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 close
    Image

[Essay] 공공 건축의 프로세스

김광수
사진
신경섭(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스튜디오 케이웍스
background

도시재생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건축 담론이 도시 담론으로 넘어가고 도시 담론은 건축보다 더 긴요하게 인문학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도시재생은 건축보다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를 포괄하기에 더 정치적이며 그 정치의 구조는 신도시의 건설보다 복잡다단하다. 도시재생은 계획적으로는 선형의 과정을 추구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선형의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무수한 복병들을 만나고 어쩔 수 없이 경로를 우회하다 망하기도 하고 뜻밖에 흥하기도 한다.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아니 그 과정 모두가 책임을 불분명하게 하기 위한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일치의 과정들이 모호하게 용해되어 협치의 과정으로 불리는 영역이기도 하다. 하나의 도시재생이 성공이라고 이름 붙여지더라도 섣부른 성공일 수 있고 좀처럼 이해관계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가 없기 때문에 도시재생은 모두가 실패일 수 있다. 관계자의 평가와 외부의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고 성공의 척도 또한 각자가 정하기 나름이기도 해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러한 실패의 지뢰밭과 저성장의 추세 속에서 일어나는 도시재생은 출구 없는 미로에서 탈출구를 찾는 불안한 희망고문 일 수도 있다.     

 

도시재생이 이슈가 되기 20~30년 전부터 한국의 많은 건축가들은 신도시가 아닌 구도시를 논해왔고 성장 담론보다는 지속가능, 재생 혹은 도시의 지역성과 기억 담론들을 논해왔다. 많은 선배 건축가들은 ‘이 땅의’라는 지역성과 정체성 담론을 오래전부터 천착해왔다. 

아주 거칠고 무책임하게 그 여정을 한번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근접한 과거 한국의 건축 사회는 개발주의와 함께 서구 담론을 쫓아가기에 급급했다. 1960, 70년대에는 콘크리트로 대변되는 르 코르뷔지에 풍을 경험했었고, 1980년대경 점차 벽돌로 대변되는 알바 알토 풍으로 넘어가던 시기를 겪었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혜성처럼 등장했던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을 한국 사회는 이상한 방식으로 건너뛰었다. 예를 들면 독립기념관이 엉뚱하게도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발화점이자 종착점이 되어버린 것과 같다. 이 시기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예술의 전당도 지어졌다. 나는 이 시기를 화강석의 시기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파격적인 해체주의와 서정적인(?) 지역적 비평주의의 양 갈래에서, 해체주의는 짧은 시기에 센세이션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듯싶었고 지역적 비평주의는 계속 회자되는 듯했다. 너무나 먼 발치에 있었던 그리고 대단히 급진적이었던 서구의 해체주의 건축가들은 사실 이미 1990년대 말부터 한국에 건물들을 설계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건축은 해체보다는 용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거나 점점 액체근대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하나의 스타일이 된 이 양상은 2000년대부터 금융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턴-키 건설문화와 결합하여 수많은 공공 건축물들을 과격한 CG와 실망스러운 시공 결과물들로 형해화(形骸化)하는 듯했다. 이와 달리 지역적 비평주의로 대변되던 서구 혹은 일본의 건축가들은 한국에 비교적 조용히 들어왔고 대체로 재력가들의 사적인 건물들을 설계했기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공공적 건물이나 기업 건축물에는 급진성을 추구하고 사적인 영역에서는 회고적 서정성을 추구했었던 한 시대의 양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제는 공적인 영역에서도 기업이나 개인, 정부 주도 사업 할 것 없이 서정적 감각이나 레트로 문화를 추구하지만 말이다. 

 

부천아트벙커 B39_ 거대한 소각장 앞에 어색하게 위치해 있는 관리동 건물과 소각장을 열주로 엮어 진입 동선 레이어를 만들었다. 이 레이어는 대로변과 마주하며 소각장의 변신을 예고한다. ⓒ김용관

 

여하튼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의 담론 추구형 건축가들은 20-30년 전부터 지금까지, 신도시보다는 구도시에 지속적으로 천착했다. 물론 이 시기 한국 사회의 주류는 당연히 신도시였다는 것을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담론의 기저는 크게 지역적 비평주의였다고 본다. 하지만 비평이 사라진 바로 이 시대에 도시재생이라는 거대 담론 혹은 주류가 도래했으니 참으로 아니러니하다. 비평이 사라진 시대에 지역적 비평주의는 가능할까? 

 

지역성은 지역 특정적이거나 고유함이 되기보다는, 아니면 차라리 한 건축가의 고유함이 되기보다는, 건축가와 지역성을 소위 ‘퉁 쳐서’ 일반명사 ‘지역 스타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지역도 없고 건축가도 없는 그런 상황을 초래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비평이라는 기능 없이 도시재생이라는 담론의 전개는 가능할까? 요즘은 더 이상 지역적 비평주의를 논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이 글이 생경할 수도 있다. 지역성 논의는 이미 커뮤니티 담론으로 이전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그 커뮤니티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정주 커뮤니티는 거의 와해되었으며 오래전에 지역주의화 되어버린 모습만을 볼 수 있고 지역은 결국 뜨내기 혹은 반미학 풍의 유목 커뮤니티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지만 결국 이 유목 커뮤니티는 다시 지역성에 의존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실정이고 커뮤니티 논의도 결국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기에, 나는 다시 지역과 비평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는 심정이다. 이런 식으로 나의 의문은 자꾸 되돌아가며 확대된다.

비평 기능이 상실된 이 상황에서 모든 건축 논의는 담론 차원의 논의라기보다는 개인의 사설에 불과하다. 그래서 건축가는 도시인문학이라는 상위 담론에 의존하게 되었다. 도시인문학뿐만 아니라 인문학은 도시재생 전체에서 아주 긴요한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인문학 역시 비평의 기능이 없는 실용교양학이나 개인들의 사설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시대가 너무나 이상하다.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며 언어의 실체 없이 떠도는 유령들 같다. 니클라스 루만이 말한 것처럼 사람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 커뮤니케이션하는 형국이다.   

앞서 언급했던 이상하게 건너뛰었던 그 화강석의 시기를 이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무슨 이즘이니 뭐니 이런 것을 다 떠나서 이 모든 과정과 상황들을 통칭 포스트모던하다고 논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당시에 그 논의를 건너뛰었기에 우리는 이 상황에 무지하거나 취약한 것일까? 논의를 했었어도 마찬가지였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도시재생의 시기에 비평 담론의 경험조차 없는 세대의 활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쩌면 오히려 이런 상황이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본다.       

그런데 나는 왜 나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이 지면에서 이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게 더 이상하다. 나 또한 제자리를 맴돌며 지난 시간을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는 무지한 처지이기 때문에 결국 내 처지를 이런 식으로 소개하게 된다.       

 

서울창의예술교육센터_ 기존 폐교사동의 가로로 긴 창을 남기고, 콘크리트 라멘조의 성격을 이어 받아서 증축했다.


‘레트로-’ 문화는 미래가 없는 지금 시대의 유일한 대안처럼 보인다. ‘레트로-’가 아닌 것은 이제 새롭지도 않고 익숙하지도 않다. 새로운 것 같으면서도 익숙한 것이 레트로 문화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이 아닌 모더니즘 레트로도 부활한다. 마치 포스트모던한 처지가 아닌 것처럼. 가까운 과거, 먼 과거 할 것 없이 그리고 과거의 미래, 즉 예전 미래주의 스타일도 레트로로 부활한다. 없음의 미학도 과잉의 미학도 소박함의 미학도 새롭다기보다는 레트로하다. 지금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를 다시 해보자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은 시작부터 자웅동체였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모더니즘에서 계몽주의만 빼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둘은 하나로 더욱 납작해져서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논의를 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2014년도에 ‘제주현상’이라는 연구 작업을 커튼홀의 동료들(조재원, 구승회)과 일 년 동안 진행한 적이 있었다. 2014년을 기점으로 10년 동안 제주에서 일어났던 탈도시화 현상, 이른바 제주열풍을 리서치하는 작업이었는데 연구 결과의 키워드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유토피아(섬과 꿈)-이국성(새로움)-근 과거(익숙함)’, 그리고 ‘유목과 정주를 함께 흉내내기’였다. 공전의 히트를 쳤던 영화 ‘건축학개론’의 배경 또한 괜히 제주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일종의 상상된 과거(유토피아)로의 탈출이었다. 연구 작업의 키워드는 결국 앞서나가거나 탈출하고 싶은 진보와 물러서고 싶은 회고의 절묘한 조합 혹은 진보와 보수의 동시 추구에 관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멈추어 있을 수는 없기에 앞서나가기와 뒤로 물러나기를 동시에 수행하며 빠르게 납작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 행위들은 각종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의해서 실어 날라지고 전달의 전달을 거치며 더욱 납작해진다. 페이스북의 많은 사용자들은 이제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갔다. 페이스북의 그 많던 사설들도 이미 사설은 소음이라는 듯 사라지고 있고 모두 사라질 것 같다. 진보와 보수도 납작해져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다. “신마저 해체되고…그리하여 아무것도 아닌 그 무엇을 딱히 뭐라 규정하고 색깔을 입힐 수 있는 마지막 여지마저 사라져버렸다.”는 로베르트 발저의 세상에 관한 단편소설 「두 가지 이야기」나 아무것도 아닌 것을 먹고 음미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한 남자의 아무것도 아닌 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파 아무것도 아닌 것을 계속 먹고 있어야 하는 처지를 쓴 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소설은 이 상황에서 무척 실감나는 이야기다.      

 

창작놀이센터_ 1970년대에 지어졌던 연세대학교 앞의 지하보도는 버스중앙차로제가 실시되면서 생겨난 많은 횡단보도로 인해 잊혀지고 있는 공간이었다.

 

비평문화는 부활할까? 건축가의 비판의식은 살아남을까? 아니 건축가는 살아남을까? ‘왜’는 없고 ‘어떻게’만 있는 건축의 상황에서 미래에는 건축가가 오히려 중세의 기술자 혹은 장인이 되어 있을까? 문제 제기는 찾기 힘들고 서로가 문제 풀기에만 급급한 이 공공과 민간의 현실은 무엇인가? 

 

이런 면에서 미래의 지식인은 장인이 되거나 속세와 연을 끊은 중세 수도원의 수도사처럼 될 것이라는 빌렘 플루서의 무거운 말이 떠오르고 백남준이 언급한 디지털 화면은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은 것이라는 글도 떠오른다. 그러나 다른 편으로는 이 사회가 너무 세속화가 되어서 문제가 아니라 세속화가 덜 되어서 문제라는 조르조 아감벤의 지적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요즈음 새롭게 떠오르는 이른바 평가권력 주체에 대한 논의들이 있다. 대체로 관계 지식인 혹은 전문가로 구성되는 이 주체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현대의 관료, 기업, 대학 사회에서 하나의 막강한 주체다. 설계공모나 건축학 인증도 마찬가지이고 나날이 새롭게 생성되고 있는 각종 건축심의나 기술적 인증의 과정도 그러하다. 심지어는 방송 연예 프로그램에서도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권력 주체와 평가대상 간의 가학피학의 모습이 엔터테인먼트의 대상이 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전문가와 평가대상 모두가 ‘어떻게’는 알지만 ‘왜’는 모르는 체, 그리고 자기 분야의 사안은 족집게처럼 집어내고 한 마디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맥락이 더 중요한 시대에 맥락은 모르는 체, 각자가 주어진 문제 풀기에만 급급해서 나오게 되는 아무것도 아닌 그 많은 결과물들은 결국 누구를 위한 무엇일까. 

 

모두가 무지한 이 상황에서 과연 해석의 주체를 이렇게 상정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리고 이 상황에서 지식인은 기술자가 될지언정 포괄적 해석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전문가 그룹이나 지식인들은 대중을 세심하게 볼 필요가 있다. 이제 군중, 민중, 그리고 시민의 시대를 거쳐서 대중의 시대이니까. 대통령도 대중이고 일용직도 대중이다. 물론 전문가도 대중이다. 그래서 대중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사실 현대사회에서 대중만큼 강력한 것도 없다. 대중은 시민처럼 행정구역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경도 없어서 메뚜기 떼처럼 어떤 상황이나 지역을 초토화시킬 수도 있지만 또한 이해관계를 떠난 강력한 문제 제기 집단이 될 수도 있다. 대중 앞에서는 전문가나 전문용어도 무장해제해야 한다. 대중은 그 수동성만큼이나 큰 능동성을 가지고 있다. 전문가인 나로서는 무척 불편하고 결이 안 맞는 실정이지만 나는 대중을 해석의 주체로 상정하는 정교한 공론화 체계가 이 오리무중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해볼 만한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문화적 다원주의로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그런 차원도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물론 어두운 시대의 반딧불 같은 혹은 수도사의 심정으로 지성을 갈고 닦는 고독한 모임이나 개인들을 나는 무척 좋아하고 존중하고 미래의 커다란 희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2011년 나는 조경가인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교수)과 옛 광주시민회관 리모델링 설계공모를 할 때 꽤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그때가 한창 ‘나는 가수다’ 열풍이 불던 때였고 광주시는 일명 나가수식 심사를 하겠다고 했다. 좀 엉뚱해 보이기도 했는데,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시민 100명을 초대해서 심사를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시민 100명은 1개의 투표권을 가지며 동점일 때에 일종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식이었다. 열기가 무척 뜨거웠고 공무원들도 긴장했고 광주시민들의 관심도 급증했다. 작업을 하면서, 알 수 없는 그 시민 100명을 심사의 주체로 상정하여 계획하고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으며 우리의 모든 전문지식은 시민을 위해 대중 언어로 번역되어야만 했다. 우리의 계획안이 시민들에 의해서도 선정되었는데 그때 무척 감개무량했다. 당선 이후에는 시민들과 전문가들은 다 사라졌고 시청 공무원들과 시공에 대한 무상 감리가 진행되어 말도 못할 고생을 했다. 애초의 기획과는 다르게 그 건물을 광주시 공원관리사무소가 다 쓰고 있는 우울한 상황까지 가고 말았다. 책정된 공사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싫다(그 과정과 준공된 모습은 「SPACE(공간」 571호에 소개되어 있다.).

 

광주공원 시민회관_ 옛 광주시민회관 리모델링 설계공모에서는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시민 100명을 초대해서 심사를 진행했다.

 

전문가 및 시민이 건축의 전 과정을 팔로우업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지역 내의 이해관계 집단이 된 시민이나 군민을 넘어서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미국에서 진행되었던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이라는, 전문가들과 주민이 한 팀이 되어 진행되었던 공모전 같은 것도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철원의 DMZ 철새타운은 철원의 민통선 안에 있었던 양지리라는 마을을 대상으로 했던 사업이다. 꽤나 복잡하고 지난한 사업이었다. 각종의 전문가(조경가, 철새 전문가, 환경 교육자, 지역활성화 전문가, 지역 브랜딩 전문가 등)로 구성된 우리 팀은 주민참여 사업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 및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의 문화 기반시설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철원군이 우리와 함께 공모에 제출하여 선정된 사업으로서 다단계로 진행된 사업이었다. 양지리 주민들도 아주 적극적이었고, 팀 구성원 모두 열심히 참여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리의 사업 마스터플랜과 주민참여 활동 등의 실행 결과물 덕분에 우리는 2단계 사업자로도 선정되어 건축 실시설계까지 이를 수 있었다. 설계 말미에 아트선재센터에서 라운지프로젝트 전시의 제안이 있었고, 진행의 과정이 『철새협동조합』이라는 책으로도 출판되었다. 우리 전문가들도 철새와 같은 입장이니 재미있는 제목이었다. 그리고 당시 공무원들과 지역주민들 및 참여자들을 고취하기에는 이 전시나 출판은 참 좋은 계기였다. 주민을 포함한 관계자들 모두 전시에 참여했고 말이다. 그런데 실시설계를 다 한 마당에 양지리의 민통선이 해제되어서 설계부지이자 철새들의 도래지인 토교저수지 제방에 민통선이 새롭게 그어지는 우울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끔찍한 복병을 만난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양지리의 폐교를 대상지로 바꿀 수밖에 없었고 또 한 차례 지난한 과정을 시작해야 했다. 철새탐조를 위한 방문자센터와 조류보호소 및 생태교육장을 위한 시설로 프로그램이 변경되어 실시설계까지 진행이 되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군수가 바뀌게 되면서 이 시설은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양지리도 이장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너무 달라져버렸던 것이다. 참으로 불연속과 복병의 점철이었다. 지금은 또 새로운 군수가 부임하여 다시 활기를 찾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 사업은 2010년 시작되었었고 DMZ 철새타운은 2013년 말 설계를 시작하여 2016년 초 준공되었다.  

 

DMZ 철새평화타운_ 폐교는 본래 아담한 초등학교였다. 폐교를 주인공으로 삼고 증축되는 모든 시설들은 뒤로 물러서게 배치했다.

 

과연 사업의 연속성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DMZ 철새타운의 경우는 그나마 지금 잘 쓰이고 있기에 다행이지 얼마나 많은 전국의 시설들이 변질되고 방치되어 있을까. 그리고 다단계 사업의 경우 참여자들의 진행 연속성이 없고 매번 시설운영이나 사용의 주체가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건축 공간의 이해 없이 시설을 변경하거나 의아한 형태로 공간을 사용한다. 설계를 한 건축가는 감리를 못할 뿐만 아니라 사후설계관리라는 것도 대가기준이 없어서 대부분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설계에서 준공의 과정까지 담당 공무원은 수차례 바뀐다. 뿐만 아니라 계약법에 의해서 단계별로 설계의 주체(건축가)가 바뀌게 되니 건물이 나중에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도시재생과 저성장의 시대에, 다단계 사업은 반드시 필요하고 무척 중요해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기술관료주의의 시대에 해석주체는 누구이고 그 구성과 진행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점이 그래서 정말 중요해진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또 다른 갈등과 이견이 발생할 것이다. 꽤나 신중해야 할 테고 현명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바에는 그래도 가본 길보다는 안 가본 길을 가보는 게 낫지 않을까. <진행 박세미>

 

각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는 아래의 연관 게시물을 확인해주세요. 도면, 비평 등 김광수 건축가의 작업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SPACE 2018년 9월호 지면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김광수
김광수는 스튜디오 케이웍스 대표이며 집담공간 커튼홀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여러 장르의 전문가 및 대중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뉴미디어로 인한 사회성, 도시건축 환경의 변화를 주목하며 다양한 건축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방들의 가출’이라는 주제로 한국 사회의 아파트와 방 문화 현상을 조사 전시한 바 있으며(2004 베니스건축비엔날레), 핀란드 국립미술관(2007), 아트선재센터(2012),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2013), 독일 에데스 건축갤러리(2014), 문화역서울284(2012, 2016) 등에도 초대되어 전시를 한 바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