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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건물과 삭제된 시간의 재구성: 『사라진 근대건축』

자료제공
박고은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공간)」 2022년 4월호 (통권 653호) 

 

2022년 1월 출간된 박고은의 『사라진 근대건축』은 네거티브 헤리티지라는 이유로 사라진 서울의 근대건축을 전면적으로 다룬 책이다. 영화, 신문, 엽서, 뉴스 등 다양한 데이터를 아카이빙하며 철거된 건물의 흔적을 추적하는 디자이너의 기록은 곧 ‘특정 시간’을 지워야만 했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공간과 건축을 매개로 관통한다. 역사청산, 반일감정, 군사정권의 흔적 지우기 등 프로파간다에 의해 사라진 근대건축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삭제된 시간을 재구성해낸 이야기를,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따라가보자.​

 

인터뷰 박고은 머큐리얼 대표 × 방유경 기자​

 

방유경(방): 『사라진 근대건축』은 디자이너가 근대건축에 대해 연구한 책이라 저자의 이력이 궁금했다. 이 책은 네덜란드 유학 중 썼던 석사논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디자인 실무를 하다 해외로 떠난 이유가 궁금하다. 어떤 갈증을 느꼈던 것인가? 

박고은(박): 대학에서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잡지나 책과 같은 인쇄매체를 다루는 편집디자인에 관심이 있어서 졸업 후 홍디자인에 입사해 5년 정도 실무를 했다. 당시는 편집디자인의 기반이 종이에서 스크린으로 옮겨가는 시기여서 자연스레 디지털 매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2018년에 네덜란드 유학을 준비하게 됐다.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은 전통적인 그래픽디자인 학과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르치는 학교다. 내가 전공했던 인포메이션 디자인은 한국에 낯선 전공이라 이름만 들으면 그래프나 도안을 그리는 인포그래픽으로 오해하기 쉽다. 석사과정의 주된 커리큘럼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주제를 선정해 리서치를 진행한 후 수집된 데이터들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어떻게 재구성해서 효과적으로 보여줄 것인가가 관건이다. 나의 석사논문 주제는 한국의 근대건축이었는데, 이 결과물에 살을 덧붙여서 나온 것이 이번 책이다.

 

방: 이번 연구는 논문에서 출발해 웹사이트, 전시, 책 등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다. 근대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박: 시작은 우연히 발견한 어떤 집의 흔적이었다. 네덜란드로 떠나기 전 1년 정도 서울 서촌 옥인동에 작업실을 구해 유학 준비를 했었는데, 근처를 산책하다 보면 스프레이로 낙서해놓은 수상한 돌기둥이나 돌담, 계단 같은 것들을 뜬금없이 마주치곤 했다. ‘왜 여기에 저런 것들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자료를 찾다가 친일파 윤덕영이 지은 ‘벽수산장’이라는 고급 별장의 잔해였음을 알게 됐다. 이 집은 1966년 화재로 피해를 입은 뒤 1973년에 도로 정비사업을 계기로 철거됐는데, 특정 시간 동안 존재했다 사라진 이런 건물들이 현대건축과 전통건축 사이의 공백이라 느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건축을 통해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사라진 시간의 이야기를 아카이브하고 싶었다.

 


 

 

방: 연구 대상을 한정하면서 어떤 시대, 어떤 건물을 선정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박: 일제 식민지 시기 건물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시작했지만, 사라진 건축의 공백이 특정 시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역사유산 전반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느꼈다. 그래서 시기를 1900년대 이후 전체로 확장해 다루게 됐다. 네덜란드 대학의 교수들 또한 식민지 시대 이후 한국전쟁,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역사에 흥미를 보이더라. 결과적으로 책에서는 각 시대별로 한 장씩 묶어 세 장으로 정리하게 됐다.

 

방: 각 장은 식민지 시기로 인한 반일감정과 과거사 청산, 한국전쟁과 서울 요새화 계획, 군사정권의 흔적 지우기 등 시대순으로 철거 문제에 작동하는 논리가 무엇인지를 밝힌다. 1장에서 일본 식민정부에 의해 지어진 건물과 그렇지 않은 건물을 비교한 표가 등장하는데, 건물을 만든 주체에 따라 철거 유무가 극명하게 나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어 흥미롭다. 

박: 낡아서 혹은 식민유산이라는 이유로 철거된 건물을 현존 건물과 비교한 것은 네거티브 헤리티지가 도시개발 과정에서 철거의 우선순위가 된 것은 아니었는지를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처음 목록을 만들면서 일단 우리가 기억하는 서울에 남아있는 근대건축은 한쪽에 정리하고, 비슷한 연대에 지어졌다 철거된 건물을 따로 정리했다. 근대건축 철거와 관련된 자료는 안창모(경기대학교 교수)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의 논문을 참고했는데, 같은 시기 지어졌지만 운명을 달리한 두 건물군을 모아놓고 표를 시각화하는 작업만으로도 이런 결과가 나와 스스로도 재미있었다. 

 

방: 학교에서 논문 주제를 처음 발표하던 날,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는 기록 영상(1995)을 보여주었을 때 교수와 학생들이 의아함과 호기심을 보였다고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네거티브 헤리티지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은 우리와 어떤 차이가 있나? 

박: 논문을 정리하는 시기에 디자이너가 아닌 저널리스트 출신 교수에게 논문지도를 받았다. 그 기간 내내 교수가 내게 물었던 것이 ‘반일감정’이다. 일제시대 건물들이 과거사 청산을 목적으로 철거되는 상황이 우리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타자의 시선에서 보면 타당하지 않은 일일 수 있음을 교수와 이야기하며, 처음 느꼈다. 이런 관점의 전복을 식민지 시기뿐 아니라 한국전쟁, 군사정권으로 확대해 이 책 전체에서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방: 홀로코스트를 경험했던 그들이 반일감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

박: 네덜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홀로코스트를 경험하긴 했지만 그에 앞서 식민지 지배국이기도 했다. 그들이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두고 유독 특이하다고 느끼는 것은 과거 피지배국이었던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의 관계가 한일 관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유럽에서는 일본이 나치와 같은 일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본의 또 다른 식민지였던 대만의 경우, 총독부 건물이 여전히 남아있고 관계도 우리와는 다르지 않나. 네덜란드가 실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여서인지 한국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고 현재에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튼튼한 석조 건물을 왜 굳이 부수려 하는지 더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방: 석사논문은 책과 웹 두 가지 매체로 진행됐다. 직접 웹사이트를 구축해 건물들을 키워드에 따라 분류하고, 철거 관련된 기사나 기록 영상, 현재 모습 등을 함께 볼 수 있는 지도도 제작했다. 실제 지도 위에 ‘인식의 지형도’를 그려준다는 점이 비슷한 주제를 다룬 기존 연구들과 차별된 지점이라 느꼈다. 

박: 개인적으로는 디자인 측면에서 하나의 리서치를 두 가지 형태의 매체로 실험한다는 연구 과제도 있었다. 책과 웹사이트는 같은 정보를 기반으로 하지만 책에서는 연구 대상을 시기에 따라 선형적으로 배열한 반면, 웹에서는 역사적 맥락과는 별개로 사용자가 보고 싶은 대상을 골라 과거와 현재의 정보를 넘나들 수 있는 인터랙티브한 지도 기반의 ‘정보 저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따라서 현대의 물리적 위치 정보가 담긴 지도 위에 각기 다른 시간대의 건축물 정보를 맵핑해 시각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웹에서는 시대, 철거 유무, 기능별로 건물을 분류할 수 있게 했고, 관련 신문 기사와 영상도 아카이빙했다. 또한 철거 후 남은 잔해나 같은 자리에 세워진 역사 표지석도 모아서 함께 정리했다. 웹사이트 구축에 정말 공을 많이 들였는데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아 영문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은 하지 못했다. (웃음) 이번 책에서는 건물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를 뒤표지 안쪽에 인쇄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방: 논문을 번역해 국내에서 출간할 때 적잖은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각각 1927년과 2000년 촬영된 서울 전경 사진으로 시작하는 논문과 달리 책은 1950~197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촬영된 한국의 흑백영화 사진을 20쪽 넘게 나열하며 시작한다. 같은 인쇄매체지만 논문과 책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박: 외국에서 논문을 쓸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막상 한국에서 책을 낸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걱정한 부분이 국내 전문가, 연구자들의 시선이었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데이터 시각화’라는 맥락에서 논문의 주제로, 즉 자료 수집의 대상으로 근대건축을 아카이빙했는데 출판을 하려면 내용을 더 정제해 확신을 가져야 했다. 논문에서는 역사와 관련된 큰 맥락을 위주로 다루다 보니, 개별 건축물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는 다 담지 못했다. 그래서 책에는 부족했던 정보와 이미지 등 많은 부분을 보완하려 했다. 책 서두에는 논문을 준비하며 아카이빙한 영화 스틸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근대건축이 당시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관찰할 수 있는 한 방법이었다. 1장 맨 뒤에는 식민지 시기 건축물을 촬영했던 사진 엽서 45장을 나열하고 각 건물의 준공, 변용, 철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특히 근대건축을 관공서, 상업시설, 종교시설 등 용도별로 살피기 위해 상업시설인 반도호텔 이야기가 1장에 추가됐다. 전후 서울에 갑자기 생겨난 위인 동상과 지하도를 다룬 2장 내용과,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사용 중인 3장의 중앙정보부 내용도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북디자인도 직접 맡았는데, 공공에서 촬영한 기록사진을 아카이빙하면서 시정 사진 가운데 디자이너 시각에서 흥미롭게 느낀 것들을 선별해 레이아웃의 굵직굵직한 부분들을 결정했다. 한국에 돌아와 직접 답사를 다니며 촬영한 사진도 함께 수록했다.

 

 


방: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선보였던 석사과정 졸업 전시 모습을 홈페이지에서 보았다. 사라진 건물들을 증강현실(AR)로 볼 수 있게 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인데, 이는 어떤 방식으로 작업한 것인가? 

박: 졸업 전시를 준비하며 증강현실이라는 보이지 않는 레이어 상에 사라진 건물을 복원해보고 싶었다. 디바이스를 하나 거치면 보이는 레이어, 즉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레이어’라는 콘셉트가 내가 아카이빙한 건축물들의 성격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전시장 벽에 투사되는 영상 앞에 있는 설치물을 스캔하면 3D로 복원된 근대건축물의 파편 조각들이 보이는 어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다. 옛날 사진과 도면을 참고해 3D로 옮긴 것인데, 전시의 스케일을 키울 수 있다면 실제 건물이 사라진 현장에서 AR을 통해 건축물들이 복원된 옛 거리 풍경을 재현하고 싶은 바람도 있다.

 

방: 책에서 자신의 작업을 통해 시간이 적층된 도시의 레이어가 풍부하고 촘촘해지기를 바란다는 소회를 밝혔다. 논문, 웹사이트, 전시로 표현된 것들 역시 한 개인이 체화한 기록과 기억의 방식이라 읽혔다.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건물에 내재된 이야기들을 남길 보존 혹은 기억의 방식은 무엇이 있을까? 

박: 2000년대 이후 근대건축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어가고는 있지만, 남산 자락의 중앙정보부 건물들을 비롯해 옛 KBS 방송국이었던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같은 근대유산들이 최근 5~6년 사이에 사라졌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자리에 있던 조선총독부 체신국 분관 건물도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식민유산 청산이라는 이유로 철거되었다. 책에 다 밝히지는 못했지만 역사청산이라는 표면적인 이유 아래 부동산과 자본의 논리가 작동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시장 논리에 따라 빠르게 사라지는 건물은 보존에 앞서 기록을 잘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석사논문 지도교수가 보여준 레퍼런스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도시 중 하나다. 1940년 있었던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불에 탔는데, 이후 70년이 지나 완전히 현대화된 모습으로 재건된 도시 위에 과거 화재로 사라진 옛 도심의 경계선을 길바닥에 조명(빛)을 설치하여 추모하고 복원하는 공공디자인 프로젝트 ‘Brandgrens: Rotterdam War Memorial of WWII’를 진행했다. 우리는 무미건조한 설명글을 새긴 표지석을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치에 세워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처럼 도시 속 사라진 역사와 건축을 기록화하면서도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방: 향후에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두 번째 책도 나오는 것인가? 

박: 이번 연구를 통해 ‘사라진 또는 사라질 것’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시각디자이너로서 사라진 대상,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복원해 시각화한다는 지점이 흥미롭다. 만일 다음 책을 낼 기회가 주어진다면 건축 연구자들과 협업해 근대건축을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와 전문적인 의견을 담고 싶다. 그때에는 나도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좀 더 데이터 시각화에 집중한 작업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올해 디자인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관련 연구를 확장하고 이어갈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생기면, 웹사이트를 우리말로 번역해 오픈하는 것에 도전해보려 한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박고은
박고은은 그래픽디자이너이자 도시와 건축을 아우르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네덜란드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에서 인포메이션 디자인 석사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머큐리얼을 운영하며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와 디지털 그래픽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석사논문을 발전시켜 펴낸 『사라진 근대건축』(2022)은 서울에서 지워져온 1900년대 네거티브 헤리티지를 주제로 사라진 것들의 빈자리를 조명한다. 앞으로도 복잡한 정보 데이터의 시각화에 관심을 두고 관련 디자인 연구를 확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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