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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No.652 2022년 3월호 리뷰

17기 SPACE 학생기자
진행
오주연, 방유경, 한가람 기자


 

 

테세우스의 배에 관한 문제

글 전승현(세종대학교 건축학과)​ 

 

고대 아테네인들은 영웅 테세우스의 배를 보존하기 위해 낡은 배의 판자를 갈아 끼우는 식으로 배를 유지해 나갔다. 하나둘씩 교체하다가 낡은 판자들이 모두 새 판자로 교체되었을 때, 과연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  교체된 낡은 판자들을 모아 다시 동일한 형태로 조립했다면, 둘 중 무엇이 테세우스의 배인가? 이는 사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할 때 그 정체성이 지속되는가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다.

652호는 최근 김종성의 힐튼호텔 철거 이슈로 재점화된 ‘건축유산의 철거와 보존’에 대한 특집으로 에세이, 국내외 프로젝트, 라운드테이블, 아고라 등 여러 측면에서 해당 주제를 바라보고 있다. 국내외 사례를 통해 현실적으로 건축유산들이 어떤 절차를 거쳐서 활용되거나 철거되는지, 시민들은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기록한다. 라운드 테이블 섹션에서는 네 명의 건축인이 우리나라 건축유산이 마주한 현실적인 상황과 고민해 봐야 할 여러 질문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우리에게 남겨진 건축자산의 의미는 이번 호의 라운드 테이블처럼 그걸 보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건축자산의 본질은 과거-현재-미래에 걸쳐서 존재하는 것 아닐까? 보존의 수준이나 방식에 따라 가시적인 형태는 달라질 수 있으나, 건축물의 본질은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즉 건축자산의 의미는 시간에 걸쳐 존재하기 때문에 현재의 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목적을 갖고 시민이 주체적으로 나선다면 건축자산이 유의미하게 활용될 수 있으며 건축물의 정체성이 발현될 수 있다.

라운드 테이블에서 황두진 건축가는 “현실 세계 속 건물들은 0과 1 사이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라며 철거(0)와 보존(1) 사이에 수많은 답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테세우스의 배 문제에 정답이 없듯, 우리가 직면한 건축자산의 철거, 나아가 그 정체성의 문제에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물론 현실의 조건들에 따라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만, 정해 놓은 하나의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해석을 열어 두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논의하여 상황 속에서의 최선의 활용을 해야 할 것이다. 건축자산의 보존과 철거는 신화 속 논쟁거리가 아닌 우리의 삶에 맞닿아있는 현재 진행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뻗어나가고 논의의 범위는 계속해서 넓어질 것이기에 미래에 집중한 우리의 논의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악마는 양팔 저울을 입는다

글 김지현(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건축은 무엇인가? 우리가 늘 듣고 쓰고 읽으며 그리는 ‘건축’이라는 단어는 이제는 익숙함을 넘어 오히려 막연해질 지경이다.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아도 이렇다하게 건축을 정의 내릴 문장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건축 작업’의 정의는 무엇인가? 이번 SPACE 3월호의 릴레이 인터뷰에서는 ‘일반 건축 작업’을 ‘건축주가 있고 요구 사항과 제약 조건을 고려해 설계를 하고 도면을 그려 공간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라고 함축해 설명했다. 3월호의 기사를 읽고 난 후, 이 짧은 문장에서의 ‘제약 조건’이라는 단어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

제약 조건은 언뜻 보면 설계의 상상력과 자유로운 디자인을 방해하는 장애 요소로 보인다. 실제로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땅에 얽힌 제약, 구조에 얽힌 제약, 공간에 얽힌 제약 등 여러 조건이 붙어있기 때문에 설계자가 완전히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적어진다. 하지만 제약이 적은 프로젝트일수록 더 좋은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일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빈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내 본 경험이 있다면 공감하겠지만, 아무 기준도, 제약도, 질서도 없는 상황에서 상상력은 오히려 그 한계를 맞이한다. 반대로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요소와 낯선 주제가 내 안의 구상과 만날 때 신선한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이번 SPACE 3월호에서 소개된 아키후드 건축사사무소의 프로젝트​ ‘보리’는 법적 제약조건을 공간에 명쾌하게 이용해 독특한 그림을 그려냈다. 합쳐진 대지는 서로 다른 법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건물을 관통하는 진입로를 만들어냈고, 이에 따라 나누어진 두 동은 각각의 컨텍스트에 부합하는 서로 다른 가치를 부여받았다. 이 건물의 프로세스를 설명하는 가장 분명한 키워드는 바로 ‘용도지구에 의한 법적 제약 조건’일 것이다.

그렇다면 제약조건을 무조건 우선순위로 둔 설계는 좋은 설계인가? 안타깝게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 또한 ‘아니다’일 것이다. 이번 3월호에서 좋은 예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매트건축사사무소의 ‘영주 뜬마당집’에 대해 비평한 조윤희는 건축가가 선택의 순간을 마주했을 때 ‘질서에 기댄다’라고 표현했다. 설계자가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스템 혹은 개인이 만들어낸 기준에 근거하여 판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영주 뜬마당집’의 설계가 특별한 이유는 큰 질서 없이 자유롭게, 그러나 조화롭게 공간을 디자인해낸 건축가의 애정과 감각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건축가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인식하게 된 것이 처음이며, 나 또한 건축을 배우는 과정에서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 왔기 때문이다.

결국 ‘건축 작업’이라는 것은 충돌하는 가치를 끝없이 재고 조율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건축가는 양팔 저울이 되어 판단의 지점을 찾아내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프로젝트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느낀 두려움 때문에 어느 한 기준에 기대어 진행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판단의 근거가 요구사항일지, 제약 조건일지, 설계자의 구상일지는 정해져 있지 않고, 그것을 절묘하게 맞추어 내는 것이 좋은 설계가 된다. 글로 풀어 쓰기만 해도 정말 어려운 과제다. 악마같은 난이도의 퍼즐이지만 어쩌겠는가. 풀어냈을 때의 달콤함은 그 어느 유혹보다 짜릿하니까!

 

 

 

 

 

결국은 정치의 일

글 이동렬(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건축을 세우는 것은 자본이다. 힐튼 호텔(1983)도 그랬다. 최근 「보그 코리아」와 진행한 인터뷰(‘힐튼, 이대로 사라집니까?’, 「보그 코리아」, 2022년 4월)에서 김종성은 자신의 작업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구현한 작품으로 힐튼 호텔을 꼽았다. 호텔의 입면은 뉴욕의 시그램 빌딩을 맡았던 플라워시티가, 인테리어는 토론토 도미니언 뱅크를 담당했던 존 그레이엄이 맡았다. 건축 언어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 또한 그의 스승인 미스 반 데어 로에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일본에서 기성품을 들여와 염가에 커튼월을 구성해야 했던 김중업의 삼일빌딩(1970)과는 상황이 좀 달랐다. 재료 또한 최상급이었다. 상아색 트래버틴과 녹색 베르데 아첼리오 대리석, 그리고 브론즈를 사용했다. 이후 김종성은 서울역사박물관(2002)에서도 대리석을 사용하였지만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그는 “가장 시공을 잘한, 그러니까 예산이 좋았다”라고 회고했다. 대우 그룹의 든든한 지원이 없었다면 이러한 걸작도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건축을 부수는 것 또한 자본이다. 얼마나 많은 건축이 경제성을 이유로 세워지고 또 부서지는가. 아무리 기세 좋던 건물이라도 철거 계획 앞에서는 종잇장처럼 자존심을 구길 수 있다. 얼마나 뛰어난 사람이 설계했는지(인도아메다바드경영대학원 기숙사, 1974),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용했는지(펜실베이니아 역, 1910),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머물렀는지(나카긴 캡슐 타워, 1972)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근현대 건축 유산에 대한 보호의 목소리가 비교적 큰 국가들도 이러할진대, 우리 건축 유산은 오죽할 것인가. 철거를 가정하지 않고 신축을 말할 수 없는 시대다. 개발은 기억을 지우고 보존은 여지를 막는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건축을 세우고 부수는 것은 자본의 힘이다. 때문에 건축에서 자본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한정된 부와 자원을 분배하고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는 일을 넓은 의미에서 ‘정치’라 한다면, 이 또한 ‘정치’의 일이다. 그래서 나와는 상관없다는 무관심도 상대를 향한 비방도 이롭지 못하다. 필요한 것은 충분한 시간과 대화하려는 자세이다. 대화의 과정은 분명 길고 지루한 길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자본의 방향타는 우리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자본의 손에 맡길 때의 결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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