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건축의 복원과 변주: 주한 프랑스대사관: 근대 기념비가 현대 도시로 나오는 방법

최원준
사진
김용관
진행
방유경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3년 10월호 (통권 671호) 

 

 

거장의 작품이라는 역사적 무게는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서 옛것과 새것의 적절한 관계를 조율하는 데 어려움을 주곤 했다. 렌조 피아노는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숨었고(롱샹성당 방문자센터 및 수도원), 과스미 시겔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그저 남남인 척했으며(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증축), 렘 콜하스는 미스 반 데어 로에를 집어삼켰다(일리노이 공과대학교 맥코믹트리뷴 캠퍼스센터). 주한 프랑스대사관(이하 프랑스대사관) 신축 및 리노베이션(2015~2023) 역시 상당한 부담감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다. 전통건축의 속성을 근대건축의 형식에 담아내고자 한 우리 건축계의 출발점이자 정점이라는 평가를 통해, 프랑스대사관(1959~1962)은 거장 김중업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한국 근현대건축의 최고 걸작으로도 종종 꼽히기 때문이다. 전통 기와지붕을 유려한 노출콘크리트 곡면으로 추상화한 지붕 형태가 가장 유명하지만, 프로그램을 직원업무동, 대사집무동, 대사관저 등 세 건물로 나누어 극적인 시간적 체험을 의도한 배치 역시 전통건축의 채 나눔과 상통했다. 그 외에도 전통 석물과 수종을 활용한 조경, 전통문양에서 추출한 장식, 대청마루와 유사한 공간, 바닥과 처마의 반사를 활용한 빛 환경 등 실로 다방면에 걸쳐 전통적 속성을 구현한 역작이었다. 다만 지난 세월 동안 많은 변형이 가해졌다. 대사집무동의 특징적인 지붕은 1970년대 중반에 보다 평평한 계단식 지붕으로 대체됐으며, 이를 지지하던 네 개 기둥이 네 배로 증식되고 필로티가 실내 공간으로 채워지면서 구조적 긴장감이 사라져버렸다. 직원업무동도 부분 철거와 증축으로 이리저리 꺾인 바닥판만이 흔적기관처럼 남아 있었기에, 큰 틀에서나마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대사관저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더 이상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 작품을 최고로 꼽아온 셈인데, 사실 일반의 출입이 불가했던 시설이기에 오랫동안 사진과 기억에 의존해 판단해온 터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프랑스대사관은 현재와의 접점이 없는 걸작이었다. 2015년 프랑스 정부가 발주한 지명설계공모는 네 배 확장된 프로그램을 수용하면서, 그간의 임기응변식 대응이 아닌 종합적 시각으로 김중업의 건축을 업데이트할 것을 요구했다.

 

 

건축 대 보존

 

기존 시설 중 존치 대상이 지정되고 가용 부지가 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설계공모에 초대된 건축가들의 제안은 무척 다양했다. 다수는 김중업과 차별화된 독자적인 표현의지를 갖고 기존의 조직에 적극적으로 변화를 주고자 했다. “보존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라는 콜하스의 입장을 해석하면서 호르헤 오테로-파일로스는 건축 행위를 ‘건축(architecture)’과 ‘보존(preservation)’으로 구분한 바 있다.▼1 전통적으로 건축은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작업으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형태의 독창성은 취향의 변화를 항시 조장하는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라 한시적이기 때문에 더 이상 건축의 문화적 가치를 지속성 있게 확보해줄 수 없다. 강렬한 형태의 힘은 소위 스타 건축가들의 활동에서 정점을 찍고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기한이 만료됐다면, 이제 건축은 보존을 통한 해석과 재해석으로 그 가치를 지속할 수 있게 됐다. 기존 건축과 환경을 부각시키고 그 의미를 현재화시키는 문화적 연결고리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보존은 마치 “조각에 주목하게 하는 받침대”와 같이 자신의 형태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보존은 새로운 형태를 창작의 본질로 여기는 건축과는 근본적으로 입장이 다르다. 대부분의 건축 프로젝트에는 해석하고 대응할 도시적, 사회적, 역사적 맥락이 있기에 여기서 이야기하는 보존은 비단 유산의 리노베이션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이러한 구분을 따르자면 다른 응모작들은 이 프로젝트를 ‘건축’ 작업으로 인식한 반면, 윤태훈(SATHY 대표)과 조민석(매스스터디스 대표)의 당선작은 ‘보존’으로 접근했다. 목표는 프랑스대사관의 건축적 가치를 오늘의 시점에 되살리는 것으로, 1차적으로 김중업의 건축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2차적으로 이를 드러내고 널리 향유하기 위한 오늘의 형식을 갖추어야 했다. 구체적으로는 망가진 대사집무동을 원형으로 복원하여 대사관저와 함께 김중업의 고유 영역으로 설정하고,▼2 그 현대적 기능과 가치를 확장시키는 신축 영역을 낮은 자세로 더하는 것이었다. 대사집무동에 어떠한 현대적 재해석을 가하지 않은 점에서도 당선안은 유별했다. 옛것과 새것은 서로 뒤섞이지 않고 뚜렷한 병치를 이루도록 했는데, 각자가 고유의 성질을 유지하며 관계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몽타주의 전략이었다. 

 

무형식의 형태

 

기존보다 늘어난 연면적을 수용하기 위한 신축부는 보존 가치가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 직원업무동의 위치에 수평 매스인 라주떼▼3와 수직 타워인 라투르의 조합으로 계획됐다. 두 건물은 김중업의 노출콘크리트와 대비되도록 철골과 목재(이후 강화된 법규로 목재 표면의 UHPC패널로 대체)를 주재료로 선택했고, 전체를 검은색으로 처리하여 존재감을 줄였다. 형태적으로는 균일한 모듈을 가진 직각체계의 절제된 구성을 취함으로써 원본의 표현적 조형과 차별화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옛것과의 경계가 명확히 설정됐지만, 신축부의 근본적인 목표는 더불어 공존하는 가운데 옛것의 가치가 부각되도록 스스로 형식을 억누르는 것이었다. 여기서 형식의 억제 혹은 무형식성은 아무런 특징도 띠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형식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김중업이 설정한 독특한 세계에서는 김중업의 DNA를 받아들이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 길이었다. 라주떼의 높이와 모듈, 라주떼와 라투르의 축, 두 건물이 이루는 수평과 수직의 대비▼4 그리고 두 건물이 같은 형식과 색으로 묶여 기존 건물들과 이루는 3단의 전체 체계 등 많은 구성적 특성들이 기존 김중업의 계획으로부터 추출됐다. 이에 더해 특징적인 표현 요소들도 도입됐다. 기존의 세 건물은 전통건축의 깊은 처마를 현대적으로 제각기 해석한 수평 지붕들이 특징적인데, 라주떼는 입구의 널찍한 캐노피로, 라투르는 입면의 돌출 구조체(이 역시 김중업이 종종 사용했던 텍토닉이다)에 더해진 루버로 이러한 조형 언어를 이어갔다. 철골의 표면에 그대로 드러난 용접 자국은 원작 노출콘크리트의 거친 처리를 개념적으로 적용한 부분이다. 옥상정원도 직원업무동과 라주떼가 공유하는 요소인데, 이는 일방적 영향 관계의 산물이기보다는 경사진 부지에서 교류의 장으로 활용할 평지를 건축적으로 마련하려는 합리적 접근의 귀결점에 가까워, 흔히 강렬한 조형적 제스처로 알려진 김중업이지만 그 역시 프로그램적으로 주어진 조건에 매우 긴밀하게 대응했음을 보여준다.

김중업이 우리의 전통건축을 추상했다면, 조민석과 윤태훈이 추상한 대상은 김중업의 건축이었다. 김중업의 건축을 밀도 있게 연구해 원칙과 요소들을 추출하여 적용함으로써,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형태와 색채는 억누름으로써, 라주떼와 라투르는 프랑스대사관의 조직 속에 안착하여 기존의 대사집무동과 대사관저를 돋보이게 하고 이들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김중업의 표현 요소들이 더해지면서 신축부는 스스로를 내세우는 오브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배경도 아닌, 그 중간 즈음의 존재감을 가지며 오테로-파일로스가 언급한 조각받침대를 넘어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의 역할을 한다. 이는 개념적인 설정이 아니라 현상적으로도 분명한 효과를 갖는 것이었다. 전면에서 바라봤을 때 수평적으로 뻗어나온 라주떼는 소실점을 통해 김중업 파빌리온(복원된 대사집무동의 명칭)으로 시선을 유도하며, 라투르는 파빌리온 곡면 지붕의 극적인 형태가 한껏 두드러지게 뒤에서 단정하고 어두운 몸체로 받쳐주고 있다.

 

ⓒChoi Wonjoon

 

도시 속으로

 

다만 신축부의 정형성은 김중업이 애초 이 자리에 의도했던 바와는 사뭇 다르다. 기존에 존재했던 직원업무동은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기이한 조형과 이후의 과도한 변형으로 그간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지만▼5 3단 구성의 첫 번째로서 명확한 구성적 특성과 역할을 지니고 있었다. 조각적인 난간과 윤명로, 김종학의 모자이크 벽화로 알려져 있지만, 이보다는 독자적으로 설정된 축과 평단면적으로 과도하게 분절된 형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형에 채 이르지 못한, 생동하는 에너지 덩어리 같은 오브제로, 이어지는 두 건물, 즉 정사각형 평면에 네 방향으로 같은 외형을 가진 완전한 질서의 대사집무동, 직사각형의 떠 있는 지붕이 조성하는 질서 속에서 본체 매스가 자유롭게 조성된 대사관저와 뚜렷이 다른 구성적 특성을 지닌 것이다. 이러한 순차적 구성은 코르뷔지에가 1929년 ‘네 가지 구성’에서 제시한 제 1, 2, 3구성의 원칙과 각각 상통한다. 코르뷔지에의 경우 세 구성 원리가 적층되어 빌라 사보아(1931)가 예시하는 네 번째 구성으로 완성됐다면, 김중업은 이들을 별채에 적용해 실내외에 걸친 감상자의 경험을 통한, 군집 구성에 기반한 한국적인 종합을 꾀했다. 김중업에 대한 코르뷔지에의 영향은 부분적인 형태 어휘를 넘어 이러한 구성 형식에서도 드러나며, 스승을 넘어서는 김중업의 독자적 역량도 여기서 함께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조민석과 윤태훈은 신축부를 계획하면서 김중업이 설정한 내적 구성 원칙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변화된 외부 세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주변에 이렇다 할 특징적인 건물이 없어 세 건물의 변주가 온전히 드러났던 1960년대와 달리, 병풍처럼 둘러싼 고층 건물들의 혼잡한 모습이 함께 인지되는 현 상황에서, 두 건축가는 또 하나의 자율적인 축과 구성을 더하기보다는 라투르는 대사관저로부터, 라주떼는 대사집무동으로부터 축과 모듈을 연장하여 내적 질서를 보강했다. 김중업의 표현성이 급속히 성장한 도시의 혼란 속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묻혀버리지 않도록, 정돈된 배경을 내부적으로 설정해준 것이다. 

신축부 디자인은 외부 도시와의 연계를 회복하는 것이기도 했다. 애초 김중업이 경내 자연과 푸른 하늘과의 관계에 만족했는지, 아니면 도시와의 관계까지 의도했는지는 따로 논증할 문제지만, 결과적으로 프랑스대사관이 당시 도심에서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감을 가졌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충정로에서 바라본 당대의 사진이 이를 잘 보여주며 원로 건축가들도 그 놀라웠던 목격담을 전하곤 한다. 그러나 이후 주변의 고밀 난개발로 인해 이러한 존재감은 사라진 지 오래여서 도시와의 조율된 접점을 다시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다. 대사관으로서의 견고한 울타리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해법은 내부로 도시를 연장하는 것이었으며, 그래서 신축부, 특히 라투르는 김중업 건축과 이루는 내부 조직의 구성체로서뿐만 아니라 주변 도시의 일부로서 두 가지 역할을 갖는다. 그 절제된 형식은 내부적으로는 표현성 충만한 김중업과의 구분을 강화하는 동시에, 외부로는 아파트와 오피스 등 일반 건물들이 이루는 익명의 도시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그 결과 프랑스대사관은 한정된 전시영역 속의 기념비가 아니라 적어도 시각적으로는 도시시설로서의 현존감을 갖게 되었고, 건축인들 사이에서 사진으로만 알려졌던 존재에서 벗어나 이제 모든 시민이 도시의 일상에서 직접 목격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우리의 근대사를 증거하는 지역의 랜드마크로서 작동하고 있다. 전면부의 공지에 열린 문화 공간을 조성하자는 조민석의 추가 제안은 프랑스대사관과 도시의 연결을 공간적으로나 프로그램적으로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완공 30년 후, 김광현(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은 프랑스대사관을 재평가하면서 한국성과 공명하는 미학적 성취는 높게 사면서도 유럽의 초기 근대건축이 지녔던 사회, 기술, 도시와의 역동적인 긴장이 아닌 개인의 낭만적 조형에 기반한 건축임을, 그리고 그러한 성격의 작품을 우리가 현대건축의 기점으로 삼고 있는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6 다시 30여 년이 흐른 지금, 윤태훈과 조민석은 건축을 통해 여기에 응답하는 듯하다. 김중업이 독창적 형태를 통해 전통의 건축적 표상이라는 당대의 과제에 대응했다면, 두 건축가는 오브제보다 관계, 순간의 성취보다 지속성을 중시하는 오늘날 변형되고 가려졌던 기념비를 도시의 무대로 다시 등장시켜 동적인 재해석의 장을 열었다. 시대마다의 요구에 그 시대의 방식으로 가장 잘 대응했다는 점에서, 조민석과 윤태훈의 작업은 비록 형태가 두드러지지는 않아도 김중업의 작품과 대등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글 최원준 / 진행 방유경 기자)

 

1    Jorge Otero-Pailos, ‘Supplement to OMA’s Preservation Manifesto’, Preservation is Overtaking Us, New York: GSAPP Books, 2014, pp. 81–100.

2    대사집무동의 원형복원도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으며 이와 관련된 우여곡절의 과정은 본지 ‘건축가들과의 대담’(22~35쪽)에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3    우리말로 ‘방파제’를 뜻하는 ‘라주떼’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소재로 한 크리스 마르케의 1963년 중편영화 제목이다.

4    기존 직원업무동의 굴뚝은 김중업의 가장 간단한 스케치에도 표현되어 있어 기능을 넘어 구성상의 역할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    직원업무동을 제외하고 대사집무동과 대사관저 두 건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분석들이 많다.          

박길룡,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의 전통, 공간, 수사’, 「SPACE(공간)」 302호(1992년 11월), 82쪽.

6    김광현, ‘주한 프랑스대사관: 근대의 갈등을 잃은 한국 현대건축의 기점’, 「SPACE」 302호, 80쪽.​ 

월간 「SPACE(공간)」 671호(2023년 10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원준
최원준은 숭실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건축 역사, 이론,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이로재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를 진행했다. 최근 공저로 『김종성 구술집』(2018), 『유걸 구술집』(2020), 『우리가 그려온 미래: 한국 현대건축 100년』(2022) 등이 있다. 공동 큐레이터로 〈Sections of Autonomy: Six Korean Architects〉(2017)와 〈Cosmopolitan Look: Contemporary Korean Architecture 1989-2019〉(2019) 전시회를 기획했으며, 현재 목천건축 아카이브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