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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자연, 문화의 중개자: H&P 아키텍츠

한가람 기자
사진
돈 탄 하(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H&P 아키텍츠

​「SPACE(공간)」2022년 12월호 (통권 661호) 

 

건축, 자연, 문화의 중개자​


​서울대-목천 강연 시리즈의 네 번째 자리가 11월 3일 서울대학교 미술관에 마련됐다. 강연회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건축가 혹은 새롭게 떠오르는 아시아 건축가와의 소통을 목표로 라파엘 모네오, 리우 지아쿤(「SPACE(공간)」 607호 참고), 트로피컬 스페이스(「SPACE」 625호 참고)를 차례로 초청해왔다. 올해 주인공은 H&P 아키텍츠(HPA)다. 강연자 돈 탄 하는 2009년 베트남 하노이에 쩐 응옥 프엉과 함께 HPA를 설립하고, 자연을 존중하면서 사회 문화에 기여하는 건축을 추구해왔다. 건축, 자연, 문화를 미래를 위한 중요한 요소로 간주해서인데, HPA의 태도와 건축 비전은 우리에게 어떤 자극을 줄 수 있을까. 

 

토이지테이션(2014) 

 

HPA는 12년간의 작업을 갈무리해 2022년 3월 『HOUSES & PEOPLE』을 출간했다. 돈 탄 하는 그 궤적을 더듬어보니 자신의 건축에서 공통된 태도를 발견했다고 한다. 정신, 행동, 언어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 이때 정신은 생각, 철학, 감정으로도 번역되고, 행동은 사람, 자연, 공간 등을 대하는 자세를, 언어는 말이나 글을 통한 표현뿐만 아니라 건축 언어 등을 뜻한다. 실제로 인지 과정을 거쳐 원리를 만들고, 그 원리를 구체적 대상에게 적용하며 행동 원칙을 세우고, 원리와 원칙을 건축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은 건축가에게 보편적이다. 게다가 HPA의 작업들은 검박한 경우가 많아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기도 어렵다. 그들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은 자연과 문화에 대한 정신, 행동, 언어가 무엇하나 과장되지 않고 빈틈없이 맞물려 있음을 알게 될 때이다.

 

자연을 존중하는

동양 사상에는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라는 개념이 있는데, 맹자는 그중 제일로 인화를 꼽았다. 오늘날을 이 세 가지로 평가하면 기후변화, 환경오염, 양극화 문제 등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돈 탄 하는 건축에서 천시는 시간을 나타내는 계승, 발전 등이 대표적이고, 지리는 공간, 구조, 나아가 건축자재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봤다. 인화 개념을 건축에 대입해보면 사람은 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돈 탄 하는 “사람은 초인이 아니기에 생존을 위해 자연법칙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가 건축을 통해 사람과 자연을 잇는 중개자 역할을 자처하는 이유다.

그 방식은 자연스러운 구조와 형태, 친근한 자재에서 나타난다. 인공물이지만 자연스러운 구조는 자연 형상을 모방하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재현을 통해 자연의 정신을 이어감으로써 달성된다. 공간 형태에 있어서는 전이 영역, 빈 공간, 식물이 중요하다. 전이 영역은 안-밖, 아래-위, 사적-공적 공간을 자연스럽게 전환해 개방성을 만든다. 식물을 중요시하는 자세는 건물을 세우는 데 빌린 녹지를 되돌린다는 책임감과 같다. 한편 돈 탄 하는 자재 앞에 ‘친근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까닭을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과도 친화적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 스페이스(2018), 브릭 케이브(2017), 물 위의 대나무집(2022,「SPACE」 660호 참고)에서 나타나듯, 그동안 HPA의 건축에는 흙, 돌, 풀과 같은 ‘자연 자재’, 벽돌, 기와와 같은 ‘천연 재료’, 페트병과 같은 ‘재활용 자재’ 들이 사용돼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연을 존중하는 건축은 비용을 절감하고 자연재해를 줄이기도 하고 혹은 위험에 대응해 함께 살아가도록 돕는다.

 

브릭 케이브(2017) ©Nguyen Tien Thanh 

 

​브릭 케이브(2017) ©Nguyen Tien Thanh​

 

사회 문화에 기여하는

돈 탄 하는 사회적 책임감이 강한 건축가이다. 건축을 통해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면서도 경제 및 사회 문화의 취약한 부분까지도 보완하려 한다. HPA에게 기본욕구란 매슬로의 욕구단계이론 중 낮은 등급들에 해당한다. 생리적 욕구는 피라미드 다이어그램의 최하층에 있는 것으로 HPA는 교육, 의료 공간처럼 생활에 기초적으로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집중해왔다. 그다음 단계인 안전 욕구는 모듈러 소형 주택을 통해, 소속 욕구는 관계를 단절하지 않는 열린 공간을 설계함으로써 만족시키려 했다.

원초적 욕구를 위한 건물은 공급 문제와도 맞닿는다. HPA는 이를 단순성, 유연성, 저비용을 통해 해결한다. 단순성은 모듈러 건축 같은 용이한 제작뿐만 아니라 시공, 보수, 교체하는데 특별한 기술과 장비를 요구하지 않고 일반인도 구현할 수 있는 방식을 말한다. 유연성은 조합, 배치, 활용 등에서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는 것, 저비용은 공사비, 운영비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다. HPA의 작업에서는 이 세 요소를 뒷받침하기 위해 실용적인 자재를 사용한다. 앞서 언급한 친근한 자재(자연 재료, 천연 재료, 재활용 자재) 중에서도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상이 우선된다. 두 번째로는 현장 여건에 맞는 시공 기술을 변형, 적용한다. 마지막으로는 현지인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특히 돈 탄 하는 “건축주가 본인 집의 시공, 수리, 개조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밝혔다.

 

토이지테이션 관련 강연 자료​


정신, 행동, 언어의 삼박자

자연과 문화를 대하는 정신과 행동은 어떻게 건축 언어로 드러났을까. 대표작 중에서도 토이지테이션(Toigetation) 연작은 HPA의 정체성이 가장 잘 담겨 있다. 화장실(toilet)과 식물(vegetation)의 영어 단어를 따서 지은 이름에서 예상하듯 기초 인프라와 자연이 중요한 프로젝트이다. 그 첫 시작은 2014년 고지대에 있는 학교에 봉사 차원으로 지은 화장실이다. 베트남의 경우 외딴 지역에 있는 학교는 대부분 기숙 형태이기 때문에 화장실에 목욕 설비를 갖춘 공간을 만들었다. 물, 에너지, 자재 수급은 위치를 고려해 재활용이나 자급자족 형태로 이뤄졌다. 현지 재료인 대나무나 재활용 하수관으로 건축하고 지붕에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 빗물이나 생활용수를 다시 쓰는 식이다. 시공 단계에 학생, 교사, 지역민이 함께한 점에도 HPA의 건축 비전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자발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유니세프로부터 협력 초청을 받아 토이지테이션 2, 3까지 확장됐다. 건축 면적이 네 배 넓어지거나 외진 곳을 벗어나는 등 상황은 달라졌어도 큰 개념은 이어나갔다.

한편 홍수나 해수면 상승 같은 위협에서 안전을 보장하려는 주거 실험도 있었다. HPA가 난민을 위해 설계한 집들은 한 변의 길이가 약 6m 되는 정사각형 평면을 가지며 좁은 부지에도 건설할 수 있다. 치수 기준은 주자재인 대나무의 표준 규격(3m, 6m)에서 기인한다. 소형 주택이지만 내부를 복층으로 설계해 공간 활용도를 높였고 지붕을 통해 빗물을 모아 사용하도록 했다. 블루밍 대나무 집(2013)은 모듈로 대량생산하여 주택뿐만 아니라 공공을 위한 교실, 의료 시설로도 변형할 수 있다. 그러나 강 위에 실현되지는 못했는데 최근 긴 연구 끝에 물 위의 대나무집 2(2022)가 완성됐다. 이것의 전신인 물 위의 대나무집과 달리 가구, 화장실, 부엌 등을 갖추며 바닥 밑면에 담수와 식수가 담긴 물통 등을 보완했다.

소속 욕구를 위한 건축에서 HPA의 주요 원칙은 ‘사람을 억압하지 않고,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관계를 단절하지 않는 것’이다. S 스페이스처럼 그들의 공공 프로젝트에는 개구부는 있지만 문이 없는 설계가 자주 등장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S 스페이스는 불법 채굴로 폐허가 된 지역과 기후변화로 메말라버린 강에 대한 회개이기도 하다. 강의 이미지를 구불거리는 동선으로 재현하고, 불법 채석되거나 건설 현장에서 폐기된 암석을 수집해 벽으로 세웠다. 돈 탄 하는 최근 자연이 많이 파괴되기에 건축가는 사회적 책임을 갖고 자연을 보호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공공 건축에서도 자연에 대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물 위의 대나무 집 2(2022) ©Le Minh Hoang 

 

물 위의 대나무 집 2(2022) ©Le Minh Hoang​

 

돈 탄 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하면서 건축 대상이 낮은 단계의 욕구에만 머물지 않고 그 위 단계까지 올라가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쩌면 그 도약판에는 과학기술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HPA의 건축 비전을 한국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과학기술’이라는 키워드를 내놨기 때문이다. 돈 탄 하에게 과학기술은 단순히 설비, 공법과 같은 공학적 분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과학기술을 사람의 기억을 되살리는 도구로 건축에 장치해놓고자 한다. 인간은 예로부터 자신의 본질을 찾기를 원해왔고, 자연과 가깝게 있는 것 역시 현재가 아닌 과거이다. 따라서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할 때 우리는 자연과 문화와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글 한가람 기자)

 

S 스페이스(2018) ©Nguyen Tien Thanh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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