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s] 일상의 공간 찾기
1. 떠돌기, 일시적인 도시 공간 점유
2. 내두기, 활동과 간이시설로 확장된 영역
3. 덧대기, 물리적인 공간 변형
우리는 어딘가에 정착하게 되면 자신의 편의에 맞게 생활 공간을 가꾼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가게 앞에 진열한 상품들이 비에 젖지 않도록 천막을 치던 상인들은 점차 보다 튼튼한 구조물인 아케이드를 설치한다. 주택의 경우 지붕을 덧대거나 발코니를 확장해 공간을 더 넓게 쓰고, 옥상과 같이 비어 있던 곳에 구조물을 세워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기도 한다. 이러한 건물의증·개축에는 공사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 건축법을 위반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임시시설을 설치·해체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는 데다, 무엇보다 더 넓은 공간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해소할 수 있다.
이러한 행태는 건물에 흔적을 남긴다. 겹겹이 쌓이며 건물 입면에도 드러난다. 이를 살피다 보면 해당 건물에서 지낸 사람들의 삶이 짐작되고, 건축가가 채워주지 못한 그들의 바람을 헤아릴 수 있다. ‘일상의 공간 찾기’ 연재의 마지막 리포트는 이렇게 건물을 변형하는 ‘덧대기’ 행태에 주목한다. 지붕 덧대기, 공간 덧대기, 쓰임새 덧대기, 입면 덧대기 등 네 가지 유형으로 이를 살펴보았다.
1. 지붕 덧대기
시장의 가게들은 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본다. 상인들은 어떤 물건을 파는지 알리기 위해 가게 앞에 상품을 내 놓는다. 내둔 상품이 햇빛이나 눈, 비로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천막도 친다. 천막을 치면 가게를 찾은 손님이 편하게 쇼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가게 지붕의 천막은 점차 발전해 유리 아케이드로 변한다. ‘더해진 지붕’ 덕분에 시장은 실내 같은 공간이 된다. 비가 내려도 젖지 않고,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에 안 떨어도 된다. 날씨와 계절을 타는 시장의 불편함이 아케이드로 해소된 것이다. 상인들 또한 천막을 치고 걷는 귀찮음을 던다.
1) 시장 상공의 땅따먹기 전쟁_ 상인들이 가게 앞에 친 천막들은 서로 겹치기도 하면서 자리 다툼을 한다. 누가 더 많은 면적을 덮는지를 두고 시장 상공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셈이다. 그 결과 시장에는 내외부 경계가 모호한 공간이 형성된다.
2) 시장 바닥의 평화 협정, 바닥 경계선_ 상인들이 가게 앞에 내둔 상품들은 종종 사람이 다니는 통로를 침범한다. 통행에 불편이 생기고 상인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진다. 이는 영역을 구분 짓는 경계가 시장 바닥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상인들은 바닥에 선을 그어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한계를 정한다.
3) 아케이드로 대동단결_ 아케이드는 천막의 여러 단점들을 보완한 구조물이다. 투명한 유리 덕분에 날씨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고, 천막보다 높은 위치에 설치되기에 시각적인 답답함도 줄어든다. 아케이드는 구조적으로도 천막보다 견고하다. 아케이드가 설치되면 시장을 찾은 소비자들은 쾌적한 환경에서 시장을 둘러볼 수 있게 된다. 시장의 가로경관도 단정해지면서 시장은 다시 활기를 찾게 된다.
2. 공간 덧대기
주거 공간에는 거주자의 개성과 필요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창문 위나 현관 앞에 녹색 지붕을 덧대기도 하고, 건물의 틈새 공간을 활용해 공간을 확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옥탑 공간에 구조물을 설치해 생활 반경을 넓히거나 테라스와 발코니, 베란다에 지붕을 달아 새로운 내부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건물 설계는 전문가인 건축가의 영역이지만, 그곳에 거주하며 살아가는 주민 또한 ‘건축가’로서 활동하는 셈이다.
1) 확장된 발코니_ 발코니는 2층 이상의 건물에서 주거 공간을 연장하기 위해 건축물 외부에 설치한 공간이다. 보통 거실이나 부엌 옆에 자리잡는데, 구조물을 더해 내부 공간으로 변형할 수 있다. 이러한 확장 공사의 비용은 발코니 부분의 면적과 기존 시설의 철거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진다. 발코니는 베란다와 달리 확장 공사를 해도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요즘에는 아파트 입주 시 당연히 하는 일이 되었다.
2) 외부 계단_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증·개축을 여러 번 거친 주택은 동선이 복잡하고 계단의 유형도 다양하다. 내가 오르는 이 계단이 내 집으로 가는 계단인지가 헛갈린다. 건물 외부에 있는 계단에 철제 구조물을 세우고 유리 벽과 지붕을 달아 계단실을 만들기도 하는데, 계단실의 기하학적인 형태가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때로는 집보다 계단실이 더 커 보이는 경우도 있다.
3) 오늘도 윙윙 돌아가는 세탁기와 보일러_ 예전에 설계된 단독주택 중에는 세탁실과 보일러실이 별도로 계획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발코니 확장 공사로 내부 공간이 생기면서 이곳에 세탁기와 보일러를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곳에 화분을 갖다 놓아 ‘온실’처럼 쓰거나, 이불 빨래를 말리는 건조실로도 사용할 수 있다.
3. 쓰임새 덧대기
다가구주택이 늘어선 거리를 밤늦게 걷다 보면 음침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주차장인 1층은 어두컴컴한 데다 깜빡이는 빨간 보안센서가 깜짝 놀라게 해서다. 그런데 가로가 활성화되면서 주차장이었던 곳에 음식점, 카페, 편집숍 등이들어서면 거리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진다. 필로티 구조의 주차 공간이 하나둘 채워지면서 거리에 사람이 늘다 보면 ‘핫’ 한 동네로 발돋움한다. 이처럼 초기 계획과 다른 방식으로 1층이 사용된 결과는 부정적이라기 보다 긍정적이지 않은가.
1) 이가 빠진 다세대・다가구 주택_ 1인 가구 증가와 공유경제의 확산으로 자동차를 소유한 입주자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다가구주택의 1층 주차장 공간이 비고 이곳에는 무인 택배함과 분리수거 쓰레기통 등이 놓이고 있다. 최근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대두된 안전문제도 이 공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지진에 취약한 필로티 건물의 구조 안전 기준이 강화되고, 이에 따라 다가구 주택의 기둥은 더 두꺼워지고 있다. 1층 활용도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 금니 씌운 다세대・다가구 주택_ 다가구주택의 1층을 개조한 공간에 음식점, 카페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가건물을 설치해 공간을 확보하고, 때로는 공간을 반으로 나누어 활용도를 더욱 높이기도 한다. 거리에 맞닿은 ‘주차장 가게’들은 파라솔, 테이블, 의자 등 다양한 물건들을 거리에 내둔다. 회색빛 거리가 점차 황금빛 거리로 밝아진다.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가게들의 간판이 거리를 밝히고, 음침하던 다가구주택의 거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으며 활기찬 거리로 탈바꿈한다.
3) 사람들이 북적이는 다세대・다가구 주택 밀집 거리_ 1층 공간이 상업시설로 채워지게 되면서 다가구주택이 밀집한 지역은 활력을 띤다. 자동차보다는 사람의 보행량이 많아지면서 차 없는 거리로 발전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거리로 나와 있는 테라스와 파라솔, 자전거, 다양한 사람들은 마치 유럽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4. 입면 덧대기
사람들은 취향과 필요에 따라 건물의 내외부를 치장하고 건물이 너무 낡았다 싶으면 리모델링을 한다. 이러한 행태는 건물의 외관에 드러나는데, 외관을 살펴보면 건물의 변화 과정이 짐작되고 이곳에서 지낸 사람들의 삶을 헤아릴 수 있다. 다만 삶의 흔적이 이곳저곳에 남으면서 건물은 지저분해진다. 이 때문에 정부는 도시 미관 개선을 이유로 환경 정비에 나선다. 부질 없는 일이다. 같은 제품의 라면을 끓이더라도 조리하는 사람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 되듯이, 천만 인구가 살아가는 도시 공간을 한 가지 기준으로 규제할 수 있단 말인가?
1) 건물에 덧댄 철제 계단_ 증·개축을 거친 주택 중에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내부 계단이 없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올라가야 하나 난감해하며 두리번거리다 보면 건물 밖 검정 철제 계단이 보인다. 내부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려는 꼼수로 느껴진다. 간혹 상가건물에서 피난계단이 건물 밖에 덧붙어 있는데 이 계단이 과연 안전한지는 의문이다.
2) 그로테스크한 창문살_ 오래된 저층주거지에 가보면 방범용 쇠창살이 보인다. 낡고 녹슨 데다 과도한 형태 때문에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지만 다양한 패턴의 창살들은 건물의 외관에 리듬감을 주기도 한다. 요즘에는 쇠창살 대신 이중창을 설치하고 있어 독특한 창문살을 보기가 어렵다.
3) 한국식 ‘퐁피두 센터’_ 퐁피두 센터는 설비를 외부로 노출시킨 건축물로 유명하다. 그런데 퐁피두 센터가 건축되기 전부터 한국의 다세대·다가구 주택에서는 다양한 설비시설들이 노출되어 있었다. 에어컨 실외기, 수도관, 도시가스 계량기, 수도 파이프 등 설비시설들은 입면과 조화를 이루고, 때로는 입면을 형성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한국의 주택을 본 적이 있을까?
4) 주름 생기고 흠 생겨도 괜찮아요_ 건물이 오래되면 벽면이 갈라지거나 외장재가 떨어져 움푹 패인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괜찮다. 건물에 새로운 재료를 덧붙이면 말끔해질 수 있다. 우리가 얼굴에 화장을 하고 보톡스를 맞듯이 건물도 젊어질 수 있다. <진행 이성제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