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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과 철거를 둘러싼 끝나지 않는 논쟁: 부평 캠프마켓

자료제공
이연경, 부평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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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반환 기지 중 하나인 부평 캠프마켓 내 인천일본육군조병창(이하 조병창) 병원 건물의 철거 여부를 놓고 국방부, 인천시, 문화재청, 시민 사회 등 여러 주체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SPACE(공간)」는 미군 반환 기지와 관련해 꾸준히 연구를 진행해온 이연경(인천대학교 학술연구교수)을 만나 철거를 둘러싼 논란의 쟁점은 무엇인지, 문제해결을 위해 건축계에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이연경 인천대학교 학술연구교수 × 방유경 기자​

 

 

현재 부평 캠프마켓 일대 모습(『헬로우 애스컴 시티, 굿바이 캠프 마켓 ‐ 부평미군기지와 부평 사람들 이야기』, 부평역사박물관, 2020). 부평역사박물관 제공

 

 

방유경(방): 부평 캠프마켓 내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 여부를 두고 여러 사회적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본론에 앞서 조병창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이연경(이): 조병창은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무기제조를 위해 일본 본토가 아닌 식민지에 만든 첫 번째 무기제조소다. 정식 명칭은 ‘인천일본육군조병창 제1제조소’이며 1941년 개창했다. 조병창이 들어선 자리는 1920년대 이후 일본군 제20사단이 사용하던 부평연습장이 있던 곳으로, 주변 지역은 1939년 이후 경인시가지계획의 부평지구로 개발 중인 상황이었다. 부평 지역의 공장 유치를 위해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었고 미쓰비시제강, 도쿄제강 등 여러 군수업체가 이 일대에 들어섰다. 그 결과 부평은 1939년에서 1944년까지 불과 5년 사이에 군수공업도시로 급격히 성장했다. 조병창에서는 주로 총기류를 제조했고, 강제 노역을 위한 인력 징집도 병행됐다. 이에 따라 공장 주변에는 노동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주택단지가 빠르게 형성되었다. 잘 알려진 미쓰비시 줄사택은 조병창 인근에 들어선 최초의 노무자 주택단지다. 산곡동 일대에는 당시에 지어졌던 조병창 노무자 주택 천여 채가 아직 남아 있다. 

 

방: 일본이 세운 조병창은 오늘날 캠프마켓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군 주둔 이후의 역사도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쳤나? 

이: 광복 이후, 군수공장 전체를 포함한 조병창 일대 지역을 미 제24군단이 접수했다. 이후 한국전쟁 시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조병창은 남한 주둔을 위한 미군의 주요 군수 기지로 쓰였다. 특히 1955년부터 미 육군군수지원사령부가 주둔하면서, 미군은 군수물자의 생산과 보급을 담당했던 부평 미군 기지(7개 캠프로 구성)를 ‘애스컴시티’로 명명했다. 하지만 1970년 초, 기지의 주요 기능이 용산으로 옮겨지면서 애스컴시티는 1973년 해체되었고, 그 영역은 현재의 캠프마켓 일대로 축소됐다. 70년 넘게 조병창 일대를 차지하던 미군 기지 반환에 대한 목소리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부평 미군 기지 반환운동이 촉발된 1996년부터다. 이후 미군의 평택 이전이 확정되었고 ‘캠프마켓 반환’은 현실이 됐다. 현재 미군은 2002년 체결된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캠프마켓을 A~D 구역으로 나누어 부분적으로 반환하고 있다. 전체 캠프마켓(44만m2) 가운데 A·B구역(21만m2)이 2019년 12월 우선 반환됐고, 나머지 D구역(23만m2)은 제빵공장 폐쇄와 이전 협의를 거쳐 내년 4월경 반환될 예정이다.

 

방: 지난 6월 인천시가 캠프마켓 내 조병창 병원 건물의 철거를 결정한 이후, 여러 언론 매체에서 일본 강제 동원의 증거가 사라지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기사를 발표했다. 뒤이어 역사적 유산인 병원 건물의 보존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오면서 8월 인천시는 철거 결정을 보류했다. 기지가 반환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논란이 제기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이는 캠프마켓이 지닌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제대로 조사하고 연구하는 과정 없이 철거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기지 반환에 앞서 문화재청은 건물의 보존을 권고했다. 하지만 ‘권고’는 「문화재 발굴법」과는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다. 현재 논란이 된 건물은 B구역에 위치한 ‘1780호 건물’로, 이 건물을 제외한 B구역의 대부분의 건물이 멸실된 상태다. 일각에서는 1780호 건물이 조병창 시기 병원으로 쓰인 것이 맞는지 진위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고 건축적,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논리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조병창 내 건물에 대한 정식 조사와 연구가 이뤄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민 증언과 관련 기록, 선행 연구자료 등 해당 건물이 병원이었음을 증명하는 자료는 충분하다. 그러나 ‘병원이었다’는 사실 확인을 넘어 그 가치를 제대로 규명하려면 전수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군 기지 특성상 군사 기밀, 보안 등 협조가 어려운 상황에서 조사를 진행하려면 행정의 도움이 뒤따라야 하지만, 현재는 조사 연구를 위한 협조가 어려운 상황이다. 

 

1948년 촬영된 인천일본육군조병창 일대와 병원 건물 ©Norb Faye / Image courtesy of flickr

 

방: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된 논리와 쟁점은 무엇인가? 

이: 환경문제와 경제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염정화에 따른 비용과 시간 역시 주요 쟁점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가장 편리한 방식은 시설물을 철거한 뒤 토양을 정화하는 것이다. 시설물을 존치한 상태로 오염을 정화하는 방식도 있지만, 이 경우 물리적인 시간과 비용이 더 소요된다. 따라서 철거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최대한 빨리, 경제적인 방식으로 시설물을 철거하고 환경정화를 하고자 한다. 하지만 중요한 역사적 장소는 철거하고 나면 다시 만들 수 없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다른 대안을 적극적으로 찾아보아야 한다. 

 

방: 캠프마켓처럼 국내에서 반환되고 있는 미군 기지들의 수가 적지 않은데, 다른 곳의 상황은 어떠한가?

이: 일련의 과정은 부평 캠프마켓뿐 아니라 전국의 미군 반환 기지에서 반복되고 있다. 반환된 미군 기지는 대부분 공원용지로 사용하게 되다 보니, 지자체마다 역사적 가치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 없이 공원 계획만 서두르는 상황이다. 익히 알려진 용산 미군 기지의 경우, 공원 조성을 앞두고 2011년부터 문화재청의 주도 아래 기지 안에 있는 1,200여 동의 시설물에 대한 전수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후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시설물의 가치를 다각도로 평가하여 잔존 시설물들의 보존 및 활용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철거 유무를 결정하고 활용 방식을 논의하려면, 이런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사업을 실행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용산은 우리나라에서도 ‘굉장히 특수한’ 사례였다. 부산 캠프하야리아, 원주 캠프롱, 화성 쿠니사격장 등 용산을 제외한 미군 기지 반환 과정은 대부분 ‘선 조사 후 계획’이 아닌 ‘선 계획 후 조사’를 따르고 있다. 역으로 조사 연구의 과정이 철거를 위한 기록화 사업의 명목으로 수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방: 미군 기지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연구를 수행해온 건축 전문가로서 부평 캠프마켓이 지닌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 미군 기지 내 건축물은 효율과 기능을 추구하는 군대 건축의 특성상, 양식이나 조형성과 같은 건축적 가치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그보다 시대상을 담은 역사적 가치를 논할 수 있는데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아시아·태평양 전쟁유적으로서의 가치다. 조병창은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무기제조 공장으로서 전시체제기 건축의 정점을 보여준다. 집집마다 놋그릇, 놋수저까지 징집했던 전시물자 제한(국가총동원법) 아래에서 가용한 모든 자원을 쏟아 만든 대규모 철근콘크리트 건물이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 산업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도시 부평의 형성과 발전을 견인한 핵심 공간으로서의 가치다. 한때 부평 면적의 2/3를 차지했던 애스컴시티와 캠프마켓의 역사는 그 자체로 부평의 역사를 대변한다. 도시 자원과 인력의 대부분이 이 공간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작동했다. 부평 도시사, 생활사 연구에도 중요한 장소성을 가지는 이유다. 셋째는 한국전쟁 이후 냉전시기 유산으로서의 가치다.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캠프마켓은 냉전체제의 역사를 오롯이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로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연구 가치가 있다. 일제 식민지기 말에 조병창으로 사용된 시간이 중요한 만큼, 미군이 점유한 시간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점유 기간만 봐도 일본은 6년을, 미군은 70년 이상을 사용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미군 기지를 연구하면서 시기별로 구조와 재료와 공법, 공간 등 특성이계속 변화하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철거 여부를 논하기 전에 전체 미군 기지를 대상으로 보다 정밀한 조사와 연구가 시급하다고 본다.

 

 

 


1952년 촬영된 애스컴시티 일대 모습과 애스컴시티 배치를 보여주는 1960년대 미군 지도. 부평역사박물관 제공​​

 

 

방: 최근 조병창 지하와 관련된 새로운 사실이 한 개인 연구자의 노력으로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이는 반가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캠프마켓에 대한 조사 연구가 통합되지 못하고 개인 차원에서 단편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안타깝다. 

이: 역사학자 조건(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일제 말 조병창 지하시설물 계획에 관한 문서를 발굴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조병창의 지하시설에 대한 많은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산곡동 새우젓굴이라 불리던 토굴들은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전쟁 말기에 무기를 숨기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미군 기록에는 지도에 ‘CAVE 1, 2, 3…’ 이런 식으로 표기되어 있다. 미군 기록에 따르면 40여 개소가 넘지만, 1972년 애스컴시티가 캠프마켓으로 축소되면서 일부는 주민들이 새우젓굴로 쓰고, 일부는 한국군 부대 안에 남고, 또 일부는 주택을 짓는 과정에서 소실됐다. 현재는 이 토굴에 대해 부평문화원에서 조사를 진행하며 역사문화자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부평문화원과 부평역사박물관은 조병창 및 부평지역에 대한 생활문화조사 및 학술연구를 오래 진행해왔다. 하지만 기지 반환이 현실화되면서 캠프마켓에 대한 조사 연구에서 두 기관은 배제되었고, 인천시 산하의 부처들이 이를 담당하면서 조병창에 대한 연구가 통합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방: 일련의 논란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거버넌스의 부재에 있다. 도시에 대규모 가용 필지가 생겼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나? 특히 미군 반환 기지의 경우 국방부, 문화재청, 인천시, 부평구, 시민단체 등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는 문화재 보존과 환경오염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같지만, 결국 개발을 두고 정치적인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물론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나 역시 모든 건물을 다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관점을 공론화하고 토론을 거쳐 의사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거버넌스가 없었기 때문에 논란이 계속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기능을 고려해 인천시에서 2011년 캠프마켓 시민참여위원회를 조직하기도 했지만, 실제 회의는 몇 차례 열리지 않았고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방: 캠프마켓의 반환은 현재진행형이다. 반환 과정에서 캠프마켓이 철거 사례로 남지 않으려면 건축계는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 

이: 내가 캠프마켓에 관여하면서 가장 많이 얘기했던 것이 마스터플랜의 부재다. 조사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통합적인 마스터플랜을 수립해야 한다. 현재 캠프마켓은 구역별로 나눠 부분적으로 반환하다 보니 전체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용산의 사례처럼 조사는 기지 반환이전에도 가능하다. 조사가 마스터플랜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 과정이 선행되면 공원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건물의 보존 여부, 보존의 정도와 방식도 결정할 수 있다. 그다음은 디자인의 몫이지 않나? 다만, 안타깝게도 최근 확인한 바에 따르면 A, B 구역의 건물은 대부분 철거됐고, B구역에 남은 일부 건물은 인천시가 부처별로 나눠 사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체육관 건물은 건강체육국에서, 사병 식당 건물은 문화관광국에서 따로 설계를 진행해 사용하는 식이다. 

 

방: 조병창 건물을 보존한다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캠프마켓을 비롯해 인천에 남아 있는 근현대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이: 부평역사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조병창과 관련해 수집한 유물이 너무 많아 수장고에 쌓아둘 정도라고 한다. 전쟁유산으로서 사회적, 역사적 가치를 살려 병원 건물을 개방형 수장고로 활용하면 조병창의 시간을 보여주는 장소로서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병창 건물의 건축적인 활용 방식에서는 산업유산을 활용하는 방식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기능과 효율 중시하는 공장 건축은 시대상과 기술의 한계치를 보여준다. 이런 산업유산 공간에서 사람들은 거대한 공장 건축이 주는 압도감과 폐허미를 이야기한다. 부평 캠프마켓은 이곳에 쌓인 역사와 시간의 무게가 가볍지 않기 때문에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인천아트플랫폼, 부천아트벙커, 코스모40의 사례처럼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이때 마스터플랜을 계획하면서 근대역사문화공간 사업(문화재청)이나, 유휴공간 문화재생 사업(문화체육관광부) 등과 연계한다면 재원 마련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인천은 문화재나 근대문화유산이 중구 개항장 일대에 집중된 반면, 이곳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개발 위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동구에 있는 동양방적이나 일진전기와 같은 산업유산도 아직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행정이 이렇게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산을 비롯한 지역의 소도시들은 근대문화유산이 도시 성장의 유일한 동력이라 여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천의 상황은 다르다. 근대문화유산은 부동산 개발로 얻을 수 있는 수익에 비해 효용이 떨어지고, 세금을 쏟아 부어도 뚜렷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이런 상황은 수치상에서도 드러난다. 전국에 분포하는 문화재청 등록문화재의 수가 현재 900개가 넘는데 인천에 소재한 국가등록문화재는 8개에 불과하다. 인천은 항상 인적 자원의 부족이 문제로 지적되는데, 지역 안에서 근대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연구하는 인력들이 하루 빨리 성장하고 늘어나야 이런 불균형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천일본육군조병창 병원 건물의 현재 모습(2층 건물이었으나 1층으로 축소되었다.) ©Lee Yeonkyung

 


▲ SPACE, 스페이스, 공간


이연경
이연경은 인천대학교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을 수상했다. 저술로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 『사진으로 만나는 개항장 인천의 경관』(공저)을 썼으며, 『서울, 권력도시』(공역)를 우리말로 옮겼다. 19세기 말 이후 서울, 인천을 비롯한 동아시아 도시들의 근대화 과정을 일상생활과 도시환경. 그리고 건축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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