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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시설계의 현재를 묻다: 도시설계의 지식생산에 관하여

진행
김정은 편집장, 박지윤 기자

도시와 건축을 통합해서 계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만큼 도시와 건축을 만드는 이들이 서로 소통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도시는 누가 어떻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SPACE(공간)」 204호(1984년 6월호)에서는 한국에서 도시설계라는 분과가 움트던 상황을 포착해 보여준다. 그리고 오늘날, 도시설계에 대해 고민하는 네 명의 학자가 모여 1980년대를 짚으며 다시 현재를 묻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 강범준 명지대학교 교수. 김세훈 서울대학교 교수, 김영철 카이스트 교수, 박소현 좌장/서울대학교 교수

진행: 김정은 편집장, 박지윤 기자

 

 

도시설계의 시작: 1980년대를 돌아보다

 

박소현: 지난 3년간 건축공간연구원(auri)에 몸담으며 우리나라 도시건축 정책연구의 현장을 경험했다. 2021년 가을학기, 학교로 돌아와 도시설계 수업을 준비하려니 학생들과 함께 읽을 텍스트에 대해 새삼스레 심각한 고민을 또다시 하게 되었다. 어떤 텍스트가 가능할까? 어떤 도시설계 설명서가 적절할까? 한편 세종시 생활 3년을 마친 후 나는 지난여름 집수리를 크게 하며 종이 책자를 거의 폐기하고 서재를 텅 비우는 대대적인 작업을 했다. 그 과정에서 오래된 「SPACE」 또한 대부분 버렸는데, 그래도 내보내기 전 아쉬움에 다시 훑어보니, 나에게 도시설계 입문서의 역할을 해주었던 것은 뜻밖에도 1980년대 후반의 「SPACE」였음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예로, 「SPACE」 204호(1984년 6월호) ‘도시설계 현황’ 특집에는 당시 대학원 석사 입학생이었던 내가 갖가지 색연필로 밑줄 그으며 읽었던 흔적이 탈색된 채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근 40년이 흐른 오늘, 그때의 혹은 지금의 ‘도시설계 현황’을 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위의 질문에 대해,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소위 압축성장 시대의 혜택을 누려온, 나를 포함한 내 또래의 ‘늙은’ 학자들에게 참신한 답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다른 시각의 목소리를 낼 법한 ‘젊은’ 학자들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이번 좌담에 함께한 강범준, 김세훈, 김영철은 고맙게도 우리 도시설계 현황에 대해 색다른 이야기의 물꼬를 터주고 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그 첫 대화에 관심을 보여준 「SPACE」에도 고맙다. 이 시작 논의가 차차 발전하여 쓸 만한 도시설계 텍스트 생산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며 대화를 이어보고자 한다.

 

「SPACE(공간)」 204호(1984년 6월호)의 표지

 ‘도시설계 현황’ 특집 시작 페이지


김세훈: 「SPACE」 204호 특집의 주제는 ‘도시설계의 현황’이었다. 1984년에 국내 도시설계의 개척자들이 모여 왜 좌담을 진행했는지 궁금해 그 시대의 전후를 생각해봤다. 1960년대 즈음 한국은 전쟁 피해 복구와 도시 재건이 큰 과제였고, 정부는 아주 기초적인 인프라 건설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그에 비해 1980년대는 여러 여건이 바뀌었다.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경제 성장, 정부의 경기 부양책과 수출 증대로 인한 기업경기 활성화, 올림픽 개최와 세계화 진행,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 진출 등이 이루어졌다. 주요 도심부의 업무 공간 수요가 폭증했 고 심각한 주택난과 함께 도시 공간의 면적 확산을 합리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이자 전문 분야로 도시설계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강범준: 김세훈이 말한 것처럼 고도성장기의 파도를 타고 있던 1980년대는 좀 있으면 더 큰 파도가 올 것이라고 모두가 기대하던 때다. 제도도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하고, 적용할 만한 마땅한 해외 사례도 없었던 상황적 급박함이 있었다. 반면 지금은 이상할 만큼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라가고 있다. 1980년대는 해야 하니까 도시설계를 하던 때라면, 지금은 열기가 너무 뜨거워 식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나 싶다. 더 성숙한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회로 볼 수도 있다.

 

김영철: 당시는 「건축법」에 도시설계라는 용어가 실제로 등장하고, 그 제도가 만들어지는 시기였다. 현재 법상에는 도시설계라는 말이 없고 지구단위계획이라는 말을 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도시설계라는 말을 어디서 쓸 수 있을까, 도시설계가는 어디에 위치해야 할까, 라는 고민이 들었다. 그런 시선으로 보면 「SPACE」 204호 특집의 필진 구성이 좋다. 양윤재는 도시설계의 개념을, 주종원은 한국의 현황을, 김기호는 제도를, 박영건과 최병선은 설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담아냈다. 지식 전달의 콘텐츠로 보기 좋았다.

 

박소현: 당시 다섯 분의 선생님,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양윤재 교수와 김기호 교수, 서울대학교 도시공학과의 주종원 교수, 건축설계연구소 삼정의 박영건 대표, 그리고 국토개발연구원의 최병선 수석연구원. 이들은 도시설계는 ‘이러이러 해야 한다’라는, 상당히 규범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시대를 이끌어가야 하는 리더의 입장에서 본인들의 의견을 여러 참고 사항들을 기반으로 해 제시하고 있다. 반면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게 ‘이러이러 해야 한다’라는 확정적인 단일한 의견을 제시하는 리더가 존재하기 어려운 시대이기는 하다. 그래도 지금, 누가, 우리 도시의 현상에 대한 비교적 냉정하고 적확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우리나라 도시설계의 초기 지식 구조가 사실은 당시의 미국 동부 현장과 학계, 예를 들면, 뉴욕 맨해튼이나 하버드대학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등에서 생산되는 내용에 얼마나 편향적으로 기대고 있었는지도 엿볼 수 있다. 급하게 무언가를 해야 했을 때여서 다양성이니 균형이니 살필 수도 없었다. 그 당시 선배들이 이루어낸 성과도 분명 있지만 한계도 있다. 지금 한 발 뒤로 물러나 비평적으로 본다면, 우리의 지식 기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1980년대와 2020년대, 도시설계 여건 변화

 

김세훈: 1980년대 도시설계가들은 도시설계의 관념을 실현할 기회가 있었다. 무언가를 하면, 그것이 첫 번째 사례가 되고, 제도화와 법제화가 되고, 교과서로 남게 되는 경험이 짜릿했을 것 같다. 당시 도시설계가 주로 다룬 영역을 세 가지로 정리해봤다. 하나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권의 도심부 오피스 밀집 지역이다. 적정 단위로 나눠 고층 개발, 가로연도형 배치, 보행친화적 환경 조성을 시도했고 을지로나 서린동·다동 일대에 구현이 됐다. 둘은 잠실이나 목동 지구와 같은 신시가지 확장이다. 새로운 도시구조 제안과 도시 축 연결, 단지배치와 자족 기능 확보에 대해 고민을 했다. 셋은 신도시의 개발 계획 수립 혹은 신도시 안의 특정 지구에 대한 설계다.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와 과천의 중심상업지구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과정을 거치며 확신을 가졌을 것 같다. 아, 이게 실현될 수 있구나 하는. 

 

박소현: 머릿속 패러다임을 현장에서 구현해보고 또 제도화로 확인해보는 ‘짜릿한’ 경험을 바로바로 해보는 과정을 선배들이 거쳤던 것은 맞다. 그러나 권한에는 책임도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싶다. 1980년대 후반 대표적인 도시설계 공모 대상지였던 을지로 16·17 재개발지구만 하더라도 당시에는 그 접근 방식이 맞는 계획이었지만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바람직하다고만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대규모로 필지를 합필하는 설계 방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해서 생산해낸 공공 공간의 성격과 쓰임새가 시간이 지나며 어색해졌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예로, 중소기업은행 본점 뒤편의 오픈스페이스는 한동안 사용되지 않는 적막한 공간이었다. 한 시대가 지나고 지금 우리는 그 시대의 그 설계언어가 왜 당선작으로 선정되었고, 어느 만큼 실질적인 도심부 공공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했는지 의문을 가지고 답이나 설명을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 을지로3가의 바람직한 공간설계에 대해서, 큰 필지 개발은 대략 을지로2가 중간까지 하고 이후에는 작은 필지와 옛길도 존중한다는 합의까지 온 셈인데, 아직 이것의 결과가 무엇을 초래했는지 잘 모르겠다. 여기에 대한 공과를 살펴보는 설명서 같은 것도 나와야 할 필요가 있다. 도시설계 현황에 대한 설명이 지금은 훨씬 복잡하고 다변화됐다. 도심부뿐 아니라 잠실, 상계, 목동 등 우리 상황에 맞는 현장의 해법을 내려는 일련의 시도들이 분명 있었고, 이들에 대한 보다 섬세하고 긍정적인 해석도 반드시 제시되길 기다린다.


강범준: 지금의 도시설계는 사실 관리(management)다. 과거 국가건설을 하던 때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분들이 국가사업을 할 때 외국 개념을 그대로 들여왔다고 하지만, 들여다보면 또 다르다. 용어와 콘셉트를 가지고 온 것은 맞다. 그러나 목동에 근린주거를 넣을 때와 잠실, 분당에 근린주거를 넣을 때는 차이점이 있다. 그 안에 들어가는 용도도 다르다. 나름의 고민이 드러난다. 우리가 도시설계를 배울 때는 그 도시에서 살아보고, 느껴보기도 했다. 또 뭔가를 배우는 것은 비판의 과정이니 비판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우리가 외국의 것을 직수입해 지었는데 안 좋아, 너희들도 그렇게 느끼지?”라고 하는데 ‘우리 엄마는 좋다고 하는데 뭐가 문제지?’ 같은 마음도 있었다. (웃음) 정반합의 갈등이 있는 것 같다. 지금 나와야 하는 것은 ‘왜 그렇게 느꼈는데?’, ‘다음에 뭘 할 건데?’ 같은 스스로 기준을 세우는 비판적 태도라고 생각한다.

 

김세훈: 현대 도시설계의 지식생산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많이들 공감하는 것 같다. 사실은 굉장히 여러 사람에 의해 지식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지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전달되기 어려울 뿐이다. 전통적인 도시설계가의 역할은 토지이용계획 그리고, 도시 구조를 짜고, 필지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래서 과천 상업지구에 남북측 필지 크기를 다르게 하고 내부 동선체계를 구성했다. 최근 여러 회의를 다니며 느낀 점은 직접 도시설계를 하지 않고 관리형 지식생산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공사에 있는 직원이 택지개발사업지구나 공공주택지구의 사업 관리를 하며 “내가 이런 의도로, 어떤 회사에 일을 의뢰했고, 이를 종합해서 내가 도시를 설계한 거다”라고 말한다. 추가로 커뮤니티 앵커시설의 지원 활동을 하는 지역 도시재생 코디네이터들도, 해외 공적개발원조로 도시 관련 사업을 조정하는 사람들도 확장된 도시설계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었다. 좋게 보면 도시설계 외연의 확장이고 지식생산자의 다변화이다. 안 좋게 보자면 아무도 전통적인 의미의 도시설계를 하고 있지 않은데 모두가 도시설계를 하고 있다고 외치고 있다. 씁쓸한 양면성이다.

 

김영철: 공공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보고서가 만들어지고 공개된다. 그런데 그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느냐 하는 부분에서 반성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글로 남기지 않는다는 점도 맞다. 보고서 정도는 나오지만 진행 과정과 그에 따른 고민은 잘 남기지 않는다. 학회에서는 지구단위계획과 도시설계의 개념에 대한 책을 만들기는 하는데 실제 들여다보면 지금 당장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글은 별로 없다. 나아가서 영어로 쓰인 것은 더욱 없다. 안타까웠던 점은 한국에서 좋은 논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알려지지 않다 보니 우리끼리의 논의에 그치는 것이다.

 

강범준: 평가절하되었다고 생각하는 지점도 있다. 리처드 세넷이 두 번 한국을 와서 한 번은 송도에 가보고, 한 번은 자신이 아파 학생을 보냈다고 했는데, 저서 『짓기와 거주하기』에서 송도를 ‘무미건조하고 무기력한 유령도시’라고 말했다. 송도에 대한 평가가 이럴 수는 없는데, 온당한 평가는 아니다. 

 

박소현: 한동안 전 지구적으로 스마트시티에 열광하며, 언급해 볼 만한 사례가 부족한 가운데 몇몇 학자들이 송도의 가능성을 엄청스레 조명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을 너무 높이 평가할 때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기대치를 너무 못 맞춘다는 비판으로 바뀌어 도처에서 부정적 평가를 바로 내놓는 현상도, 나는 이상하다. 리처드 세넷 같은 사람은 그가 쌓아온 명성에 어긋나게도 송도에 대해서는 정말 근거가 희박한 상태로 부정적 서술을 바로 하고 있어서 곤혹스러웠다. 그런데 내가 보는 더 큰 문제는 송도에 대한 찬양도 비난도 외국 학자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직 송도에 대한 설명서를 제대로 내지 않았다. 우리에게 송도는 특별한 스마트시티라기보다 또 다른 신도시이다. 비단 송도뿐 아니라 분당에 대한 정리도 아직 제대로 안 되었는데 송도까지 어떻게 가겠나. 엄청난 현장은 있고, 모두들 장소를 만들었고, 행위가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지식으로 생산하지는 못했다. 1984년에 ‘외국에 이런 것이 있으니 우리가 이걸 해야 한다’에서 ‘우리가 이것을 했는데 이것은 무엇이다’라는 흐름으로, 2022년 현재에도 우리는 아직 넘어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김세훈: 송도를 우리의 것으로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최근에 있었다. 인천도시공사에서 열리는 포럼에 갔는데 발제자 중에 “송도 주민들은 자기를 송도 주민이라고 하지 인천 시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송도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거다. 판교도 비슷하다. 판교에 있는 시민들은 성남시가 아니라 판교에 산다고 말한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지역내총생산(GRDP)이 인천광역시와 부산광역시를 넘어섰다.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도시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현상들에 한국적인 면이 있다고 본다. 이런 접근이 지금 우리의 도시를 읽는 중요한 화두가 될 거고, 흔적이 될 거다. 

 

 

최근 도시설계가 이루어낸 성과 

 

박소현: 잠실, 상계, 목동 등도, 사실 선배들이 나름 최대한 노력하며 당시 사회적 요구에 반응한 결과다. 다양한 유형의 주거 평면과 가구 구성, 주동과 시설 배치, 단지 외부 가로와의 연결, 내부 보행동선 연속 등 단순하지 않은 계획언어를 고민하며 단지설계를 했는데, 벌써 이들이 재건축 시기를 맞아 그 흔적이 사라지고 있다. 아직 납득되는 설명을 채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정작 이를 제반 관련 분야 사이에서 소통시켜줄 공통 언어가 없다. 예로, 도시설계가들이 상계와 목동이 그나마 괜찮게 설계됐다고 말하더라도 많은 건축가들과 소통이 잘 안 되어왔다. 분당, 일산도 마찬가지다. 건축, 도시, 조경 분야에서 공감되는 도시설계 공통 언어와 긍정 혹은 부정의 현장 사례가 공존하지 못한다.

 

서울의 동대문 일대 Image courtesy of wikipedia / ©Rtflakfizer

서울의 청계천 ©Kang Bumjoon  

분당 탄천의 습지공원 ©Kang Bumjoon 

 

강범준: 우리가 긍정 평가에 박하다. 학술언어로 긍정과 부정을 온당하게 평가해주어야 한다. 좋은 점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면 서울은 압도적으로 보행성이 좋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100점은 아니고 계속 개선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국제 기준으로 서울은 상위권이 분명하다. 깨끗하고, 대중교통도 좋다. 또한 서울시 역사도심 지역은 다양성이 강점이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의 하드웨어가 되었다. 2000년대 초반 청계천복원사업 이후, 서울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도시에서 수위도시로, 이후 여러 산업을 다 거느릴 수 있는 탈산업 도시로 변모하여 도심부의 매력이 증가했다. 거주지 중심으로 보아도 계속 발전해왔다. 그 예로, 맨 처음 분당이 만들어질 때는 탄천이 거의 버려진 공간이었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매력 없이 쭉쭉 직강화되어 있었다. 쌓인 부유물을 빨리 한강으로 가져다 버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2000년대를 거치면서, 탄천종합계획부터 시작해 여러 개선을 통해 환경적으로 좋아졌다. 정자동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습지공원과 같은 공간도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다 고려하고 설계한 건 아니겠지만 계속 발전되어왔다는 점과 이것도 결국 도시설계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분당에서 판교로 넘어가보자. 물리적인 도시설계뿐이 아니다. 공간의 사회적 설계에도 진전이 있었다. 판교 한글과컴퓨터 사옥 맞은편엔 임대아파트가 있다. 판교엔 각종 임대주택이 30%가 넘는다. 정말 용감하지 않나. 마이크로소프트 사옥 옆에 소셜하우징이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이 정도까지는 온 거다.

 

서울의 역사도심(덕수궁 ~ 서울시청) ©Kim Saehoon


김세훈: 나는 서울 역사도심을 말하고 싶다. 국제적으로 봐도 북촌~익선동 일대나 서촌~정동 일대, 동대문과 낙산성곽길 등은 정말 매력적이다. 소수의 도시설계가들이 이곳 환경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여러 세대를 거치며 꾸준히 노력한 성과가 보인다. 2000년대를 전후로 단지 서울의 여러 생활권 중 하나가 아닌, 특별한 계획과 관리 방침이 필요한 장소로 서울 역사도심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도심부 관리 기본계획(2000)부터 도심부 발전계획(2004), 역사도심 기본계획(2015) 등의 노력이 이어졌다. ‘역사도심’ 하면 생각나는, 꼭 지켜야 할 장소도 많아졌다. 한 예로 공평 1, 2, 3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조성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있다. 1970년대 말 도심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었지만 전면 철거에 대한 반대 목소리로 정비 수법이 바뀌게 된다. 이에 따라 소단위 필지 구조를 존중하는 방식의 정비사업을 2015년 추진하면서 대상지 내 조선 한양과 근대 경성에 이르는 건물터와 골목길을 발굴했다. 매장문화재를 최대한 원위치에 보존할 뿐 아니라 개발사업자가 도시유적전시관을 지어 서울시에 기부채납을 했고 해당 전시관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대신 서울시는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전시관 위에 센트로폴리스라는 복합시설이 지어졌다. 창덕궁 돈화문로와 낙원상가 삼일대로 같은 경우에는 차로 폭을 줄이면서 보행로를 확대하고, 불법 주차를 없애 보행환경을 개선했다. 동시에 포장길과 돌담길 같은 디테일한 부분을 디자인적으로 개선했다. 낙원상가 하부에는 서울생활문화센터를 조성했는데 주요 역사문화자원과 보행로가 선적으로, 면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우리가 역사도심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그 과정을 읽으면 자부심을 느낄 만한 대목이 분명히 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Kim Saehoon


박소현: 제도로서의 도시설계에 대해 주장했던 1984년의 시점부터 그동안 투박한 관련 제도는 계속해서 발전했다. 특히 서울 도심부의 경우, 초창기에는 재개발 구역을 지정하고 이를 실행한다는 다분히 단선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는데, 최근에는 도심부 계획의 목적을 무려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역사성, 주거, 친환경, 산업생태계 보존, 보행을 포함하는 교통 등과 같은 다양하고 복합적인 레이어들이 제도적 틀을 구성하고 있다. 이는 장족의 발전을 엿보게 하는 매우 긍정적인 사례다. 그 결과로 서울의 역사도심 기본계획이 나왔고, 이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하다. 분명한 진화가 있었다. 

 

 

그럼에도 현대 한국의 도시설계가 당면한 과제 

 

김영철: 세종의 1-5와 2-4 생활권의 중심 상업지구에 최근 주상복합건물이 많이 생겼다. 중소 규모의 블록에는 다수의 공동주택들이 생겼다. 각 주동이 직접 외부 보행거리에 접하고 있고, 거리 상점 등이 형성되어 있어, 해외의 도시에서 경험하는 도시 공간 형태와 비슷한 상태로 인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부 공간구성이 다소 미흡하다. 보행로에는 다 펜스 처리가 되어 있어 상가 앞에 주차를 못 한다. 지하에 대고 나와야 한다. 좋은 환경을 만들고, 조그만 블록을 만들었는데 사람은 한참 걸어가야 한다. 상가 앞에다 차를 대고 내려서 잠깐 커피를 살 수도 없다. 예를 들어, 시카고의 중심 가로도 넓은 도로이고, 중소 규모의 블록에 공동주택과 상업시설이 복합되어 있는 비슷한 상황이다. 그러나 여기는 내가 원하면 건널 수 있고, 차가 설 수도 있다. 제도와 개념은 같은데 실행적인 측면에서 디테일이 빠져 있는 것이 아쉽다. 

 

 

시카고의 가로 공간 ©Kim Youngchul 

 

세종시의 가로 공간 ©Kim Youngchul 

 

강범준: 제도나 하드웨어를 만드는 기술은 좋아졌는데 도시를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는 조금 부족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김영철: 추가적으로 과거 1970, 1980년대 대한주택공사에서 진행한 주택단지 개발사업을 보면 단지 내부 공간과 외부 도시 공간 간의 연결과 소통이 이루어진 상황이 존재한다. 목동과 잠실 지구 등에서 단지 내부 공간은 외부에 공개되어 있고, 차량과 보행이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해당 단지들이 재개발이나 재건축될 때에는 완전히 폐쇄적인 것을 요구한다. 자신들의 이익과 안전을 최대화하려고 하는 건데, 틀렸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몇몇 전문가들 사이에서 왜 블록을 쪼개려고 하는가, 사람들이 시장에서 원하는 건 대단지 아파트인데,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대단지 아파트의 몇 가지 사례를 생각해보면 그 안에 아기자기한 공간도 많고, 단지 경계에 조그마한 상가들도 있어 살기에는 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설계가의 생각과 일반인의 실제 삶에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 같다.

 

박소현: 도시설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당해내야 할 공공의 역할이 있다. 이것 때문에 도시설계 제도가 여전히 작동해야 하는 당위성 있다고 본다. 공공의 역할이 민간 시장을 억압하거나 막아서도 안 되지만 그럴 수 없는 환경에서 어떤 균형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다양한 사회 요구에 부응해야 하고 매우 중요하다. 

 

김영철: 추가적으로 모든 논의가 서울 중심적이라는 것도 있다. 서울이 중요하긴 하다. 그리고 서울에서 시행한 성공적인 사업을 참고하여 다른 지방에 시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시도되는 것들이 지방에서 정말 잘 적용될 수 있을까라는 문제는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소현: 의견이 단일화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도시, 건축, 설계, 계획 분야에서 계속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그 기반이 되는 지식의 토대를 마련해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근거로 이렇게 진행하자고 주장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여전히 남는다. 오늘 다양한 논의 안에 질문과 해답의 단초들도 내재해 있는 것 같다. 이것을 끄집어내어 정리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아닐까. 우리의 지식으로 우리의 사례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꾸준히 논의를 지속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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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범준
강범준은 명지대학교 건축대학교 부교수로 도시설계와 건축의 사회·문화적 측면을 가르치고 있다. 공간환경이 이용자 행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여 보다 건강한 미래 도시 공간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도시설계·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학교 버팔로 캠퍼스 건축도시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보행, 건강도시, 공간분석 관련 다수의 논문을 출판하였다.
김세훈
김세훈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미국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부교수로서 도시설계와 이론, 도시재생을 가르치고 있으며, 도시설계연구실을 공동 운영 중이다. 저서로 『도시에서 도시를 찾다』(한숲, 2017), 『서울도시계획사』(서울역사편찬원 공저, 2021) 등이 있다.
김영철
김영철은 도시설계가, 건축사, 연구자, 교육자이다. 카이스트 도시설계연구실을 이끌고 있고 도시설계와 이론, 스마트도시, 도시분석을 가르치고 있다. 도시 분석과 도시설계 방법을 연구하고 있으며,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다양한 기술의 접목을 시도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관련한 다수의 논문을 출판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미국 미시간대학교 건축및도시계획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카이스트 건설및환경공학과 부교수이고 카이스트 스마트시티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제6기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이다.
박소현
박소현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이다.주요 연구 분야는 도시보존, 도시보행, 걷기 좋은 근린계획, 참여 디자인 정책 등이다.학생들과 함께 도시건축 보존계획연구실을 운영하며,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생활환경의 조성을 위해 연구기반의 디자인 실현을 추구한다.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도시재생특별위원회, 문화재위원회와 같은 다양한 국가 위원회에 참여했고, 건축공간연구원(auri)의 초대 원장을 지낸 바 있다. 주요 저술로 그동안의 보행 연구를 정리한 『동네 걷기 동네 계획』, ‘아이러니 서울 길, 다섯 이야기’(「SPACE(공간)」, 2017. 3. ~ 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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