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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너머를 보는 사람들: 〈우먼 인 아키텍처〉 ①

사진
로라 스테이머
자료제공
덴마크 건축센터
진행
윤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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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공간)」2022년 9월호 (통권 658호)

 

건축의 역사는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다양한 성과 신념, 배경의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가담한 수많은 노력이 배제된 채, 마치 모든 난관을 홀로 헤치고 공을 세운 듯이 천재 건축가의 생애를 비추는 건축사에 의문을 던진다. 다양성, 배려, 협력〈우먼 인 아키텍처〉의 전시 책임자 그리고 전시 구성에 도움을 준 연구 팀우먼 인 대니시 아키텍처 1925~1975’(이하 우먼 인 대니시 아키텍처)가 공통으로 강조하는 단어들이다. 건축의 역사와 그 서술 방식에 대해, 이들이 가진 생각을 들어보자.

 


발굴하는 전시: 역사가 묻지 않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다

인터뷰 사라 하틀라 덴마크 건축센터 전시 책임자 × 윤예림 기자

 

윤예림(): 〈우먼 인 아키텍처〉는 건축사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여성 건축가를 조명한다. 전시는 과거와 현재,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덴마크와 외국의 여성 건축가에 대해 시대와 세대, 장소를 아울러 다루고 있다. 폭넓은 내용으로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사라 하틀라(하틀라): 여성 건축가들이 이루어온 혁신과 그들이 이룬 건축적 업적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전시는 이제껏 주목받지 못했던 흥미로운 프로젝트와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를 통해 수많은 여성 건축가들이 시대, 세대, 국경을 넘어 남긴 유산들과 그 사이의 연결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더 나아가서는 전시가 역사적 서사를 다시 바라보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 건축의 역사가 널리 알려진 위대한 소수 인물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여러 상호 관계와 협력 속에서 형성돼왔음을 말하고자 했다.

 

: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와 이야기들이 모습을 드러냈을지 궁금하다.

하틀라: 예를 들어, ‘더 아카이브라는 섹션에서는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덴마크 여성 건축가들이 남긴 중요한 업적을 재발견해 소개한다. 1930년대여성을 위한 건물(Women’s Building)’의 건축 모금운동에 내놓아진 작은 은골무, 전후 덴마크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건물 칼데스코프할렌(1966~1972)의 파스텔톤 타일 조각 등을 통해 드러난 이야기들이다. 자료의 발자취를 되짚는 과정에서 우리는 덴마크 1세대 여성 건축가의 대범하고 근대적인 건물을 알게 되기도 하고, 1960년대에 활동하던 여성 건축가와 조경가의 협력이 낳은 디자인적, 기술적 도약을 발견하기도 한다. 아카이브 자료는 코펜하겐 대학교의 연구팀 우먼 인 대니시 아키텍처의 도움을 받아 구성했다. 이들은 덴마크 건축사에 언급되지 않고 잊힌 여성들의 기여에 관해 연구한다.

 

 

 

: 건축가 울라 태드럽이 제안한 부엌 평면을 실제 스케일로 재현한 공간이 인상 깊다. 도면이나 사진처럼 평면적인 아카이브 요소들을 3차원 공간에 구현하기 위해 어떤 고민들이 있었나?

하틀라: 덴마크 건축센터에서 핵심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전시디자인이다. 우리는평면적인 전시를 지양하고 공간적 전시 경험을 이끌어내기 위해 늘 고심한다. 전시팀에는 큐레이터 이외에 건축가들도 함께한다. 서로 밀접하게 의사소통하며 콘텐츠를 공간적인 전시로번역하고, 관람객들이 스스로 전시에 참여하고 빠져들도록 인도하는 것이 전시팀의 일이다. 이번 전시의 디자인은 아카이브라는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먼지 많고 딱딱한 전시가 되지 않길 바랐다. 건축가들은 이 개념을 발전시켜 가벼운 천으로 구획된 물리적 방들로 아카이브를 표현했다. 각 방은 각각의 여성 건축가를 보여주고 방마다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 ‘자기만의 방섹션에서는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1929)에 기반해 3인의 여성 건축가가 자신들만의 방을 표현했다. 유일하게 아카이브 자료가 아닌 작품으로 꾸며진 공간이다. 울프가 말한, 그리고 건축가 3인이 표현한 ‘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하틀라: 울프의 글은 페미니스트 문학에서 중추적인 위치에 있다. 『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 내 최초의 여자대학교인 거턴과 뉴넘에서 했던 두 차례의 강연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울프는 여성의 삶에 가해지는 사회적 제약에 대해 비평하면서, 여성이 가치 있는 활동을 해내려면 자신만의 재산과 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가 말한 방은 물리적으로 독립된 공간을 의미함과 동시에 여성으로서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은유한다. 우리는 각각 멕시코, 노르웨이, 스페인의 여성 건축가 타티아나 빌바오, 시브 스텐젤랜드, 데보라 메사에게자기만의 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치물로 표현해주기를 요청했다. 그들은 개념적으로, 방법적으로, 그리고 재료면에서 확연히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관람객은 다른 유형의 방들을 체험하면서, 거의 100년 전 울프가 언급한 성역할의 유연성에 대한 논지들이 오늘날과 맞닿는 지점을 경험한다.

 

 

: 전시 내용을 살펴보며 여성 건축가의 업적이 주로 집이나 가정과 관계돼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여성 건축가의 기여를 바라볼 때, 남성 건축가의 업적과는 다르게 봐야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하틀라: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자신의 성과 성역할이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상대적으로 더 의식해야 했다. 이는 현재 덴마크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1940~1950년대의 여성에게 주된 의무는 가사였다. 이는 당시 여성들의 디자인에도 반영됐다. 예를 들어 태드럽이 제안한 부엌 디자인은 집안일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부엌이 실용적으로 디자인되면, 그만큼 절약된 시간과 에너지로 다른 유급직이나 업무를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는 여성해방의 초기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여성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부엌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레테 마이어의 디자인도 이점에서 비슷하다. 그녀가 수년에 걸쳐 개발한 사기그릇(Ildpot)은 냉동실에서 오븐으로, 오븐에서 식탁으로 바로 나를 수 있도록 온도 변화에 강한 재료로 제작돼 식사 준비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줬다. 마이어의 디자인은 1970년대의 현대적 여성상을 대표하며 전통적인 성역할의 사고관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0년대의 건축가 수잔 유싱은여성과 남성이 재료를 다루는 방식은 분명히 다르다. 아이를 돌보거나 바느질을 하는 등, 여성은 남성과 완전히 다른 재료의 세계에서 살아왔으며 늘 다양한 재료, 직물과 함께 생활했다. 나 역시 재료에 관해 매우 직관적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여성이 어떤 특별한 내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느 시대에 속하든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은 당시의 문화적 및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짚고 있다.

 

: 전시장의 한 섹션에서는 기성 여성 건축가들의 인터뷰를, 또 다른 섹션에서는 젊은 여성 건축가들의 인터뷰를 상영하고 있다. 두 세대가 인터뷰에서 취하고 있는 입장에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하틀라: 먼저 덴마크의 기성 세대 여성 건축가들, 대표적으로 도르테 만드럽과 렌 트란버그는 성차별 문제를 매우 중대한 사항으로 여기고 있다. 덴마크의 성평등 의식이 높다고들 말하지만 건축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이에 만드럽 같은 건축가는 성평등에 관한 공공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이 가진 사회적 위치가 대중적인 의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도록 노력하고 있다. 반면 젊은 세대는 평등을 더욱 넒은 관점에서 바라본다. 성 사이의 평등이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광범위한 의미의 평등 말이다. 그럼에도 두 세대 모두가 동의하는 생각은 올바른 건축이란 포괄성과 다양성을 촉진하며 물리적으로 안전감을 제공하는 건축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들 모두는 천재건축가라는 표현에 의문을 표하는데, 개별 건축가가 이룬 업적을 기념하기보다 다양성이라는 가치에 집중하고 어떻게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쏟는다.

 

: 전시는 “2022년의 산업 세계에서 성과 평등이 여전히 의제여야 하는지묻는다. 전시 기획자로서, 이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하틀라: “전적으로 그렇다가 나의 대답이다. 최근 몇 년 새 미투 운동과 더불어 성별격차 문제가 점차 주목을 받게 됐다. 하지만 성평등 문제는 덴마크 건축학과와 건축산업 내부에서 여전히 화제이다. 그도 그럴 것이 건축학과에 남학생보다 여학생의 수가 더 많아졌지만, 여성 교수의 비율은 상당히 낮고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여성 건축가 또한 매우 드물다. 그렇다면 이제 무슨 일이 있어야 하는가? 덴마크에서 이 주제를 다루는 첫 대규모 전시회로써 우리는 여성 건축가들의 정당한 역사적 지위를 확보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불평등에 대한 질문들을 촉진하고자 한다. 우리가 꺼내놓은 문제의식이 여성들의 주도적 역할을 확보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우먼 인 아키텍처 (Women in Architecture)

장소: 덴마크 건축센터(Danish Architecture Center)

일시: 2022.5.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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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하틀라
사라 하틀라는 미술사학자로 2006년부터 여러 세계적 미술관과 문화기관에서 전시디자인 및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큐레이터로 일해왔으며 주로 규모가 크고 현장 중심적인 프로젝트들을 경험했다. 과거 지하 수조였던 건물을 개조한 박물관 키스테르네르네에서의 전시 〈이벤트 호라이존 인더 키스테르네르네〉(2020), 오드럽가드 미술관에 20m 높이의 거대한 대나무 미로를 선보인 〈지오메트리 오브 이노센스〉(2018)가 대표적이다. 현재는 덴마크 건축센터의 전시 책임자로, 〈우먼 인 아키텍처〉의 기획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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