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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영상의 전문성과 대중성

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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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김종신(기린그림 감독) x 노경(노스페이스 대표) x 박성진(월간 「SPACE(공간)」 편집장, 좌장) x 이정훈(조호건축사사무소 대표) x 정다운(기린그림 감독)

 

기록에 대한 욕구와 매체의 진화

박성진(박): 이번 특집에서 다루는 건축영상은 순수예술 성격의 영화나 다큐멘터리 작품이 아니다. 기록으로서 건축사진이 생산되는 이유처럼 특정 건축물을 기록하는 영상 작업을 대상으로 한다. 먼저 건축물을 기록하려는 건축가들의 욕구나 매체가 그동안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이야기해보자.

 

정다운(정): 영화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시간성과 공간성이라는 특성은 건축과 매우 밀접하게 관계 맺고 있기 때문에 ‘건축영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 하지만 특정 건축물을 영상으로 기록하고자 했던 의미 있는 사례를 들자면, 르 코르뷔지에가 영화감독 친구와 함께 제작한 ‘오늘의 건축, 영화’라는 영상이 아닐까 싶다. 이 영상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빌라 사보아를 통해 근대건축 5원칙을 설명하고 있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영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우하우스에서도 자신들의 건축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영상을 제작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근대 초기부터 영상이 건축의 공간성과 시간성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매체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명확하다.

 

박: 영상도 사진 이미지의 속성을 일부 갖고 있다. 이처럼 장르로는 사진과 영상, 기술로는 필름과 디지털이라는 일련의 계통발생적 변화와 분화를 겪었다. 우리 건축계에서 이런 사진과 영상이 어떤 방식으로 정착하게 되었는지 노경 작가에게 묻고 싶다.

 

노경(노): 건축물을 촬영하는 데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의 전환은 획기적인 변화였다. 영상 분야도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의 등장이나 장비의 소량화를 통해서 어느 정도의 툴만 다룰 수 있다면 누구나 쉽게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카메라와 영상장비가 엄격히 구분되던 시기에서 기능적으로 융합이 일어나고 이게 대중화되면서 건축사진에 대한 욕구가 영상까지 밀고 들어온 것 같다.

 

정: 나는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세대다. 필름 세대는 촬영 인원, 고가의 장비, 아날로그 후반 작업 등 제작 과정 전반에서 비용과 시간 등 한계가 무척 컸다. 다큐멘터리가 발전하는 양상은 장비의 디지털화, 장비의 소량화와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디지털 매체로 바뀌면서 가장 혁신적인 것은 표현 방식이 더 자유로워졌다는 점이다. 공간성을 어떤 장비를 사용해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이 확대됐다.

 

박: 「SPACE(공간)」가 2001년 웹진 www.vmspace.com을 만들면서 야심 차게 준비했던 것이 바로 건축영상이었다. 당시 기자들이 현장에 6mm 캠코더를 들고 나가 건축물 찍고, 이를 외주 편집해 건축영상을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힘든 점이 너무 많았다. 단조롭고 어설픈 촬영 기법뿐만 아니라 이후 편집 작업에 수반되는 노력들이 너무 커 결국은 3년 정도 운영하다 접게 되었다. 하지만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사회문화가 달라지면서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건축영상이 생산, 유통되고 있다. 최근에는 괄목할 만한 국내외 건축물에는 늘 영상작가의 작업이 뒤따르고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사무실 차원에서 영상을 자체 제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결국 장비의 소량화와 스마트 기기의 보급으로 가능해진 부분이 아닐까?

 

김종신(김): 최근 영상 편집이 굉장히 용이해졌다.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해 간편하게 영상을 편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툴들이 개발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1인 미디어라고 할 정도로 촬영부터 편집까지 누구나 다룰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드론의 등장과 보급으로 인해 건축영상의 표현력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드론이 3대 있는데 소프트웨어가 각각 다르다. 실내에만 특화되어 있는 드론, 크레인 역할을 대신하는 용도의 드론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기린그림, ‘이타미 준의 바다’, 다큐멘터리 영화, 1시간 50분, 2018

 

건축영상 확산의 문화적 배경

박: 구글에서 ‘design’과 ‘architecture’를 검색하면 전체 페이지 가운데 영상물의 비율을 확인할 수 있는데, ‘architecture’의 결과가 ‘design’에 비해 2배 정도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인접 분야에 비해 건축이 영상의 본질적인 측면과 부합되는 면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기술 발전도 건축영상 확산의 배경이 되겠지만, 문화적인 측면 또한 작용했을 것이다. 이미 문자에서 이미지 세대로, 이미지에서 영상 세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 그렇다. 지금은 영상세대다. 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드는 세대다. 건축을 경험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간을 접하고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영상을 통해서 하는 세대다. 더 나아가서 직접 만들고 싶고, 체험하고 싶어 한다. 방금 박성진 편집장이 말한 디자인과 건축이라는 키워드 검색 결과가 그 특질의 차이를 나타내는 기표인 것 같다. 건축은 영상이 가지고 있는 시간성과 공간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특질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영상이 효과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정훈(이): 이 변화를 기회로 보아야 한다. 도티&잠뜰이라고 아는가? 오락 게임인데 이 게임 영상이 굉장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사람들이 게임 자체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영상 안에서 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까지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수익으로 이어지고 후원이 들어오고, 오프라인 숍도 운영하고, 방송까지 한다. 시장이다. 

 

박: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건축 그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대 건축의 새로운 실험적 양상을 사진이라는 전통적인 매체가 감당하기에 이미 벅찬 부분이 있다. 고정된 물체가 아닌 변화체로서의 건축, 인터랙티브 파사드, 미디어월과 결합된 입면 등은 사진보다 영상이 훨씬 다면적이고 종합적인 이해를 제공할 수 있다.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가 자체적으로 영상팀과 채널을 운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기린그림이 촬영한 목연리 건축영상에서도 입면의 루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이를 통해 다른 현상학적 경험을 일으키는지 보다 분명히 전달하고 있다.

 

이: 해외 프로덕션들이 찍는 영상을 보면 철학과 미학이 담겨 있다. 기린그림에서 촬영한 목연리 영상의 경우도 단순히 키네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새소리, 자동차 소리 같은 것들이 가미됐다. 사진으로는 상상해야 하는 영역을 영상에서는 또 다른 미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탁월한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고,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시장이 있어야 한다.

건축과 철학을 복수전공하면서,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고, 그 중에는 영화감독도 있다. 그런 관계들 속에서 영화산업이 가지고 있는 힘을 간접적으로 느껴왔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영화산업 역시 험난한 시장이었다. 영화인들이 그 시장을 지켜낸 것이고,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반을 정부에서 어느 정도 마련했다. 박찬욱, 봉준호 같은 감독들의 초기작 역시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이 할 수 없는 큰 기자재들을 대여할 수 있는 시스템, 영상 아카데미 같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영화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20년 만에 바뀐 일이다.

 

박: 그런 영화계의 역사가 지금 건축영상 분야와 어떤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 아르떼라는 예술 관련된 프로들을 전문으로 하는 방송이 있다. 지식인, 부르주아 계급에서 교양을 섭취하려는 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에, 양질의 영상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르떼를 보면 건축 다큐멘터리도 빈번하다. 영상을 통해서 한 건축가의 건축을 심미적으로, 사진이 담을 수 없는 것들을 포착해내서 설명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00년대 초반 건축 거장들의 작품을 재조명하거나, 피터 줌터가 설계한 발스온천의 건축 구조들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영상을 제작한다. 교육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중들이 그런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 같다. 시장이 형성되고 커져야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커져야 이윤이 남고, 그렇게 생태계가 형성이 된다. 그런데 지금 건축계의 경우 섬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박: 웹진 디진(Dezeen)은 매우 활발하게 건축영상을 자체 제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튜브와 비메오 등 영상을 유통할 수 있는 글로벌 채널과 로컬 플랫폼이 늘어났다. 또 SNS를 통해 이것들이 2차, 3차 확산되면서 건축을 이해시키는 대중적 수단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잘 찍는 것 못지않게 유통과 소비의 구조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확장되는 경로에서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없었다면 이런 파급 효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거기서 시작된 케이팝(K-pop) 시장이 어마어마하고, 그로 인해 생성되는 일자리 창출도 막대하다. 우리 건축계가 못하는 부분이 그 점이 아닐까 싶다. 건축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부분들이 있어서 역설적이게도 디진이나 아르떼에서 만든 시장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소비하는 경로를 점유하고 있는 매체 입장에서는 새로운 권력의 수단이 필요하고, 그런 콘텐츠 중 하나가 영상인 것 같다.

 

 

노경, ‘네임리스건축 - 문’, 비디오, 2분 26초, 2014​ 

 

건축영상의 고유한 언어와 문법

박: 영감을 받았던 건축영상 작품과 동시대 작가들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그리고 기린그림과 노경 작가 고유의 영상언어는 무엇인지 엿듣고 싶다. 특히 기린그림은 영화제작 시스템에서 출발해 팀으로 움직이는 특성으로 그 표현과 기술력이 다를 것 같다.

 

김: ‘베카&르무안’이라는 다큐멘터리 팀이 있다. 부부가 같이 활동하는데, 공간에 대한 기록이라는 측면보다는 영화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해서 공간을 담는다. 특히 건축 안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다. 가벼운 장비를 사용해서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한다. 장비나 인력 규모 면에서 기린그림과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작년에 만났을 때 각자의 작품들을 보게 되었는데 다른 스타일에 대해 서로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노: 나는 건축가가 만들어낸 언어들을 어떻게 함축적으로, 정제된 영상의 언어로 보여줄 수 있을지, 그것들을 묶었을 때 한 건축가의 작업으로서 아카이빙 될 수 있을지를 주로 생각한다. 어쨌든 이 일을 4년 동안 해오면서 아직까지도 건축영상이 문화적으로 확산되지 않고, 이것을 소비할 만한 시장이 없다는 점이 너무 안타깝다.

 

이: 초기에 사무실에서 자체적으로 영상을 기록하다가 어느 순간 포기했다. 젊은건축가상 수상 전시를 하면서 공사할 때 찍어둔 영상들을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영화처럼 만들어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쉽지가 않더라. 일반 사람들이 찍은 영상을 가지고 전문적인 편집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더라. 찍는 사람이 편집을 해야 하는 구조다. 그렇게 볼 때 건축영상은 순수한 창작물이다. 찍는 관점이 있는 것이고, 관점대로 시나리오가 움직여야 한다. 건축가 입장에서는 사진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영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직접 찍을 수도 없고, 매 프로젝트마다 전문가에 의뢰하는 일도 예산상 쉽지 않다.

 

박상우, ‘동국제강 럭스틸 전시회’, 6분 22초, 비디오, 2014 / 조호건축사사무소

 

건축영상의 잠재력과 시장의 한계

이: 퐁비두 재단에서 제작하는 퐁피두 시리즈 영상을 좋아한다. 퐁피두 센터가 구체적으로 어떤 구조 시스템에서 어떤 혁신이 있었는지 의외로 건축가들도 잘 모른다. 그런데 퐁피두 시리즈 영상을 보면 글과 사진만으로 충족할 수 없는 건물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 영상을 보다 보면 찍은 사람의 관점이 보인다. 사소한 혁신이 역사를 만드는 것인데, 그 핵심을 영상작가가 짚어내는 것이다.

영상의 가장 큰 가치를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대중을 계몽한다는 데 있다. 그것도 순식간에 가능하다. 교육청에서 건축영상 콘텐츠를 발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영상은 한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되어야 한다. TV광고의 전달력과 같은 수준의 건축 다큐멘터리가 필요하다. 건축영상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은 교육이라고 본다.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문화가 만들어지는 경로를 보면, 필름산업과 얽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시네마가 가지고 있는 대중성과 확장성이 산업과 연결된다. 공공부문에서 마켓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걸 통해서 건축가들 스스로도 혁신이 이루어질 것이다. 견제와 자극이 서로 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노: 건축 사진과 영상의 장르적 미학적 차이는 분명하다. 사진은 공간을 표현하기에 단편적인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그러나 그 단편적인 속성 때문에 사진만이 표현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 또 영상은 공간을 연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 어떤 때는 사진의 단편적인 메시지가 힘이 있을 때가 있고, 반대로 공간감을 보여주는 영상의 힘이 클 때가 있다. 사진과 영상이라는 시각적인 매체가 건축을 대변하는데 있어 가지고 있는 결이 다르다. 만약 건축가들이 건축 기록 작업의 특성에 따라 두 매체의 특성을 염두에 둔다면, 건축사진만큼 건축영상도 그 수요가 더 많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박: 앞서 건축영상의 대중적 파급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반대로 생산자의 입장에서 건축영상이라는 분야를 따로 이야기할 만큼 그 전문성이 존재하는지, 만약 존재한다면 그 전문성은 어디에서 드러나는지 묻고 싶다.

 

정: 건축영상 분야는 사실 굉장히 전문적인 영역이다. 기본적으로 건축이라는 공간을 이해하는 사람이 영상 매체의 특성을 알고 있어서, 그 두 가지 효과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촬영장비를 다루는 기술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건축가가 의도한 공간성을 이해하는 것까지 필요하다. 어떤 공간의 어떤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장비를 사용해야 하고, 어떤 시간 대에 찍어야 하고, 어떤 식의 흐름을 주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전문성이다. 건축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영상으로 적합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아는 것이 전문성이다.

 

김: 앞서 영상의 편집이 간편화되면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다고 했지만, 사실 영상 편집 분야는 대학의 세분화된 학과에서 전공을 하고, 과거에는 실무로 나가서는 도제식으로 익혀야 했던 굉장히 전문적인 영역이다. 그 안에서도 사운드 디자인, 색 보정 등 공정이 굉장히 다양하고 그에 맞는 전문 인력들이 따로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후반 작업에서 시간과 비용이 줄어들 수는 있으나 여전히 전문적인 영역이다.

 

박: 민감한 문제이겠지만 건축영상의 발주 비용이 현 시장 여건에 맞춰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현재로는 웬만한 건축가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예를 들어 땅콩집이라는 저가형 단독주택이 일반 단독주택에 대한 전반적인 욕구와 시장 규모의 상승까지 불러온 것처럼 건축영상 발주 비용이 다양해진다면 이 분야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정: 그것은 단순히 지표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영상을 어떤 방식으로 촬영하고 어떤 양질의 결과물을 내느냐에 따라 제작비는 천차만별이다. 그냥 단순히 영상만 남기겠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건축영상이 건축사진과 달리 관객에게 공간을 체험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규모나 스타일에 따라 건축의 공간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드론부터 크레인, 트랙 등 혼자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영상의 퀄리티를 담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박성진 편집장과 같은 생각이다. 이번 클럽나인브릿지 파고라 제작 영상을 CJ에서 발주하게 된 경위를 운으로만 설명할 순 없다. 정무적으로 건축가가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얘기해서 어떤 부분에서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왜 찍어야 하느냐에 대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글라스 파빌리온의 경우, 이 프로젝트에 특징적인 기술이 있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더블 튜브 시스템으로 구조와 벤틸레이션 덕트가 일원화되어 있는 시스템이 분명히 독창성이 있다는 지점에서 기업체 입장에서는 이런 정교한 시공을 할 수 있다는 홍보, 건축가 입장에서는 이러한 독창성을 아카이빙 해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분담해서 서로 완충해주는 것이다.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비용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계도 마찬가지인데, 주문 제작하듯이 정교하고 완성도 높은 집을 설계할 수도 있겠지만, 박리다매 형식으로 가격을 낮추면서 대중화할 수 있는 설계도 필요하다고 본다. 시장에 두 경로가 공존해야 한다.

 

박: 사실 클럽나인브릿지 파고라 성격의 영상은 건축가 혼자서 발주할 수가 없다. 건축주가 되는 기업이나 시공사가 동참해야지 발주가 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건축영상의 성장을 위해서는 건축가 선에서 발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본다. 완공이 된 건물을 미학적으로 기록하는 것보다 중요한 공정과 기술적 특징들을 담을 수 있는 영상들이 기획력에서 완성도가 높아 보인다. 그러자면 영상 발주가 착공 전 설계 단계에서 이미 논의되고 기획되어야 한다.

 

노: 비용을 낮추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예산에 맞게 제작할 방법과 기회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된다면 건축사진처럼 전반적인 문화로 확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각자의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 내에 이것을 소비할 수 있는 환경과 주체의 부재이다.

 

박: 결국 특정 매체가 소유하고 있는 홈페이지가 확산을 담당할 수는 없다. 불특정 다수가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유튜브나 비메오, SNS 같은 것들이 영상을 조금 더 폭발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 마켓이 형성되지 않은 원인으로 두 가지를 말할 수 있겠다. 아직 건축을 문화산업으로 보는 관점이 미비하다. 이것은 개인이 혁파할 수 없는 문제다. 또 한 가지는 건축가의 문제다. 영상으로 찍을 만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인 것 같다. 그것이 구조적인 혁신이든, 재료적인 진화든, 혁신적인 디자인이든 독창성이 필요하다. 건축이 독창적이지 않은데, 영상을 독창적으로 만들어내려면 모두가 괴롭지 않은가. 영상으로 남겨두어야만 하는 무언가를 건축의 외연에 있는 사람들에게 증명해내는 것이 건축가의 일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 자극이 내게 도움이 된다. 나의 프로젝트에 영상과 책으로 만들 수 있는 독창성이 있느냐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좋은 건축가들의 작품을 영상으로 남겨두었다면,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데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두 가지 문제가 맞물려 있다.

 

박: 이번 특집을 준비하면서 편집부에서 건축영상에 대한 여러 사례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건축영상에 대한 관심과 이에 따른 제작, 유통, 소비가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이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고 시공간을 다루는 건축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건축영상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생산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한국 건축이 좀 더 널리, 그리고 분명한 특징으로 알려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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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그림
김종신은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컬리지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였다. 기린그림의 대표로 2008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업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건축관의 이타미 준, 김종성, 김태수 전시영상, 황두진, 김찬중, 가온건축의 건축영상, 방송 다큐멘터리 ‘한국 현대건축의 오늘’ 등을 만들었다.
정다운은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케임브리지대학교 건축대학원 ‘건축과 영상’ 코스를 졸업했다. 중앙대학교 영화학과에서 ‘공간연출’을, 서울시립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건축과 미장센’을 강의하였다. 건축 영화, 영상 제작사인 기린그림 대표로 2018년 건축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노경
서울 출생으로 사진을 전공했다. 도시 속의 변화하는 공간과 건축가들의 작업을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15년 <아키토피아의 실험>, 국립현대미술관, <학교건축아카이브: 삼각학교 2011-2015>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이정훈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낭시건축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파리 라빌레트 건축대학에서 D.P.L.G.를 취득했다. 2009년 조호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2010년 한국 젊은건축가상과, 2013년 미국 건축잡지 「아키텍처럴 레코드」가 촉망받는 건축가들에게 주는 디자인뱅가드를 수상했다. 2014 독일 프리츠커 건축상과 2015 이탈리아 더 플랜 어워드 및 영국 월페이퍼 아키텍트 디렉토리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 2017 시카고 아테나움 국제건축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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