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2022년 7월호 (통권 656호)
‘유리구슬 작가’로 잘 알려진 프랑스 현대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의 개인전 〈장-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이 6월 16일부터 8월 7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 두 곳에서 진행 중이다. 유리, 스테인리스스틸, 금과 같이 반짝이는 재료로 꽃과 물, 불꽃과 영원을 표현한 그의 작업은 영롱한 빛을 내뿜으며 보는 이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대표작과 신작을 포함해 그가 최근 10년간 작업했던 74점의 작품이 공개된 이번 전시는, 2011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마이 웨이〉 이후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자, 한국의 시공간을 무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현대미술이 도외시했던 공예와 전통을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인간과 자연, 개인과 공동체, 전통과 현대, 현실과 신화가 한데 어우러진 경이로운 세계를 구축해가는 그의 작업이 ‘정원’이라는 주제 아래 어떤 모습으로 발현되었을까? 작품이 놓인 공간을 거닐며 그가 안내하는 정원의 의미에 다가가보자.
반짝임: 또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문
초여름의 어느 날, 대한문을 지나 녹음이 우거진 덕수궁 연못 주변을 둥글게 걷는다. 연잎으로 뒤덮인 푸른 수면 위로 황금색 구슬이 꿰어진 ‘황금 연꽃’이 떠 있다. 시선을 연못 가운데로 옮기면 소나무 가지에 걸린 ‘황금 목걸이’가 보인다. 진흙 속에서도 피어나는 연꽃은, 그 씨앗이 천 년이 지나도 발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생명력과 다산, 창조를 상징하는 연꽃을 반짝이는 구슬로 엮어 물 위에 띄우고, 소원을 빌듯 나무에 구슬 목걸이를 걸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동길을 지나 미술관에 다다르자 입구 양편에 매듭 형상의 구슬(‘바벨의 매듭’, ‘상상계의 매듭’)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 구슬의 표면을 보고 있노라면 하늘과 나무, 건물 등 도시의 풍경과 그 사이에 선 나의 모습이 무한히 반복되어 비친다. 걸음을 옮겨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높이 3m에 이르는 거대한 은빛 목걸이(‘스스로 서 있는 거울 목걸이’)가 본격적인 전시의 시작을 알린다. 압도적인 크기의 구슬들이 마법에 홀린 듯 중력을 거스르며 서 있는 모습은, 마법이 풀리는 순간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구슬이라는 단순한 형상의 조형물이 이토록 다양한 감정과 호기심,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짝이고 빛나는, 일견 장식적이라 느껴지는 그의 작업은 재료, 형상, 크기, 장소, 설치 방법에 따라 다른 감상을 유발한다. 구슬 작업을 하면서 반짝임과 아름다움이 “정신적 교감의 통로이자 또 다른 세계로 발을 들일 수 있는 일종의 문”임을 발견했다는 오토니엘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Bang Yukyung
예술: 자기치유, 상처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계
오토니엘의 반짝이는 ‘마법’의 탄생 이면에는 상실과 부재, 절망과 아픔이 자리한다. 1964년, 프랑스 중남부의 소도시 생테티엔에서 태어난 오토니엘은 어린 시절부터 미술관을 다니며 화가를 꿈꿨다. 그는 1992년 카셀 도큐멘타에 참여하면서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고, 파리 지하철역에 설치한 공공미술 작업 ‘야행자들의 키오스크’(2000)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그의 시작점은 ‘사제복을 입은 자화상’(1986)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소수자인 오토니엘은 사제였던 동성 연인의 자살을 경험한 뒤, 사제복을 입고 몸의 한계에 맞서듯 달리고 넘어지는 행위를 반복하며 연인을 애도하고 상실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했다. 이후 그는 밀랍, 인, 유황 같은 재료를 사용해 남성과 여성의 신체가 혼재된 모습의 기괴한 조각을 발표한다. 그러던 중, 1992년 이탈리아의 화산섬 리파리에서 흑요석을 발견하면서 유리라는 재료에 눈을 뜨게 된다. 현대미술사에서 도외시되었던 대표적인 공예 재료인 유리는 견고함과 연약함, 가벼움과 예민함이라는 양면성을 가진다.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이탈리아 무라노의 유리공예 장인들과 긴밀하게 협업하며 의도적으로 흠집과 상처가 있는 유리구슬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예술가 펠릭스 곤잘레즈- 토레스의 1주기를 추모하며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위해 제작한 ‘상처-목걸이’(1997)를 계기로 목걸이 작업을 시작한 그는 같은 해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서 미술관 정원에 있는 나무에 유리구슬 목걸이를 거는 등 점차 추상적이고 큰 규모의 작업을 시도하게 된다. 스스로 상처를 드러내고 타인과 소통하도록 이어준 ‘유리구슬’이란 매체는 그에게 자기치유의 수단이었다. 훗날 오토니엘은 “구슬은 좋든 나쁘든 인생의 한 굽이를 도는 흉터, 기억하고픈 슬픔과 아픔, 회환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부적”이라고 언급했는데, 구슬 작업을 통해 현실의 고통과 상처를 희망과 염원의 메시지로 점차 치환해가면서, 작업의 분위기 역시 밝고 경쾌하게 변화해간다.

꽃: 루브르와 덕수궁의 시간을 잇는 메타포
전시장의 첫 번째 공간을 채운 회화 작업은 어린 시절부터 꽃과 그에 얽힌 이야기에 탐닉했던 오토니엘의 관심을 반영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금박을 입힌 캔버스에 잉크를 묻혀 작업한 회화 아홉 점이 공개됐다. 흑백 회화 ‘루브르의 장미’는 2019년 루브르박물관의 요청으로 유리 피라미드 개장 3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작품이다.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마리 드 메디치와 앙리 4세의 대리 결혼식’에 등장한 장미꽃을 모티브로 삼은 이 작품은 정치적 실권을 위해 정략결혼을 해야 했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그는 그림을 의뢰한 마리의 삶이 상징하는 권력, 승리, 사랑, 열정을 기하학적인 장미 형상으로 표현했다. 오토니엘은 한 인터뷰에서 “꽃의 상징성은 세상을 새롭게 보는 촉매 역할을 한다”고 언급하며 “실제 꽃에서 추상의 개념을 가져오는 작업을 해왔는데, (이 작품은) 처음으로 회화에 존재하던 꽃에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옆에 병치된 컬러 회화는 저항과 끈기를 상징하는 오얏꽃을 그린 신작 ‘자두꽃‘이다. 오토니엘은 대한제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덕수궁에서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이었던 오얏꽃(자두꽃의 순우리말)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했다. 분홍색 꽃잎과 노란색 수술이 흩날리듯 표현된 그림은 ‘루브르의 장미’와 함께, 프랑스와 한국 두 왕조의 역사가 ‘꽃’을 매개로 융화되는 듯한 풍경을 연출한다. 백금을 입힌 캔버스 표면이 빛을 반사할 때마다 화면 속 꽃은 입체 이미지로 떠오르며 회화와 조각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Bang Yukyung
벽돌과 매듭: 희망의 강 위에 띄운 시적 세계
이번 전시에서 오토니엘의 경이롭고 신비한 시적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업은 ‘푸른 강’이다. 인도어로 ‘피로지’라 불리는 푸른색 안료로 만든 유리벽돌을 길이 26m, 폭 7m의 크기로 바닥에 깐 이 작품은 하늘과 바다, 물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그 위에 구슬 조각 ‘분홍 연꽃’과 매듭 연작 총 17점을 설치하여 서로가 빛을 반사하고 비추는 몽환적 세계를 연출한다. 유리 장인들을 만나러 인도를 여행할 당시, 길가에 쌓인 벽돌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언젠가 집을 짓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벽돌을 모으는 인도 사람들의 모습에서 염원과 희망, 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토니엘은 유리와 벽돌을 하나로 합쳐 단단함과 연약함, 일상성과 특별함이라는 양면성이 공존하는 재료를 구현하기에 이른다. 이를 위해 2000년 넘게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입으로 불어 유리를 생산하는 인도 피로자바드의 유리 공예가들과 협업했다. 이렇듯 수작업으로 생산된 유리벽돌은 저마다 미묘하게 다른 형상과 흠집, 빛깔을 띤다. 서로 다르고 불완전한 존재들이 모여 조화로움을 이루는 셈이다. 두 가지 색의 유리벽돌을 다르게 조합해 만든 ‘프레셔스 스톤월’은 팬데믹이 촉발한 도시 봉쇄 상황에서 일기를 써내려가듯 감정의 변화를 표현한 작업이다. 전시장 벽을 따라 설치된 19점의 연작은 작품 이름이 암시하듯, 1969년 6월 미국 뉴욕의 스톤월 주점에서 성소수자들이 경찰 단속과 체포에 맞섰던 ‘스톤월 항쟁’을 상기시킨다. 유리벽돌의 불순물이나 불규칙한 표면에 의해 생기는 반사광은 서로 다른 파동을 그리며 음악의 선율처럼 생동감을 발산한다. 교류와 접촉이 끊긴 고립 속에서 작가가 찾아낸 스톤월의 빛은 무뎌진 감각을 자극하고 곧 찾아올 해방에 대한 희망을 품게 했다.
오토니엘의 구슬조각에서 새로운 탐구의 방향을 제시한 작업은 매듭 연작(2009~)이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에 경의를 표하며 그의 철학적 개념을 형태적으로 풀어낸 ‘라캉의 매듭’, 멕시코 수학자 오빈 아로요와 함께 3차원 공간에서 풀리지 않은 채 무한히 변형을 거듭할 수 있는 매듭 개념을 표현한 ‘와일드 노트’. 이 작업들은 이성과 논리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원리를 예술을 통해 구현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 지각하기 힘든 ‘무한’의 개념을 구슬 표면의 반사를 통해 관념적으로 드러내는 등 다양한 협업을 시도하는 그의 작업에서,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세계와의 접점을 넓히며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아고라와 오라클: 예술이 우리를 비추는 방식
전시는 ‘아고라’와 ‘오라클’ 연작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2,750개의 스테인리스스틸 벽돌을 쌓아 만든 셸터는 오토니엘이 뉴욕에 머무는 동안 시민들의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되어주었던 그리스의 아고라를 떠올리며 구상한 작업이다. 차별이나 압박, 편견 없이 소통할 수 있는 대화의 공간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발언이 자유롭지 않은 세상에서 예술이 우리의 ‘말’을 지켜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그리고 ‘아고라’는 구슬, 벽돌 등 작은 모듈을 반복하고 적층하면서 스케일이 커지고 구조화되어 가는 그의 작업이 조각을 넘어 건축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라클’은 삶에 대한 영감과 통찰력, 신탁과 예언을 들려주던 고대 그리스 현자를 가리키던 명칭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예술에도 영성이 있다고 믿는 그는 선지자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듯 예술가의 직관이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제단처럼 쌓인 유리벽돌 위로 솟아오른 불꽃이 종교적인 숭고함을 불러일으키듯 말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방소연(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은 ‘정원과 정원’이란 제목이 실제 여러 개의 전시 장소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예술로 다시 보게 되는 장소의 의미, 그리고 관객의 마음에 맺히는 사유의 정원을 포괄한다고 설명한다. 황홀경을 선사하는 ‘오토니엘의 정원’ 속에서 우리의 감각은 분명 반응하고 작동할 것이다. 그리고 반짝이는 아름다움의 이면에 공존하는 세계의 아픔과 상흔도 보게 될 것이다. 예술은 내가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현실을 비추는 또 다른 거울이기 때문이다.(글 방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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