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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경계: 콘크리트는 콘크리트다

박정현
사진
노경
자료제공
네임리스 건축
진행
방유경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3년 9월호 (통권 670호)

 

언덕 위의 집 모형

 

언덕 위의 집(2023)은 구릉지에 조성된 단독주택단지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경사지를 그대로 살리지 못하고 평평한 필지로 바꾸어야 하는 법규 때문에 평활한 마당에 작게 남아 있는 언덕은 자연적이면서 인공적이다. 명쾌하고 간결한 평면을 지닌 직사각형 매스 두 개가 수직으로 만나는데, 그중 하나는 마당의 작은 언덕 위에 걸쳐 있다. 땅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콘크리트 구조물은 대단히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대지 위에 올라서 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지만, 건물은 급한 경사를 지닌 땅을 적극 활용하는 편은 아니다. 전작인 아홉칸 집(2018, 「SPACE(공간)」 605호 참고)에서처럼 땅은 땅이고 건물은 건물이다. 거푸집의 흔적을 지우지 않은 표면은 이 매스가 하나의 덩어리라는 인상을 지운다. 개구부의 높이와 간격, 보의 위치와 슬래브의 위치와 두께를 거푸집의 모듈과 조율해 생긴 이 흔적은 콘크리트 판재를 조립해 쌓은 흔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구조적으로 바닥과 벽 모두가 하나의 덩어리라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건물은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부재가 접합되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네임리스 건축의 모형에서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집이 건식을 모사했다는 말은 아니다. 콘크리트라는 재료를 더 분명하게 강조한다. 나무 같은 별도의 마감재 없이 외부의 물성이 그대로 이어지는 바닥, 내단열을 위해 외기와 면하는 벽을 제외한 벽과 계단은 외벽과 동일하다. 여기에 금속으로 만든 부엌 가구와 계단 난간, 카펫과 커튼 같은 패브릭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이 더해져 이 건물에서 건축 재료 날것의 물질성은 폭발한다. 외부에서 눈으로 감지하는 것과 내부에서 발과 몸의 촉감으로 느끼는 감각 사이의 간극이 무척 좁다. 안도 다다오가 콘크리트를 20세기 산업사회의 대리석으로 승화시키려고 했다면, 여기서 콘크리트는 콘크리트다. 마당의 작은 언덕 위에 올라탄 매스를 강조하기 위한 콘크리트 구조물 지지벽은 거칠게 표면을 다듬은 골재의 집적체라는 콘크리트의 다른 면, 보통은 숨기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마당의 영역을 분할한다.

재료와 물질의 성격을 강조하고 구조와 부재의 속성을 대조하려는 네임리스 건축의 접근은 콘크리트월(2023)에서 한층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콘크리트월은 서울을 둘러싸고 경쟁하듯 들어서는 카페의 유행에 속해 있으면서도 조금 빗겨 있다. 일상 중에 오가며 우연히 들를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위치와 메뉴, 전망을 확인하고 최종 목적지로 찾는 카페, 음료와 디저트 이상으로 이미지를 파는 장소다.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와 ‘좋아요’를 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강, 바다, 기암절벽 등을 바라볼 수 있는 대지를 찾는 일이다. 이럴 때 건축가의 임무는 가능한 한 모두가 ‘뷰’를 바라보고 앉을 수 있도록 평면을 계획하고 입면에 커다란 창을 두는 일이다. 빼어난 전망은 건축적 장치를 간단히 압도한다. 건축은 ‘뷰’를 위한 전망대와 인스타그램을 위한 배경, 이중의 미디어로 기능할 뿐이다. ​ 콘크리트월은 다행히 (어쩌면 불행히) 청풍호를 면해 있지만, 대지에서 호수 전망을 막는 작은 둔덕의 방해를 받는다. 때문에 네임리스 건축은 호수를 바라보기 위해 카페를 배치할 수 없었다. 바꾸어 말하면 다른 선택지를 지닐 수 있었고, 그것은 벽, 계단, 창 등 건축물을 먼저 대면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들은 대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주차장을 두고, 한 층 아래에서 카페로 들어가게 배치했다. 계단을 내려가 주문하는 곳에서 먼저 마주하는 것은 낯선 콘크리트 벽이다. 한쪽 끝에서 부어 사선으로 흘러내린 벽, 여기에 끼워진 창은 강한 대조를 낳으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매끈한 콘크리트의 표면을 고압 세척기로 벗겨내 거친 질감을 강조했다. 콘크리트는 작은 골재와 고운 시멘트와 물을 섞은 액체가 굳어져 만들어진 인공적인 ‘돌’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듯하다. 이 사선 벽을 비롯해 콘크리트월의 벽은 모두 치핑(chipping)한 콘크리트다. 반면 바닥과 천장은 매끈한 콘크리트다. 모든 것이 한 덩어리를 이루는 철근콘크리트 구조에서 벽과 슬래브는, 이 지점에서 다시 시각적으로 구분된다. 

 


콘크리트월 모형 Models of CONCRETEWALL 

 

주문한 음료와 빵을 들고 좌석이 있는 한 층 위로 올라가려면 폭이 5m 남짓한 작은 외부 공간을 거쳐야 한다. 이 공간의 지붕에 뚫린 다각형 구멍은 스위스 건축가 발레리오 올지아티의 바레인 진주채취길 방문자센터(2019)의 지붕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공간을 구성하는 여러 나머지 요소들은 콘크리트월의 논리를 일관되게 따른다. 다각형 구멍을 통해 내려온 빛은 벽과 둥근 자연석 주위로 떨어진다. 인공 대 자연, 콘크리트 대 자연석, 그늘과 빛 같은 대조는 이 공간을 에워싸고 배치된 모든 장치에서 반복된다. 건축가들이 직접 만든 벤치도 이 대비를 한몫 거든다. 직육면체 수직 부재 위에 같은 두께의 긴 수평 부재를 무심하게 올려둔 듯한 벤치는 거친 벽, 둥근 자연석과 대조를 이루며 공간을 점한다. 1960년대 중반 미니멀리스트 아트,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로버트 모리스나 도널드 저드의 작업을 연상시키지만, 수직 부재를 어긋나게 배치함으로써 단순한 형태의 반복이 아니라 수직, 수평 부재의 역할이 다름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저마다의 물성과 형태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 다성적 공간을 지나, 좌석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면 다른 변주가 펼쳐진다. 거친 마감의 벽은 실내와 실외를 가로질러 건물 경계를 확장하면서 뻗어나간다. 이 벽의 아래위에 같은 크기로 배치된 바닥과 천장 슬래브, 그 사이에 끼워진 유리는 거의 온전한 상하대칭을 이루며 반사와 투영을 동시에 빚어낸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1920년대 벽돌 주택이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거친 벽을 뚫고 떨어지는 물, 작은 못은 물소리와 빛의 산란을 더하며, 미스적 공간의 엄밀함을 깨뜨린다. 각형 철재를 이용한 스툴에서도 미니멀 아트에 대한 건축가들의 선호를 엿볼 수 있다.

건물 전체로 시선을 돌리면, 콘크리트월은 두 개의 슬래브 사이에 끼워진 벽이라는 간단한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사에 따라 나뉘고, 두 동으로 분리된 이 건물에서 바닥보다 (건물 이름처럼) 벽이 공간을 구획하고 조정하며 정의한다. 음료를 들고 자리를 찾아 앉으면 다각형 구멍이 난 슬래브 위에 또 다른 자연석이 배치되어 있고 이곳이 호숫가라는 사실을 새삼 알아차리게 된다. 콘크리트 벽으로 조율한 뒤 자연 속에 놓인 콘크리트 판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주택이나 카페처럼 개인의 취향과 선호에 좌우되기 힘든 학교시설, 거친 콘크리트에 비해 물성을 과시하기에 불리한 금속 재료를 사용한 동화고 어울림동(2022)에서도 이들의 노선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재료를 사용하기보다 하나의 재료에 집중하고, 각 부재가 맡은 역할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풍요로운 물성에 비해 금욕적이고 엄격하게 평면을 계획한다. 무척 일관된 방향이다. 철골 구조는 격자로 건물 전체의 윤곽을 결정하며 규칙적인 리듬감을 부여한다. 이에 반해 가벼운 골강판은 이곳이 체육관과 식당, 강당 등 오래 머무르지 않는 이벤트 장소라는 분위기를 전달한다. 목재로만 마감된 강당은 자체의 리듬감으로 외부의 리듬에 조응하면서 내부의 다른 공간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1970년대 만들어진 기초는 마치 제2의 자연처럼 프로젝트의 토대로 용했다. 내부도 비슷한 접근이다. 건물 전체를 받치는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은 콘크리트월의 벤치처럼 끝이 조금 튀어나오게 배치되어 있다. 기둥과 그 위의 구조물이 하나는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건물을 ‘읽는’ 행위의 유효성에 관한 질문을 잠시 유보하자면) 이 건물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먼저 네임리스 건축의 근작은 텍토닉과는 무관하다. 텍토닉의 의미가 고무줄처럼 늘어나 구축과 재료에 방점을 찍는 행위를 포괄하는 단어가 되어버렸지만, 텍토닉은 재료를 쌓아서 만들어내는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다. 여러 이질적인 재료와 요소들의 절합(節合), 이를 통해 물질에서 시작하지만 정신적(형식적, 미학적)으로 고양되는 인식 행위를 전제한다.▼1 ‘콘크리트는 콘크리트이고 벽은 벽이며 바닥은 바닥이다’를 강조하는, 바꾸어 말하면 동일한 재료를 통해 바닥과 벽을 구분하며 자연의 돌과 콘크리트가 사실상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콘크리트월은 오히려 비텍토닉적이다. 케네스 프램튼의 표현대로 텍토닉이 ‘구축의 시학’이라면, 네임리스 건축의 근작은 ‘드러냄의 기술’, (굳이 과거의 이론에서 도움을 구하자면) 사물 또는 대상을 이상화하지 않고 드러내는 리터럴리즘(literalism)에 더 가깝다.▼2 이러한 네임리스 건축의 시도는 미니멀 아트의 전략을 계속해서 환기시킨다. 좀 더 포괄적인 맥락에서 이 건물들은 대단히 포스트모던하다. 역사적 양식을 차용한 특정 작업을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 아닌, 현대건축 유산을 각자의 방식으로 전유하고 전복하는 1980년대 이후의 여러 모색과 실천을 포괄하는 포스트모던 말이다.▼3 (하략)

 


동화고 어울림동 모형 

 

1. 텍토닉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된 19세기 독일에서 텍토닉(tectonics)의 짝패가 (관념론) 미학(aesthetics)이었음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관련 논의는 Mitchell Schwarzer, German Architectural Theory and the Search for Modern Identit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5 참조.

2. 사물과 예술, 일상과 예술, 미술과 건축 사이의 경계와 구분을 둘러싸고 회전한 1960년대 중후반 미니멀 아트와 이와 건축의 관련성, 리터럴리즘의 기본적인 정의에 대해서는 Mark Linder, Nothing less than Literal: Architecture After Minimalism, Cambridge MA: MIT Press, 2004, p. 11 참조.

3. 해체, 디지털, 다이어그램부터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이 주축이 된 최근의 OOO(Object-Oriented Ontology, 일반적으로 객체 지향 존재론으로 번역)까지 언제나 현대건축이 준거점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해체는 포스트모던을 문제 삼지 않으며, 다이어그램은 해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대결하는 상대는 직전의 것이 아니라 20세기 초중반의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이다. 20세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당대의 실천은 여전히 이 유령과의 만남과 대결이다.

4. moholy-nagy, von material zu architektur, münchen: albert langen verlag, 1929, p. 211. 바우하우스 총서 14권으로 발간된 이 책은 독일어 명사 첫 글자를 대문자로 표기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출전과 인용에서도 대문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5. 이런 태도에 관해서는 네임리스 건축, 『완전히 불완전한 사전』, 공간서가, 2019 참조.

6. 미술 신에 등장한 돌에 대한 곽영빈의 글 ‘돌은 세계를 갖는가?: 동시대 (한국) 미술의 암석적 전회’는 좋은 참조점이 된다. 2022 부산 비엔날레 〈물결 위 우리〉 웹사이트(http://www.busanbiennale2022.org/learn/journal/2/doesa-stone-have-a-world-lithic-turn-of-contemporary-korean-art), 2023년 8월 7일 접속.

7. 미술관이나 들판의 돌은 새로운 관심을 환기시키고 담론과 사유를 촉발시키는 것으로 일차적인 역할을 완수했다고 할 수 있다.​​​ 

 

월간 「SPACE(공간)」 670호(2023년 9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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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박정현은 건축평론가로 대학에서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를 비롯해, 『전환기의 한국건축과 4.3그룹』(이하 공저), 『아키토피아의 실험』, 『중산층 시대의 디자인 문화』 등을 썼다.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 『건축의 고전적 언어』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201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을 비롯해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 등의 전시 기획에 참여했다.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도서출판 마티에서 편집장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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