 인연은 텍토닉으로 시작됐다. 기후문제에 다가서게 한 것도 텍토닉이다. 기후변화의 시대, 물질체계를 기반으로 건축이 이루어진다는 점은 변하지 않을지라도 물질에 대한 태도는 변해야 한다. 20세기가 19세기와 다르듯이 기후변화의 텍토닉도 다르다. 조남호의 건축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가늠하게 한다. ‘숨쉬는 그물’, ‘숨쉬는 폴리’, 이맥스시스템 사옥(2023)은 건축가의 작업 이력에서 가장 모던한 감각을 가진 프로젝트들이다. 열린 공간과 단순함이란 전형적인 현대 건축의 덕목, 그리고 비례와 완성도라는 고전적 규범들이 설득력 있게 구현돼 있다. 우리가 전제하는 모든 규범과 방법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탐색, 실험, 시행착오를 거쳐 새로운 건축을 익힌다는 것을 알려준다. 기후변화의 양상이 광범위한 만큼 이에 대응하는 양식도 다양해야 한다. 콘크리트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동시에 콘크리트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엔지니어링과 디자인, 콘크리트 폐기물의 재활용,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잡아내는 탄소 포집(carbon capture), 시멘트 대체재의 산업화 등 여러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파장을 구체적인 지역마다 가늠하기 어렵다.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닥치고 있는 ‘국지적인’ 재앙, 파키스탄의 대홍수, 중국의 사막화, 캐나다의 산불, 꿀벌과 개구리의 멸종, 급격하게 파괴되어가는 산호 생태계는 그 자체로 구조적인 변화를 알리는 거대한 재앙이다. 이런 지구적인 스케일의 상황에 비한다면 건축이 할 수 있는 일이 미미하게 느껴진다. 

 

건축은 작지만 중요하다. 기후변화는 모든 것이 연결돼 있음을 알려주지 않는가? 건축의 변화가 가져오는 파장이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이는 지구 생태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운이다. 변화는 생명의 동력원이자 징표다. 생명체는 변한다는 자질을 갖고 있지만 변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환경의 변화에 반응하고 적응할 때 생명력이 이어진다. 건축가로서 조남호의 생명력에 대해 2009년 「중앙선데이」에 다음과 같이 서술한 바 있다.

 

“조남호는 세상과 직설적으로 대면하는 건축가다. 편견 없이 그의 작업에 임할 수 있는 그의 힘이다. 어려운 상황을 만나고, 어려운 사람과 엮이게 되더라도 문제를 직시하고 솔직한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과시욕과 부질없는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법이 없다. 여기에 감동이 있고 여기서 신뢰가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그가 걷어 들이는 가장 큰 수확은 배움이다. 그는 모든 곳에 배움이 있다고 믿는다. 건축주로부터 목수로부터 엔지니어로부터 부하로부터 배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현장에서 배운다.” 

 

현장은 극복해야 할 통념과 체제가 지배한다. 조남호의 건축이 보여주듯이 현장은 탐색의 장이 될 수도 있다. 공공의 가치를 위해 실험적인 건축을 장려하는 광주폴리의 맥락에서 구현된 ‘숨쉬는 폴리’에서부터 강남 도심의 민간 업무시설인 이맥스시스템 사옥까지 다양한 현장에서 배우고 새로운 건축적 시도가 이뤄졌다. 이맥스시스템 사옥의 경우 신생에너지 분야의 건축주와 함께 태양광 패널을 건축설계에 포섭하는 디자인 혁신을 이뤄냈다. 조남호는 현실 속에 기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목조를 배우게 된 계기도 외환위기를 견뎌내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목조 시공에 뛰어들었던 것이라고 한다. 외환위기보다 훨씬 광범위한 위기에 당면한 지금, 기후위기 속에서 조남호의 학습 능력, 현장에 지식이 있다는 교훈을 다시 확인한다. 이와 함께 건축에 대한 일관된 필자의 입장 또한 확인한다. 건축은 건물을 만들고 건물이 생각을 담을 때 비로소 건축이다. ​(글 배형민 / 진행 한가람 기자)

 

월간 「SPACE(공간)」 671호(2023년 10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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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형민
배형민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두 차례 풀브라이트 스콜라를 지냈다. 대표 저서로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MIT Press), 『한국건축개념사전』, 『의심이 힘이다: 배형민과 최문규의 건축대화』, 『감각의 단면 ‐ 승효상의 건축』, 『아모레퍼시픽의 건축』, 『공유 도시: 현장 서울』 등이 있다. 두 차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2014년 최고영예의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을 지냈으며 순환경제를 주제로 현재 제5차 광주폴리 총감독을 맡고 있다. 2021년 기후변화를 주제로 기획한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후미술관〉 전시는 창의적인 전시 디자인으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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