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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작은 공간의 가능성: 에스아이 건축사사무소, 다주로, 이영현

18기 SPACE 학생기자(강원희, 김민형, 라해린, 신효근)
자료제공
에스아이 건축사사무소, 다주로, 이영현
진행
한가람 기자

디자인 의자는 시대 양식과 기술적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작가의 철학을 담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건축가에게는 설계 초기 단계부터 구상한 이미지를 완성해줄 마침표가 되어주고, 공간 디자이너에게는 표현의 자유를 선사한다. 가구를 다루는 작가에게는 의자 자체가 커다란 공간으로서의 흰 도화지와 같다. 공간을 자신을 감싸는 영역으로 정의한다면, 가장 작은 공간은 의자일 것이다. 각자의 목적과 의도가 서로 다를지라도 작은 공간 세계를 드러내는 의자는 공간을 점유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담는다. 이번 기사에서는 건축, 공간 디자인, 미술 분야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로 의자를 바라보는 관점과 작은 공간의 가능성을 재조명한다.

 

‘소싯적’(2019) 시리즈 / Image courtesy of Lee Yeonghyeon 

 

​인터뷰 

정수진 에스아이 건축사사무소 대표 / 노우영, 이준형, 정담우 다주로 공동대표 / 이영현​​ × 18기 SPACE 학생기자(강원희, 김민형, 라해린, 신효근)​

*본 기사는 PC 환경 혹은 모바일 기기의 가로 화면으로 보기를 권장합니다.

 

정수진(에스아이 건축사사무소 대표)은 건축 설계와 함께 가구 디자인을 다루고 있다. 지난 8월까지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건축가의 관점들: 건축과 가구적 모색〉 전시에 참가했다.

노우영, 이준형, 정담우(다주로 공동대표)는 레스토랑 슬로우야드(2022)의 조명과 의자, 아홉 점의 가구 연작 ‘스투파’ 시리즈(2020~2021)와 같이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작업해 온 디자인 스튜디오다. 

이영현은 ‘소싯적(The Youth)’(2019) 시리즈를 시작으로 ‘드럼’(2019), ‘매스’(2020) 등 특유의 투박함과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가구 디자이너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초곡리에서 이영현으로 활동명을 바꿨다. 

학생기자: 의자 중 대표할 만한 작업을 꼽자면?

정수진(정): 작업실에서 쓰고 있는 소파와 〈건축가의 관점들: 건축과 가구적 모색〉에서 선보였던 의자다. 의자는 널브러지는 용도와 일하는 용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그중 소파는 널브러지기 위한 의자다. 좌석을 깊게 들이고, 침대에 사용하는 라텍스 소재를 사용한 것도 그 이유다. 전시했던 의자나 지금 앉아있는 의자는 일할 때 쓰는 용도라 딱딱하다. 집중도를 높이고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 회의를 일찍 끝낼 수 있다. (웃음)

 


자연(2018)의 식당 식탁과 의자 / Image courtesy of Jung Sujin

노우영, 이준형, 정담우(다주로): ‘스투파’ 시리즈 중 ‘티안(tian)’과 ‘투(tu)’가 대표작이다. 클라이언트 의뢰나 납품 목적이 아닌 초창기 스튜디오의 정체성을 잡는 과정에서 나온 의자들이다. 기억과 관련된 작업을 많이 하는데, 당시 키워드는 생명력과 염원을 담은 마음이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어떻게 하면 기억에 반응하기 좋을지 고민했고 전통이 담긴 시대상을 이야기의 틀로 정했다. 특히 동아시아의 시대상을 떠올리며 각 요소를 추출해 작품에 다양하게 녹여냈다. 특정 국가가 아닌 동아시아 전반의 전통 요소들을 끌어와 우리 안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영현(이): ‘소싯적(The Youth)’ 시리즈의 파란색 레진 의자다. 초곡리 마을을 돌아다니다 길가에 버려진 의자를 보고 시작한 작업이다. 의자들은 원래의 형태와 용도를 잃고 폐기될 위기에 처해있었지만,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은 남아있었다. 단순히 의자를 고치는 행위에서 더 나아가, 각 의자들이 가진 가장 빛나던 순간들을 회상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기억을 새기고자 했다. 작품에 반짝이고 컬러감 있는 레진을 사용하고, 시리즈 이름을 ‘소싯적’으로 정한 이유도 의자의 찬란했던 순간을 조명하기 위함이었다.

학생기자: ​의자 역시 건축처럼 3요소(기능, 구조, 미)의 적절한 조화가 중요할 것 같다. 대표작에서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나?

정: 아무리 세 요소의 중요성이 등가라 해도 나에게는 미가 최고다. 구조가 용인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미적인 형태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건축가 관점에서 가구의 숨겨진 이면도 결국 또 다른 입면이기에 직접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 디테일을 챙긴다. 몸이나 물건의 하중을 지탱해야 하는 가구, 의자의 좌판이나 테이블 등의 상판 하부에는 구조적 이유로 보강재가 많이 사용되는데, 나는 보강재를 덧붙이는 방식을 지양한다. 따라서 앞서 대표작으로 꼽은 소파를 제작할 때는 철을 용접해 프레임을 만들고 결구법으로 나무를 끼워서 맞췄다. 옳고 그름이나 방식의 문제라기보다는, 내 모든 작업은 결국 기능과 구조가 최종 결과물의 아름다움과 동등한 조건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다주로: 작업하기 전에 대주제를 놓고 여러 생각을 던져 놓는다. 그중에서 우리가 기능, 구조, 미로 실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선정된다. 그러다 보니 세 가지를 따로 떼어 놓고 바라보지 않는다. ‘티안’을 작업할 때 중요한 키워드는 염원이었다. 이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해 무언가 담는 기능을 추가했다. 철로 만든 얇은 구조체가 나무 덩어리를 떠받든 모습은 언뜻 보면 불안정하고 비현실적이라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스투파’ 시리즈는 형태적으로 아시아의 사례를 많이 따랐는데, 구성원이 작업하면서 공통의 ‘익숙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탐구한 부분이다. 기능, 구조, 미 모두가 콘셉트를 더욱 잘 실현하기 위해 모인다. 

 

‘스투파’ 시리즈(2020~2021)의 ‘티안’ / Image courtesy of dajuro

이: ‘소싯적’ 시리즈를 작업하면서 세 가지 요소를 염두에 두고 진행하지는 않았다. 의자들의 기억을 회상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수집한 의자들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를 최대한 표현하기 위한 방식을 사용했다. 이미지는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연상되기 때문에 소재가 떠오를 때도 있고 형태가 떠오를 때도 있다. 소재가 먼저 생각날 때는 주로 미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고 작업한다. 삭은 나무 의자 프레임에 유리 섬유를 덮은 작업이 있는데 기능만 생각했다면 수리를 했겠지만, 심미적 측면을 고려해 장식적 요소를 넣어가며 형태를 구성했다. 반대로 사용 목적에 따라 기능이 우선될 때도 있다. 2021년에 카페를 위해 작업한 ‘소싯적’ 시리즈는 35개의 버려진 의자를 재활용하는 작업이었다. 내가 작업했던 작품 중에는 앉지 못하는 의자도 있고, 적당히 앉기 편안한 의자도 있다. 하지만 이 작업은 실제 손님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보다 안정적이어야 했다. 기능과 구조를 주안으로 삼고 소재 자체에 집중했다. 

학생기자: ​그 의자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어떤 가치를 가지길 바랐나?

정: 보통 집주인은 손님에게 집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은 곳에 자리를 내어 준다. 그리고 그곳에는 가장 예쁘고 편안한 의자가 있다. 건축가에 의해 가구까지 디자인돼 공간이 완성된 경우에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까지 설계가 됐다고 볼 수 있다. 가구가 기능적인 측면을 너머 공간이나 거주자의 생활에까지 적절히 스며들어서다. 그것이 내가 건축과 인테리어를 별개로 바라보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건축가는 공간을 디자인하기에 공간의 분위기를 생각하며 가구의 이미지도 함께 상상한다. 어디에 위치하고 어디를 향해 어떻게 머물게 할지를 고심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의자는 머무는 장소의 특성을 담을 수 밖에 없다.

다주로: 토템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의자는 사람과 물리적으로 가장 밀접한 가구여서 심적으로도 가깝다. 단순한 의자처럼 보일지라도 앉는 행위에 더해 공감각적 상호작용을 불러일으킨다면, 가구보다 하나의 오브제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슬로우야드에서는 의자에 공간의 이미지나 콘셉트가 녹아들도록 했고, ‘스투파’ 시리즈의 경우 가구를 해체하고 체결하는 방식에서 의식 장치를 넣어 사람과 가구가 상호 작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소싯적’ 시리즈를 만들고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앉아도 돼요?”다. 물론 앉아도 되지만, 단순히 앉기만 하는 의자는 아니길 바랐다. 각자의 의자에 대한 생각과 기억을 대입해 줬으면 했다. 사람들은 의자를 보고 떠오르는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그 상황 속 의자를 바라본다. 사실 기능과 구조 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 오래 앉아있을 용도로 내 의자를 사진 않을 것이다. 의자를 선택할 때 각자의 용도와 상황이 있듯이 사용자에게 간 이상, 용도를 결정하는 건 사용자의 몫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중하게 다뤄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학생기자: 건축설계 과정의 어느 시점부터 의자 제작 혹은 배치를 고려하나?

정: 가구를 건축의 일부로 보기에 건축설계 초기 단계에서부터 어떤 느낌의 의자를 어디에 배치할지를 구상한다. 주택 프로젝트의 경우 건축주와의 초기 상담에서 이사 시 들고 갈 짐과 가구의 목록을 작성해 오라고 한다. 이에 따라 설계하는 방의 크기나 수납장의 수와 용도가 달라진다. 가구는 건축주의 공간에 대한 요구사항과 더불어 1순위다. 

층층집(2021)의 서재 데이베드 / Image courtesy of Jung Sujin 

슬로우야드(2022)의 의자 / Image courtesy of dajuro

학생기자: 의자가 어떻게 공간의 성격을 구체화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다주로: 주인공이 되거나 녹아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성당 벤치나 터미널 의자를 떠올려 보면 자연스레 그 의자가 놓인 공간이 그려진다. 할머니 의자, 왕의 의자처럼 시대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슬로우야드의 의자를 작업할 때 평면도를 먼저 받았었는데, 배치된 테이블과 모닥불을 보고 중세 시대 만찬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이 이미지를 구체화하면서 작업을 진행했다. 그 공간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조형이나 형태, 구성을 고민했고, 묵직함과 수직적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철을 쓰기로 했다. 의자가 주는 무게감으로 중요한 식사 자리와 같은 공간의 분위기를 끌어냈다. 

 

‘소싯적’(2019) 시리즈 / Image courtesy of Lee Yeonghyeon  

학생기자: 전시되는 의자와 사용하는 의자 간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 차이를 생각할 땐 기능성, 디자인, 재료, 환경, 가격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할 텐데, 나에게는 작가의 의도와 사용자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 전시용 아트 퍼니처는 시각적으로 감상이 주된 목적이고 실제 사용자의 체험은 강조되지 않기도 한다. 반면 실제 사용되는 의자는 편안함과 기능적인 사용자 경험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차이는 소유자가 쓰기 아까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지 않을까. 굉장히 마음에 드는 옷이나 가방도 쓰기 아까워하는 마음이 들듯이.

 

학생기자: 당신에게 의자는 어떤 의미인가? 의자가 지닌 가능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정: 형태가 똑같이 디자인된 의자라도 투명한 재질의 의자와 솔리드한 재질의 의자는 재료의 물성 차이로 인해 공간 분위기를 다르게 연출한다. 동시에 사람을 머무르게 하며 머무는 동안 사용자가 찬찬히 공간 분위기를 읽어내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특징은 건축가가 설계 초기 단계부터 구상한 공간 이미지와 그 분위기를 구현할 때 도움이 된다. 의자는 공간 성격을 규정하기에 공간을 완성하기 위한 마침표가 되어 준다.

다주로: 자유로운 매개체다. 다리 높이, 몸이 닿는 면적, 구조적 안정성과 같이 ‘앉기’의 조건만 갖추면 사람들은 대상을 의자로 인식한다. 이처럼 기준을 충족하기에 간단하고 이동하기도 편해서 우리의 생각을 수월하게 전달할 수 있다. 우리의 작품에 오브제와 같은 특별함을 부여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의자에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 스펙트럼이 넓어서 가능한 일이다. 거장이 의자를 디자인하는 것 또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담아낼 수 있어서이지 않을까.

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디자인의 창의성이다. 의자는 앉을 수 있는 기능 이상으로 사회적, 문화적, 기능적 측면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스툴이나 선반의 경우 활용의 다양성이 제한돼 있지만, 의자는 만드는 사람이나 소비자 입장에서도 고려할 것이 많다. 다리, 등받이, 팔걸이 등 여러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자는 가구 중에서 제일 어려운 작업이지만, 원하는 의도를 각자가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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