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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ΣπΩ 혹은,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송률
사진
송률
진행
박세미 기자

 

 

ΣπΩ 혹은,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1 ​

 

나는 SF영화는 가끔 보지만 책은 자주 읽는 편이다. 어렸을 때는 스타트렉을 재밌게 보았다. 그러나 스타워즈는 항상 무엇을 얘기하려는지도 모르겠고 재미가 없었다. 여러 시리즈가 있지만 한 번도 끝까지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백인 블론드 공주를 똑똑한 근육질의 백인 남성이 영웅처럼 구하는 영화인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죽이는 파괴적인 패륜적 운명에 대한 영화인지. 로봇는 분명히 자신의 생각이 있는데도 새로운 유형의 노예인 것 같기도 하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로봇 마빈 더 파라노이드 안드로이드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자신은 로봇으로서 더 많은 능력을 갖고 있는데, 항상 인간들 문 열어주고 무엇을 가져다주는 심부름만 한다고 자괴감과 절망감으로 우울증에 걸린 로봇이다. 마빈이 고개를 떨군 채 힘없이 혼잣말하며 터벅터벅 또 문 열러 가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에서 조애나 러스는 스타트렉과 스타워즈를 비교한다. 내가 항상 느끼고만 있던 것을 그녀는 선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전형적인 백인 남성의 세계(자연이건 여자이건 동물이건 원주민이건 대륙이건 일단 정복하고 봐야 하는 가부장적 세계)인 SF에 스페이스쉽의 일원으로 여자도 나오고 아시아인도 나오고 외계행성인도 나오고 흑인도 나온다. 함장은 있지만 모두 동료이자 친구이다. 스타트렉에서는! 그들은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가며 실패도 하고 딜레마도 겪는다. 그 딜레마에서 결정의 기준은 윤리이다. 공공의 선, 자연의 순리와 모두가 평등하다는 정의가 기본 바탕에 깔려있다. 그러면서 러스는 백인 남성의 전유물인 SF 세계에 얼마나 많은 여성 SF 작가들이 있으며, 그녀들은 왜 SF라는 장르를 선택하였는지 조목조목 짚어간다. 여성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갖고 싶어 하며,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체계에 끼어 맞추면서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힘 있는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체계에 여성들의 자리는 많지 않다. 

 

안드레아 프레이저는 미술계 안에서는 인스티튜션(제도권)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작업을 할 수 없고, 그 바깥 세계에서는 기회마저 없어 연명하기 위한 일만 하기 때문에 자신의 작업을 할 수 없다고 하며, 자신(미술가들)의 자리는 어디냐고 울부짖는다. 게다가 이러한 인스티튜션(제도권)은 관습에 푹 절어있는 가부장적 체계 안에서 여성에게 많은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

모두가 뒤샹의 작업이라고 알고 있는 '샘'은 독일 이민자 엘자 폰 프라이탁-로링호펜이 1918년 뉴욕에 있는 뒤샹에게 보낸 것을 뒤샹이 자기 작품이라고 훔친 것이다. 'R.Mutt' 사인은 독일어의 'Armut(가난)'과 'Mutter(어머니)'의 합성어다. 그녀는 다다이스트답게 자신의 아픔을 언어 콜라주로 함축한다. 프라이탁-로링호펜의 어머니는 '자궁(Gebaermutter)'암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그녀의 가족은 너무나도 가난해서 어머니는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이러한 한 맺힌 상황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으며, R.Mutt 서명의 유래가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예술에 대한 인식이 바뀌며 모든 증인들이 세상을 떠나자 1964년 뒤샹은 잊혔던 '샘'을 5점 재생산하며 떳떳하게 자신의 작품이라고 세상에 알렸다.

에드워드 호퍼의 부인 조세핀 호퍼도 화가였다. 에드워드 호퍼는 부인이 그림 그리는 것을 못 하게 하였으며 자신의 매니저로서 온갖 뒷바라지를 하도록 한다. 하지만 조세핀 또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였고, 결국 둘의 사이는 안 좋아지지만 애증의 관계로 에드워드 호퍼가 몇 달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한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조세핀은 남편과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한다. 휘트니 미술관은 에드워드 호퍼 그림만 남기고 조세핀 호퍼 그림들은 폐기한다.

톨스토이는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채 많은 여자들과 꽤 깊은 관계를 맺었다.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하여 고뇌하였으며, (나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열 번 이상 읽었다. 항상 일리치의 고통의 비명이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여성을 혐오했다. (혐오라기보다는 무시였을 것이다)

샤를 보들레르는 (그의 『파리의 우울』 또한 나는 여러 번 읽었다) 노골적인 여성혐오자이다. 특히 그는 나이 든 여자를 '경멸'했다.

나는 여자의 건축 또는 남자의 건축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돌프 로스의 '아메리칸 바'에 들어섰을 때 '아! 이것이 남성의 건축이구나!' 하는 것을 오감으로 경험하였다. 감탄을 금치 못했지만, 이 깊은 마초적인 분위기에서 시가를 피우고 있었을 아돌프 로스를 생각하니 마음 한편에 무거운 뭔가가 누르는 것 같았다. 1928년 아돌프 로스는 8세에서 10세 사이 세 명의 소녀들에 대한 아동 성 학대 유죄판결을 받았다. 아돌프 로스는 페도필리아였다.

 

여성들이 리얼리즘 소설을 쓰면 여성적이라고, 개인적 이야기라면서 문학작품으로써 받아들여지지 않은 시기를 거쳤다. (아직도 상황이 많이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여성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여성 판타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SF 등 비주류의 문학을 관습적인 잣대로 들여다보려면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허황된 얘기이다. 그러나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면 스타트렉처럼 많은 깨달음을 주는 것이 여자들이 쓴 이 비주류의 글들일 것이다.

조애나 러스의 다른 책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에서는 여자들이 글을 배울 수 있도록 허락된 후부터 20세기 초까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글을 썼는지 (러스가 호명한 이름들의 수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얼마나 적은 숫자의 작품만이 알려져 있는지, (그마저도 남자 형제가 썼다느니, 그녀의 남성적 부분이 썼다느니, 결코 온전히 그녀들 혼자서 쓰지 않았으며, 어떤 남성의 영향으로 썼다고 기득권의 남성들은 부득부득 우긴다) 세상이 어떻게 오만가지 이유를 대며 여성의 작품을 폄하했는지 그리고 없애버렸는지 증명한다. (러스는 11가지로 크게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얼마 전에 『허랜드(Herland)』 유토피아 소설을 읽었다. 이 여자들만 사는 세상의 모든 여성들은 짧은 머리를 하고 있다. 묘사된 것을 보면 대부분 단발 정도이고 겨우 몇 센티 길이도 있다. 탐험을 간 세 남자는 얼마 동안 이 짧은 머리를 견디기 힘들어하며 여성의 긴 머리를 그리워한다. 당연히 그 '여자들'은 왜 머리를 길러야 하는지 모른다.

많은 여성들이 쓴 글들에는 그저 여성에 대한 평등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모든 성별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평등을 원한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과 자연이 평등하기를 원하는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이다. 그러나 부패한 시스템 안에서의 평등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시스템이 필요하다. To boldly go where no one has gone 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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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애나 러스의 한국어 번역본 제목 인용. ​ 

 


▲ SPACE, 스페이스, 공간


송률
송률은 건축가이며 격월간 잡지 「SUPTEXT」의 발행인이자 편집자이다. 홍익대학교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학업과 실무를 하였으며, 현재 수파 송 슈바이처의 공동대표이다. 건축의 언어와 영역 확장을 목표로 작업하며, 예술과 디자인을 통하여 일상의 본질을 표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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