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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 예술: 부산현대미술관 개관전

이지윤 기자
자료제공
부산현대미술관
background

건축과 예술이 된 조경: 수직정원

부산현대미술관은 멀리서 보면 초록색 융단을 두른 박스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면 이 융단이 미세하게 물결친다. 가까이 다가가면 벽의 곳곳에서 종류가 다른 식물들이 어깨를 맞댄 채 자라나고 있다.식물학자이자 예술가인 패트릭 블랑의 수직정원이다. 수직정원은 수직 콘크리트 벽에 배지를 설치하고 국내에 자생하는 약 175종의 식물을 심어 건물의 외벽을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미술관의 벽면을 배경으로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 작품이 누리는 인기를 보여준다. 사실 부산현대미술관의 개관전 중 가장 잘 알려진 주인공인 수직정원은 미술관이 지녔던 태생적 문제에 대한 해법이었다. 부산현대미술관이 시달렸던 논란 중 하나는 바로 미술관의 외관이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 여러 미술관의 선례들에 반해 상업시설을 연상케 하는 매끈함 말고는 특징도 없고 밋밋하기만 한 외관에 ‘대형 마트’ 같다는 비판도 나왔다. 외관에서는 부산현대미술관의 정체성이나 존재 이유에 대한 고민도, 특별한 건축 언어도 찾아볼 수 없었다. 미술관 건립을 위한 건축 공모의 부재 등 문화예술 행정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설계 당시에 부재했던 고민은 미술관의 몫으로 넘어갔다. 부산현대미술관은 고심 끝에 을숙도가 철새 도래지와 습지대 등이 있는 천연기념물이라는 점을 고려해 수직정원을 설치했다. 미술관에 정원을 조성해 여러 식물들이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대안은 기존의 우려들을 해결하는 데 나름 성공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수직정원은 부산현대미술관의 홍보 간판이 되면서 많은 관광객을끌어들여, 접근성 등의 문제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관람객 유치 문제를 해소했다. 앞으로 수직정원에 심긴 식물들은 무성하게 자라나 정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겠지만 부산현대미술관의 여러 문제는 정원 뒤에 가리운 채 아직 남아있다. 

 

전준호 ‘꽃밭명도’는 사람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사물과 공간을 다룬다.

 

정혜련 작가의 ‘‘-1’의 풍경’은 미술관이 위치한 낙동강을 LED 등으로 시각화해 천장에 설치했다.


새로운 매체와 감각을 통한 공간의 정체성 만들기: <아티스트 프로젝트 Ⅰ,Ⅱ,Ⅲ>, <미래를 걷는 사람들>

패트릭 블랑의 수직정원 외에도 부산현대미술관에서는 <아티스트 프로젝트 Ⅰ,Ⅱ,Ⅲ>, <미래를 걷는 사람들> 전시 등이 이어진다. 현대미술관 본연의 역할로 뉴미디어 아트 등 새로운 매체와 감각, 현대적인 재료와 실험들을 다루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작업들을 선별한 것이다. <아티스트 프로젝트 Ⅰ,Ⅱ,Ⅲ>에 참여한 정혜련 작가의 ‘‘-1’의 풍경’은 미술관이 위치한 낙동강을 LED 등으로 시각화해 천장에 설치했다. 낙동강 작업 아래에는 콜로세움 형태의 불투명한 벽이 위로 뻗어 있다. 김이 서린 듯한 유리 벽면 전체에는 낙서가 되어 있고, 이 글씨 부분을 투명하게 만들어 설치물 내부의 빛을 보게 한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LED 빛의 흐름, 당산제를 떠올리게 하는 설치 작품으로 전시장 공간을 환상적인 공간으로 연출한다. 감탄을 자아내는 형형색색의 불빛과 자연의 모방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보인다. 부산지역의 환경과 문화, 지역성을 반영한 작업이다.

강애란 작가는 모조 책장을 만들어(‘루미너스 라이브러리(Luminous Library)’) 안에서 불빛 조명이 빛나게 했다. 빛나는 가짜 책들은 실제 책들과 섞여 있는데 아날로그 지식과 미래의 지식, 정보, 예술의 결합을 의미한다. 이 가짜 도서관은 어린이 예술 도서관 옆에 설치돼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준호 작가의 ‘꽃밭명도’는 사람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사물과 공간을 다룬 작업이다. 전시장 중간에 설치된 스크린 위에 스스로 닫히고 열리는 커튼, 바닥에 놓여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유리문, 사람들의 무릎 높이까지 낮춰 단 천장의 조명 트랙은 사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대신 독립성을 얻었다. 오작동하는 듯 보이는 이 사물들은 관람객들에게 ‘오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사물의 본래 기능이 멈추는 순간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해 숨을 불어 넣는 것이다. 스크린 안에서는 영도의 폐선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기한 생명체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투영된다. 특히 미술관 출입 셔터를 활용해 붉은색의 투명한 장치를 설치한 작업에서는 일정 시간이 되면 셔터가 자동으로 올라가 전시장 내부로 외부의 빛을 들인다. 붉게 물든 공간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오작동하는 사물을 보며 관람객들은 공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하고, 이것은 새로운 매체와​ 감각을 다루는 현대미술관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부실한 공사로 인해 셔터 앞의 갈라진 바닥 틈에는 풀을 심었다. 결함을 예술로 승화해 오류가 예술적 상상력의 시발점이 되게 한 것이다.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토비아스 레베르거: 가끔이나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나 자신뿐이다>와 박스를 설치해 소리를 극대화한 지문의 <사운드 미니멀리즘>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토비아스 레베르거: 가끔이나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나 자신뿐이다> 역시 결함을 예술로 승화해 오류가 예술적 상상력의 시발점이 되게 했다.

 

미래에 대한 상상 

<미래를 걷는 사람들>에서는 부산현대미술관이 바라보는 미래에 대해 다루고 있다. 관념적인 개념인 미래는 기억 속에 새겨진 과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새롭게 열리는 시간과 공간을 말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증발’은 희뿌연 연기가 뒤덮는 마을을 묘사했다. 군부 독재정권과 사람들​ 간의 투쟁은 연기 속에 파묻혀 불명확한 움직임과 이미지로 나타난다. 사건의 과거, 현재, 미래를 비연속적으로 제시하는 영상은 어떤 장면이 미래일지 관람객들이 추론하도록 한다. 미래의 정의를 관람객들의 재구성에 맡긴 것이다. 준 응우옌 하츠시바의 ‘베트남 기념 프로젝트, 나트랑: 복합성을 향해-용기 있는 자, 호기심 있는 자 그리고 겁쟁이를 위해’는 산소 호흡기 없이 물속에서 인력거를 끌고 가는 다이버를 그렸다. 물속에서 인력거를 끌면서 고통스럽게 숨을 참는 다이버들의 모습에서 생존을 위한 고된 노동의 행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영상 마지막에는 다이버들이 떠난 물속 깊은 바닥 군데군데를 하얀 천으로 덮은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아스러져간 사람들을 추모하는 행위를 연상시킨 것으로 과거를 현재의 행위로 다시 재현해낸 것이다.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입원되었던 낙생요양원을 철거해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지우려는 움직임에 저항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첸 지에첸의 ‘잔향의 세계’가 그러하다. 또한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한 민주화 투쟁 사건과 영웅만이 들어갈 수 있는 천국인 발할라의 공간을 결합한 ‘인민의 발할라 입성’, 사회공동체를 묶어주는 경계인 바리케이드와 고적대의 행진을 결합해 새로운 공동체 형성을 이야기하는 뮌의 ‘바리케이드 모뉴멘트[Barricade Monument (Love Parade)]’는 모두 과거의 오류와 투쟁, 희망의 의미를 곱씹고 미래를 다시 그리는 행위다. 

부산현대미술관이 그리고자 한 미술관의 미래는 어떤 것이었을까. 미술관 개관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으며, 미술관 외관 문제를 해결한 수직정원에는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이제 개관한 부산현대미술관에게는 더 많은 출발이 기다리고 있다. 오는 가을 부산비엔날레가 열릴 것이고, 앞으로 수많은 작가와 전시가 이곳을 거쳐갈 것이다. 지역의 미술관에 머물지 않고, 다른 장르와 지역 및 국가의 미술계와 네트워킹을 만들며 영향력 있는 미술관으로 도약할 수 있는지가 부산현대미술관의 과제로 남았다.​​

 

<미래를 걷는 사람들> 강태훈 ‘인민의 발할라 입성’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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