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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복원과 변주: 주한 프랑스대사관: 시간 위에 덧댄 체계의 변주

사진
김용관
자료제공
김중업건축박물관, 매스스터디스, SATHY
진행
방유경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3년 8월호 (통권 671호)

 

 

Image courtesy of Kimchungup Architecture Museum 

 

DIALOGUE  강준구 매스스터디스 소장 × 윤태훈 SATHY 대표 ×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 × 최원준 숭실대학교 교수


설계공모와 협업


최원준(최): 김중업의 주한 프랑스대사관(이하 프랑스대사관)은 명실상부 한국 근현대건축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일반인들이 방문할 수도 없고 모습도 많이 변형돼 마치 실존하지 않는 듯한, 실체가 직접 다가오지 않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번 신축과 리노베이션을 계기로 원형도 일부 복원되면서 현재성을 갖고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 프로젝트를 이끈 두 건축가에게 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 먼저 2015년 지명초청으로 진행된 설계공모에서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매스스터디스(이하 매스)와 SATHY(이하 사티)의 협업이 처음은 아니라고 들었다.

조민석(조), 윤태훈(윤): 우리는 이미 2014년 파리 국제대학촌 한국관 건립 설계공모를 같이 준비했던 경험이 있었다. 뒤이어 2015년 7월에 프랑스대사관 신축 및 리노베이션 설계공모가 발표되고, 1단계 일반공모 후 지명된 다섯 팀 안에 발탁되어 함께 2단계 공모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최: 두 회사의 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윤: 매스와 처음 협업할 때도 ‘공모에서 떨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참여해서인지 준비 과정 역시 재미있었다. 프랑스 팀과 한국 팀이 함께하지만, 나는 프랑스계 한국인이었고, 참가자들 중 우리가 제일 젊은 편에 속했다. 지명받은 팀 중에 빌모트 앤드 어소시에이츠 같은 큰 기업도 있다 보니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설계했던 것 같다.

조: 둘이 한번 같이 (공모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어서인지 손발이 잘 맞았다. 실제 팀 멤버들 사이에도 친근감이 형성돼 있어 소통도 원활했다.


주한 프랑스대사관 김중업 파빌리온(옛 대사집무동), 2023

공모 요강과 설계지침

최: 최초 공모 요강에서는 대사관저는 보존하되 대사집무동(현 김중업 파빌리온)은 철거하고, 중앙의 정원도 설계 대상지가 아니었다고 들었다.

윤: 2단계 공모 때 처음 공개된 공모 요강(2015년 11월)은 대사관저를 제외한 모든 기존 건물들, 즉 영사과 건물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과 당시 대사관 사무실로 바꿔 사용 중이던 대사집무동까지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 대사관 캠퍼스 건물을 짓는 계획이었다. 이후 대사집무동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여론이 생기고 한국 정부도 대사관 측에 공식 서한을 보내면서, 4개월 동안 공모전을 중단하고 재논의하는 시간을 거쳤다. 공모전이 재개된 후 대사집무동을 보존하도록 권장한 새 설계지침(2016년 3월)에 맞춰, 2016년 여름에 작품을 제출하고 그해 10월 당선 결과가 나왔다.

조: 당초 대사관에서 정원의 활용에 대해 별도 계획을 세우던 중이라 정원 바깥으로 대지경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만일 정원이 제외되지 않고 대지 안에 포함됐다면 이 공간을 활용하는 보다 다양한 안들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공모 당선 후 정원을 그대로 남기게 돼 도심 내 보이드(정원)가 유지된 건 오히려 좋은 상황이었던 것 같다.

최: 공모 요강에서 제시된 프로그램은 과거와 비교할 때 공공성이 늘어났는지, 혹은 예전처럼 닫힌 성격이었는지 궁금하다.

강준구(강): 프랑스대사관이 지어졌던 1962년과 비교할 때, 현재 대사관의 조직 구성과 규모는 크게 확장됐다. 이 프로젝트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프랑스대사관에서 파생되는 흩어진 기능 부서들을 통합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만큼, 프랑스문화과에 속한 유학생들을 위한 캠퍼스 프랑스, 프랑스 여행을 지원하는 아뚜 프랑스 등 외부에 있던 시설들이 프로젝트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보다 공적인 성격을 띠는 프로그램을 수용한다는 측면에서 예전보다 공공성이 더 확대된 측면이 있다.

조: 영사 업무가 중심인 대사관이다 보니 아무래도 닫힌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특히 보안 문제가 중요해서 이런 특성들이 공간을 구획할 때 큰 영향을 미쳤다.

최: 프로그램 조직은 어떻게 구상했나?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했던 사안은 무엇이었는지?

조: 요즘 실리콘밸리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많은 업무 공간들은 개별 층이 넓고 층수가 적을수록 유리하다. 반면 사무동인 라투르는 10층짜리 미니 타워로 바닥 면적이 작다. 이것은 대사관이기 때문에 가능한 유형일 것이다. 한 층에 대여섯 개로 사무실이 나뉘어 있는데 부서마다 구분돼 있다. 작은 면적의 타워 유형은 채광과 환기 면에서 유리하며 소규모 조직 구성에 대응하는 적합한 기능 배치가 가능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안다. 

윤: 다른 설계안들은 지형에 맞춘 경우가 많았는데 우리의 전략이 잘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라투르를 설계하면서, 3~5년 정도 외국을 돌며 순환근무를 하는 직원들을 고려해 일하는 공간을 로프트식 아파트처럼 아늑한 분위기로 조성하고자 했다. 대사관은 업무 특성상 대다수 인원이 하나의 넓은 공간에서 일하는 방식이 아니다. 사무실 특성에 따라 관리직 1인, 일반 사무직 1인, 2인, 4인, 최대 6인의 사무실 유형으로 구분된다. 당선 후 이틀 동안 대사관에 머물며 모든 부서의 직원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공간을 구획했다. 그 결과 사용자들의 기대에 좀 더 부합하는 평면으로 발전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부서별 관계에 따라 접근성을 고려하여 층별로 사무실을 배치했고, 조직이 큰 부서에는 인접한 2개 층을 배정했다.

최: 심사 과정도 궁금하다.

조: 심사는 프랑스 현지에서 진행된 터라 나는 참여하지 않고 윤 대표 혼자 발표를 맡았다.

윤: 프랑스에서 설계공모를 진행할 때는 심사위원에 외부 건축가와 엔지니어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나머지는 대사관 관계자들이 들어온다. 당시 심사에 참여했던 엔지니어를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우리 팀이 발표할 때 파비앙 페논 대사가 “서울의 환경과 도시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더라. 우리가 설계한 미니 타워, 라투르가 주변 동네와 잘 어울린다며 페논 대사가 우리 안을 많이 지지했다고 들었다.

조: 다른 제출안과 비교할 때 타워 얘기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건축가들이 렌더링을 할 때 대개 주변 대지의 상황을 부정하지 않나. 뒤에 떡 하니 있는 빌딩과 아파트를 없는 것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실제 가서 보면 대사관 주변의 아파트 풍경이 굉장히 강렬하다. 우리는 렌더링에서 살짝 소프트하게 처리하기는 했지만 현 상태를 그대로 보여줬다. 이러한 맥락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발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잡지에 게재됐던 주한 프랑스대사관 사진 일부. 대사집무동(왼쪽)과 직원업무동(오른쪽) / Image courtesy of Kimchungup Architecture Museum​


김중업 파빌리온(왼쪽)과 라주떼(오른쪽), 2023

현대적 개입, 원칙과 전략

최: 공모 때 제출된 다른 안들을 보면 대사집무동을 변경하거나 골격만 남기고 입면을 바꾸는 시도도 있었다. 반면 사티와 매스는 처음부터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데 방점을 두었다.

조: 공모가 중단된 이후 새롭게 공개된 설계공모 지침에서 기존 대사집무동에 대해 달라진 발주처의 태도와 현장에서 확인한 대사집무동의 변형 정도를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제안을 하기보다는 김중업의 디자인을 진지하게 복원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고 설득력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막상 공모가 재개되고 보니 예산은 그대로인데 건물은 복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쉽게 말해 일은 늘어나고 땅은 좁아진 것이다. (웃음) 

최: 김중업의 작품이 지닌 특성이나 가치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전체 조직 안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살려야 한다고 보았는지?

윤: 김중업의 작업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건물이 원형에서 많이 달라진 상태에서 시작하다 보니, 변화 과정을 스터디하며 기존 작업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김중업과 그의 작품관, 대사관의 변형 과정에 대해 수개월을 투자해 조사했고, 다시 짓는다면 어느 시점의 모습이 중요할지 고민하면서 우리 나름의 방법론을 세우고자 했다. 김중업 파빌리온(이하 파빌리온)의 경우 우리의 첫 계획 방향은 ‘지붕만 다시 짓는다’였다. 하지만 기존 자료를 살펴보니 원안과 달리 계단도 바뀌고, 필로티 부분도 막히고, 계단 하부의 수공간도 사라진 상태였다. 어떤 것을 살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조: 역사적 맥락을 우리 식으로 해석했다고 할까? 역사성을 가진 두 동(대사관저, 대사집무동)을 주인공으로 삼고 우리의 새 건물들(라주떼, 라투르)은 조연이 돼야 하는 대본 같은 거다. 다만 연면적으로 볼 때 신축 동이 기존 두 동보다 네 배 정도 넓어서 이 관계를 수직·수평으로 일단 설정했다. 라투르는 주변 건물군에 묻혀서 병풍의 일부가 되는데, 그럼에도 주변과는 확실하게 구분돼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히 있었다. 다른 제출안들을 보면 비슷한 스케일의 고만고만한 건물들을 한데 모아 재료를 통일하는 방식을 주로 채택했는데, 반면 우리는 낮고 긴 건물(라주떼)과 좁고 높은 건물(라투르)로 주변 맥락과의 완충을 의도했다. 1962년 완공 당시, 한강이 보일 정도로 언덕 위에 홀로 솟아 있었던 고즈넉함과 그에 반해 과밀해진 현재 도시의 수직성 사이에서 말이다.

최: 다른 안들을 보면 김중업의 건축과 대적하는 구도의 새로운 조형적 제스처들이 많이 보인다. 새로운 요소를 삽입하고 질서를 완전히 재편한 경우도 있다.

조: 건축가가 지닌 욕망의 종류와 정도 차이인 것 같다. 특히 배치를 보면 우리와 완전 반대로 기존의 공간 질서와 대치되는 태도를 취한 안도 있더라. 건물은 바꾸지 않는 게 우리 기본 입장이었지만 존중의 의미로 너무 비슷하게 따라 하면 오히려 원본이 상쇄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비슷한 예로 디자이너 앤 드뮐레미스터의 사무실(1993)이 있다. 김중업처럼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벨기에 건축가 조르주 베인스(1925~2013)가 앤트워프에 지어진 르 코르뷔지에의 시트로앵 주택(메종 구아떼, 1926) 바로 옆에 신축한 사무실 건물이다. 비슷한 백색의 건물 두 동이 붙어 있으니 구분되지 않고 합쳐져 보여 원본의 힘이 상쇄되는 느낌이 있었다. 드뮐레미스터는 시트로앵 주택만 백색으로 놔두고 새 사무실 건물을 어두운 회색으로 칠했다가 나중에는 여기에 담쟁이 덩굴까지 심어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이 눈에 띄게 했다. 이런 사례를 비춰볼 때 신축 동을 밝게 하지 않고 기존 건축물과 구별, 대조를 이루게 한 우리 판단이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최: 매스와 사티의 제출안은 여러 면에서 김중업의 계획을 가장 잘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태도가 돋보였다.

조: 재료도 동일한 태도로 접근했다. 노출콘크리트가 지녔던 역할, 가공하지 않은 날것(베톤부르트)의 느낌을 철골에서 실현하고자 접합 부위와 용접 자국도 그대로 노출했다. 또한 대사관저-타워 축을 맞추고, 파빌리온-라주떼의 축을 맞췄다. 특히 후자의 경우 파빌리온에서 채 나눔 개념을 확장해 그리드 모듈도 통일했다. 특히 우리가 ‘과거의 연장’ 측면에서 봤던 흥미로운 지점은 ‘처마 건축’이다. 김수근이나 김중업의 초창기 작업이나 우리 건축의 ‘한국성’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처마였다. 우리도 라투르 남쪽과 라주떼에 각각 성격이 다른 두 개 처마를 두어 맥락의 변주를 시도했다. 라주떼의 처마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가장 공적인 공간에서 환대하는 인상을 주는 큰 캐노피 역할을 하고, 전체 앙상블 중에서 유일하게 점유할 수 있는 처마다. 어찌 보면 3단 구성의 세 건물에서 처마 변주를 구사했던 김중업의 태도와 연장선상에 있기도 하다.

최: 라주떼의 옥상정원도 옛 직원업무동에 있었던 요소다.

조: 중앙정원이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모호한 전제(최초 공모 요강)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공간을 떠올리다 만들게 됐다.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상상력에 자극을 받은 계기가 있었는데, 2014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소개했던 프랑스 영화감독 크리스 마르케(1921~2012)의 영화 ‘라주떼’(1962)다. 그가 이 작품을 제작할 때 김중업은 프랑스대사관을 짓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도 공항의 옥상이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는 줄거리처럼 현재와 미래가 뒤섞이는 상상을 해봤다.

윤: 항해 용어(방파제)에서 차용된 ‘라주떼’는 영화 속에서 파리 오를리 공항의 직선으로 뻗어 있는 지붕으로 표현된다. 이 공간은 활주로의 수평선이 보이는 동시에 각 비행기로 접근이 가능하도록 만든 공간이다. 우리는 이 공간에 영감을 받아 본 프로젝트 내의 라주떼에 루프탑 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은 초기 설계지침에서 요구했던 중앙정원의 부재를 보완하는 프로그램인 동시에 모든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김중업이 설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 1층 평면도(왼쪽)와 2층 평면도(오른쪽) / Images courtesy of Kimchungup Architecture Museum

김중업이 설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 남측 입면도 / Image courtesy of Kimchungup Architecture Museum

원안과 최종안

최: 과거와의 연속성과 차별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재료도 노출콘크리트와 차별화하기 위해 철재와 목재를 의도했는데 최종적으로 입면 목재는 UHPC패널로 대체됐다.

조: 공사 진행 중 법규가 개정돼 초기에 제안했던 탄화삼목을 못 쓰게 됐다. 대체재를 찾다가 나무 질감을 연상케 하는 패턴의 어두운 UHPC패널을 사용하게 됐다. 대사집무동의 옛 PC패널이 진화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법규가 바뀐 덕에 1960년대에는 불가능했던 발전된 기술을 통해 재료도 김중업의 작업과 공명한다고 할까.

최: 김중업의 작품은 굉장히 표현적인 요소들이 많은데 라주떼와 라투르를 보면 가급적 형태를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기존 건물로부터 그리드 모듈, 축 등 연속성을 가져오는 것 역시 새로운 형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질서를 자연스럽게 연장한 태도다. 최대한 물러난 폼리스(formless) 제스처다. 

조: 정확하게 읽었다. 설계공모 초기에는 윤 대표와 다양한 요소들을 덧붙이면서 여러 안을 시도했는데, 나중에는 조형 의지가 드러난 부분들이 사라지고 점점 단순해졌다.

윤: 우리가 2015년 11월 첫 현장 답사 시 발견했던 대사관은 이질적인 객체들이 축적된 느낌이 강했고, 우리는 ‘통일된 명확한 가독성’을 보여주는 것을 중점으로 설계를 진행했다. 그러면서도 중립적이고 신중하게 대지가 가진 콘텍스트를 존중하는 설계안을 제안했다.

최: 주변 아파트 단지와 고층 건물들의 밝은색이 강렬해서 그런지 라투르의 검은색도 적절했다고 보인다. 앞에서는 파빌리온의 배경이 되지만, 뒤쪽 충정로에서 보면 라투르가 검은색이라 눈에 더 띈다. 사실 옛날에는 뒤편에서도 프랑스대사관이 인지가 됐는데 이후 완전히 안 보였던 상황이 아닌가?

강: 설계공모 때부터 그 지점이 계속 언급 돼서 프랑스대사관이 뒤에서도 보이도록 제안을 했다. 라투르는 인근 빌딩이나 아파트와 비교가 안 되는 작은 규모지만 짙은 색이기에 인지된다.

김중업이 설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 모형 / Image courtesy of Kimchungup Architecture Museum


충정로에서 바라본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배면, 1960년대 / Image courtesy of Kimchungup Architecture Museum


김중업이 사진 위에 그린 스케치 / Image courtesy of Kimchungup Architecture Museum​

보존, 복원, 재건축 사이

최: 도면, 사진 등 복원을 위한 자료는 어떻게 수집했는지, 또한 공사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조: 기본 자료는 김중업건축박물관에서 받았다. 공사할 때는 과거 디테일을 확인할 자료가 너무 부족해서 사진과 영화를 참고했다. 김승호, 김진규, 도금봉, 김희갑 등 당대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했던 코미디 영화 ‘서울의 지붕 밑’(1961)에는 당시 공사가 진행 중이었던 프랑스대사관 현장이 잠깐 등장한다. 국내에서 합판이 생산되지 않던 시기라 각목으로 만든 거푸집 시공 장면도 나온다. 의도한 건 아닌데 나중에 비교해 보니 시공하는 모습마저 비슷하더라.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건 눈에 보이는 치수나 요소, 이미지를 넘어서서, 비슷해 보여도 실상 완전히 다른 구조와 기술로 접근한 점이다. 특히 상부 구조는 포스트텐션을 적용했고 실내에 박혀 있던 네 개 기둥도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다. 기존 도면에 따라 외곽 치수를 맞춰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하되, 안에 철골을 박아 현재의 내진구조 기준에 맞췄다. 기존의 외부 PC패널도 일일이 떼어내서 일련번호를 매긴 후 원위치에 재설치했다.

윤: 김중업의 작업들, 그에 대한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해진 프랑스대사관의 다양한 변형의 역사를 기록하고 정리하기 위한 연구 작업을 우리 팀 내부적으로 수행했다. 다양하게 흩어져 있던 기록을 하나로 모으고 분석하는 작업은 프랑스대사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고, 현재까지도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최: 파빌리온의 경우, 처음에는 원안에서 변형된 상부의 지붕 구조만 다시 지으려고 하다가 공사를 진행하면서 전면 철거하고 새로 짓게 됐다고 들었다. 

조: 불과 작년의 일이다. 기록을 보면, 1970년대 중반 사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1층 필로티가 실내화되면서, 기존에 양쪽으로 펼쳐지던 계단을 없앤 뒤 돌음계단을 만들고 그 앞을 로비로 사용했다. 대사관에서는 설계 진행 단계에 필로티 공간은 다시 살리되, 내부에 있던 돌음계단은 그대로 유지하길 바랐다. 변형된 공간을 그대로 쓰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지만, 철거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구조 점검을 하지 못한 상황이라 1층에 추가된 계단실 벽을 털어내자고 제안할 수 없었다.

강: 지붕만 걷어낸 후 기존 구조 프레임을 보강하고 초기 김중업 디자인에 맞추어 당시 대사집무동을 공공의 파빌리온으로 최대한 복원하자는 것이 설계공모 당시 우리의 원래 계획이었다. 당시 작성한 렌더링 이미지를 보면 원설계의 계단을 복원할 예정이라 파빌리온 1층에 별도의 전단벽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당선 후 설계 단계에 상세한 구조 계산을 해보니 지진이 발생할 경우 전단벽이 없으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라, 계단 디자인을 바꿔 ‘돌음계단과 계단실 벽체를 기존 상태대로 유지하는 타협점’을 찾았다. 또한 구조 안전진단 결과 콘크리트 골조의 중성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기에 구조보강과 별개로 ‘철근만 남기고 피복을 걷어낸 다음, 철근을 에폭시로 감싸고 다시 그라우팅을 주입해 노출콘크리트 마감의 기둥을 만들어 기본 골조 프레임을 보존’하는 중성화 보수 처리 과정을 추가했다. 그런데 착공해서 마감을 털어내고 보니 부분적으로 슬래브 두께가 4cm밖에 안 되는 등 구조단면 결손 부분이 다수 발견됐고 보존할 구조체도 중간중간 구멍이 나 있었다. 구조 기술사를 통해 모든 부재의 강도를 진단해 보니 구조 성능을 만족하는 기둥의 개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조사 결과를 근거로 외부 전문가 자문을 거쳐 보존 계획 범위를 ‘전체 구조체 보존’에서 구조보강을 통해 성능을 확보할 수 있는 ‘중앙의 네 개 기둥 일부 보존’으로 수정해야 했다. 그런데 애써 보존한 십자기둥 네 개가 원설계에 따라 대리석 판재로 마감되어 덮일 경우, 보존된 기둥인지 신설된 기둥인지 구분이 어려워져 보존하려던 우리의 노력이 잘 전해질지 의문이 들었다. 또한 기존 기둥을 일부 보존하기 위해 계단 형상도 원설계와 무관한 결과물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자, 이러한 복원 방식이 적절한지 우리 팀 모두 고민하게 됐다. 그때 조민석 대표가 구조보강 대신 ‘원설계에 충실한 신축’을 제안하면서 프로젝트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조: 당시 김중업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다시 보게 됐는데, “그 사람은 시인이었다”고 말하며 사람들이 눈물을 글썽이는 인터뷰 장면에서 대사집무동에 물그림자가 아른아른하게 비치는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순간 이 모습이 없으면 김중업의 ‘시’는 안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가 프로젝트의 핵심을 놓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웃음) 그래서 먼저 시공 담당자에게 (대사집무동을) 다 헐고 다시 지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제 역할도 못하는 구조체를 큰 노력을 들여 보강해도 대리석으로 가려져 표도 안 나는 상황이 스스로도 골치 아팠다”고 말하며 다시 지어도 비용에 큰 차이가 없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건축역사가로서 프로젝트 초기부터 자문을 담당했던 안창모 교수(경기대학교)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면서 ‘물리적 보존’이 아닌 ‘진정성 있는 재현’으로 방점을 찍게 됐다. 

최: 건물의 뼈대가 조금이라도 남았다면 복원(restoration)이라 할 수 있지만, 완전히 재건축(reconstruction)하는 상황으로 뒤바뀌었다. 근현대 건축유산을 재건축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도 있었을 텐데 우려는 없었나?

강: 안창모 교수를 포함한 근대문화유산 자문단과 상의할 때 구조, 역사, 시공 등 여러 분야 전문가, 학자들과 만나 중지를 모았고, “역사의 복원이 중요하나 실제 사용될 건물에서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의미를 담아 오래갈 수 있는 건물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도출됐다. 안창모 교수 역시 “네 개 기둥의 보존만으로는 김중업의 건축적 성과를 후대에 공유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설계자 의견에 동의하며, 진정성 있는 재현을 통해 건축적 가치를 일반과 공유하자는 설계자의 제안은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답했다. 발주처도 설계 변경에 적극적으로 응해주었고, 이후 ‘진정성 있는 설계’에 대해 우리가 증명하는 과정도 뒤따랐다. 설계와 시공을 어떤 접근으로 잘 해낼 수 있을지, 기존 구조체 중 남길 수 있는 부분을 보존하기 위해 철거하는 과정에 어떻게 관여할 것인지 말이다. 중앙에 있던 네 기둥 중 일부는 김중업건축박물관에 기증하게 되었고, 그중 가장 상태가 좋았던 다른 부분은 라주떼 북측 야외 직원 휴게 공간에 조각 작품으로 전시했다. 그 주변에는 나머지 철거된 십자기둥을 잘라 벤치처럼 배치했다. 파빌리온 외장에 붙어 있던 옛 PC패널을 그대로 살려 재현된 구조체 위에 재설치하고, 재현된 십자기둥 위에 기존의 십자기둥 대리석 마감재를 일부 재설치하는 등 과거의 기억을 이어갈 수 있게 끝까지 신경 썼다. 이런 측면에서 재구축(rebuilding), 재건축됐지만 많은 부분들이 복원된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최: 현재 대지 주변은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여 60여 년 전과 비교해 완전히 맥락이 달라졌다. 이런 주변 상황을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하다.

조: 일종의 앙상블로서 형태를 통해 자연에 대응하는 건 맞지만, 건축 또한 배경이 산이냐 하늘이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 프랑스대사관은 정상에 앉아 있는 르 코르뷔지에의 아크로폴리스처럼, 이를 올려다보는 건축적 산책로(architectural promenade)를 통해 관찰자로 하여금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건축의 중심적인 아이디어였다. 스스로 흥미롭게 느낀 지점은 김중업이 완공 사진을 놓고 하늘을 덧칠한 것이다. 굳이 비교하면 ‘마티스의 가위’처럼 곡선 지붕과 직선 지붕이 하늘을 자르는 두 개의 가윗날인 셈이다. 그가 걸어다니며 가위로 재미있게 오려냈을 하늘 모양을 상상했다. 이 하늘이 대부분 가려진 지금 그 놀이(풍경)를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위치는 라주떼 처마 아래, 입구뿐이다. 라주떼의 처마가 후면의 큰 타워와 빌딩들을 가려주면서 곡선과 직선 처마 사이로 하늘이 드러난다.

윤: 김중업이 꿈꿨던 언덕 위 이상적 근대건축물, 그리고 거대한 마천루로 둘러싸인 대도시 서울의 초중심(hyper-centre). 라투르와 라주떼는 이 둘 사이를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우리는 수직적인 타워와 수평적인 바 형태를 차용했지만, 김중업 원작의 스케일에 맞추어 적절히 조정했다. 이 스케일의 조절을 통해 타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과 파빌리온과 대사관저 사이의 부드러운 전환이 가능하게 됐다.

공사 중 촬영된 주한 프랑스대사관 아카이브 필름 속 김중업(가운데) ​/ Images courtesy of Kimchungup Architecture Museum​​​


주한 프랑스대사관 아카이브 사진 / Images courtesy of Kimchungup Architecture Museum​​


대사집무동의 거푸집 시공 모습 / Image courtesy of French Embassy in Korea


대사집무동의 계단 원형 / Image courtesy of French Embassy in Korea​

김중업 파빌리온 시공 모습, 2022

 

 

김중업 파빌리온의 복원된 계단, 2023​

김중업의 유산

조: 파리 국제대학촌의 끌로드 빠헝 타워(1967)처럼 철골이 노출됐을 때 또 다른 맛이 있다. 요즘은 재료를 감싸는 마감을 하는 추세라 그런 면에서는 역사적인 콘텍스트를 얘기하고 싶었다. 또한 타워를 설계할 때 골조를 어두운 색으로 결정하면서 삼일빌딩(1970)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김중업의 또 다른 아이코닉한 작업이지 않나.

최: 개인적으로 김중업의 대표작을 꼽을 때 삼일빌딩이 들어가는 게 불만이다. (웃음) 기술적으로는 당대에 놀라운 시도였지만,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고유한 언어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만일 타워 유형의 건물 중에서 김중업의 오리지낼리티를 찾는다면 오히려 같은 시기의 도큐호텔(현 단암빌딩, 1970)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구조를 밖으로 튀어나오게 한 시도가 더 김중업다운 하나의 성취라고 본다.

조: 건축가로 작업해야 했던 우리로서 그런 평가가 오히려 김중업과의 대화를 축소하고 제한되게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업 전체를 볼 때 초기 4년 동안의 작업은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훨씬 긴 건축 여정에서 보면 이 영향에서 벗어난 다양한 시도들도 있었기 때문에 내 태도가 건축비평가나 건축역사가의 논점과는 다를 수 있다. 당시는 지식과 담론이 지금과 달리 소수 엘리트들에게 제한되고, 이 소수가 다양한 영향을 받으며 주어진 많은 기회들에 대응했던 시기다. 한편,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한두 개 작업이 아닌 전체 맥락을 아우르며 김중업의 유산과 폭넓은 방식으로 대화하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삼일빌딩을 그대로 좇은 건 아니지만 어두운 재료를 선택한 것 역시 그런 의도였다. 김중업의 삼일빌딩은 완공 당시 한국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였다. 타워 숲이 된 현재 주변의 맥락에서, 부지 내부 앙상블과 주변 도시 사이 완충 요소로서 설계한 10층짜리 미니 타워 이미지가, 삼일빌딩과 중첩되며 익숙함과 생경함을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삼일빌딩과 항상 수평·수직의 쌍을 이루며 당시 한국의 20세기 모더니티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지금은 청계천이 된) 삼일고가도로와 라주떼가 공명하기도 한다. 고가도로처럼 인프라스트럭처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방파제로 번역되는 라주떼라면, 자동차 대신 고밀화된 이곳에 사람들이 점유하기 위한 인공 지반, 즉 인프라스트럭처라는 대조가 또 생기는 거다.

최: 라투르에서는 김중업이 구조체를 건물 몸체 밖으로 빼내던 방식이 엿보이기도 한다. 도큐호텔뿐만 아니라 대사관저나 유유제약 안양공장(현 김중업건축박물관, 1959), 진해해군공관(1968) 등 많은 작품에서 나타났던 요소다.

윤: 구축적 구조체라는 측면에서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중업의 건물도 구조가 밖에 나와 있다. 거기에는 실제 구조적 역할을 하는 요소뿐 아니라, 이를 더 강조해서 나타내려는 부가적 ‘표현’도 함께 있다. 우리가 설계할 때 모듈(기둥 간격)을 맞추고, 라투르와 파빌리온의 건축 면적도 맞췄다. 서로 관계가 있는 거다. 그러니까 파빌리온과 비교할 때 색, 재료처럼 다른 점도 있지만 동시에 모듈, 리듬처럼 통일된 점도 공존한다.

최: 프랑스대사관이 굉장히 중요한 작품인데 접근이 통제돼서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건축계에서 갖는 의미와 위상에 대해 잘 모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전면도로에서 그 극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게 됐는데, 1960년대 초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걸 알면 놀랄 것이다. (웃음) 열악한 환경과 시스템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는 뛰어난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앞서 영화 이야기도 나왔는데, 한국 영화계에서도 1960년에 만들어진 김기영 감독의 ‘하녀’ 가 우리의 자존심을 살려주지 않나?

조: 맞다. 새로운 앙상블을 통해서 보는 현재의 풍경이라고 할까. 일본을 대표하는 모더니즘 건축가의 건물은 양도 많고 잘 보존되어 현재도 잘 쓰이고 있다. 우리에게 김중업, 김종성 같은 건축가가 없었다면, 한국에서 서구 모더니즘 건축은 남의 얘기, ‘카더라’로 전달받아야 되는 상황이지 않은가? 당시 세계 근대건축의 진앙지에서, 근대건축 대가들의 말년과 한국의 직접적인 접점을 만들었다는 점만으로도 그들의 위치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윤: 파빌리온을 원작과 동일하게 복원한 것은 근대건축문화유산에 대한 지극한 존경의 표시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고대 역사유산을 재건하듯 근대건축 문화유산을 복원했다. 이는 교토의 긴카쿠지(金閣寺)나 서울의 남대문처럼 화재 이후에 동일하게 재건축된 사건들을 상기시킨다. 김중업 원작을 복원한 파빌리온의 콘크리트 지붕을 타설했을 때, 비로소 파빌리온은 한국 근대성의 상징적 기념물이 됐다. 

최: 자본의 논리보다는 문화적 존중에 기반한 프로젝트로서는 최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기에,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다. 그 결과물에 여전히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점은 아쉽다. 

조: 프랑스대사관에 대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공공성을 띤 문화시설을 전면 공지에 만들어 현재 통제되어 있는 정원과 대사관 모습을 시각적으로나마 연결하는 것이다. 사실 페논 대사가 대사관 앞길을 프랑스길로 지정한 바 있는데, 대사관과 도시의 단절된 관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도시의 상황을 ‘움직이는 과녁’ 같다고 생각하는데, 서산부인과(현 아리움 사옥, 1967)처럼 현재 남아 있는 근현대건축물 역시 주변 맥락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그 자체로 폭력적이라 느껴지는 주변의 힘에 위협 당하는 상황에 있다. 서양에서 말하는 ‘맥락’은 우리보다 밀도가 낮은 상황에서 주변 도시 환경을 ‘고정태’로 보고 이상화하며 나온 담론이다. 반면 프랑스대사관은 서울만의 특수한 지난 60년의 상황, 즉 급속하게 천지개벽하며 도시의 담론화가 이뤄지지 않은 맥락에서 소멸할 뻔한 대상을 다루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팽배해 통제가 어려운 세상을 이해하며 건축적으로 적절하게 대응하는 게 건축가들에게 중요한 과제이지 않은가.

윤: 나는 ‘교포’로서 프랑스와 한국 두 나라에서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독특한 두 문화 간의 관계를 직접 경험했다. 1990년대 초반 프랑스 내 한국문화원을 다녔던 기억을 포함해 내면에 강하게 깔려 있는 프랑스-한국의 이중 문화 배경을 바탕으로, 나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는 프랑스대사관 프로젝트에 건축가로서 기여하게 돼 자랑스럽다. 현재 준공된 프로젝트를 넘어서, 중구 합동 30번지 대지는 여전히 프랑스와 한국의 관계를 한 걸음 더 가깝게 해줄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대사관을 도시로 개방하는 창구가 될 프랑스문화원이 전면도로를 따라 위치하게 된다면 한국과 프랑스의 대중들을 맞이하고, 프랑스 문화를 전파하는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주한 프랑스대사관 아카이브 사진 / Image courtesy of Kimchungup Architecture Museum

 

 

월간 「SPACE(공간)」 671호(2023년 10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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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구
강준구는 2009년 매스스터디스에 합류하여 2016년부터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현대건설 종합건축설계실을 거쳐 이타미준 건축연구소 서울 사무실의 창립을 도왔으며 학고재 갤러리, 핀크스 미술관(수, 풍, 석, 지중 미술관), 제주 비오토피아 타운하우스 마스터플랜을 담당하며 건축가로서 경험을 쌓았다. 이후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파이브플러스디자인(LA)에서 실무 경력을 쌓은 뒤 귀국해 매스스터디스에 입사했다. 이후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라이브러리파크, 마운트 파빌리아, 스페이스K 미술관, 페이스 갤러리 서울, 주한 프랑스대사관 신축 및 리노베이션을 담당했다. 현재는 당인리 문화발전소, 밤섬생태관찰데크 외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 중이다.
윤태훈
윤태훈은 ‘도시와 건축을 향한 인본적 접근’이란 모토 아래 2011년 프랑스 파리에서 SATHY를 설립했다. 서울에서 조각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2세 때 파리로 건너간 뒤 프랑스 벨빌 국립 우등 건축학교에서 수학했다. 이후 크리스티앙 드빌러, 안드레 로티, 미셸 코라주 등의 사무실에서 실무를 쌓았고, 유럽 공모전 ‘유로판 에이트(Europan 8)’에서 수상했다. 그는 다른 주체적 관점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며 자신의 사무소 역시 ‘건축, 도시계획, 참여 프로그램’ 세 개 축으로 설명한다. 6년간 프랑스 그르노블의 플로베르 생태지구 내 친환경건축을 기본 개념으로 한 시민 참여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 밖에 여러 도시재개발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몽골 울란바토르와 서울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조민석
조민석은 2003년 서울에서 매스스터디스를 설립했다. 사회 문화 및 도시 연구를 통해 새로운 건축적 담론을 제시하는 그의 대표작으로는 픽셀 하우스, 실종된 매트릭스, 다발 매트릭스, 상하이 엑스포 2010: 한국관, 다음 스페이스 닷 원, 티스톤/이니스프리,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 돔-이노, 대전대학교 기숙사, 스페이스K 미술관, 페이스 갤러리 서울, 원불교 원남교당, 주한 프랑스대사관 신축 및 리노베이션 등이 있다. 현재는 설계공모 당선작인 서울영화센터, 당인리 문화발전소, 양동구역 보행로 조성사업과 연희 공공주택 복합시설이 진행 중이다. 그는 2011년 광주디자인 비엔날레 전시를 공동 기획했고, 2014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큐레이터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2014년 삼성 플라토 미술관에서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 개인전 등 다수의 전시와 강의를 하며 활동하고 있다.
최원준
최원준은 숭실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건축 역사, 이론,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이로재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를 진행했다. 최근 공저로 『김종성 구술집』(2018), 『유걸 구술집』(2020), 『우리가 그려온 미래: 한국 현대건축 100년』(2022) 등이 있다. 공동 큐레이터로 〈Sections of Autonomy: Six Korean Architects〉(2017)와 〈Cosmopolitan Look: Contemporary Korean Architecture 1989-2019〉(2019) 전시회를 기획했으며, 현재 목천건축 아카이브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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