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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감각, ‘우리’라는 감각: 〈춤추는 낱말〉

자료제공
서울시립미술관(별도표기 외)
진행
윤예림 기자
background

상단이미지 사샤 카라리취, '우리가 더 이상 정치 이야기를 안 해도 돼서 너무 좋습니다', 단채널 비디오, 6분, 2016

 

아시아 공동의 정서를 조망하는 전시 <춤추는 낱말>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9 1일부터 11 20일까지 열린다. 최근 아시아 각지각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 정치, 사회, 문화적 사건들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춤추는 낱말>은 바로 그 지점에 서서,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우나 분명히 존재하는 아시아 공동의 경험과 기억을 들춰본다. 지역이 아닌 감각으로서 아시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박가희 학예연구사에게 들어보았다.

 

황예지, ‘거기에 있는 이들’,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원목 액자, 가변설치, 2022

 

우리의 감각, ‘우리’라는 감각: 〈춤추는 낱말〉

 

인터뷰 박가희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 윤예림 기자

윤예림(): 서울시립미술관의 2022년 전시 의제는. 주목한 시의 속성은 무엇이며 그것이 〈춤추는 낱말〉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박가희(): 이번 전시는 시를 군중과 대중의 노래이자 저항의 언어로 해석했다. 개인이나 군중의 무의식과 현실을 담고 있는 시는 읽히고 확산되며 공동의 감각을 자아내는 노래가 된다. 전시는 당대 현실에 반응하는 창작자들의 실천을 이러한 언어로 상정하고 있다. 서로 다른 창작자들의 실천 언어들이 교차하는 전시는 한 편의 시가 된다.

 

: 〈춤추는 낱말〉은 서울시립미술관이 2014년부터 진행해온 비서구권 지역 전시 시리즈의 일환이다. 아프리카, 남미, 중동, 호주에 이어 이번에는 아시아에 주목했다. 지난 시리즈의 지역들과 달리 아시아는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국과 가까운 대상이다. 이러한 배경이 전시에 어떻게 작용했는가?

: 비서구권 지역 전시 시리즈가 일관되게 지양해온 태도는 지역의 서사와 이슈를 주제로 삼고 이를 타자화하는 식의 접근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을 포함하고 있는 아시아를 다뤘기에 기존의 방식에 더해 또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했다. 우선 국내 미술계에서 아시아가 소화돼온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과거에 아시아를 다뤘던 대다수의 전시들은 아시아를 서구의 대척에 두고 자기 존재를 증명하거나 규명하려 했다. 그 결과 식민주의, 민주화운동 등의 역사 속 주요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전시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서사를 우리 스스로 써 내려간다는 측면에서 꼭 필요한 전시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춤추는 낱말〉은 기존의 전시들이 다져놓은 서사를 바탕으로, 동시대 아시아에 잔존하는 역사적 서사와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군중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지리적, 인종적, 민족적 경계로서가 아닌 담론의 장으로 아시아를 바라봤다. 이번 전시의 강연자인 윤여일의 말을 빌리자면번역의 공간으로 아시아의 현재를 감각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이때 전시 의제인 시는 감각과 경험을 정의하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군중의 의식과 무의식을 담는다는 시의 특질은 동시대 아시아를 둘러싼 문화, 정치, 사회적 집단 운동에 따른 경험의 양상을 펼쳐보는 바탕이 됐다. 전시에서 활성화된 감각과 경험을 통해 아시아 공동의 정서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했고, 관객이 아시아적 사유와 감각이 무엇인지 역으로 질문해보기를 바랐다.

 

: 관객은 전시를 보며 저마다의 감각과 경험을 떠올릴 것이다. 기획자로서, 전시가 내재한 아시아 공동의 정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

: 전시를 준비하면서 중국의 사상가 쑨거가 쓴 『새로운 보편성을 창조하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구구절절이 마음에 와닿았던 글이었다. 그중민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아시아적 사유에 대해 언급한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같은 시기, 같은 문화를 경험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공유하는 감각이 결국 공통의 사유이자 정서가 된다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이것을은어라 지칭하기도 했다. 구태여 표현하지 않아도, 풍토적인 경험에서 기인한 공동의 감각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래도 굳이 표현하자면우리라는 감각이 아닐까 싶다. 우리라는 표현 안에는 상호의존적인 정서가 잠재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정서가 아시아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춤추는 낱말>에 흐르는 공동의 감각은 작품에 그려진 상호의존적 태도들에서 기인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일본 사회를 담은 다나카 고키의 영상 작업에서 공동체 사이의 유대와 돌봄의 정서가 드러나듯 말이다. 사진작가 황예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사랑과 환대의 감각을 떠올려봐도 그렇다. 서로의 이마를 맞대고 선 두 얼굴의 표정,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위 현장에 모인 사람들 등을 담은 사진은다정하게연결된 세계를 그리고 있다.

 

다나카 고키, ‘임시적 연구: 제4회 워크숍, 함께함의 가능성. 그들의 입장.’, 비디오 도큐멘테이션, 241분, 2015~2016

 

: 2018 부산비엔날레의 협력 큐레이터로서 아시아 작가들을 선정하는 역할을 했다. 아시아 기반의 작가와 교류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와 교차점이 있다. 2018년과 현재, 두 전시의 기획자로서 관점의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더 이전인 2016년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와 기획자들을 위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었던 r:ead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고 베트남, 대만, 싱가포르 등에 머무르며 작가와 전시에 관한 연구를 했다. 또한 그 무렵의 한국은 박찬경, 김현진과 같은 기획자들이 아시아를 다루는 주요한 전시를 선보이던 때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아시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기였다. 이 같은 경험을 근간으로 부산비엔날레에서는 예술감독이 제시한경계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한국이라는 지역적 맥락에서 해석하며 작가를 제안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주제적 차원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작품에 담긴 서사뿐만 아니라 작품의 생성 또는 구성 방식이 연결과 접촉을 통한 다차원적 관계망을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질문했다. ‘서사에서방법으로 사고의 범위가 확장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캠프의 작품이 그렇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실천 언어로 공동의 구현을 탐색하는 이들의 작업 방식은 그 자체로 연결과 관계를 만든다. 이번에 출품된만에서 만으로 또 만으로’(2013)는 인도양을 항해하는 선원들과 함께 만든 공동 창작물로, 초국가적인 관계망을 보여준다.

 

: 다양한 아시아 작가들이 있고 이들이 다루는 분야와 매체 또한 모두 다를 텐데, 작가의 구성과 조합에 대해서는 어떤 기준을 두고 접근했는가?

: 작가 선정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아시아출신의 작가로 국한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시아를 둘러싼 논의에 천착해온 작가를 섭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같은 맥락에서, 전시 관련 텍스트나 보도자료에서도 해당 작가들의 출신지 및 활동지를 국가 단위가 아닌 도시 단위로 정리했다. 이는 지역 미술과 지역의 어젠다를 국가 단위로 언급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작은 지역 단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반응하는 창작자들의 활동을 살펴보고, 이들의 언어와 이미지를 교차시킬 때 발견할 수 있는 풍토적인 지역의 맥락 혹은 서로 다른 특질을 발견하기를 원했다전시된 작품과 프로그램들은 전시장 안팎에서 서로 교차하도록 설계됐다. 예를 들면, 아시아 집단 운동의 양상을 살펴보는 헤라 찬과 에드윈 나스르의 라디오 프로그램만들어가는 역사에서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에피소드에 에이-멜팅 팟의 박다함과 신보연을 초대한다. 에이-멜팅 팟은 한국의 음악가이자 공연 기획자로, 전시를 위해 공연과 강연을 준비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의 맥락에서 음악이 동시대 시위 현장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나아가 음악이 초국가적인 사회, 정치적 실천의 가능성을 함축한 매체로써 작동할 수 있는지를 함께 논의한다.

 

캠프, ‘만에서 만으로 또 만으로’, 휴대전화 비디오, 83분, 2013 

 

: 드로잉, 콜라주, 도예, 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선보이는 한편 물리적인 형태가 없는활동사건을 전시물의 영역으로 가져온 점이 흥미롭다. 전시장 내에 한정되지 않는 창작자들의 실천을 전시에 녹여내기 위해 어떤 고민이 있었는가?

: 전시장 내 작품들은 최근 몇 년간 아시아를 둘러싸고 일었던 문화, 사회, 정치적 집단 운동의 양상들을 언어와 이미지, 사물로 담아내고 있다. 작품들은 재현적으로 특정 사건을 드러내는 대신 감각적으로 아시아적 정서를 담지한다. 이러한 감각을 보다 경험적인 양태로 공유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 결과, ‘접근점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배치하게 됐다. 접근점은 공동의 움직임을 만들었던 계기로서의 특정 사건과 그 움직임의 양상을 살피기도 하고, 새로운 움직임을 위한 부분적인 연결이나 행동을 도모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접근점에서 관객은 퍼포먼스, 글쓰기, 워크숍, 공연 등 다양한 활동과 사건으로서 프로그램을 경험하며 전시장에서의 감각을 이어나가게 된다.

 

: 활동과 사건을 지향하는 전시인 만큼 접근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품 못지않다. 그중에서도 퍼포먼스는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사건이다. 퍼포먼스가 관객에게 어떤 경험이 되길 바라는가?

: 두토 하르도노와 홍영인이 퍼포먼스 작품을 선보인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즉흥성을 주요 개념으로 삼고 있다. 두토 하르도노의 "인 하모니아 프로그레시오를 위한 변주와 즉흥연주"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누가 퍼포머이고 관객인지 예측이 불가하다. 퍼포먼스가 시작되면 퍼포머들은 서로의 소리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면서 하모니를 만들어간다. 홍영인의탈위계적 연습역시 아홉 명의 퍼포머들이 주어진 악보에 즉흥적으로 반응한 몸짓과 소리들을 만들어낸다. 퍼포머들의 즉흥적이고 개별적인 해석들이 모여 만드는 하나의 공연은 사회 속에서 경험하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촉각적, 청각적, 시각적 경험이 사건으로서 전시장에서 펼쳐지고 이를 관객들이 함께 목격할 때,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과는 다른 방식으로 연결이라는 감각을 느끼길 바랐다.

 

두토 하르도노, 인 하모니아 프로그레시오’를 위한 변주와 즉흥연주(2022) 퍼포먼스 전경

 

홍영인, ‘탈위계적 연습’(2022) 퍼포먼스 전경 / ⓒYoun Yaelim

: 함께 선보이는 출판물은 작품집이 아닌시집이라 불린다. 내용과 구성도 일반적인 도록과는 사뭇 다르다. 시집의 내용을 선별하는 일, 지면을 구성하고 배치하는 일 하나하나에 적지 않은 고민이 담긴 것 같다.

: 시집은 작품들의 부분들, 혹은 작품 주변에 놓여 있던 파편들을시적인 것으로 새로이 구성해보는 시도다. 전시가 한 편의 시가 됐듯이, 작품을 구성했던 언어와 이미지들의 파편이 작품을 다시 상상하게 하고, 그 감각이 모여 또 다른 언어이자 노래가 되기를 원했다. 시집의 내용을 선별하는 일은 작품을 구성하는 언어와 이미지들을 길어 올리는 작업이었으며, 선별된 언어와 이미지들은 아주 거칠고 추상적인 심상에서 시작해 점차 구체적인 감각으로 전개되도록 배치했다. 시집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의 이미지로 홍영인의 작품을 선정한 데에도 이 같은 뜻이 담겼다. 홍영인은 역사적 사건이나 상황을 담은 사진에서 아주 간소한 선만을 남겨사진-악보라는 추상적 형태로 재기술하는데, 시집의 첫 이미지로사진-악보중 한 점을 택했고 마지막 장에는 그의 원본 사진 작품을 담았다.

 

: 가까운 대상일수록 잘 안다고 생각해 되려 더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아시아의 다양한 정치, 문화, 사회적 현상을 가깝게 살피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공동의 감각을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현실에서 우리가 접하는 아시아의 모습은 비교나 경쟁의 대상으로서 등장할 때가 많다. 가깝지만 잘 모르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에서 펼쳐진 집단 운동 속에서는 개인과 개인의 초국가적인 연결과 접촉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밀크티 동맹에 대해 알게 됐다. 홍콩에서 시작된 운동이 대만을 지나, 미얀마까지 이어지면서 만들어낸 함께하는 양상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런 사건과 경험들에서 우리는 국경, 민족, 인종을 초월한 연결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 연결을 끊임없이 이어가며 여러 각도와 층위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앞으로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황예지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종다양한 관계들로 이루어진 다정한 세계를 그려가는 일 말이다.

 

홍영인, ‘Prayers Book’, 37×30.5×1.6cm, 2022


▲ SPACE, 스페이스, 공간


박가희
박가희는 현대미술 이론을 전공했다. 2012년 아르코 미술관 인턴을 거쳐,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협력 큐레이터로 2018 부산비엔날레의 기획에 참여했다. 2020년부터 다시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전시를 하나의 매체로서 간주하고, 큐레이터의 질문과 문제의식이 주제나 지식의 차원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질문과 문제로 전이되는 앎의 순간을 촉발하는 전시의 수행적 실천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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