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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과 인지의 세계: <범핑 서피시스>

사진
김경태
자료제공
두산갤러리
진행
박세미 기자
background

2020년 제11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한 김경태의 <범핑 서피시스(Bumping Surfaces)>가 9월 8일부터 10월 16일까지 두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표면으로 낙하하기>(휘슬, 2019)에 이은 두번째 개인전이다. 김경태는 그간 크고 작은 사물들을 촬영하고, 재현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인지 경험의 가능성을 탐구해 왔으며, 포커스 스태킹 기법을 통한 특유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번 전시 역시 우리의 관습적인 시지각 방식과 범핑하며 사물을 보는 새로운 기쁨을 선사한다. 전시와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그에게 들어보자. 

 

 

인터뷰 김경태 × ​박세미 기자

 

 

 

 

박세미(박): 돌, 너트, 책, 스케일 큐브 등에 이어 이번 전시의 피사체는 ‘조화’다. 어떤 계기로 조화를 선택하게 되었고, 어떤 특성에 주목했는가? 

김경태(김): 초기에 돌을 촬영할 때 표면에 드러나는 질감과 색상에 집중했었다. 이후 작업들은 형태나 구조, 광학적인 원근감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면, 이번에는 다시 표면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화는 <불안한 사물들>(2019)을 준비하면서 대리석 시트지와 함께 고민하던 대상 중 하나였다. 당시 전시 맥락에는 대리석 시트지가 더 맞아 조화는 한 켠에 미뤄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떠올리게 됐다. 대리석 시트지와 조화를 대상으로 삼을 때 ‘이 사물이 진짜인가 가짜인가’에 대한 질문에서는 가능한 벗어나고 싶었고, 실제 작업 방향에 있어서도 효과적인 질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흥미로웠던 지점은 대체품이라는 대상을 근접하게 촬영했을 때 발견하게 되는 해상도의 차이였다. 조화를 하나의 완성품으로 보았을 때는 진짜 꽃이라고 인지될 만큼 자연스럽다. 그런데 생각보다 다르게 사용된 소재라든지, 접착제 같은 어색한 지점들처럼 이 사물이 가지고 있는 이질의 특징들이 가까이서 볼 때 증폭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촬영하기 전까지는 대상이 어떤 예상치 못한 질감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이 어떻게 과장되어 보일지 궁금해하면서 들여다본 것 같다.  

 

박: 해상도의 차이, 표면과 표면의 이질성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면 좋겠다. 전시 제목이 <범핑 서피시스>다.

김: 실제 꽃을 보면 그 안에서 꽃받침와 꽃잎의 질감이 다르고, 그렇게 보인다. 그 안에서 발현된 질감이나 해상도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조화에서도 동일해 보이는 재료가 다양한 형태로 구현된 점에서 비슷하지만 각 부분들이 이어 붙은 형태나 다른 재료들이 맞붙어 있는 지점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딪히는 표면'이라는 한글 제목을 먼저 떠올렸는데 '부딪히다'라는 단어의 사용 범위나 뉘앙스가 적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영문 제목을 찾던 중 조금 즐거워 보이는 느낌의 'Bumping'이라는 단어를 택했다. 범퍼카가 떠오르기도 했고.

 

 

‘Bumping Surfaces - Poppy A’,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50×200cm, 2021

 

 

박: 총 15점의 작품 중 하나의 작품(Bumping Surfaces - Poppy A)만 전시장 외부에 설치됐다.

​김: 그 조화는 실제 양귀비의 꽃받침과 많이 달랐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조악한 모습으로 만들어진 조화였고, 덕분에 재료의 이질감이 쉽게 드러난 표본이라 가장 먼저 촬영한 대상이었다. 그래서인지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과 결이 조금 다른 이미지였기 때문에 외부에 설치했다. 유일하게 가로로 촬영된 것이기도 하다. 

 

박: 그간의 작업처럼 이번 전시에서도 포커스 스태킹 기법이 활용됐다. 이를 포함한 일련의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김: 일단 어떤 조화를 촬영할지 선정한다. <범핑 서피시스>의 경우 최대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꽃 중에서 색도 보편적인 것들을 택했다. 꽃을 선정하고 나면 어떤 부분을 찍으면 좋을까를 살피고 구도를 잡고 촬영을 한다. 

포커스 스태킹 기법에서 촬영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카메라를 고정한 상태에서 렌즈의 초점거리를 조정해 다초점을 얻거나, 초점거리는 고정해 두고 레일 위의 카메라를 전진시키면서 촬영하는 방법이 있다. 경우에 따라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번 작품들의 경우는 두 가지 촬영 방식을 혼용했다. 카메라랑 렌즈와 함께 전진시키면서 촬영하는 방식은 처음부터 정확한 프레임을 예상하기는 어렵다. 대강의 프레임을 잡고 최초 결과물을 참고해서 조금씩 구도를 조정해가며 원하는 장면을 얻어내거나 여유있게 촬영한 후 크롭하는 방식을 택한다. . 하지만 이번 작품들처럼 큰 프린트로 제작될 때는 크롭을 최대한 피해야하기 때문에 프레임을 계속 조정하면서 촬영했다. 

포커스 스태킹을 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따라 수 컷에서 수백 컷이 필요하다. 피사체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필요한 컷수도 많아지고 시간도 많이 걸리게 된다. 문제는 근접 촬영의 경우 흔들림에 민감하기 때문에 인터벌을 여유있게 줄 필요가 있는데, 어느 정도가 최적인지를 판단하면서 촬영한다. 이렇게 촬영된 이미지들을 전문 소프트웨어를 통해 합성한 후, 리터칭하는 순이다. 

 

 

 

 

박: 전시된 15점의 작품들을 보면 조화의 스케일이 조금씩 다르다. 꽃의 종류와 형태가 한 눈에 들어오는 작품도 있고, 특정 부위가 확대된 작품, 그리고 어떤 사물인지 전혀 짐작되지 않는 작품들도 있다. 스케일과 부위, 구성, 배경 색 등은 어떻게 결정되었나?

김: 부위를 결정하는데 있어서는 일단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질감이 만난다는 기준이 있었다. 하나의 조화에서 최대한 다양한 장면(질감)이 만나는 지점을 찾고, 그에 따라 스케일을 결정했다. 현재 전시된 것보다 고배율로 찍은 것도 있지만 화면구성의 측면에서 스케일을 줄인 경우도 있고, 형태가 많이 보이는 것이 의미가 없거나 오히려 방해가 될 경우에는 최대한 클로즈업한 경우도 있다. 몇 배수로 촬영해야겠다는 기준보다 꽃의 종류, 장면, 표면의 조합에 따라 결정했다. 조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색을 정확하게 반영하려고 했고, 질감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배경 색의 대비는 크게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박: 클로즈업과 프레이밍하는 정도가 이전 작업인 돌을 다룰 때와는 조금 달라 보인다. 

김: 사실 이미지를 구현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돌과 꽃의 가장 큰 차이는 이미지로 볼 때 스케일을 가늠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돌은 같은 종류의 광물, 같은 형태라고 해도 생성된 환경에 따라 크기의 편차가 큰 편이기 때문에 이미지만으로 그 스케일을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꽃은 크기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우리가 모두 쉽게 상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들은 클로즈업을 하거나 프레이밍하는 방식이 더 적극적으로 사용됐다고 할 수 있다. 

 

 

‘Bumping Surfaces - Amaryllis C​’,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200×150cm, 2021

 

 

박: 기술적 접근을 통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드는데 있어서 한계도 있을 것 같다. 

김: 그간 촬영했던 다른 사물들에 비해 꽃은 비교적 구조가 복잡한 편이다. 이를테면 (이 조화를 보면) 꽃잎들 사이에 거리가 꽤 있고 중간이 비어있다. 이렇게 단차가 큰 장면에서는 얕은 피사계 심도 때문에 주변의 흐린 이미지들이 겹치게 되고 완벽하게 피해갈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부분을 이상적으로 완벽하게 해결하고 싶지만, 최종 결과물에서 알고리즘의 한계가 드러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작업 이후에 그 지점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박: 포커스 스태킹이라는 기술적 방법은 동일하지만, 대상 혹은 작가 내부적으로 갖는 목적에 따라 적용 방식도 다를 것 같다. 이를테면 2019년 휘슬에서 열린 <표면으로 낙하하기>와 이번 <범핑 서피시스>는 어떻게 다른가?

김: 물리적인 깊이 축을 이동시키면서 초점면을 획득하는 방법의 부가적인 효과는 광학적인 원근감을 어느정도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작업이 스케일 큐브를 대상으로 삼았던 <표면으로 낙하하기>다. ‘Scale Cube 1P’를 보면 모서리가 거칠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전체 이미지를 보았을 때 원근감을 완벽히 없애고 평행투시가 되게끔 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 같은 것이다. 포커스 스태킹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초점면 깊이 안에서 광학적인 원근법이 적용될 수밖에 없는데, 원근법을 극복하고자 한 시도였기 때문에 거기서 발생하는 왜곡을 그대로 노출시킨 것이다. 반면 <범핑 서피시스>는 원근감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중요한 작업은 아니었다. 렌즈 자체에서 조리개 조절을 통해 피사계 심도를 얼마나 조정하느냐에 따라 원근감을 얼마나 피해갈 수 있을지 판단을 하는데, 이번에는 광학적인 원근감에 대한 고려보다는, 표면의 재현도에 최대한 집중했다. <표면으로 낙하하기>에서는 ‘낙하하기’가 중요했다면, <범핑 서피시스>에서는 ‘표면(서피시스)’에 방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Bumping Surfaces - Calla C​​’,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200×150cm, 2021 

 

 

박: 작가가 작업 과정에서 생성해나가는 사물에 대한 인지 경험이 최종 작품을 보는 관객들에게 이식되는 전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김: 사실 명확한 메시지나 서사를 전달하는 전시는 아니다. 포커스 스태킹 기법을 사용하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의 사진이 주시하고 있는 지점, 주제 의식이라기보다 대상을 관찰하는 방식이다. 나 또한 촬영하기 전에 피사체를 온전히 다 보지 못한다. 작업을 시작할 때 주목했던 부분이 있어도 작업을 진행하면서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게 되면서 관점이 바뀌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그 경험이 좋다. 모든 곳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은 사물의 모든 부분을 볼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실제 사물을 관찰할 때 대상의 부분 부분을 훑으면서 하나의 데이터로 만드는 인지 과정을 재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미지를 볼 때도 비슷한 감각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사진으로 그 인지 경험을 어떻게 최대한 구현하고, 재현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김경태
김경태는 중앙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스위스 로잔의 ECAL에서 아트디렉션 과정을 졸업했다. 크고 작은 사물을 촬영하여 재현의 이미지를 통해 바라보는 경헝과 형식에 대해 탐구한다. <그래픽 디자인, 2005~2015>(일민미술관, 2016),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서울시립미술관, 2016), <종이와 콘크리트>(국립현대미술관, 2017),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베니스비엔날레, 2018), <표면으로 낙하하기>(휘슬, 2019) 등의 전시에 참여했고, 『On The Rocks』(2013), 『Angles』(2016) 등의 출판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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