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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건축하기: 염상훈

18기 SPACE 학생기자
사진
김민형
자료제공
염상훈
진행
한가람 기자

건축은 가상으로 탐구된다. 실제 건축물이 지어지기 전까지 건축물은 도면과 모형이라는 약속된 의사소통 방식 안에서 가상의 성격을 띤 채로 만들어진다. 전통적인 건축 탐구방식에서 ‘메타버스’라는 이질적인 도구가 추가된 지금, 가상공간을 다루는 메타버스와 건축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건축을 탐구하는 도구로서 메타버스 나아가 가상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효과는 실재할까? 어떤 영역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염상훈(연세대학교 교수)은 가상공간을 활용하여 감성과 같은 정성적 가치를 정량화하는 연구 등 가상공간에 대한 고민을 거듭해 왔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가상공간이 건축을 탐구하는 영역에서 어떤 역할과 가치를 갖는지 들어보자.

 

책을 펼쳐 사례를 보여주는 염상훈 교수 ⓒ김민형​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건축하기 

인터뷰 염상훈 연세대학교 교수 × 18기 SPACE 학생기자(강원희, 김민형, 라해린, 신효근)

​ 

​학생기자: 「가상현실 (VR) 환경에서의 거리정확도에 관한 연구」(2021), 「VR과 EEG를 이용한 시각 및 비시각 감각(후각, 청각, 촉각)의 공간 인지에 대한 연구」(2018~2020) 등 뇌파(EEG)와 가상현실(VR)을 건축 및 도시 설계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들이 눈에 띄어요. 경험을 측량하는 방식에 관한 연구가 독특한데, 특별히 주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염상훈: 공간의 가치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자 했어요. 건축적 언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법에서 규정하는 최소한의 수치를 넘어선 비워진 공간을 설계하는 게 자연스러워요.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경험으로만 체득할 수 있는 영역이라, 건축적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죠. 언어적으로 전달이 어려운 가치들을 전달하기 위해 자연스레 정량화 방법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뇌파검사를 통해 도출되는 정량적인 수치와 가상현실 경험을 통해 공간감에 대한 이해를 키우는 방식이 그 방식 중 하나였어요.

 

학생기자: 공간감을 정량화한다니, 이제 막 건축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염상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정량화가 공간의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설계 스튜디오를 운영할 때도 학생들이 HMD(Head Mounted Display, 머리 착용 디스플레이)를 직접 착용하고 본인이 계획한 건물을 돌아다니게 했던 적이 있어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부분들을 함께 보고 수정할 수 있어서 교육 측면에서 도움이 됐어요. 경험해봐야 이해가 가능한 부분을 가상현실로 보조하는 거죠. 채워진 공간이 아닌, 높은 층고 같은 비워진 공간이 가진 ‘아무것도 없는 것’의 가치는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해요. 그럴 때 직접 보고 뭐가 더 좋은지 선택하게 하는 것도 건축 교육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건축에서 메타버스의 적용 가능성


학생기자: 메타버스를 설계 과정에 적용한다면 어떤 가능성을 지닐 수 있을까요? 

염상훈: 먼저 메타버스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는데요. 2007년 미국 미래가속화연구재단(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 ASF)에서는 메타버스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라이프로깅(Lifelogging)’, ‘거울 세계(Mirror Worlds)’, ‘가상 세계 (Virtual Worlds)’의 네 가지로 분류한 적이 있어요. 넓은 의미에서 메타버스는 미술작품처럼 이미 오랜 과거부터 인류와 존재해왔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요. 지금 당장 직접적으로는 ‘거울 세계’로서의 메타버스가 요긴하게 쓰이는 것 같아요. 거울 세계란 현실의 모습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반영한 가상 환경을 의미해요. 시공되지 않은 건축 공간을 먼저 사실적으로 경험해보는 보조 툴로써 본인이 설계하는 것을 미리 경험하고 공간감과 스케일감을 느낄 수 있으면서, 또 그것을 현장에 적용하여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더 나아가 ‘가상 세계’를 설계하거나 ‘증강현실’을 설계하는 것으로 메타버스의 적용을 확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상공간 그 자체를 새로운 건축 공간으로 이해하고 그에 대한 방법론이나 새로운 디자인 세계, 방향성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제공할 것으로 보여요.

 

학생기자: 그렇다면 설계 과정 이후에 공간을 이야기하는 소통 도구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까요? 

염상훈: 설계 과정에서 건축가가 자기 공간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것이 1차적 용도라면, 두 번째는 클라이언트한테 그 공간을 경험시켜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요. 건축가를 제외한 사람과도 공간 감각에 대한 이해도 차이를 줄이고 공간감을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죠. 나아가 설계자와 시공자 사이의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소통의 오류를 줄여줄 수 있을 거예요.

 

Communal Matrix: 공동주택 전이 공간 정량화 연구 ⓒ오인탁, 염상훈


시퀀스를 다루는 사람들


학생기자: 가상공간의 구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염상훈: 연구실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로 삼는 것 중 하나가 건축과 도시의 전이 공간이에요. 그리고 가상공간에서도 전이 공간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에서 여러 가상의 공간을 이동할 때 웜홀처럼 전환의 경험을 만드는 것처럼요. 이런 과정으로 이동한다는 물리적인 경험을 느낄 수 있죠. 전이 공간을 통해 하나의 경험에서 다른 경험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거친다면 가상공간 안에서 느끼는 감각은 굉장히 3차원적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학생기자: 전이 공간과 같이 공간 경험의 시퀀스를 만든다는 의미에서는 건축적인 사고가 필요할 수 있겠네요.

염상훈: 그렇죠. 건축가는 사진 속 한 장면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공간 간의 연결과 흐름을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건축가가 가상공간을 다룰 때도 그 환경의 경험을 신경 쓰게 될 것 같아요. 현관에서 신발 벗는 행동처럼요. 우리나라에서는 신발을 신고 갈 수 있는 곳과 아닌 곳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에 민감해요. 그건 공간의 경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일종의 의식인 거죠. 이런 의식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즉,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경험을 어떻게 만들지가 관건이에요. 가상공간은 공간을 이동하는 중간 과정이 따로 필요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은 물리적 공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이동을 위해서는 전이 공간에 대한 설계가 필요하죠. 하지만 그 형식은 현실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방식이겠죠.

 

학생기자: 그렇다면 교수님은 가상공간을 만들 때 건축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염상훈: 잘할 수 있는 일은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의 건축물을 설계하면서 우리는 복도를 따라 어디론가 이동할 때 시원하게 뚫린 복도를 넣거나, 좁아지거나 넓어지는 리듬을 주면서 공간의 경험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을 고려하잖아요. 이런 과정이 공간의 시퀀스를 만드는 것에 대한 감각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가상공간을 만드는 일도 건축가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학생기자: 공간적인 사고능력 외에 건축가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요?

염상훈: 기획력이 필요하죠. 결국엔 분야 간 범위가 모호해질 것 같아요. 따라서 ‘메타버스 내에서 건축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하는 질문 또한 무의미해질 수 있어요. 건축을 공부해서 자신에게 맞는 세부 분야로 더욱 훈련을 할 텐데 그 방향에 따라 각자의 특징을 살리면 좋겠어요. 운동선수들도 저마다의 장점과 스타일이 있듯이 건축을 바탕으로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각자가 개발한 능력을 발휘해서 좁게 보면 전이 공간, 크게 보면 가상공간 전체를 디자인하고 바라보는 기획자의 역할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건축가가 건물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듯이요.

 

건축을 바라보게 하는 또 다른 관점

 

학생기자: 교수님은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는 것 같아요. 메타버스가 떠오른 지 몇 년 안 됐는데, 새로운 기술을 건축과 접목한다는 게 인상 깊어요.

염상훈: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최근에 화두로 떠오른 거지, 가상공간에 대한 개념과 실험은 예전부터 있었죠. 제가 학부생일 때, 그게 한 20년 전이었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모델링해서 가상현실로 구현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들었던 생각은 ‘실제 공간과 가상공간에서의 경험이 같을 필요가 없다’ 였죠. 가상공간이 중력과 같은 각종 제약에서 벗어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게 장점인 만큼, 가상공간에서 건축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CAVE(가상공간 체험 장치) 안에 들어가 드론처럼 날아다니며 건물을 여러 각도에서 보며 관찰하거나, 특정 부분을 클릭하면 정보를 얻게 되는 식으로 발전해 나갔죠.

가상성의 특징을 물리적 공간에 있는 몸과 가상공간에 있는 시각에서 비롯한 이질감, 이에 따라 변화하는 감정들로 본다면, MVRDV의 글라스 팜(Glass Farm), 제임스 터렐의 작품, 리모델링 공간 안에서의 경험도 가상공간의 체험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글라스 팜은 주변 건물의 입면을 추출한 창문, 문, 지붕 크기를 평균 낸 값에 스케일을 키워 각각의 요소를 유리에 프린팅하여 파사드로 사용한 건물이에요. 과거의 기억과 장소라는 메타버스 공간을 다른 스케일로 현실 공간에 이질감을 주고, 이질적이기 때문에 더 복합적인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죠. 오래된 공간을 리모델링한 건축 작품도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잔재를 통해 그 시대를 경험하는 것이니, 이것 또한 메타버스라 할 수 있겠네요.

 

학생기자: 그렇다면 우리는 굳이 가상과 현실을 구분지으려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염상훈: 맞아요. 메타버스는 이제야 한 단어로 규정된 것뿐이지, 새로운 기술보단 건축을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이죠.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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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훈
염상훈은 서울대학교와 뉴욕 컬럼비아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CAT건축도시디자인연구실을 운영하며 도시와 건축의 접점을 넓히고 고도 기술과 역사적 미가 반영된 환경을 조성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경계공간에 대한 그의 건축 작업과 연구는 건축 및 건축가의 새로운 역할을 탐구하고 있다.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비롯한 다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디자인 작업과 연구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뉴욕현대미술관 등 다양한 장소에서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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