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경험하는 공공(성)
글 반제연(연세대학교 건축학과)
「SPACE(공간)」 653호(2022년 4월호)를 통해 ‘공공’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공공은 공익을 실현하는 정부로, 민간은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코어건축사사무소의 에세이와 LCDC 서울 기획팀과의 인터뷰는 공공과 민간의 이분법적 논리(공공-공익-정부, 민간-사익-기업)가 유효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번 호에서 다룬 코어건축사사무소의 에세이, ‘타협과 조율의 줄다리기, 공공을 다스리다’에서는 건물이 완공되기까지 설계자만이 프로젝트에 남게 되는 공공건축의 특성을 이야기한다. 발주처의 담당자가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설계자가 책임감을 갖고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 한편으로 이런 지난함은 공공건축이 특정 클라이언트가 아닌 불특정 다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편성 뒤에 따라오는 어려움을 짐작케 한다. 즉, 이들이 수행한 공공건축 프로젝트에서의 '공공'은 한 개인이나 단체 등 특정한 단위가 아닌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공공이라는 단어는 상업공간인 LCDC 서울의 기획팀과의 인터뷰에서 또다시 등장한다. LCDC 서울의 기획에 참여한 정강화(건축대학교 교수)는 복합문화공간의 공공성에 관한 질문에서 상업공간을 통해서도 공적 측면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도시와 맞닿아 있는 건물의 파사드뿐 아니라 건물에 설치된 조명 또한 치안에 도움이 되고 거리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도시의 시퀀스를 따르면서 감도 높은 공간으로 구현된 LCDC서울은 기획자들이 공공재인 건축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강화는 인터뷰에서 “결국 스스로 좋은 것을 만들면 공공의 가치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건축가가 만들 수 있는 ‘좋은 것’의 범위가 확장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설계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질 뿐 아니라 동시에 좋은 것을 만들 역할을 요구받기도 한다. 다시 말해, ‘직업인으로서 건축가’뿐 아니라 호소력을 지닌 공공재를 만드는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이 확대되는 것이다. 둘째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자산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공공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건축을 통해 ‘공공성’을 경험하는 일. 이는 도시에서 공유 대상의 범위를 넓히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우리가 공유하고 있으나 가치 있게 다뤄지지 않았던 것들을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통해 건축이 공공재임을 인식하는 일은, ‘공공’이라는 단어를 머리가 아닌 ‘몸’의 경험으로 체화할 수 있게 한다.
공공건축, 누구의 것도 아닌 건축
글 이동렬(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공공건축은 모두의 것이다. 그렇기에 공공건축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공공건축의 가장 큰 한계는 여기에 있다. 모두의 만족을 표방하다보니 오히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흠잡을 것 없는 동시에 매력적이기는 어려운 일이고, 때문에 건축가는 보편성과 개성 사이에서 늘 고뇌한다. 그런데 이 둘이 언제나 대립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종수와 김빈(코어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은 보편적 건축과 특수한 건축 사이에서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공공 프로젝트에서 건축가는 빛나는 원석을 품에 안고 기획자, 심사자, 자문단, 관리자, 감리자, 시공자의 숲을 통과하는 외로운 탐험가다. 그들은 이 여정을 합리적 사고를 등불삼아 나아간다. 이치훈(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 대표)은 오늘날의 공공건축에는 감성적 취향이 개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보다는 이성적 설득력이 심사와 시공의 과정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어건축사사무소의 공공건축에서 보편적 호소력을 넘어서는 어떤 지향이 감지된다고 이치훈은 주장한다. 이들이 자유로운 양식과 명료한 기하를 통해 개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한편, 서승모(사무소효자동 대표)와 김종유(오은 대표)는 공공건축의 경계를 의심한다. 지금 시대의 공공건축은 복합상업공간이 아닌가. 함께 모여 보고 듣고 먹고 마시며 소통하는 이곳이, 성수동과 이태원동에 활기를 주는 이곳이, 공공건축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김재원(아뜰리에 에크리튜 대표)은 공공성과 사업성의 공존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기존의 도시 맥락에 순응하기보다 오히려 저항한다. 이들의 개성은 역으로 공공성과 보편성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공공건축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분류에 따라 그 성격을 민과 관, 소유자와 이용자에 따라 구분해 보자. 먼저 관이 소유하고 관이 이용하는 시설로 정부 부처의 청사,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복지센터와 같은 업무시설이 있다. 관이 소유하고 민간이 이용하는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같은 문화시설도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민간이 소유하고 민간이 이용하는 복합상업공간도 쓰임으로 볼 때 ‘공공의 영역’으로 이미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건축의 공공성은 ‘민이냐 관이냐’하는 소유와 이용의 주체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것이다. 공공건축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아니 누구의 것도 공공건축이 될 수 있다. 공공건축의 가장 큰 가능성도 여기에 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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