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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창조적 재구성: 〈2022 타이틀 매치: 임흥순 vs. 오메르 파스트 《컷!》〉

방유경 기자
자료제공
서울시립미술관(별도표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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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공간)」 2023년 3월호 (통권 664호)


시장 입구 전경/ 자료제공 서울시립미술관

 

2022년 11월 17일 개막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연례전 〈2022 타이틀 매치: 임흥순 vs. 오메르 파스트 《컷!》〉이 2023년 4월 2일까지 진행 중이다. 올해로 9회차를 맞는 이번 전시는 ‘타이틀 매치’라는 이름 아래 국내 신구 작가를 초청했던 기존의 2인전 형식에서 벗어나, 최초로 해외 작가를 초청하는 변화를 시도했다. 영상설치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잘 알려진 임흥순(1969~)과 오메르 파스트(1972~)는 커미션 신작을 포함해 초기작, 대표작 등 총 13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개인과 집단, 사회의 기억을 기록하고 편집하여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두 사람의 작업은 미술관이라는 특정 시공간 안에서 현실과 가상, 다큐멘터리와 픽션 사이를 넘나드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다. 차이와 변주 속에 두 작가가 펼쳐놓은 세계의 모습과 이면의 메시지를 따라가보자.​

 

 

메르 파스트, ‘차고 세일’, 2022, 3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29분 30초 ⓒ​오메르 파스트


타이틀 매치, 중첩과 확장 

서울에서 태어난 임흥순은 아시아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불안정성의 본질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2014)으로 2015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북한이탈주민 여성 열 명의 이야기를 담은 ‘행’(2019)으로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관객상을 수상했다. 예루살렘 태생으로 독일에서 활동 중인 오메르 파스트는 텍스트-이미지 단위를 분절하고 재결합해 새로운 내러티브를 직조한 영상 ‘캐스팅’(2007)으로 2008년 휘트니비엔날레 벅스바움 어워드를, 2009년에는 독일 내셔널갤러리에서 수여하는 40세 이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로서 활동의 정점에 있는 이들의 작업을 ‘타이틀 매치’라는 형식 아래 묶는다. 일반적으로 타이틀 매치는 대결과 승패 구도를 전제하지만, 이 전시가 그리는 기획은 경쟁의 구도를 넘어선 중첩과 확장을 모색한다. 이에 대해 전시를 기획한 송가현(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은 “다양한 주제를 서로 다른 언어와 문법으로 풀어내는 두 작가의 화면은 때로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선택한 개별 주제는 구체성과 지역성에도 불구하고 종종 세계와 존재를 구성하는 구조적 힘을 드러낸다는 유사성을 보인다. 이들은 전쟁과 테러, 역사와 국가, 초월적 존재 등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 불가항력의 거대한 힘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사유한다”고 설명한다.

 

 

(왼쪽) 임흥순, 내 사랑 지하​, 2000, 단채널 6mm 비디오, 컬러, 사운드, 20분 9초 ⓒ​임흥순, (오른쪽)  내 사랑 지하​ 설치 전경 ⓒ​방유경

개인과 세계를 연결하는 방식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은 오메르 파스트의 신작 ‘차고 세일’(2022)이다. ‘찰칵’ 하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정지 화면이 ‘줌 인’, ‘줌 아웃’을 반복하며 전환되는 3채널 영상은 ‘이미지 속 이미지’를 추적하며 여러 이야기를 엮는 액자 구성을 취한다. 영상에는 조부모와 부모에게 물려받았으나 차고에 방치해두었던 물건을 판매하는 차고 세일을 배경으로 세 가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흑인 여성이 과거 인종차별의 상징이던 ‘잔디정원용 장식’▼1을 백인 부부에게 구매하는 과정, 원치 않지만 물려받은 유산에 연루된 가족사와 사회적 정치적 맥락, 그리고 전체 이야기를 끌고가는 화자의 목소리다. 폭력, 사회문제, 정치, 역사 등 다양한 맥락으로 가지를 치며 확장하는 서사의 결말에서, 작가는 화자의 내레이션을 통해  “실은 이 모든 것이 허구”라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탐험의 여정은 진위 여부를 떠나 관객들의 시점을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차고에 묵혀둔 유산처럼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고, 잊은 줄 알았다가도 불쑥 튀어나오는 대상과 기억에 대한 인식이다. 3채널을 통해 같은 장면을 다른 각도에서 촬영해 보여주는 방식 역시 파편화된 대상과 기억의 구조를 투사하는 듯하다. 이처럼 오메르 파스트가 ‘개인의 역사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허구의 이야기로 재구성해 보여준다면, ‘차고 세일’ 맞은편에 위치한 임흥순의 초기작 ‘내 사랑 지하’(2000)는 ‘개인의 역사가 어떻게 시대의 역사로 확장’되는지 1인칭의 시점으로 다룬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하부에 설치된 이 작품은 작가의 가족이 9년 동안 살았던 지하방에서 임대아파트로 이사 가는 날의 여정을 홈비디오 형식으로 촬영한 것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이삿짐을 정리하고 나르는 가운데, “너희는 나처럼 가슴 아픈 사랑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글귀가 어린 자녀들의 모습과 교차하며 등장한다. 짐을 싣고 떠나기 전 추억을 곱씹으며 지하방을 살피는 모습과 새로 입주할 아파트 풍경이 오버랩되는 장면은 동대문 봉제공장 노동자로 살았던 가족의 애환과 애증을 고스란히 전한다. 삶의 내밀한 속살을 포착하는 작가의 시선은 이야기의 당사자이자 관찰자로서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에 서 있다. 가족들과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카메라워크는 관객을 현장의 관찰자로 끌어들이며 자전적 기록을 시대를 담지한 미시사로 확장한다. 반지하 같은 공간 안에 작은 텔레비전을 상영한 설치 방식 역시 작품의 현장감과 몰입감을 높인다. 

 

 

(위) 오메르 파스트, ‘세상은 골렘이다’, 2019,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4분 39초 ⓒ​오메르 파스트

(아래) 오메르 파스트, ‘아우구스트’, 2016, 스테레오스코픽 3D 필름, 15분 30초 ​오메르 파스트

컷, 영상의 내러티브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컷’은 영화에서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촬영 현장에서는 감독의 ‘오케이 사인’을 뜻하는 외침이고, ‘한번에 연속으로 촬영된 장면’이라는 영상 매체의 고유한 형식을 가리키며,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는 편집 기술을 뜻하기도 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잘라내 재구성한 이미지의 연속’이라는 영상 고유의 특질을 관통하는 개념으로 작동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임흥순과 오메르 파스트의 교집합과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1층에 전시된 단채널 영상 ‘연속성’(2012)은 장면과 시퀀스의 반복을 통해 영화적 현실과 의미를 재창조하는 오메르 파스트 작품의 구조적 특성을 잘 드러내는 작업이다. 카메라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병됐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맞이하는 독일인 부부의 모습을 비춘다. 차를 타고 마중을 나가는 장면이 반복될 때마다 다른 인물들이 아들로 등장한다. 영상 후반, 부부는 마중 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낙타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다가, 병사들의 시신이 널브러진 큰 구덩이를 마주하게 된다. 이 순간 관객들은 지금까지 등장한 아들 중 누가 진짜인지, 혹은 이 모든 장면이 전사한 아들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겪는 신경증적 망상은 아닌지 의심을 품게 된다. 전시 기획자는 “부부가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서사 안에서 주어진 상황을 반복함으로써… 이러한 구조 자체가 이들의 종결될 수 없는 애도를 담고 있다”고 설명하는데, 확정적 단서가 부재하는 열린 구조 안에서 관객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투영해 다양한 방식으로 행간의 의미를 상상하고 독해할 수 있다. 전시 개막 후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혼란스러운 세상과 그 속에서 발생한 사건에 질서를 부여하고 하나의 정돈된 이야기로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픽션”이라 말했다. ‘아우구스트’(2016), ‘세상은 골렘이다’(2019)에서 불안과 신경증적인 심리 상태를 배경으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한 세계를 표현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긴밀한 연결고리 없이 분절되고 반복되는 서사의 구조는 그 자체로 강박의 굴레 안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정서와 심리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작가 특유의 문법이라 할 수 있다.

 


(위) 오메르 파스트, ‘연속성’, 201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0분 ⓒ​오메르 파스트

(아래) 오메르 파스트, ‘캐스팅’, 2007, 4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14분 10초​ ​오메르 파스트

 

 

영화적 시공간

오메르 파스트가 영화적 설정에 따라 이야기를 완전히 해체한 뒤 새롭게 재구성한다면, 임흥순은 대담자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본래 이야기의 맥락에 가깝게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이런 특성은 전시 공간의 구성에서도 발견된다. 오메르 파스트의 작업이 전시된 1층은 개별 작품마다 가벽으로 공간을 구분해놓았다. 반면 임흥순의 작업이 전시된 2층은 가벽 없이 스크린을 매달거나 고정해 전시장이 하나의 열린 공간을 형성한다. 설치 방식은 곧 작품이 관객과 만나는 방식, 대화하는 방식과도 직결된다. 오메르 파스트는 개별 공간 안에서 단채널, 다채널, 멀티 스크린, 홀로그램 투사 등 다양한 상영 방식을 실험하면서 관객이 방을 이동하며 작품 간의 변화와 서사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느끼게 한다. 한편 임흥순의 작업은 관객이 전시장 안에서 이동과 멈춤을 반복하면서 전체와 부분을 조망하며 자신의 위치를 조정하게 만든다. 스크린 안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나 텔레비전과 달리 미술관에서는 “작품 바깥도 유동적으로 작용한다”는 임흥순의 설명처럼 관객은 더욱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스크린의 이미지를 선택해 바라보게 된다.

임흥순의 ‘좋은 빛, 좋은 공기’(2018)는 이런 관람 행위를 통해 관객이 영화의 서사를 공간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작업이다. 광주에서 5 ・ 18 민주화운동이 발생했던 1980년,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군부독재 아래 민간인이 희생되고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작가는 두 대형 스크린이 일정 거리를 두고 마주 보게 한 다음, 한쪽에는 광주에서 촬영한 영상을, 맞은편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촬영한 영상을 송출한다. 두 도시에서 벌어진 사건의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인터뷰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작품은 관객이 두 화면 사이를 오가며 시공간을 초월해 역사적 비극을 직시하고 연대하도록 이끈다. ‘좋은 빛’(光州)과 ‘좋은 공기’(Buenos Aires). 도시 이름이 지닌 뜻을 풀어 나열한 제목은 이러한 작품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증폭한다.

2층 전시장 끝에 있는 커미션 신작인 3채널 영상 ‘파도’(2022)는 국가폭력이 빚은 비극적 사건의 이면을 알리고 애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임흥순은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 이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매개자들(통역사, 역사학자, 영매)의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전쟁, 여순항쟁, 세월호 참사의 진실에 다가선다. 세 사건에서 ‘국가폭력’과 ‘바다’라는 공통점을 발견한 작가는 뉴스의 스펙터클한 이미지와 자극적인 통계 수치에 가려 축소되고 삭제된 역사의 행간을 복원하고자 시도한다. 사건 발생 뒤 제대로 된 역사 기술과 사후처리가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 맞선 세 사람의 이야기는 파도처럼 갑자기 불어닥친 사건들 속에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내고자 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동일한 사운드 아래 각기 다른 사건의 현장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교차되는 3채널 영상은 희생자들이 수장된 바다에 이는 파도를 비추며 끝난다. 드라마틱한 전개나 잔혹한 이미지 없이 인터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상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중첩시키며 여러 사건을 엮고, 국가와 시대를 초월하는 연대를 상상하게 한다.​

 


(위) 임흥순, ‘형제봉 가는 길​’, 2018, 2채널 FHD 비디오, 컬러/흑백, 12채널 사운드, 16분 ⓒ​임흥순

(아래) 임흥순, ‘숭시’, 2011, 단채널 F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24분 26초​ ​임흥순


임흥순, ‘파도’, 2022, 3채널 FHD 비디오, 컬러, 5.1채널 사운드, 48분 40초​ ​임흥순 / 설치 전경 ​방유경 

 

세계의 현실을 마주하는

전시 서문은 재난과 전쟁, 그로 인해 희생된 개인의 역사를 기록해온 임흥순의 작업에 대해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역사의 공백을 메워가는 과정”이라 소개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극,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개인과 집단의 기억이 매개되고 변화하는 방식에 천착한 오메르 파스트에 대해 “실험적 매체 해석과 결부된 고유의 서사로 강렬한 영화적 공간을 창출”한다고 평했다.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재구성된 세계의 모습은 ‘영화적 현실’을 재창조하며 실제와 허구 사이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동시에 관객은 미술관이 영화적 공간으로 재편되는 다양한 경로를 체험하게 된다. 오메르 파스트는 독일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의 삶을 담은 3D 영상 ‘아우구스트’의 제작 배경을 설명하며 “(그가 찍은 사진을 놓고) 이를테면 사진이 촬영되기 전후를 보여주는 식으로… 시간의 앞뒤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앞과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3차원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영상이 사건의 전후를 보여주듯, 관객들은 전시를 통해 전쟁, 테러, 차별, 혐오 등 세계의 어두운 민낯과 본질을 더 선명하게 비추는 ‘스크린 바깥의 시공간’을 상상하고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두 작가의 작업이 우리에게 던진 “불가항력의 거대한 힘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이 되지는 않을까. ​​​(글 방유경 기자)

 

1 작품에서 ‘잔디 기수(lawn jockey)’로 불리는 말 기수 복장의 인물상은 20세기 중반까지도 미국 가정에서 흔히 정원 장식에 쓰인 조각상이다. 주로 랜턴을 들고 있거나 말의 목줄을 걸 수 있도록 고리를 손에 쥔 모습을 띠었는데, 이 형상이 흑인의 외모를 인종차별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위) 임흥순, ‘좋은 빛, 좋은 공기’, 2018, 2채널 FHD 비디오, 컬러, 4채널 사운드, 42분 ​임흥순 / 설치 전경 ​방유경 

(아래) 2층 전시장 전경 / 자료제공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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