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2023년 2월호 (통권 663호)
2023 베니스비엔날레가 오는 5월 20일부터 11월 26일까지 베니스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일대에서 개최된다. 이번 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선정된 레슬리 로코는 ‘미래의 실험실(The Laboratory of the Future)’을 주제로, 아프리카 대륙을 미래로 상정해 기후 변화와 이주, 기술 발전과 불균형 문제 등 전 지구적 화두를 제시했다. 이에 대한 한국관의 응답은 ‘2086: 우리는 어떻게?’라는 주제를 통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지난 12월 16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2023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를 위한 사전 포럼’에 참석해 한국관이 그리는 미래의 실험실을 들여다보았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총괄하는 예술감독은 정소익(도시매개프로젝트 대표)과 박경(샌디에이고 대학교 교수)이다. 그간의 한국관 전시를 한 명의 예술감독이 맡아왔다면, 이번 전시는 이례적으로 두 명의 예술감독이 협력해 선보인다. 도시와 건축의 관점에서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실천 방식을 고민해온 두 감독이 내건 주제는 ‘2086: 우리는 어떻게?’다. 기술 발전과 경제성장을 거듭해온 현시점에 세계가 맞닥뜨린 풍요로운 결핍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모순을 조명해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실천을 모색하고자 한다. 2086은 세계 인구가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연도를 상징한다. 전시는 2086년이라는 시점이 환경 위기로부터 공동체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인류 문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가설을 전제로 한다. 전 세계 인구가 최고점에 다다르게 되는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 전시는 근미래에 마주할 새로운 생태계에서의 삶을 그려낸다.
인천시 동구 금송 재개발구역(2022) / ⓒJung Jaekyung
이번 한국관 전시에서 세 팀의 참여 작가는 한국의 지역 커뮤니티 세 곳의 사례 연구를 통한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전시의 세부 주제인 ‘인류세 이후의 미래 공동체: 시비촌3.0(Future Communities in Post- Anthropocene Life: CiViChon 3.0)’과 맞닿아 있다. 시비촌(CiViChon)은 ‘도시(City)’와 ‘마을(Village)’의 첫 두 글자를 조합하고 끝에는 농촌을 뜻하는 한국어인 ‘촌(chon)’을 붙여 만든 개념이다. 마을 속 도시를 의미하는 시비촌은 2021년 비엔나비엔날레에서 박경 감독이 제시한 개념으로, 농촌에 도시 문화를 결합해 두 지역 간 균형을 도모하고 새로운 공동체로의 가능성을 내포한 가상의 공간을 일컫는다. 개념으로서의 시비촌은 “가상의 건물이 자리한 한국 내 가상의 장소에 위치한 가상의 마을”이다. 실재하는 한국 마을에 새겨진 역사와 지형, 사회문화적 패턴을 기반으로 하되, 상상력을 동원해 건설 중인 미완의 공동체를 가리킨다. 이에 착안해 세 팀의 작가는 물리적 공간과 형태에 천착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제3의 삶의 방식과 형태, 그리고 미래 공동체를 탐구한다.
전시는 현재 한국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인 세 지역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건축가와 지역사회 연구자가 한 팀을 이뤄 총 세 팀이 공동 리서치와 디자인 협업을 통해 도출한 시나리오를 선보인다. 포럼에서 발표한 결과물은 최종 프로젝트 전 사전 리서치 단계에 해당하는 작업들로, 이를 발전시킨 작품을 한국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전시 방식은 당면한 위기와 과제로부터 개개인의 행동을 유도하고 그 결과를 인지하도록 하는 기획 의도에 따라, 단순히 관조하는 방식이 아닌 게임 형식의 참여형 전시가 될 전망이다. 프로젝트 대상지는 인천의 원도심에 해당하는 동인천, 중소도시 군산, 그리고 이주도시 안산이다. 세 팀의 참여 작가는 실제 현장에서 활동하며 도시화 과정에서 한국의 도시와 농촌이 서구화된 경위를 살피고 그 잔재를 되짚어보며 새로운 건축적 제안을 통해 인식의 전환을 꾀한다. 인류 문명이 유발한 환경 위기는 비단 해수면 상승과 지구온난화, 이산화탄소 배출 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화와 도시화, 근대화 과정에서 건축과 도시를 욕망의 수단으로 삼아온 이데올로기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시는 환경 위기란 우리가 생활하고 사고하는 방식의 개혁, 그리고 역사와 유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해결될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먼저, 서예례(어반터레인즈 대표)와 민운기(스페이스 빔 대표)는 동인천 배다리 지역을 중심으로 리서치를 진행했다. 인구수 기준으로 서울과 부산에 이은 대도시이자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시아의 국제 도시를 표방하는 인천은 한국의 대표적인 메트로폴리스로, 1990년대 이후 꾸준히 개발과 성장을 도모해왔다.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 2003년 송도 신도시 개발 및 경제자유구역청 개청, 2009년 인천대교 개통에 이어 2014년 청라·영종지구개발 및 도시재생 사업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지표는 인천시의 개발 욕망을 방증한다. 이렇듯 정부 차원에서 시를 개발하려는 의지는 비교적 최근에야 인천의 원도심인 동인천 지역에 다다랐다. 하지만 각 의제에서 정부의 안은 공생을 염두에 둔 개발이 아니었으므로 지역주민들은 자생적으로 지역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서예례와 민운기는 주민들의 이 같은 자치적 움직임에서 공동체의 가능성을 목격하고, 그러한 환경에서 건축이 만들어낼 가치를 탐구했다.
홀로세에 머물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꿈의 군도 / ⓒ Urban Terrains Lab + SPACE BEAM
인류세 이후 지상에 남을 이들을 위한 공생 도시 / ⓒ Urban Terrains Lab + SPACE BEAM
이들은 동인천 지역 리서치로부터 상반되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통해 미래를 전망한다. 첫 번째는 홀로세에 머물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꿈의 군도다. 지속되는 환경 위기로 물에 떠 있는 섬에 건설될 그곳은 20~30년 주기로 새로운 섬이 노후화된 섬을 대체한다. 종래의 개발 패러다임을 지속할 경우 맞이하게 될 미래다. 두 번째는 인류세 이후 지상에 남을 이들을 위한 도시다. 개발에 앞서 땅을 가꾸고 보존하기를 택한다면 유목에 적합한 도시·농촌 생활방식을 확립하고 인간과 비인간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공생할 수 있다. 이렇듯 두 작가가 제시한 미래 공동체는 공면역주의(co-immunism), 같이 만들기(making-with), 돌봄(care)을 키워드로 자생하고 공생하는 방법에 대한 시사점을 남긴다.
다음으로,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와 군산을 중심으로 현장 연구를 이어오고 있는 윤주선(충남대학교 교수)은 한국의 중소도시 군산에 주목했다. 이들은 전시 주제가 상정한 2086년 한국은 인구 절벽이 진행될 것이며 지방은 점차 소멸의 절차를 밟고 행정구역과 영토는 무력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영토와 경계에 기반한 정주인구보다 움직이는 관계인구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데 주목해 새로운 커뮤니티를 모색했다. 관계인구란 특정 지역에 완전히 이주하거나 정착하지 않았으나 지속적으로 지역을 방문하며 유의미한 관계를 맺는 사람을 가리킨다. 나아가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을 고려할 때 재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지역재생은 더 이상 불가능함을 견지하고, 남겨지고 비워진 공간을 소멸시킴으로써 쾌적한 밀도를 조성하는 저밀도 디자인을 제안했다. 이러한 전제를 기반으로 한 방법론은 ‘Do It Togethger(이하 DIT)’로, 주체로서 인간뿐 아니라 자연을 아우르며 궁극적으로 커뮤니티와 자연의 관계 회복을 염두에 두었다. 그렇게 ‘2086 미래 공동체 군산’은 자본주의의 성장 이데올로기로 기능해온 ‘창조적 파괴’에 대항하는 ‘파괴적 창조’라는 주제 아래 전환을 위한 지역의 소멸 디자인을 선보인다.
군산 원도심 노후공동주택 빈집 증가세 / ⓒSoA
한편 미래 공동체 군산을 전제하는 군산의 지역적 특징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해수면의 상승에 취약한 지역이라는 점과 노후 공동주택 빈집 수가 많은 상위 20개 시군구에 속하는 점, 그리고 관계인구의 도시라는 점이 그것이다. 이러한 조건 아래 DIT를 통한 전환기의 디자인을 제안하는 군산의 사례는 관계성에 기반한 새로운 커뮤니티와 소멸을 통해 다시금 인공에서 자연에 가까워질 방법을 모색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황나현과 데이비드 유진 문이 이끄는 뉴욕 기반의 설계-리서치 사무소 N H D M과 김월식(무늬만 커뮤니티 대표)은 경기도 안산을 대상지로 이동성과 이주의 문제를 다룬다. 서울의 주변부에 해당하는 안산은 1977년 공업단지를 갖춘 신산업도시로 계획된 이래 개발의 근대사를 거치며 도시의 모습을 달리해왔다. 특히 1980년대 들어 인구감소와 제조업 노동인구의 이탈로 노동력이 감소하면서 1992년 산업연수제를 도입해 외국인 노동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현재 전국에서 외국인 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지방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안산은 다문화마을 특구로 지정한 원곡동 일대를 중심으로 이주민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다. 두 작가는 이주와 이동, 기후 위기와 새로운 공동체의 모색이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안임에도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비판의식을 갖고 안산을 배경으로 혼종적 정체성과 새로운 집합성을 띤 이주민 공동체를 상정해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이들이 제안하는 장소는, 겉으로는 다문화를 표방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단절과 배제의 논리가 횡행하는 종래의 공간들과는 거리가 멀다. 가속화되는 환경 위기가 사회문화적, 경제적 조건과 긴밀하게 관계 맺고 있음을 인지하고, 이주와 이동성의 문제는 곧 우리 모두가 직면하게 될 과제라는 전제 아래 거주민과 이주민 사이 문화적 교류가 유연하게 일어날 수 있는 장으로서의 공간을 모색한다. 두 작가가 연구한 안산이라는 도시로 말미암아 근미래 더욱더 보편적 의제로 자리할 이주의 문제에 대해 다층적으로 사유해볼 수 있다.
도시 개발 역사를 토대로 재구성된 ‘2086년 미래 시나리오’ 테스트 영상 중 발췌한 스틸 이미지(2022) / ⓒJung Jaekyung
마지막으로 시각예술 작가 정재경은 한국관의 전시 주제를 아우르는 영상을 선보인다.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게임 참여를 유도하는 영상은 미래 공동체를 작동하게 하는 윤리적 사유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실재하는 역사와 이야기를 기반으로 상상력을 더해 도출한 새로운 서사는 관객에게 윤리적 질문에 대한 행동을 요청한다.
환경 위기로 인한 자원의 부족과 이에 따른 국가 간 불균형과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기를 상징하는 2086이라는 숫자는 다소 모호하고 낙관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의도된 숫자다. 관객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질문을 던지고 비판을 제기해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도록 촉구한다. 더욱이 서울이라는 중심이 아닌 주변부 도시의 탐색에서 비롯된 미완의 공동체는 인구 감소와 지역 불평등의 문제에 직면한 한국 사회에 유의미한 화두를 던진다. 명확한 철학과 방법론 아래 기획된 전시의 전모는 오는 5월 한국관에서 열릴 본 전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글 김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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