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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집이라는 세계를 짓기: ‘건축가A’

17기 학생기자
자료제공
VCRWORKS
진행
방유경 기자

‘서울인디애니페스트 2022’가 지난 9월 22일부터 9월 27일까지 총 6일간 개최되었다. 국내 유일의 독립애니메이션 전문 영화제인 본 행사는 올해로 18회를 맞았다. 9월 22일 이종훈 감독의 ‘건축가A’가 개막작으로 문을 열었고, 9월 25일 ‘관객과의 대화’(GV)가 진행됐다. 영화는 건축업을 떠난 건축가가 의뢰인 할머니를 만나며 다시 집을 짓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기억의 조각들을 채집하여 집의 재료로 삼는다는 영화적 설정은 집 짓기라는 차가운 작업을 서정적으로 그려내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종훈 감독에게 집이란 어떤 공간일까? 서울 마포구의 ‘VCRWORKS’ 스튜디오에서 그와 다시 만나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 이종훈 영화감독 × SPACE 17기 학생기자(반제연, 여고은, 이동렬, 이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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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기자: 영화 ‘건축가A’는 과거의 상처를 가진 인물인 할머니와 건축가A가 집을 지으며 그들의 상처를 회복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집이란 대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집을 짓는 행위에 천착한 이유와 함께, 할머니와 건축가A 등 주요 인물들의 상황 등 구체적인 캐릭터 설정은 어떻게 기획했는지 궁금하다. 

이종훈: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이 다들 있다. 나 또한 강아지와 같이 살 집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하지만 집을 짓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다가 퇴근 시간에 모두가 어디선가 나오고 어디론가 들어가면서 각자의 행선지로 가는 일상의 순간을 관찰했다. 그러다 문득 ‘이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갈까?’, ‘어떤 곳에서 살고 있을까?’ ‘생김새나 옷차림이 다르듯 이들이 사는 공간도 각기 다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집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정비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나가기 전, 준비하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각자에게 편한 것들을 모두 담아내는 공간이면서, 자아를 실현하는 공간인 것 같다. 그래서 건축가라는 인물을 만들고 작품마다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서 집을 의뢰했을 때, 그 사람을 닮은 집을 건축가가 지어주면 재밌을 것 같았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가장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집이란 공간이 그 사람과 그의 인생을 닮아 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었다.

 

마감재를 직접 바르는 할머니, ‘건축가 A’ 스틸 이미지 ⓒVCRWORKS

 

학생기자: ‘건축가 A’에는 할머니의 부탁으로 집을 짓는 과정이 등장한다. 집의 기초는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골조는 여행의 추억으로, 마감은 인생의 시련으로 만들어진다. 생애 주기와 시공 과정을 어떻게 연결하게 됐나?

이종훈: 작품을 준비하면서 건축에 대한 리서치를 하다 보니 집을 짓기 위해서 많은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크게 보면 터를 잡아 골조를 세우고, 뼈대에 살들을 붙인 뒤에 마감을 하는데, 이 과정을 우리 삶의 순간들과 연결 지었다. 예를 들어, 마감 공사의 ‘마감’이라는 어휘가 주는 느낌은 집을 온전하고 건강하게 마무리 짓는 단계라고 해석했다. 의뢰인의 인생사를 관통해서 만든 집에 마지막으로 어떤 재료를 가져와야 집이 튼튼해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의뢰인이 잊고 싶은 힘든 순간들을 가지고 왔다. 저마다 힘든 순간이 있지만, 오히려 그런 순간들을 마주하고 받아들였을 때 내면이 단단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할머니가 어린시절 살던 집을 덮어버렸던 파도의 물과 쓰나미로 부서진 집의 조각을 채집해서 마감재를 바르는 설정을 했다. 목재 위에 마감칠을 해야 오래가듯, 자신의 집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할머니도 직접 마감재를 바른다. 기억으로부터 재료를 채집하고 그 재료가 집에 쓰이면서 집이 완성되어 가는 이미지를 상상하며 그렸다.

 

학생기자: 서울인디애니페스트 GV에서 건축가를 ‘상담가’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본인이 생각한(혹은 기대한) 건축가의 모습이나 역할은 무엇인가?

이종훈: 집을 짓는 과정에는 의뢰인이 건축가에게 마음을 여는 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건축가가 과거를 볼 수 있게 해주어야 그곳으로부터 재료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상담의 과정도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상담사는 마음의 감기를 가진 사람들이 말하는 증상들을 차분히 듣는다. 건축가에게 집을 의뢰하는 의뢰인들이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건축가를 찾아온 의뢰인은 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서 과거를 돌아보며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깨닫고, 끝에는 의뢰인을 똑 닮은 편안하고 안정적인 집을 마주하게 된다. 상담사가 이야기를 듣듯이, 건축가도 이야기로부터 재료를 채집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존재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꽃잎 엘리베이터, ‘건축가 A’ 스틸 이미지 ⓒVCRWORKS

 

학생기자: 영화에서는 집을 만드는 과정에 두더지가 섬의 통로를 파고, 꽃잎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가는 등 공간을 상상하는 창의적 발상이 돋보인다. 섬에 건물을 짓는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기 위해 어떤 것들을 고민했는가?

이종훈: 처음 섬에 도착했을 때, 외곽을 따라 만들어진 타원형 길을 통해서 올라간다. 할머니가 매일 이렇게 섬을 오르면 무릎 관절에 좋지 않을 것을 생각해 건축가는 두더지들에게 땅을 파게하고 식물로 만든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 그때 고민했던 지점은 자연에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으며 집을 짓는 일이었다. 할머니를 위한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싶은데 현실이라면 땅을 파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야 하지만, 건축가가 이렇게 땅을 폭파하는 순간 작품의 취지가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협력업체로 땅을 파는 일이 자연스러운 두더지팀을 섭외하는 것으로 설정해 건축가가 집을 지으면서 자연을 파괴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또 하나의 예로 집의 골조를 세우기 위한 재료로 어떤 기억을 설정할까 고민했다. 엄청 큰 생선을 잡아서 맛있게 먹었다는 할머니의 행복한 기억으로부터 건축가가 생선뼈를 발라서 뼈로 골조를 만든다는 설정이 초반에 있었다. 작품에서는 거대 식물 농장에 가서 채집한 씨앗이 자라서 식물의 줄기나 뿌리가 집의 골조가 됐다. 이런 식으로 짓는 과정이 의뢰인의 이야기와 연결되고 이것들 간의 정합성을 찾는 과정이 어렵기도 하지만 재미있었다.

 

구멍이 메꾸어지는 장면, ‘건축가 A’ 스틸 이미지 ⓒVCRWORKS

 

학생기자: 영화 후반에는, 건축가A가 할머니께 선물로 받은 씨앗이 새싹으로 자라 자신의 집을 완성하게 된다. 건축가의 기억에서 나온 재료가 아닌 할머니가 준 씨앗으로 집의 구멍이 메꾸어지는 결말이 내포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종훈: 그 구멍은 상징적인 것으로, 건축가의 집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할머니의 집은 할머니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서 채집한 재료로 완성되는데, 건축가는 아직 힘든 순간에서 재료 채집을 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 순간을 버티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집은 마감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작품 초반에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서 건축 일을 그만두었다며 할머니의 의뢰를 거절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후 할머니의 의뢰를 수락하고 집을 지으면서 건축가는 서서히 말도 많아지고 건축에 대한 설명도 하게 된다. 그렇게 다시 건축을 하면서 변화하는 건축가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이런 변화에 대한 상징으로 할머니와의 연대를 담았다. 모든 것을 혼자서 할 수 있는 인생이 아닌 것처럼 작품 속 캐릭터들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완성되어 뚫려 있던 공간은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채워지게 된다. 진심을 다해서 지은 할머니의 집에 대한 답례로 받은 씨앗이 여전히 메워지지 않았던 건축가 사무소의 구멍을 막아주게 된다. 서로 도우며 치유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물고기 풍경 만드는 장면, ‘건축가 A’ 스틸 이미지 ⓒVCRWORKS

 

학생기자: ‘건축가A’는 본인이 작업했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유독 다채로운 색채와 상징을 가진 오브제가 다수 등장한다. GV에서도 특별히 오브제에 신경을 썼다고 언급했는데, 이런 요소들이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하다. 특히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물고기 모양 풍경의 제작 배경을 알려달라.

이종훈: 모든 애니메이션에는 주된 스토리가 있고 세부설정이 있다. 물고기 모양 풍경은 바다 소리를 청각적으로 표현하는 도구로, 건축가와 그의 아내가 시력을 잃은 조각가의 집을 만들어줄 때 만든 물건 중 하나다. 조각가는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었고 소리를 듣는 방법으로 과거를 기억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그의 집에는 아홉 개의 풍경이 있는데, 각 풍경에는 조각가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던 순간의 소리들이 담겨있다. 풍경에서 종소리만이 아니라 파도 소리와, 어머니가 요리를 할 때 나는 소리가 난다. 이러한 시각적, 청각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찾다가 풍경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전에 유리공예를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가 부부가 물고기 풍경을 만드는 장면을 삽입했다. 의뢰인 할머니가 여행을 가다가 대나무 숲에서 풍경이 내는 바다소리를 우연히 듣고 조각가를 만나 풍경을 선물로 받으면서 건축가를 소개받게 되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학생기자: ‘건축가A’와 전작인 ‘별이 빛나는 밤에’(2017)은 모두 사랑과 상실감이라는 관계와 감정을 다룬다. 또한 노인과 바다, 여행과 귀환, 이별과 추억 등 공통적인 서사가 등장한다. 이런 주요 모티프들을 작품마다 어떻게 다르게 엮고 구성해내는지 궁금하다.

이종훈: 여행을 좋아하고 삶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크게 묶어서 추억이라고 한다면 남은 삶의 목표는 추억을 쌓기 위해 사는 것 같다. 지금도 틈틈이 ‘이때 좋았지’  ‘행복했지’ ‘이때 어려웠지’ ‘힘들었지’ 하면서 추억에 기대어 살아간다. 이러한 추억에 대한 굵직한 감정들을 나열하다 보니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가장 크더다. 그래서 두 작품은 기본적으로 추억에 대한 그리움을 깔려 있다. ‘별이 빛나는 밤’은 사랑했지만 먼저 떠나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함께 살던 공간의 흔적들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과거를 기억하는 과정을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건축가A’는 할머니의 지난 추억들을 나열하면서 과거를 돌아보고 추억을 통해서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나 자신에게 추억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두 작품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 것 같다. 그래서 인물의 감정을 이끌어가는 데 중요한 매개로 기억에 따라 변화하는 감정, 상실감과 그리움을 주로 표현했다. 특히 상실감은 새로운 것을 마주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만큼 계속 소멸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추억 자체가 상실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맥락이 됐다. 작품에서도 어떤 추억 속에 어떤 상실이 있었는지를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이종훈 감독이 작업하는 모습ⓒ​반제연

 

 

학생기자: 꾸준히 2차원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왔다. 이 매체만이 지닌 장점이나 자신과 잘 맞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종훈: 일단 애니메이션은 세계관과 인물의 모든 것을 설정해야 된다. 작품에 세부설정이 모두 드러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세부적인 세계관 설정을 위해서 세팅을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정말 재미있다. 단순하게 표현해서 재밌고, 구애도 적게 받는다. 영화는 촬영지를 찾고 배우도 섭외하고 장비도 있어야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상대적으로 구애를 덜 받는다. TV에 나오는 시리즈, 짧은 뮤직비디오, 광고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분야가 있지만, 나는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나도 이야기가 담긴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면서 꿈을 키워온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그리고 애니메이션을 통해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이야기들을 표현하고 싶다.

 

학생기자: GV에서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차기작에서 다루고 싶은 대상이나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이종훈: 건축가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은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로 생각하고 있다. 의뢰인을 현대 사회의 인물로 설정해야 작품의 세계관을 포함한 모든 것이 판타지여도 일상과 맞닿은 부분을 통해 작품을 보시는 분들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김새는 같지 않겠지만 인물을 통해 최대한 인생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을 써내려가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건축가 또한 의뢰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스스로도 내면의 문제들을 들춰내며 발전해가는 형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터뷰 모습ⓒ​이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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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이종훈은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출판 및 영상제작 스튜디오 ‘VCRWORKS’의 공동대표이다. 그는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이후 2015년 ‘VCRWORKS’를 설립하여 광고, 단편, 시리즈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에’(2017)로 제13회 서울인디애니페스트 새벽비행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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