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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의 스페이스 (논)픽션] 1. 갑자기 모든 것이 변해서 설탕이 써지고 납이 가벼워지고 돌을 놓았을 때 돌이 떨어지는 대신 날아가는 것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정지돈
자료제공
뭎 [Mu:p]
진행
박세미 기자
background

갑자기 모든 것이 변해서 설탕이 써지고 납이 가벼워지고 돌을 놓았을 때 돌이 떨어지는 대신 날아가는 것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1

 

 

 

빈 극장에 들어가기. 텅 빈 무대에 올라서기. 극장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소 중 하나이다. 수많은 은유의 대상으로 불리고 정치와 연대의 장소로 쓰이며 도시와 건축에서 흔히 써먹는 랜드마크이기도하다. 어쩌면 극장은 공간의 근원에 가장 적합한 장소일지도 모른다. 비어있는 동시에 비어있지 않아야 하므로, 규격화되어야 하지만 해방적인 곳이어야 하므로.

그러니 극장에 대한 이야기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록 나는 극장을 싫어하지만 말이다. 

  

솔직히 사람들이 극장에 왜 가는지 모르겠다. 나는 유명 극장에서 이루어지는 대가의 공연에 질색하는 편인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예매 전쟁이 싫고(나는 이 전쟁의 낙오자, 벌판 위에 버려진 사체다), 둘째, 극장 로비를 가득 채운 젠체하는 인간들이 싫으며(나도 그중에 하나라는 사실은 비밀…), 셋째, 대가라는 족속과 그들이 만든 작품이 싫다.

뭎(Mu:p)이 지난 10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한 공연 <캐스케이드 패시지>는 그런 의미에서 나 같은 관객에게 딱 맞춰진 공연이었다. 왜냐하면 이 공연에는 예매도 없고 관객도 없으며 대가 역시 없었기 때문이다. 

예매와 관객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공연은 아시아예술극장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지는 쇼케이스였다.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극소수의 인원만 초대받았다. 대가가 없는 이유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 안무가 조형준과 건축가 손민선으로 이루어진 듀오 ’뭎’이 아직 젊은 예술가 축에 속하기 때문에 대가라고 부를 수 없다는 이유는 물론 아니고, 그들의 작업이 이른바 예술가의 창조성이나 비대한 자아, 현란한 기교를 공격적으로 선보이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뭎은 주로 공간과 움직임의 관계를 탐색하는 퍼포먼스 그룹이다. 일종의 장소 특정적 작업을 선보인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설명하고 싶진 않다. 장소 특정적 미술이라는 호명이 장소에 부여하는 과대포장, 장소를 거의 신성시하다시피 하는 태도와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뭎은 장소에서 착안해 공간과 밀접한 퍼포먼스를 공연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양 굴지 않는다. 그들의 작업을 볼 수 있는 장소는 항상 특정한 사회적 맥락, 관료적이고 행정적인 절차나 (가끔은) 상업적인 요구와도 결부되어 있으며 그러한 요소들은 광범위한 규모로 우리의 삶과 작업을 속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소는 언제나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측면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다. 그러므로 ’오롯이‘ 장소 특정적인 미술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개념은 재고가 필요한 이론적 수사에 불과하다(매체 특정성 또는 재료의 본질 운운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뭎이 하지 않는 건 또 있다. 그들은 무용을 기반으로 한 퍼포먼스 그룹에서 기대되는 신체의 기교나 동작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현대무용 퍼포먼스를 본다고 했을 때 생각한다. 폐허가 된 발전소를 배경으로 허공을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무용가의 신체! 조밀하고 섬세한 인간의 근육과 근대건축의 차가운 물성이 이루는 조화! 그런 건 뭎의 공연에서 볼 수 없다...... 뭎의 인물들은 아주 느리게 움직이거나 보통 사람처럼 걷거나 뛴다. 탈인간적인 무용수의 기교를 보러 온 관객들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돌아간다. 현대미술은 어려워, 라고 중얼거리며…… 

아무튼 뭎에 대해서는 이쯤하자. <캐스케이드 패시지>의 주인공은 뭎이 아니라 아시아 예술극장이기 때문이다. 공연의 내용은 간단하다. 텅 빈 극장에 입장한 사람들은 A.I.의 안내를 받는다. A.I.는 이곳이 사상 초유의 블랙아웃 사태 이후로 가동이 정지되어 예비 전력만으로 운영되는 발전소라고 말한다. 관객들은 기술적 재난의 현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정의된다. 아우슈비츠,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의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다크투어리즘에서 착안한 서사에 따라 관객들은 텅 빈 극장을 천천히 관람한다. 극장의 설비들은 음산하고 육중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돌아가는 반면 A.I.는 관광 가이드가 그렇듯 천진할 정도로 밝게 재난의 과정과 경과에 대해 설명한다. 

다크투어리즘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개념으로 비극이 일어난 역사적 공간을 찾는 새로운 형태의 관광이자 기념화 사업의 일종이다. 무겁고 심각한 행위인 고통과 가볍고 즐거운 행위인 관광을 결합하는 이러한 시도는 불경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일본의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관광이야말로 폭력에 저항하는 가장 쉬운 실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캐스케이드 패시지>를 역사적 비극을 되새기는 예술적 다크투어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사실 다크투어리즘은 흥미로운 맥거핀에 가까우며 공연이 지시하는 재난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캐스케이드 패시지>는 훨씬 일상의 공간에 가까운 재난을 암시한다.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의 예술극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가변형 극장이다. 기획 단계부터 수많은 논의를 거쳐 완성되었는데, 2007년 작성된 <아시아예술극장 운영방안설계> 최종 결과 보고 자료에서는 극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유로운 양식적 실험과 수용을 목표로 제작과 기획 중심 극장의 가치를 실현하는 한편 창작과 향유, 유통과 교육이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토털 솔루션 공간이다. 특히 대극장은 무대와 객석의 자유로운 변형을 추구하는 가변형 공연공간으로 일반 공연장이 가지는 물리적 무대환경을 초월한다.”(볼드 표시는 인용자가 함)

토털 솔루션 공간이 뭔지, 물리적 무대환경을 어떻게 ’초월’하는지 의문이지만, 아무튼 극장은 이러한 의도에 어울리는 독특하고 장대한 스타일로 지어졌다. 특히 예술극장이 자랑하는 15m의 빅도어는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무는 벽이자 문으로 비행기 격납고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아시아예술극장에서 진정으로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야심 찬 의도를 훨씬 초월하는(그러니까 두 번의 초월) 개관 이후 극장의 기술적 존재 여건이다. 약간 말이 어려운 것 같은데 쉽게 말하면 극장은 최신식이지만 그러한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과 환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시아예술극장을 다룬 2015년 기사에서 익명의 극장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전당 설립에 처음 관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어서 중도에 어떤 변경 과정을 겪었는지 알기도 어렵다.”▼2 아니나다를까, 대망의 빅도어는 뭎이 머무는 동안 기술상의 문제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부조리극과 같은 이런 상황은 사실 우리가 사회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건축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 대규모 극장처럼 길고 복잡한 행정적이고 관료적인 절차, 각종 설비와 네트워크, 인력이 얽힌 공간은 말할 것도 없다.   

뭎의 <캐스케이스 패시지>는 새로운 공간의 존재론을 제시하는 공연이다. 재난 이후 발전소-극장은 공간 그 자체의 성격에 의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굴러간다. 일종의 자기생산체계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언제 모든 것이 멈출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 퀑탱 메이야수의 <형이상학과 과학 밖 소설>은 일반적인 SF소설과 대비되는 FHS 소설(fiction hors-science)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책이다. FHS는 과학이 불가능하게 되는 미래세계를 그리는 장르로 퀑탱 메이야수는 르네 바르자벨의 소설 <대재난>을 대표적인 케이스로 든다. <대재난>은 블랙아웃 이후의 디스토피아를 다룬다. 특기할 만한 점은 블랙아웃의 이유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메이야수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를 단순하게 말하면, 세계에 대해 유일하게 필연적인 진술은 세계가 우연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에 대한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설명을 찾아낼 수 없다. 

하지만 짧은 에세이에서 너무 멀리 가진 말자. 중요한 건 뭎의 공연과 같은 실천이 공간의 우연적인 성격을 가시화하고 활성화하는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공간은 규정되어야 한다. 다만 규정되지 않는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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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퀑탱 메이야수, 『형이상학과 과학 밖 소설』, 엄태연 옮김, 이학사, 2017.
2 장지영, ‘“이상과 현실의 간극” 확인한 광주 아시아예술극장’, 「국민일보」, 2015. 8. 31.



공연 <캐스케이드 패시지> / ⓒ뭎 [Mu:p]



공연 <캐스케이드 패시지>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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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
정지돈은 소설가다. 2013년 등단하여 2015년 젊은작가상 대상과 2016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작가로 참여했다. 펴낸 책으로는 『내가 싸우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문학의 기쁨』(공저),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야간 경비원의 일기』, 『영화와 시』, 『모든 것은 영원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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