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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바라간의 유산을 대하는 태도: 바라간 재단

자료제공
바라간 재단(별도표기 외)
진행
한가람 기자

「SPACE(공간)」2022년 9월호 (통권 658호)

 

바라간 재단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루이스 바라간(1902~1988)에 관련한 자료들을 아카이빙한다. 이 단체를 이끄는 페데리카 찬코는 아카이브란 완전하고 체계화된 문서의 집합이 아니라고 말한다. 새로운 기술과 연구 방법은 개별 자료 간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드러내기도 하고 몰랐던 정보를 이끌어내기도 해서 그녀는 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아카이브를 정리했다고 전한다. 26년 전 재단을 설립하고 올해 바라간 갤러리를 열기까지, 바라간 재단이 걸어온 여정을 찬코와 되짚어봤다.

 

문서 보관소 Image courtesy of Barragan Foundation / ©Lake Verea 

 

페데리카 찬코 바라간 재단 이사 × 한가람 기자 

 

한가람(한): 1996년에 조직된 바라간 재단은 스위스에 기반을 두고 멕시코 건축가인 루이스 바라간의 아카이브를 관리한다. 어떤 목적으로 이곳에, 누가 재단을 세웠나?

페데리카 찬코(찬코): 바라간은 죽기 전 본인의 유품을 동료 건축가 라울 페레라 토레스(Raúl Ferrera Torres, 1942~1992)에게 물려주었다. 페레라 토레스가 사망하자 그의 아내가 이 유산을 이어받았다. 그녀는 멕시코에서 아카이브를 매입할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1994년 가을, 바라간 아카이브가 뉴욕 경매시장에 나왔다. 그녀가 입찰자를 구하지 못해 그 자료들을 뉴욕의 건축 전문 딜러에게 넘긴 것이다. 그 당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바라간 전시를 위해 딜러에게 소장품을 대여받았다. 이 일은 비트라 측이 민간자본으로 바라간 아카이브를 인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아카이브가 흩어져 통합성을 잃는 불상사를 막고자 했다. 그 후 자료를 검토하는 첫 단계에서 앞으로의 과제를 수행하는 데 특별한 조직체가 필요함을 느꼈다. 그 결과 바라간 재단은 비트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독립적인 비영리 기관으로 설립됐다. 사명은 아카이브 보존, 연구, 관리이다.

 

한: 활동 초기, 아카이브를 분석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고 들었다. 자료 분류 기준과 방식, 작업 기간, 참여자 등을 알려 달라. 

찬코: 재단 설립 초반에는 연구차 몇 차례에 걸쳐 멕시코를 방문했고 학자 및 기관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자료를 살피고 분류했다. 2000년에 들어서는 전시나 책을 통해 연구 결과를 보여주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전시품을 점검하고 취약하거나 손상된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 소장품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작됐다. 그중 몇 개는 전문적으로 복원하기도 했다. 2006년 말부터는 소규모 연구팀을 꾸려 완공 및 미완공 건물들을 조직적으로 검토하는 일에 착수했다. 프로젝트마다 위치, 날짜, 협업 대상, 설계 과정에 대한 주요 설명 등을 표로 정리했다. 현장에 찾아갈 때 부정확한 정보로 길을 잃거나 답사 제한과 같은 여러 난관에도 부닥쳤다. 그럼에도 설립 후 10년이 흘러 새로운 연구 방법과 기술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몰랐던 정보를 발견하거나 기존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 필요했다.

 

한: 연구의 중심에는 「도무스」 에디터였던 페데리카 찬코가 있다. 무릇 에디터란 흩어진 정보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아카이브에서 이러한 직업적 강점이 드러나는 부분은 어디였나?

찬코: 소장품을 구분할 때 바라간의 사무소에서 개발하고 적용했던 아카이빙 시스템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겉으로는 아무 관련도 없어 보이는 문서 간의 혹시 모를 ‘밀접한 관계성’에 특별히 주의했다. 역사적 층위 속에 숨어 있던 관계가 추후에 명확하게 드러나거나 새로운 정보로 이끌 수 있음을 감안한 까닭이다. 바라간 아카이브는 시각적으로 매우 풍부하다. 그중 건축 사진이 지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외에 시대별 풍습 사진과 출판물, 예비 조사 등은 설계 생산물인 드로잉과 스케치를 보완한다. 아카이브란 마치 모자이크 기법처럼 각각의 자료가 모여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 이는 건축가의 본래 의도, 작업 방식, 작은 아이디어에서 발전한 설계 구상안, 물리적 실체로 구현되기까지 거쳐온 지난한 과정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바라간 재단은 민간투자 기관으로 자원과 인력이 충분치 않았다. 나는 연구자, 학자, 편집자, 아카이브 관리자로 일하면서 사무 업무까지 맡아야 했다. 자료를 분석하고 기록물을 편집하며 느끼는 부담과 보람 중 상당 부분을 큐레이터 마르틴 요세피(Martin Josephy)와 나눴다. 이외에도 동종 업계 종사자와 협업자 등으로 소규모 팀을 구성해 일시적 혹은 장기적 도움을 받기도 했다.

 

멕시코시티 내 아즈텍 공원 설계 제안(1954, 미완공)

 

한: 한편 2010년대까지만 해도 자료 접근과 이용에 어려움이 있어 비판이 일기도 했다. 2016년 「더 뉴요커」 기사에 따르면 당신은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바라간 건물의 이미지가 무분별하게 복제되어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저작권에 관한 재단의 입장이 궁금하다. 

찬코: 아카이브와 더불어 그와 관련한 저작권 관리는 우리의 의무다. 저작권법은 나라마다 구체적 내용과 해석이 다른 복잡한 사안이다. 바라간 재단은 문화기관으로서 스위스의 저작권협회 프롤리테리스(ProLitteris)에서 지정한 약관을 따라 비영리 정책을 엄격하게 고수해왔다. 지난 몇 해 동안 재단의 우선순위는 아카이브와 관련된 업무와 조사였다. 대부분의 에너지를 이 일에 쏟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출판, 전시, 교육, 연구를 위해 정보를 제공할 여지는 남겨두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대중의 인기와 과다한 노출이 끼치는 영향이 염려됐다. 한 작품이 과소비를 통해 아이코닉한 작품이 된다면 그 작품에 대한 대중과 학계의 인식에 어떤 파급이 미칠지, 창작자의 노력과 의도를 읽어낼 때 작품의 인기가 해석 방향을 어떻게 좌우하는지 말이다. 따라서 담론과 비평에 미칠 장기적 영향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재단의 활동은 약 20년의 연구 기간을 거치는 동안 출판, 전시 참여 등으로 확장됐다. 나아가 작년에는 웹사이트를 개편하여 더욱 많은 사람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전과 상반된 행보에는 어떤 계기와 의도가 깔려 있나? 

찬코: 우리의 사명과 목적에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존이 1순위였고, 면밀한 연구가 아카이브를 공유하는 데 필수 조건이었을 뿐이다. 아카이빙에는 시간 외에도 자원과 인력이 요구된다. 연구 주제가 미개척 분야이든 표면적으로만 드러나 있든 연구에는 성실과 헌신이 있어야 한다. 1996년도에는 바라간의 업적이 멕시코 외부로는 거의 알려진 바 없었고, 사실 멕시코에서조차 그를 잘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기존 문헌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었고 모순적이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개정이 시급했다. 특히 미완성 건물에 관한 정보는 희박하여 해석하거나 추적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바라간이란 인물이 잘 알려져 있고 그의 작업도 사진으로 널리 유포된 것을 보며 그에 대한 정보가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모든 아카이브가 연구 질문에 해답을 내리는 완전하고 체계화된 문서의 집합은 아니다. 특히 바라간 아카이브는 복잡한 토지취득과 개발 방식, 건축 계획과 설계, 그리고 시공에 있어 꽤 비정통적인 사업 과정을 거치고 남은 유적의 총체이다. 이 대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수년의 연구, 조사, 검토 및 분석이 필요했다. 이 준비 작업은 전시와 도록이라는 결과물로 귀결된다. 〈루이스 바라간: 조용한 혁명(Luis Barragán: The Quiet Revolution)〉 전시는 2000년 6월에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을 시작으로 발렌시아, 런던, 비엔나, 도쿄, 멕시코시티를 순회했다.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전시는 그 기간이 바라간이 태어난 100주년 기념일과 겹쳐 멕시코 문화부와 밀접한 협력으로 이뤄졌고 개회식에는 멕시코 전 대통령 비센테 폭스(Vicente Fox)가 참석했다. 그 후 여러 해에 걸쳐 전시, 출판, 강연 등과 같은 행사를 이따금 개최했다.

 

바라간 갤러리 Image courtesy of Vitra Design Museum / ©Mark Niedermann

 

바라간 갤러리 Image courtesy of Vitra Design Museum / ©Mark Niedermann 

 

한: 지난 5월, 독일에 있는 비트라 캠퍼스에 바라간 갤러리가 들어섰다. 

찬코: 기존에 쓰던 사무실과 수장고는 사내용이었다. 앞서 언급한 연구 단계를 마치고 대중에게 결과를 공유할 시점에 다다라서 공공 출입이 자유로우면서도 예전과 같은 수준의 안전과 보존을 보장하는 새로운 시설로 이사했다. 전시 공간 외에도 문서 보관소, 연구 공간을 마련했다. 아카이브로는 약 1만 3500개의 스케치, 도면, 계획 및 기타 문서, 사진 및 필름, 모델, 가구 등을 모두 옮겨왔다.

 

한: 갤러리는 디터 틸이 설계한 기존 건물을 변형했다.

찬코: 비트라 캠퍼스 내에는 헤르조그&드 뫼롱이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소장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설계한 비트라 샤우데포트(Vitra Schaudepot)가 있다. 바라간 갤러리와 보관소는 이 건물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한 산업용 건물의 한 구역을 차지한다. 기존 건물의 특징은 톱니 지붕이다. 전시 공간은 지붕의 북향 채광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을 최대한 이용했다. 내부 공간은 콘크리트 바닥과 흰색 벽으로 단순하게 마감했다. 보관소는 갤러리 옆에 위치한다. 일반인 접근이 불가하고 전문 장비를 갖췄다. 연구실은 갤러리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곳을 방문하는 학자와 연구자들이 이용한다.

 

한: 전시는 건축가의 작품과 삶에 대한 소개를 넘어, 멕시코 건축사의 거대한 흐름을 보여준다. 

찬코: 전시실은 테마 중심으로 계획했다. 기획에는 큐레이터 마르틴 요세피, 그리고 우리와 몇 해 동안 협업했던 라틴아메리카의 근대 건축학자인 루이스 카란사(Louis E. Carranza)가 참여했다. 카란사는 멕시코 근대 건축사의 큰 맥락 속에서 바라간의 업적을 삽화로 보여주는 타임라인을 정리했다. 타임라인 앞에는 지구라트(El Ziggurat)라 불리는 프로젝트의 모형이 있다. 지구라트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작업인데 바라간이 1964년부터 3년간 건축가 후안 소르도 마달레(Juan Sordo Madaleno, 1916~1985)와 함께 멕시코의 위성도시 로마스 베르데스(Lomas Verdes)를 대상으로 설계했다. 이는 10만 인구를 수용하는 도시계획이자 한 도시의 중심축으로서 건물뿐만 아니라 공공장소가 어우러진 모델이었다. 실제로는 마스터플랜의 일부분만 실현됐다. 전시장 벽에는 드로잉, 1:1 크기로 복제한 스케치, 시대별 사진들을 진열했다. 선별 기준은 아카이브의 다양성과 바라간 작품의 대표성을 보여주는가이다.

 

루이스 바라간 주택의 계획 도면(작성 일자 미상)

 

한: 재단은 설립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거쳤다. 특히 멕시코 건축가의 유산을 타 국가에 있는 재단이 관리한다는 점에서 의견이 대립된 것으로 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다. 

찬코: 우리는 바라간에 관한 아카이브가 흩어져서 더 이상 연구가 불가능해지는 사태를 원치 않았다. 설립부터 현재까지, 문화 및 국가적 가치가 있는 자산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에서 오는 특혜와 책임을 의식하고 있다. 건축과 디자인을 향한 열정이 사명을 다해내려는 헌신을 불러일으킨다.

 

한: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물으며 인터뷰를 마치려 한다. 연구-출판-갤러리 개관에 이은 그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찬코: 현존하는 바라간의 건물과 그것을 보완하는 정보출처 대부분이 멕시코에 있다. 유산의 일부는 공적이고 일부는 개인 소유로, 소유에 따라 접근 가능 여부가 다르다. 앞으로 바라간 아카이브에 관한 관리는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맡는다. 이들은 아카이브와 연계한 교육을 활성화하는 등 미래 발전에 적합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예정이며, 바라간 재단은 아카이브의 보존과 관련 주제들에 대한 지식 확장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지속할 방침이다.​ 

 

루이스 바라간 주택의 옥상 테라스(1948)

Image courtesy of Barragan Foundation / ©Armando Salas


▲ SPACE, 스페이스, 공간


페데리카 찬코
페데리카 찬코는 바라간 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다. 건축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도무스」와 「오타고노」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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