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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 SPACE] 박용숙의 ‘관념예술’: 민족주의와 모더니즘 사이에서

신정훈
진행
김정은 편집장

「SPACE(공간)」2022년 12월호 (통권 661호)​

 

「SPACE」 84호(1974년 4월호) ▶ e-매거진 

 

박용숙의 ‘관념예술’: 민족주의와 모더니즘 사이에서 

 

20세기 한국 미술에서 모방의 문제는 모든 근심의 근원이었다. 한국 미술의 역사가 서구 미술운동에 시차를 둔 반복일 뿐 자체의 뿌리를 갖는 자율적 전개가 아니라는 생각은 한국 미술 자체에 대한 비판과 우려, 자조와 체념으로 이어지곤 했다. 서구 미술의 담론, 제도, 테크놀로지의 도입을 통해 본격화되었기에 비롯된 한국 미술의 식민적 상황은 의지로 타개할 수 없는 구조적이고 항상적인 것이었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이제야 이 땅의 미술을 제약 없이 펼쳐낼 수 있으라 기대했지만, 서구 미술에 종속되고 의존하는 상황은 더 큰 좌절로 다가왔다. 일제강점기를 보내며 전통은 단절되고 근대는 오염됐기에 받아낼 만한 선례는 보이지 않았고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영도(零度)’에서부터 서구의 선례를 학습하고 추격하여 한국 미술의 체질을 개선하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했다. 이처럼 현대미술의 후발주자에게 모방은 배척되거나 폄하될 일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모방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이 땅에 맞는 것을 모방하는 일, 그래서 처음은 모방일지라도 외래의 것을 착근시켜 열매를 맺고 그 씨앗을 통해 이곳의 미술에 초석을 세우는 일이었다. 모방은 이렇게 이 땅의 조건, 현실, 기질, 그 무엇이든 근거 혹은 동기를 갖춘 것이어야 했다. 자의적으로 선택되거나 위로부터 부과된 것이 아닌 필연적 연결이 있는 모방. 이렇게 한국 미술에서 모방의 상대항은 ‘창조’라기보다 ‘필연’이었다.

 「SPACE」 84호 8쪽.

 

「SPACE(공간)」 84호(1974년 4월호)에 실린 미술평론가 박용숙의 ‘왜, 관념예술인가?’는 이 고질적인 문제를 다시 꺼내든다. 전쟁 이후 한국 미술의 장에 등장한 여러 사조에 대해 그는 “우리가 관념예술의 양식을 그대로 도입한다고 할 때 그 필연성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1 여기서 ‘관념예술’이란 당시 구미에서 유행 중인 개념미술이 아닌 20세기 초 유럽의 표현주의, 다다, 초현실주의로 그 기원이 올라가는 광의의 현대미술이다. 이들은 단순히 새로운 시각 형식을 창안한 것이 아니라 서구 문명의 위기를 다뤄낸 일종의 “정신적 모험”이기에 철학적이고 관념적이다. 그 위기란 다름 아닌 과학기술의 발달, 자본주의의 고도화, 합리주의의 심화로 인해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 오히려 인간을 질식시키는 사태이다. 박용숙은 이를 “인간이 자기의 삶을 위한 수단으로서 만든 상(像)이 그 본래의 직능에서 벗어나, 오히려 인간의 본질적인 삶을 방해하고 위협하게” 된 일이라 설명한다.▼2 따라서 이에 대한 도전으로서 20세기 미술의 과제는 “상(허상)을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이키려는 것”, 다시 말해 “허상을 실상화하는” 일이다. 합리화, 상품화, 도구화로 점철된 문명의 여러 차원에 내재한 물화된 지각과 인식을 중지시키고 극복하는 시도로서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이 시각은 1960년대 말 한국 미술계에 소개되어 이후 현상이 되어버린 ‘이우환 효과’의 직접적인 사례다.▼3 현대미술은 세계에 이미 부여된 인간주의적 의미, 용법, 전제를 중지시키는 ‘만남’의 순간을 구조화해야 한다. 박용숙의 관념예술론은 이처럼 세계에 부과된 기존의 관념을 제거하는 현상학적 접근법에 닿아 있다. 

 

 

 

「SPACE」 84호 9~10쪽.​

 

 

 

「SPACE」 84호 17~18쪽.

 

이처럼 앵포르멜, 팝, 옵, 미니멀, 키네틱, 해프닝, 그리고 최근의 오브제 미술과 모노크롬 회화와 같은 전후 한국의 ‘전위’들이 서구 문명의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 미술을 참조한 것이라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다음의 것이 된다. 이렇게 여러 ‘관념예술’이 나올 정도로 우리에게 문명의 정신적 위기가 절실한 문제인가? 그토록 지양하고 ‘실상화’가 필요할 정도로 우리는 허상성에 고통받고 있는가? 얼마나 심각하게 언어가 도구화되고 사유가 인간주의적이기에 한국에서 앵포르멜이나 해프닝은 의미화를 거부하고 즉물적 현전을 제시하는가? 박용숙의 답은 단호하다. 그는 그런 허상, 문명, 물화가 아직 우리의 “실감”은 아니라 말한다(“우리는 아직 유럽인과 같이 허상의 공포를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문명의 폐해를 겪고 있기보다 그런 문명을 충분히 체험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근대화를 고창하는 우리들의 현실이 아닌가”).▼4 따라서 박용숙은 “관념예술이 등장해야 될 역사적 필연성이 결여됨으로 해서 우리의 관념예술은 그 영향력에 있어서도 강렬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문제는 많은 방법의 도입이 아니라 그러한 방법이 왜 생겼으며, 그러한 방법이 왜 우리에게 와야 하는가”를 묻는 일임을 환기시킨다.

 

박용숙이 제기하는 질문과 논조는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제기되고 1950년대 이후 여러 논자들에 의해 반복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1960년대 후반 한국 미술계에 팝, 옵, 키네틱, 환경 예술, 해프닝, 라이트 아트, 오브제 미술이 쏟아졌지만, 그 모델들을 말미암은 서구의 산업화, 소비주의, 테크놀로지 발달이 이제 갓 산업화와 도시화 단계에 진입한 한국의 일인지에 대한 회의는 그 미술적 실험들, 더 나아가 한국 미술 전반의 ‘필연’ 부재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 평론가 이일은 지금까지 이식하려고만 했을 뿐 “우리 자신의 현실을 미술 행위 속에서 한 번도 진실하게 체험하지 못했다”고 한탄했고, 미학자 조요한은 “한국의 미술가들은 산업화 과정에 있으면서도 일상생활의 기술화가 보편화된 유럽 예술계의 고민을 앞당겨 경험하는 느낌이 있다”고 일갈했다.▼5 왜 이 땅의 미술은 절실한 체험에서 나오지 못하고 남의 고민을 앞당겨 할 뿐인가? 한국 미술의 (후기)식민적 상황을 요약하는 이 수사학적 질문을 박용숙은 다시금 1970년대 한국 미술의 사례를 통해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SPACE」 101호(1975년 10/11월호) 76~77쪽. 

 

 

「SPACE」 101호(1975년 10/11월호) 79~80쪽. 

 

이 점은 바로 그의 글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부분적으로 설명한다. 1970년대 중반으로 이행하며 한국 미술의 논의에는 ‘노자’, ‘장자’, ‘동양’, ‘정신’, ‘무위’, ‘백색’ 같은 어휘들이 구사되었고 이들은 흰색의 모노크롬 화면과 반복되는 붓질이 이 땅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는 ‘필연’의 감각을 불어넣고 있었다. 1960년대 말 폭발한 한국 미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결실인 듯, 이제 남의 고민을 당겨 하는 것이 아닌 이곳의 전통이나 기질, 미의식이나 체험에서 말미암은 미술이 자리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박용숙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건넨다. 즉 반복적 긋기를 통한 모노크롬 회화는 화면에서 의도를 제거하고 의미화를 중지시키는, 따라서 허상을 거부하는 서구의 ‘관념예술’의 방식이라고 말이다. 이를 통해 1970년대에 또한 ‘필연 없는 모방’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따라서 일각의 주장은 기만적이고 기대는 오도된 것임을 시사한다. 이런 그의 주장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단적으로 어떻게 20세기 서구의 전위미술이 ‘허상의 실상화’라는 하나의 프로젝트로 수렴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개별 작품들과 미술 사조들은 헤겔주의적 총체화에 의해 희생될 뿐이다.) 더 통렬한 비판은 그 현상학적 미술이 과연 1970년대 혹은 심지어 그 이전의 이 땅의 체험과 무관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우리의 상황과 서구의 그것 사이에는 심원한 간극이 있다는 생각을 누구보다 내면화한 듯 보인다) 

 

  

 

「SPACE」 82호 57, 62쪽. 

 

흥미롭게도 박용숙의 기여는 한국 미술의 오랜 문제의식을 연장시킨 일보다 오히려 1970년대 한국 미술에 놓인 의미화되고 대상화된 세계를 다시 존재로 되돌리는 현상학적 충동이 자리하고 있음을 이해시킨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이후 「SPACE」의 여러 지면을 통해 그 틀을 이건용을 비롯한 S.T.(Space and Time) 그룹의 ‘이벤트’로 확장한다. 그들의 걷고, 앉고, 일어서고, 마시는 등의 반복적이고 동어반복적 퍼포먼스를 행위에서 목적과 의도를 제거하는 시도로 설명한다.▼6 따라서 1970년대 미술의 주요 경향을 그림이든 행위이든 일종의 즉물화 프로그램으로 파악한다. 이런 점에서 박용숙은 ‘필연 없는 모방’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1970년대 미술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음을 비판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면밀하고 깊게 그 미술들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역설은 그의 급진적이면서도 유연한 면모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던 소설가이자 미술평론가 박용숙이 「SPACE」의 편집장을 맡게 된 때는 1973년이었다. 그 시기를 회고하며 “그 무렵 나의 관심은 민족주의였다”고 말한다.▼7 실제로 그는 일제 잔재 청산 문제를 기획하거나 ‘민족적 리얼리즘’ 논의를 지면에 할애해 점증하는 민중담론의 시대적 요구와 위협적인 정치 환경 사이에서 길을 내고자 했다.▼8 따라서 한국 미술의 식민적 구조에 대한 그의 비판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SPACE」의 편집장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당대의 여러 모더니즘적이고 실험적인 흐름에 노출됐고 지속적인 체감 속에서 그들을 이해하게 만들었다(“많은 전위연극, 전위미술 특히 해프닝, 이벤트가 공간사의 손꼽히는 행사가 되어 … 나의 예술을 향한 눈은 점차 넓게 그리고 다양한 것으로 쏠리게 되었다”).▼9 따라서 그는 당시 부상하던 민족, 민중적 미술담론의 실천가들에겐 단지 모방일 뿐인 ‘전위’들에 대해 보다 유연하고 열린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박용숙의 양가적 태도는 다름 아닌 당시 「SPACE」의 그것이었고, 동시에 힘이었다. (글 신정훈 서울대학교 교수 / 진행 김정은 편집장)

 

 

 

 

 

 

「SPACE」 101호(1975년 10/11월호) 76~77, 79~80쪽. 

 

 

2021년 시작한 ‘리-비지트 「SPACE」’ 연재는 이제 재정비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2년 동안 애써주신 필자들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 박용숙, ‘왜, 관념예술인가?’, 「SPACE」 84호(1974년 4월호), 10쪽.

2. 위의 글, 9쪽.

3. ‘이우환 효과’에 대해서, 신정훈, ‘1970년대 한국미술과 이우환 ‘효과’’, 「SPACE」 657호(2022년 8월호), 124~131쪽 참조.

4. 박용숙, 위의 글, 17쪽.

5. 이일, ‘전환의 윤리-오늘의 미술이 서 있는 곳’, 「AG」 3, 1970, 34쪽; 조요한, ‘현대미술의 실험성에 대하여’, 「홍익미술」 2, 1973, 60쪽.

6. 박용숙, ‘실험예술, 주어진 시대를 적극적으로 산다는 일’, 「SPACE」 101호(1975년 10/11월호), 76~78쪽; 박용숙, ‘이건용의 이벤트’, 같은 책, 79~80쪽.

7. 박용숙, ‘공간 편집장 시절’, 「SPACE」 300호(1992년 9월호), 51쪽.

8. 박용숙, ‘민족적 리얼리즘은 가능한가’, 「SPACE」 82호(1974년 2월호), 57~68쪽. 

9. 박용숙, ‘공간 편집장 시절’,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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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
신정훈은 미국 빙엄턴 뉴욕주립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1960년대 이후 서울의 변화와 미술의 전환이 교차하는 지점들신정훈은 미국 빙엄턴 뉴욕주립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1960년대 이후 서울의 변화와 미술의 전환이 교차하는 지점들을 조명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협동과정 미술경영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묵, 김수근, 김구림, 현실과 발언, 최정화, 박찬경, 성남프로젝트, 플라잉시티에 대한 논문과 에세이가 있다. 공저로 『한국미술 1900-2020』(국립현대미술관, 2021), 논문으로는 ‘기계, 우주, 전자: 1960년대 말 한국미술과 과학기술’(「미술사와 시각문화」,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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