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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스며든 사람의 흔적을 보존하는 방식: 권진규 아틀리에

자료제공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진행
오주연 기자

2022년 권진규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 노실의 천사>가 열렸다. 평생의 주요 작업 240여 점을 총망라해 그의 작업과 삶의 여정을 보여주는 전시다. 전시된 작품의 일부를 직접 생산했으며 전시의 주제가 된 ‘노실의 천사’를 구현하고자 했던 그의 아틀리에가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 남아 있다. 권진규가 일본에서 귀국해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작업하고 생활한 공간이다.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2006년 유족에게 이를 기증받아 조정구 건축가와 함께 재정비하고, 2008년부터 젊은 작가를 위한 창작공간 및 전시, 시민참여 행사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가건축의 조정구 소장, 내셔널트러스트의 송지영 학예사를 만나 권진규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공간을 지켜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조정구 구가건축 대표 x 송지영 내셔널트러스트 사무국장 x 오주연 기자

  

 

오주연(오): 처음 이곳의 모습이 어땠는지, 그리고 어떻게 보존 작업을 계획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정구(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어머니를 모시고 산 집이에요. 9자 한옥을 사서 어머니가 사는 집으로 삼고, 길쭉한 대지 한 켠에 아틀리에를 지었죠. 인터뷰 등을 찾아보면 한 2~3년 동안 이 집을 짓는 데 엄청 애를 썼다고 해요. 처음 본 상태는 이게 한옥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증축이 돼서 그냥 다세대주택 같았어요. 그렇지만 아틀리에는 굉장히 보존 상태가 좋았어요. 동생 권경숙 여사가 오빠의 물품을 다 간직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잘 지켜질 수 있었죠. 

여기 집이 두 채 있는 거예요. 살림집, 그리고 예술가의 집이 겹쳐 있죠. 그 모습이 작가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뒤에 가려져 있잖아요. 그리고 원래 마당에 담이 있었다고 해요. 대문을 따로 두고 살림집 대문을 나와 작업실 대문으로 들어가 작업하고, 다시 작업실 대문을 나와 점심 먹으러 살림집 대문으로 들어오는 그런 동선이죠. 그런데 제가 일을 맡았을 때는 담이 없었기 때문에 원형이 없는 것을 다시 만드는 일은 좀 부담스럽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여기가 젊은 작가를 위한 레지던시로 쓰인다고 하니까 마당에서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서 선생님이 세상을 항해 좀 더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담을 재현하고 두 집의 켜의 느낌을 만드는 것이 더 좋았을까 아직도 생각해봐요. 

 

오: 원형이 없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말씀하셨는데, 복원의 기준은 어떻게 잡으셨나요?

조: 사진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어서 참고해서 작업했어요. 복원할 때 제일 중요한 문제는 어느 시점으로 복원할지 정하는 것이에요. 권진규 작가가 처음 이걸 지었을 때로 할 거냐, 아니면 한창 활동할 때냐 등. 저는 돌아가신 해, 작가의 흔적이 마지막까지 있었던 그 순간에 이 집에 남아 있던 것들을 기준으로 했어요. 

일을 맡았을 당시, 건물에 금이 가고 일부 무너져 내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걸 그대로 실측해서 기념관으로 다시 짓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작품만 없을 뿐이지 작가의 느낌이 굉장히 잘 남아 있었거든요. 그리고 직접 지은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장소성이 실체로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구조기술사에게 물으니 이미 오랫동안 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구조적으로 더 하중이 가해지지는 않으니까 괜찮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답을 들었어요. 서까래가 많이 낡았기 때문에 하나씩 교체할 것을 넣고 옛날 것을 빼는 식으로 기존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며 작업했습니다. 금이 간 부분은 위험하니까 보강을 했고요. 무수축 모르타르를 사이에 넣고 한지를 붙여서 그 종이가 찢어지거나 변형이 일어나면 구조적인 위험성을 알 수 있도록 조치했어요.

제가 시간을 다루는 여러 가지 작업을 해봤지만, 작가의 숨결이 살아 있는 아틀리에를 그대로 지키기 위해 애썼던 게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공간이 하나 살아있음으로써 그 사람의 이야기가 실제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사진ⓒ오주연

 

 

오: 살림집 부분은 과거와 현재가 좀 더 공존하는 느낌입니다. 

조: ‘권진규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어요. 건축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뭔가를 만드는 사람의 시선에서 필요한 일만 하고 간결하게 끝을 낸 듯한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저도 아주 단순하게 작업했어요. 한옥이니까 한옥 창호를 넣는 게 아니라 심플한 목재 창을 넣고 구조미가 드러나게 했죠. 작가 레지던시 공간이니까 작업실 그리고 손님이 오면 앉아서 얘기할 수 있는 누마루 같은 일상 공간을 생각했고요. 마루에서 마당부터 집 뒤편의 축대를 다 보이게 했어요. 투명하게 이 주변의 느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요. 

이쪽 집은 원형이 거의 안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한옥적인 공간으로 새로 구축했다고 보면 돼요. 지붕도 기와가 아니고 동판으로 하고, 유리도 많이 쓰고요. 이게 15년 전 작업인데 공간을 투명하게 표현하고 그런 것은 오히려 요즘 제 작업에 더 가깝죠.

 

오: 사업을 주관한 내셔널트러스트의 보존에 관한 생각과 건축가의 판단이 어떻게 조율되었나요?

송지영(송): 2006년 겨울에 이곳을 기증 받았는데, 그 전에 최순우 집을 먼저 보존하면서 겪은 시행착오와 경험이 있어서 복원의 시점 등을 전문가가 판단하게 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자문하시는 다른 교수님들도 조 소장님의 리서치를 충분히 신뢰했고요. 

권진규 선생님 조카분들의 기억에 따르면 화장실이 두 개가 있었다고 해요. 권진규 선생님이 쓰던 화장실과 가족들이 쓰던 화장실. 정말 붙어 있고 비록 집과 연결은 됐지만 예술가로서 온전히 자기 공간을 갖고 사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 소장님 작업 이후에도 보수 공사나 구조 점검 및 보강을 했지만, 어쨌든 아틀리에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려 하고 있어요. 

조: 거의 15년 전 프로젝트예요. 이런 복원 사업들이 생기는 초기였기 때문에 요구사항이 좀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작가가 와서 지낼 수 있는 아틀리에를 만들어 달라는 것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이라면 내셔널트러스트나 기타 이걸 주관하는 기관에서 좀 더 세부적인 요구를 할 것 같아요. 

보존에 대한 모델이 계속 생기고 있지만, 권진규 아틀리에는 있는 것은 그대로 잘 복원하고 또 그 시점을 잘 정해야 하는 것에 대한 모델이 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남아 있는 페인트를 벗겨야 할지, 페인트를 안 벗기고 청소만 해야 할지, 이런 걸 다 결정해야 하거든요. 내가 설계한 걸 지을 때하고 달리 확확 치고 나갈 수가 없어요. ‘이런 일은 결정이 반이다’ 생각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눌렀죠. 시점을 정하고 무엇을 살릴지, 덧붙여진 것을 지울 것인지, 이런 문제를 정하는 게 건축가만의 몫이 아니라 사업을 맡은 사람들의 공동책임인 것 같아요. 그걸 잘하면 이렇게 살아나서 계속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고요. 

송: <노실의 천사>에 전시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이 작품을 의뢰한 교회에서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가져가지 않았고 이 집에 걸려있었다고 하잖아요. 복제품이라도 그 상황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좀 더 들어가면 어떨까 고민했어요. 상상하게 하는 힘이 되니까. 조 소장님이 말씀하시는 담과 같은 맥락이죠. 

조: 재미있는 게 박수근 작가도 창신동 한옥에서 살았거든요. 그림이 쫙 걸려 있는 대청마루에 작가가 부인과 함께 앉아 있는 사진이 있어요. 그걸 보면 박수근 선생의 집은 그림도 그리고 식구들과 어울려 사는 풍경의 집이에요. 한편 여기는 권 선생이 가족과 같이 살았는데도 ‘나는 오로지 예술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마음이 공간에서도 구획으로 딱 보이죠. 그래서 공간을 분리하는 담장을 다시 만들어야 했는지 아직도 고민되는 부분이에요. 

 

 

 

사진제공_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오: 15년가량 권진규 아틀리에를 운영하셨어요. 공간의 아우라를 계속 간직하기 위한 운영상의 노력이 있다면요? 

송: 아틀리에 레지던시를 거쳐 간 작가들이 벌써 10명이에요. 지금 11번째 작가 공모기간이고요. 미술 분야에서 매체를 가리지 않고 뽑아서 조각, 영상 다양한 분들이 오셨어요. 본인과 이 집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작업하는 설치미술도 하고, 젊은 작가와 권진규 선생님 사이에서 관계가 쌓여가는 거죠.  

여러 작가들이 이곳을 사용하는 모습을 봤는데 어떤 때는 굉장히 물건이 많고 어떤 때는 좀 썰렁해요. 아무래도 언덕에 짐을 갖고 올라오는 것을 힘들어하시죠. 시설 면에서도 편하게 자신의 작업 도구를 늘어놓기 어렵지 않나 생각했는데, 오히려 작가들이 여기에 맞춰서 공간을 쓰는 게 저희에게는 새로운 발견이었어요. 저희 작가 중 한 명이 바우하우스 레지던시를 갔는데 거기는 더 엄격하대요. 건축문화유산에 머물면서 주의해야 할 점이 한가득 있다고요. 그런데 여기 있어 봤으니까 거기서 또 잘 적응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2015년부터 격년으로 조각 전시를 하고 있어요. 권진규 선생님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상대, 도모 또한 화가여서 그분 작품을 여기서 전시하기도 했고요. 작품은 미술관에서 충분히 보시고, 여기는 선생님이 작업하고 생활하셨던 느낌을 살려서 가능하다면 캐스팅이라도 몇 점 전시를 하자고 유족들과 협의하고 있어요. 

 

오: <노실의 천사>의 전시장 구성은 아틀리에의 우물과 가마를 형상화했다고 하는데요. 이 공간이 이렇게 남아있었기에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로 아틀리에에 대한 관심도 커졌을 것 같은데요.

송: 이 공간이 지금의 우리들에게 더 의미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그러니까 권진규의 시간이 우리들의 시간과 중첩돼서 가야지 계속 기억할 수 있잖아요. 올해 탄생 100주년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는데, 어쨌든 이 공간이 많이 알려지고 선생님이 잘 인식이 돼야지 여기를 계속 보존할 수 있죠. 아직은 그런 힘이 적거든요. 이런 공간이 더 많아지고 더 많이 가보고, 그런 경험을 누리는 개인들이 많을수록 우리 삶이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 조각하고 이 공간이 굉장히 닿아 있는데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연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건축가와는 다르게 중간에 무슨 개념이 어떻고 이런 생각 없이 딱 결과만 생각하고 만든 공간의 느낌이 있어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얼마나 견딜 수 있고 얼마나 딱 맞게 정리될 수 있는지’만 생각하고 만든 거죠. 조각과 개인의 히스토리에 집중하는데 공간과의 관계성에 대해서도 누군가 한 걸음 더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조정구
조정구는 1966년 서울 보광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거쳤다. 2000년 구가도시건축을 설립하고 ‘우리 삶과 가까운 보편적인 건축’에 주제를 두고 지속적인 답사와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20년간 진행한 ‘수요답사’를 통하여 서울의 수많은 동네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찬찬히 관찰하고 기록해왔으며, 그 속에서 발견한 다양한 삶의 형상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집’을 찾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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