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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케이션랜드를 찾아서

이지윤 기자
사진
김진호
자료제공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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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라는 말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빼곡히 채워진 업무와 일상 속에서 숨을 틔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동경 때문일까? 어딘가로 훌쩍 떠나 모든 것을 잊고, 다시 돌아왔을 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그런 곳을 우리는 꿈꾼다. 지난 7월 19일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이하 플랫폼엘)에서 열린 <베케이션랜드>는 휴가의 의미를 해석한 전시다. 작가들은 베케이션랜드(휴양지)라는 주제를 해석해 오브제, 평면 드로잉 등의 작업을 전시한다. 입장하는 관람객들에게 놀이동산 입장을 연상시키는 팔찌를 차게 하고,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로 전시를 하나의 섬으로 형상화한 지도를 나눠주어 휴양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 전시는 플랫폼엘의 공간 연구 기획전 시리즈로 개최된 전시이기도 하다. 마당을 중심으로 주변에 띠를 두르듯 한 플랫폼엘에 대해 이정훈(조호건축사사무소 대표)은 “서울 강남의 일반주거지역(건폐율 60%, 용적률 150%)이라는 조건과 비정형적인 대지 조건 속에서 요구된 프로그램을 채우는 방식과 그것의 의미를 잇는 비움에 관해 고민한 프로젝트” (「SPACE(공간)」 586호 참고)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솝(플랫폼엘 홍보컨텐츠 팀장)은 “2016년 개관 이후 공간을 운영하다 보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이에 <베케이션랜드>는 작품 설치, 공간 활용 등 전시장 사용 중에 발생한 고민들을 해소하고자 작가들에게 전시 공간을 배정하고, 휴양지를 주제로 그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청했다. 이솝의 설명대로 “작가들의 아이디어로 이 문제들에 대한 예술적 대안을 찾아나가고자”한 것이다.

베케이션랜드라는 전시 제목은 우리가 생각하는 휴양지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공간에 대한 작가들의 해석과 휴가라는 주제가 맞물려 만들어내는 베케이션랜드는 어떤 곳이며, 우리는 이곳에서 어떤 경험과 마주하게 될까? 

 

박길종, ‘갸우뚱’, 혼합매체, 가변크기, 2018


평범한 오브제로 만들어지는 특별한 휴양지

‘여러 복합적인 프로그램들의 잠재적인 확장 공간이자 각 공간들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구심점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됐던 1층 중정과 관련해 제기된 문제는 비, 바람 등에 그대로 노출되어 외부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마당이라는 외부 공간이 전시장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플랫폼엘 측의 기대와 고민을 박길종과 김윤하는 놀이기구와 ‘예쁜 쓰레기’로 풀었다. 길종상가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활동해온 박길종은 공간의 목적, 용도에 어울리는 크고 작은 물건들을 만들어왔다. 이번에는 플랫폼엘의 중정에 흔들의자와 다람쥐통 놀이기구를 조합한 이동형 벤치를 만들었다. 놀이기구를 설치해 마당의 넓은 공간을 놀이터로 만든 것이다. 둥그런 형태의 벤치는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쉽게 기울지만 두 명이 마주 앉으면 균형을 잡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게끔 제작됐다. 지붕이 있어 비가 오더라도 젖지 않는다. 박길종의 ‘갸우뚱’을 흔들면 ‘앉으면 넘어지지 않을까? 이곳이 전시장이 될 수 있다고?’ 등 불안과 의심으로 갸우뚱거리던 마음이 이내 증발되어 버린다. ‘갸우뚱’의 힘이다. 어린 시절 온전히 재미와 즐거움에 몸을 맡겼던 기억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휴양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 아닐까. 

김윤하는 죽부인, 부채, 세숫대야, 걸레 등 일상의 오브제를 결합해 일광욕을 하는 듯한 작품(‘비치용 비치’)을 만들었다. 대형 선풍기 모양으로 배치된 색색의 부채를 앞에 두고, 흔들의자에는 죽부인을 쌓았다. 파란 걸레와 파라솔, 오리 인형을 결합해 흐르는 폭포에 발을 담근 오리도 나타냈다. 작가가 ‘예쁜 쓰레기’라고도 부르는 이 오브제들은 마치 사람처럼 보인다. 세숫대야엔 거울을 넣어서 파란 하늘이 그대로 반사되게 해 물보다 더 시원해 보인다. “전시 제목을 듣고 휴가지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고, 비치(해변)와 비치(비치하다)의 동음이의어가 갖는 재미를 표현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여름철 휴가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오브제들, 한 철 쓰고 버려지는 어떤 것들,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구매하고는 쓸모를 다하지 못하는 것 등을 조합해 이상하고 재미있는, 어쩌면 기이하고 쓸모없는 모습의 ‘비치용 비치’를 만들고자 했다”는 김윤하는 ‘예쁜 쓰레기’를 즐거움과 여유가 가득한 사람으로, 태양이 내리쬐는 마당을 해변가로 만들고자 노력하며 ‘쓸모없음’에 의미를 더하고자 의도한 듯 보인다. 비워져 있는 무용의 시간이나 나름의 의미를 갖는 휴가의 또 다른 은유다. 

2층에 설치된 베리띵즈와 신선혜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 앤 유 아 데어(Close Your Eyes and You Are There)’는 오브제를 이용해 캠핑카를 연상시키는 가구를 만들고 휴양지 사진과 영상 등을 활용해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감을 담았다. 여행 중 차창 밖 풍경을 이루던 벼는 가구의 살과 푹신한 매트 위 여러 군데에 심겨져 있다. 직설적인 오브제의 대입처럼 보이나 유머러스한 접근으로 재미를 더한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창밖 풍경을 담은 영상 앞에는 테이블을 놓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끔 의도했다. 잘 익은 과일과 고무장갑, 대야가 놓인 사진, 튀어 오르는 용수철 등의 사진은 여행 풍경의 분위기를 맞추는 변주가 된다. 함께 놓인 차 번호판, 돌 등의 오브제는 모두 누워 있다. 축 처진 채 쉼을 즐기는 모습이다. 세 작업은 평범한 일상의 오브제를 이용해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외부 공간 또는 제한된 내부의 공간에서도 휴가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김윤하는 여름의 휴가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오브제들, 한 철 쓰고 버려지는 어떤 것들,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구매하고는 쓸모를 다하지 못하는 것 등을 조합해 이상하면서도 재미있는 모습의 ‘비치용 비치’를 만들고자 했다.

 

2층에 설치된 베리띵즈와 신선혜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 앤 유 아 데어’는 오브제를 이용해 캠핑카를 연상시키는 가구를 만들고 사진, 영상 등을 활용해 여행의 추억, 휴양지 사진에서 느껴지는 대리만족감 등을 담았다. 

 

결핍을 채우는 상상의 공간 

플랫폼엘은 일반적인 전시 공간에 비해 층고가 낮고 화이트큐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사각형 형태에서 벗어나 일부 모서리가 둥글게 돌아가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지연은 라인테이프를 이용해 답답해 보일 수 있는 전시 공간을 상상의 공간(‘공간드로잉 2018_심심한 상상’)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작가는 전시장 곳곳에 걸린 하얀 캔버스 패널 위에 라인테이프를 붙여 계단을 표현했다. 캔버스에 나타난 기하학적 문양의 계단은 바닥과 흰 벽에도 선으로 이어지며, 전시장 밖으로까지 뻗어나가 좁아 보이던 공간이 더 큰 깊이감과 공간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작가는 곳곳에 방석을​ 두어 관람객들이 앉아서 쉬면서 라인테이프로 만들어진 작품을 보게 했다. 라인테이프로 나누고 분리되는 그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게 해 전시장이 아닌, 그 너머의 다른 곳으로 이끄는 방식이다.

김미수와 이광호는 ‘플랜트 레스팅 룸(Plant Resting Room)’을 만들었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스스로를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순간”이 베케이션랜드라고 말한 김미수의 인터뷰에서는 포근한 곳에 노곤한 몸과 마음을 기대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묻어나온다. 김미수와 이광호는 뜨개질로 니트 옷을 만들어 나뭇가지에 입혀주었다. 뜨개질로 만든 ‘니트 식물’을 하얀 매트리스 안에 심기도 하고 이불을 덮어 포근히 감싸기도 한다. 모두가 늘어져 있는 이 방 안에는 조명마저 늘어져 있다. 길게 늘어진 전선은 니트 형태로 짜여 매트리스 위에서 자고 있는 식물들이 너무 뜨거울 새라 그늘을 드리운다. 아무런 긴장감이나 급박함, 초조함 없이 매트 위에 안락하게 늘어져 있는 오브제들은 휴양을 편안함의 공간으로 해석한 결과다. 예전에는 사무실로 쓰였다는 이 공간은 지금은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다. 좁고 작은 회색 벽의 공간 분위기와 두 팔을 다 벌린 채 이불에 싸여 있는 니트 식물 작업은 함께 어울려 포근함과 아늑한 느낌을 더한다. 직접적이지만 효과적인 방식으로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지연은 전시장 곳곳에 걸린 하얀 캔버스 패널 위에 라인테이프를 붙여 계단을 표현했다. 캔버스에 나타난 기하학적 문양의 계단은 바닥과 흰 벽에도 선으로 이어지며, 전시장 밖으로까지 뻗어나가 좁아 보이던 공간이 더 큰 깊이감과 공간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김미수와 이광호는 뜨개질로 니트 옷을 만들어 나뭇가지에 입혀주었다. 아무런 긴장감이나 급박함, 초조함 없이 매트 위에 안락하게 늘어져 있는 오브제들은 휴양을 편안함의 공간으로 해석한 결과다. 

 

지금 여기, 베케이션랜드

전시 동선은 관객들을 다시 중정으로 이끈다. 하지만 전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 ‘머신룸’으로 내려가면 마치 지하세계처럼 빛이 차단된 어두운 방에 기계 소리만 웅웅 들린다. 원래는 기계실이었던 작은 이 공간 가운데에 작가는 조명을 설치하고 그 위에 아크릴 패널을 달아 ‘내면의 신전’이라 이름 붙였다. 패널 위에는 다양한 색이 반사되며 오묘한 분위기를 빚어내 지하의 어둡고 습한 공간이 변화한다. 외부 소음과 무관하게 홀로 빛나는 신전 형태의 구조물은 외부의 흔들림에 동요하지 않고 내면 깊이 자리 잡은 개인의 중심 공간에 대한 효과적인 상징과 같다. 그리고 관람객이 공간에 몰입하는 경험을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경험으로 전환한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채는 것, 그리고 그 내면의 이야기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베케이션랜드”라고 말한 박여주의 언급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 이유다.

<베케이션랜드>에서는 공간의 구조적 변형이나 리모델링 없이도 예술 작품을 통해 기존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 새로운 해석이 돋보인다. 멀리 떠나거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수는 없어도, 일상의 사물을 재미난 형태로 만들고 공간 너머를 상상하게 함으로써 의미와 재미를 더하고 낯설고 특별하게 보게 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지금 여기를 베케이션랜드로 만드는 것, 미술이 일상에 휴식과 활력을 주는 방식 중 하나다.​ 

 

박여주, ‘내면의 신전’, 혼합매체, 가변크기,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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