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3년 7월호(통권 668호)
바온하우스 계단 ⓒGUUIJIN
[ESSAY] 건축은 건물인가 작품인가?
내가 군산 사람이 된 건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부터였다. 우리집의 사업이 잘되지 않아 아버지 고향인 군산으로 귀향을 간 건데, 아버지가 어렸을 때 살던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그 집에는 방이 두 개 있었는데, 작은방에는 이미 작은집 식구 넷이 살고 있었고, 큰방에 우리집 식구 넷이 살게 됐다. 남쪽에는 절벽으로 된 돌산이 있었고, 거기에 바짝 붙어 있는 완전 북향 집이었다. 재래식 화장실이 밖에 있었고, 각종 날벌레와 귀뚜라미가 화장실에 상주하고 있었다. 볼 일을 보러 갈 때면 라이터와 에프킬라를 들고 가서 그 무서운 녀석들을 처치하고 일을 치러야 했다. 다행히 집 안에 바퀴벌레는 없었다. 돈벌레와 지네가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작은집 식구들은 이사를 갔고, 작은방은 내 방이 되었다. 내 방에는 작은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있었는데 덕분에 나는 TV광이 됐다. 당시 MBC에서 방영한 ‘러브하우스’가 유행이었다. 전문가들이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해주는 일종의 봉사 프로그램이었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었는데, 사연을 보내서 우리집도 리모델링을 하고 싶단 생각을 종종 했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산 밑에 있던 우리집은 철거됐다. 더 이상 벚꽃 잎이 마당에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됐고, 대봉을 따서 우려먹는 일도 없어졌다. 지네를 잡을 일도 에프킬라를 갖고 화장실을 갈 일도 없어졌다. 겨울에 집에서 패딩조끼를 입을 일도 없어졌고, 여름에 샤워를 세 번 네 번 하는 일도 없어졌다. 철거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집은 단열재 없이 벽은 브로끄(시멘트 블록), 지붕은 슬레이트만 있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라는 대형 설계사무소에 입사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몇 만 평짜리 프로젝트를 함께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건축이 어쩌고저쩌고하고, 몇 십 억 몇 백 억 원을 쉽게쉽게 이야기했다. 회사에서의 나는 상상 속의 건축가였지만, 퇴근하고 나면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짜리 다가구주택에 사는 쭈구리였다. 집에서 하는 일이라곤 대학교 때부터 쓰던 컴퓨터로 피파 게임을 세 판씩 하고 잠자는 게 전부였다. 그 집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에어컨도 없었다. 보일러를 틀어도 따뜻하지 않았다. 비가 오면 가끔 비도 샜다. 벚꽃도 날리지 않았고, 감나무도 없었다. 내가 몇 만 평짜리 건물을 설계할 수 있을까? 이상했다. 집 안의 나와 집 밖의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계단실은 반 층씩 올라가는 꺾은 계단과 한 층을 한 번에 올라가는 곧은 계단으로 나뉜다. - 일반적인 두 종류의 계단실

두 개의 벽을 세워서 복도를 받치고, 벽의 양 옆으로 오픈 공간을 만들었다. 복도와 오픈 공간이 만나는 위쪽은 전용 공간으로 사용하고 아래쪽은 서비스 공간으로 사용한다. - 잠원동 근린생활시설 개념도(시공 중)

단위 영역을 긴 땅에 맞춰서 결합한다. 전용 공간과 서비스 공간은 복도를 통해 연결되고, 결합된 단위 영역은 상황에 맞게 다른 크기로 변형된다.- 잠원동 근린생활시설 개념도(시공 중)
“요즘 같은 세상에 세 달이면 건물도 새로 짓는데 뭐하고 있나 몰라. 저거 관공서 건물이라 일부러 길게 공사하고 세금 갉아먹는 거야.” 길가던 사람들이 리모델링하는 건물을 보면서 한마디씩 던진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세상이 된 것 같은데, 건축은 발전 없이 제자리인 것 같다. 웬만한 건물이 계단실 하나에 텅 빈 공간 하나가 전부다. 빌라도 그렇고 아파트도 그렇고, 사무실도 그렇고, 가게도 그렇다. 여전히 면적이 중요하고 편의만 중요하다. 형식이 중요하고 뷰가 좋은 것을 최고로 여긴다. 사용자에 대한 고려도 없고, 기능에 대한 고민도 없다. 아는 게 없어서 좋은 게 뭔지 모르는 상태. 이게 건축의 현재 모습이다.
영호(푸하하하프렌즈 팀장 그룹)가 그랬다. “예술가들이 자기만 들어갈 수 있는 모양의 구멍을 만든다면, 소장님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문을 만드는 것 같아요.” 나는 “잠깐만, 잠깐만”을 외치며 이면지에 받아 적었다. 영호의 말이 맞다. 나는 이미지나 감각에 의지하기보다는 건물을 구성하는 방식이나 체계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그 구성과 체계가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의 작업은 혼자 진지하고 유토피아적이다. 근린생활시설은 건물이 커지면서 전용 공간과 공용 공간이 함께 늘어난다. 보통의 근린생활시설은 넓은 공간의 전용 공간 하나가 건물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화장실, 회의실, 탕비실, 창고 등의 서비스 공간이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넓은 공간 하나를 만들고 쿨한 척하기보다 분명한 성격의 단위 영역과 변형이 가능한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계단실은 버리는 공간이다. 건물의 층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결과적으로 층을 나누고 있다. 법규에서 정한 크기보다 작아도 안 되고, 커도 안 되는 (비효율적 계획이라 평가됨) 절대적 공간. 화재 시 피난을 위해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계단판에 칼로리를 표시해놓고 ‘제발 사용해 달라’고 애원하는 게 전부다. 계단은 건물의 중요한 부분이다. 흔히들 코어라고 부르는데, 이름에 걸맞은 시도가 필요하다. 건물을 연결해야 하며, 층을 오가는 게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야 건물이 바르게 설 수 있고, 버리는 공간 없이 잘 사용할 수 있다. (글 한양규 / 진행 방유경 기자)

꺾은 계단을 크게 만들어서 건물 가운데 놓았다. 계단실이 커져서 넓은 바닥을 만들 수 있었고, 여럿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 바온하우스 개념도

가운데 있는 계단 옆으로 화장실과 엘리베이터를 대각선으로 배치해서 공용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ㄱ자와 ㄴ자 모양의 전용 공간은 반대쪽 대각선 방향으로 붙였다. 꺾은계단의 참을 활용해서 건물을 반 층씩 연결했고, 공간을 가깝게 사용할 수 있다. - 바온하우스 평면도

곧은 계단의 복도와 계단 사이를 벌려서 전용 공간에 바짝 붙였다. 계단만을 위한 복도를 건물 전체의 복도로 활용했다. 사이에 만들어진 오픈 공간은 건물의 실내 환경을 쾌적하게 한다. - 터101 빌딩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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