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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돌출된 삶의 방식을 그리다: 『빌라 샷시』

사진
프랙티스(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권태훈
진행
김예람 기자
background

동네를 거닐다 보면 새시가 덧붙여진 빌라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건축가 권태훈은 주변에 흔히 있어 우리가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빌라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덧붙여진 새시의 기원과 제작 과정을 추적·분석했다. 그 결과물을 모아 2020년 11월 『빌라 샷시』를 펴낸 그에게 익숙하고 평범한 주거를 기록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 권태훈 드로잉 리서치 대표 × 김예람 기자

 

 


김예람(김): 진아건축도시, 비컨아키텍트, 디자인 캠프 문박 디엠피에서 실무 경력을 쌓다가 2014년부터 ‘드로잉 리서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떠한 계기로 출판을 시작하게 됐는가?

권태훈(권): 설계사무소를 다니면서 자의든 타의든 프로젝트에 적합한 국내외 사례를 찾아야만 했다. 프로젝트마다 그 일을 반복하다 보니 내가 그 사례에 끌려가는 것 같았다. 레퍼런스의 소비자로 전락하는 느낌이랄까. 좋은 사례로부터 배움을 얻는 것 또한 좋지만, 이제는 단순히 레퍼런스의 에디터가 아닌 생산자가 되어 보고 싶은 마음에 작업을 시작했다. 멀리 해외로 나가서 배워 오는 사례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비유하자면 마르지 않는 레퍼런스의 우물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사무실 업무와 리서치 작업을 병행했지만,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한정적이어서 결국 독립을 했다. 

 

김: 이번에 출간된 『빌라 샷시』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빌라에 주목하고 있다. 어떠한 계기로 이 주거 유형을 관찰하게 됐고, 그 시선을 책으로 옮기게 됐는지 궁금하다.

권: 빌라에서 12년을 살았다. 살던 동네에 언제부턴가 재건축 붐이 일었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동네를 오며 가며 여러 공사 현장들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새로 짓는 빌라들 모두가 거기서 거기였는데 그중 한 현장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모든 과정을 하루에 두 번씩 들여다 보았으니 감리자보다 더 자주 보았던 셈이다. (웃음) 건물이 완공되고 현장이 마무리 되던 어느 날 아침, 계단식으로 구성된 발코니에 불법 증축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애정을 갖고 매일 들여다보던 건물이라 그런지 실망감 역시 클 수밖에 없었다. 불법 증축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빌라의 운명을 보면서, 빌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내가 지금 이 동네에 살고 있는 것이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미치자 동네 빌라들을 절대 가볍게 보아 넘길 수가 없었다. 

 

김: 사례를 수집하는 다른 연구자와 어떠한 차이점을 지닌다고 생각하는가? 

권: 관찰 대상과 그것을 표현하는 결과물에서 차이점을 지닌다고 본다. 나는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건물보다는 도시에 유령처럼 존재하는 건물, 늘 있어 왔지만 아무도 그 존재를 이야기하지 않는 건물에 관심이 간다. 또한 실제와 드로잉 사이에 벌어진 간극으로 대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책에 실린 수십, 수백 장의 드로잉들이 제각기 다른 느낌을 주지 않도록 선 굵기에서부터 표현 방법까지 전체적으로 통일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특히 다이어그램 같은 경우에는 굳이 건축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정보를 간결하게 다듬는다. 

 

김: 빌라, 연립, 빌리지, 맨션 등 국내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설명하는 이름들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 ‘빌라’를 제목으로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권: 빌라에 붙은 새시를 보며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골똘히 고민하던 날이 있었다. 그 모습을 간략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서 적당한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빌라 샷시’라는 합성어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빌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빌라 로툰다처럼 서양 고전 건축의 한 유형을 뜻하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평범한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뜻하기도 한다. 한 단어를 통해 두 가지 상반된 건물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이 단어가 지닌 양의성 덕분에 ‘빌라 샷시’라는 합성어가 ‘샷시라는 이름을 가진 빌라’와 ‘빌라에 붙은 샷시’라는 뜻을 동시에 가진다. (웃음)

 

김: 빌라에 붙은 요소들 중 새시에 주목한 까닭은 무엇인가?

권: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알루미늄 새시, 유리 또는 아크릴, 샌드위치 패널 등으로 생활공간을 넓혀 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부분은 엄밀히 말하면 불법 증축물이지만, 구축이 쉬운 덕분에 도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요소가 됐다. 그 모든 불법 증축 구조물을 하나로 아울러 부를 수 있는 단어가 필요했는데, 실제로 알루미늄 새시는 창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소에 활용되고 있었다. 새시라는 단어는 ‘샤시’, ‘섀시’, ‘샷시’ 등 다양한 발음과 표기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점 역시 흥미로웠다. 그중 발음했을 때 가장 입에 달라붙는 발음과 표기인 ‘샷시’를 선택하게 됐다. 

 

 


 

 

ⓒKwon Taehoon 

 

 

김: 건물을 세밀하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실측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빌라는 여러 사람이 거주하는 집이기 때문에 치수를 재는 작업이 어렵지 않은가?

권: 집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 내부를 들여다보기 어렵다. 만약 줄자를 들고 새시의 치수를 확인한다면 거주자가 나를 경찰에 신고할 것이 분명하다. (웃음) 건물의 입면을 그리면서 그것과 연관된 평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참 아쉽지만, 볼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 한다. 벽돌의 개수처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요소를 토대로 비례와 형태를 조정해서 그리고 있다.

 

김: 정확한 치수를 알아도 그림을 그리면서 미세한 오류가 발생한다. 그런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하다. 

권: 아무리 객관적인 기록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보고 확인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상상력에 의존하는데, 상상력은 실측조사가 지닐 수 없는 장점이기도 하다.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이 드로잉에 녹여져야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내 작업은 굳이 현실과 동일할 필요가 없다. 미술계에서는 오히려 대상의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일그러뜨린 작품이 더 호평을 받기도 하지 않나. 나는 그 오류와 실제의 틈을 마치 그 자리에 있을 법한 상상의 풍경으로 메운다. 예를 들면, 주택 옥상에 놓인 고무 대야와 화분, 햇빛에 말리는 고추, 쓰지 않고 내버려둔 사다리, 길고양이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김: 혼자 퍼블리싱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지면서 앞서 말한 미시적인 요소를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 만들어진 기록물이 생활사 사료로 활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권: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시대인 것 같다. 덕분에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우리 도시 구석구석이 하나둘 기록되고 있음을 요즘 많이 느낀다. 이런 자발적인 연구, 출판 프로젝트의 특징이라면 그 배경에 개인의 생활사가 배경이 된다는 점이다. 덕분에 삶의 일상이 녹아든 기록들은 전문 연구 보고서에서는 볼 수 없는 따뜻함을 가지고 있다. 50년, 100년 뒤에 누군가 이런 기록들을 들춰보게 된다면 미시적 요소의 기록과 더불어 과거 생활상과 시대상도 엿볼 수 있으니 더욱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김: 후속작으로 『타워 빌라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중이다. 이 책을 통해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권: 앞서 『빌라 샷시』에서 실제와 드로잉 사이의 간극을 약간의 상상력으로 메웠다면, 『타워 빌라 프로젝트』에서는 오로지 그 상상력에 의지해 타워를 설계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 다세대주택을 시대순으로 쌓아 올린 이 타워는 일상의 건축 요소로부터 빌려온 다양한 레퍼런스를 한데 버무려놓았다. 『타워 빌라 프로젝트』는 인풋을 받으면 아웃풋을 만들어내도록 훈련받아 온 건축 실무자의 관성이자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지어지는 건축을 통해 해소할 수 없는 욕구를 페이퍼 아키텍처의 형식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타워 빌라 프로젝트』에는 머지않은 역사가 주는 익숙함과 그것들의 재편집을 통한 새로움이 공존한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에서 나타나는 빌라라는 단어의 양면성을 지극히 건축적 방식을 통해 드러내 보이고 싶다. 구체적으로 이 양면성은 ‘서양 건축의 고전’과 ‘한국 건축의 현대적 토속’으로 대비될 수 있는데, 이런 대비는 현대 한국 도시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 점으로 미루어봤을 때 후속작은 전작들과는 조금 다른 형식의 작업이 될 것이다.

 

 


권태훈
권태훈은 다수의 건축설계 사무실에서 실무 경력을 쌓았으며, 2006년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는 2014년 독립해 대한민국에 지어진 일상 속 건물들을 건축 도면 형식의 드로잉으로 옮기고 분석하는 ‘드로잉 리서치’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사진작가 황효철과 『파사드 서울』(2017)을 펴냈으며 현재 『타워 빌라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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