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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건축가] 점과 점을 이으면: 권경민, 박천강

사진
최은화(별도표기 외)
진행
김예람 기자
background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상단 이미지 제공_HAPSA

  

인터뷰 권경민, 박천강 HAPSA 공동대표 × 김예람 기자 

 

 

 

 

유연한 사이를 고민해요


김예람(김): 건축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줄임말을 사무실명으로 사용하고 계세요. ‘합사’라는 이름은 언제 지으셨나요?

박천강(박): 2018년, 편집숍 에이랜드에서 태국 방콕에 짓는 매장을 저에게 의뢰했는데요. 당시 개소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여러 상황으로 지쳐 있었어요. 그래서 권경민 소장님에게 손을 내밀었고 같이 작업을 했죠. 

권경민(권): 합사로 활동한 건 아모레퍼시픽의 쇼룸인 ‘아모레 성수’(2019)때부터예요. 대기업과 작업을 하다 보니까 사무소의 이름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즉흥적으로 지은 감이 없진 않지만, 어떻게 협업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박: 상황에 맞게 협업과 각자의 일을 오가면서 지냈는데, 그 시기에는 더 이상 캐주얼한 관계보다는 우리만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어요.

 

김: 사무소 이름이 공식적으로 등록된 건가요?

권: 아모레 성수 작업 이후, 협업에 대한 체계가 조금씩 명확해지면서 합사라는 이름을 공동사업자 명의로 등록했죠. 각자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합사의 이름으로 진행하는 일의 비용 문제는 공동으로 해결하고 있어요.

 

김: 지금 사무실에 다른 분들도 계시네요?

박: 합사 소속인데, 한 분은 인턴이고 다른 분은 정직원이에요. 지금은 합사의 프로젝트만 하고 있어서 공동예산으로 월급을 드리는데, 나중에 그분들과 개별 사무소의 작업을 하게 된다면 소속, 업무 범위 등에 대한 내용을 명료하게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김: 지난 인터뷰이였던 다이아거날 써츠의 김사라 소장님께서 두 분의 협업 방식에 대해 궁금해하셨어요. 

권: 일반적으로 소속이 다른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걸 협업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일주일 내내 붙어서 같이 작업하고 있기 때문에 협업 관계보다는 사실상 한 몸에 가까워요. 물론 나중에 조직이 갈라질 경우에는 다른 관계로 봐야겠지만요.

박: 저는 갈라지는 걸 생각하고 있진 않아요. (웃음) 정확히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나간다고 말씀드리기에는 어렵지만, 합사라는 이름 안에 모든 프로젝트를 넣어서 개별 작업이 지닌 가능성을 무력화시키지 않으려 해요. 

 

김: 따로, 또 같이 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계시군요.

박: 공동창작과 개별창작 사이에서 유연함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는 거죠. 합사라는 이름으로 뭉치기 전에 ‘프로젝트 팀 문지방’으로 활동했어요. 현재 건축농장을 이끄는 최장원 소장님과 저희 둘이 꾸린 조직인데, 당시 멤버들이 각자 다른 사무실에서 3~4년 정도 근무하고 있었어요. 처음부터 자기 작업을 하고픈 욕망이 분명하다 보니, 한데 뭉쳤을 때 개별성이 완전히 소비되는 걸 원치 않았죠.

 

 


 


ⓒHAPSA 

 

 

예상치 못한 전개였어요


김: 그런 마음과 생각을 밑바탕에 두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2014)에 참가하셨어요. 이 파빌리온 공모전에 나가게 된 배경에 대해 듣고 싶어요.

권: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건축 전문인의 추천을 받아야만 공모전에 참가할 수 있었는데요. 당시 김수근문화재단의 추천을 받은 최장원 소장님이 저희에게 합류를 제안했어요.박천강 소장님은 독립을 이미 하신 상태였는데 저는 사무실에 다니고 있었어요. 회사 일과 병행하기엔 스케줄이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조금씩 독립을 준비하기 시작했죠. 

박: 최 소장님과는 이전에 ‘안데르센의 책장’(2013)이라는 작업을 함께 했는데, 그때 합이 좋았기 때문에 흔쾌히 제안에 응했죠.

 

김: 세 분이 미술관 측에 건넨 ‘신선놀음’은 워낙 콘셉트가 독특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요.

권: 콘셉트는 박천강 소장님의 콜라주 이미지에서 출발했어요. 저희가 상상한 공간이 주변에 있는 인왕산, 종친부 건물과 만났을 때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그런 안이 나왔죠. 콘셉트 이미지에 블러로 처리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파빌리온 뒤에 있는 종친부 건물이 옥황상제의 궁궐처럼 보이더라구요. (웃음)

박: 당시에는 되게 직설적이면서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때는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고 관심 있던 주제를 결합해서 작업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김: 블러로 처리된 부분이 실제 안개로 구현되지 않았나요?

권: 만약 파빌리온에 풍선 유닛만 있었다면 그 사이를 걷는 경험이 키치스럽기만 ​했을텐데, 안개가 더해지면서 그곳에서의 경험이 풍부해졌죠. 미술관의 ㄷ자형 마당에 계획된 파빌리온이 여름에 지어졌는데, 거기에서 분무되는 안개 덕분에 관람객이 시원하게 전시를 즐길 수 있었어요. 습도에 따라서 안개의 상태가 좀 달라지는데, 종종 주민들이 안개를 연기로 착각하고 화재 신고를 했다고 들었어요. (웃음)

 

김: 권경민 소장님은 이 공모전 때문에 예정에 없던 독립을 하셨는데요. 사무소를 차린 시점이 생각하셨던 것보다 많이 이른 때였나요?

권: 좀 더 배움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독립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건물이 직접 지어지는 현장을 많이 경험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규모가 작은 사무실로 옮겨서 여섯 달 정도 일을 하다가 나왔죠. 사실 그게 독립을 하기 위한 커리어의 일부라서, 아마 몇 달 더 다니다가 독립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시기가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때문에 당겨진 거죠.

 

김: 새로운 조직을 꾸리는 건축가에게 이름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공모전 팀명은 어떻게 지으셨나요?

권: 공모전 출품 이전에 같이 작업을 해보긴 했지만 한 회사로 합치기에는 불확실한 게 많았어요. 그래서 프로젝트를 위해 하나의 팀으로 뭉쳤다는 의미로 이름을 짓게 됐죠.

박: 그때는 시대적 담론이나 건축관을 축약 표현한 알파벳 약자보다는 그 자체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었어요. 건축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가 계속 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당시 저희가 관심을 가졌던 전통과 건축 이미지를 아우르는 단어인 문지방을 이름에 가져왔죠.

 

김: 결과적으로 최종 당선팀으로 선정됐는데, 어느 정도 결과를 예상하셨나요? 

권: ‘설마 되겠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거의 기대를 안 했어요.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나서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저희는 근처에 있는 칼국수 가게에서 푸념하며 막걸리를 마셨어요. (웃음)

 

김: 예감과 반대로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었네요.

박: 곱씹어보면 프로젝트 팀이라는 기본 설정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우리에게​ 안전판이 되어주었고, 다양한 관심사를 협업으로 풀어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혹시 이런 부분 때문에 저희가 전통적인 의미의 건축에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불안정함 덕분에 개인의 창작 의지를 수용할 수 있는 설계사무소 시스템을 계속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자유를 위해서는 체계가 필요하더라구요

 

김: 같이 사무소를 운영할 때 어떠한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박: 프로젝트의 콘셉트 구상부터 사무소의 디자인 방법론 구축까지, 모든 과정에서 대화를 끊임없이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의 진행 상황도 그렇고, 상대방의 생각을 정확히 알려면 대화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권: 그래서 서로의 관심사도 자주 공유하고 있어요. 건축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해요. 그런 시간을 많이 가져야 서로의 주파수를 맞출 수 있으니까요.

 

김: 요즘 두 분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소재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박: 원래부터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최근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는 국제 정세를 살펴보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미국 대선과 그 이후의 의회 난입 사태, 미얀마 군부 쿠데타 소식을 주의깊게 지켜보는 중이에요.

 

김: 안정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가 필요할까요?

박: 상대를 제압하려 하지 않고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려는 노력이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필요하잖아요. 문제해결이 더디게 이뤄지기 때문에 비효율적으로 보이겠지만, 그런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 사무소 안에서도 그런 실천을 행하고 있어요.

 

김: 두 분이 각자 운영하는 사무소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건축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식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박: 저는 혼자 작업할 때 드로잉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분위기의 청사진을 만들어놓으면 실제 건물을 지을 때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지 않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권경민 소장님과 작업할 때는 이런 작업 방식을 자제하려고 해요. 공동 작업에서 개인적인 표현법을 너무 많이 가미하면 협업하는 데 있어 불편한 부분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권: 협업 체제 안에서 한 명의 표현 방식이 너무 구체적으로 반영되면,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보면 표현을 독점하는 셈이잖아요. 단독 프로젝트라면 각자 해오던 대로 접근하고 표현해도 괜찮은데, 공동 프로젝트에서는 함께 이야기를 하며 발전시켜온 아이디어를 부각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한번 꿈꿔보아요

 

김: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분이 계신가요?

박: 이미 돌아가신 분을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김: 그럼요. 요즘은 인공지능이 발달해서 작고한 예술가의 모습을 재현한 다음, 협업을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박: 그렇다면 스베레 펜과 공동 작업을 하거나 한번 배워보고 싶네요.

권: 그런데 건축 안에서 콜라보레이션의 개념이 어디까지 적용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어요. 공간 설계에 대한 크레딧이 모호할 때가 너무 많잖아요.

 

김: 무 자르듯이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죠.

권: 단지 설계 프로젝트는 영역이 명확히 구분되니까 누가, 어느 부분을, 어느 정도로 했는지 입증하기 쉽잖아요. 하지만 대다수의 작업은 그런 선이 분명하지 않죠.

박: 작은 설계사무소가 큰 규모의 공모전에 당선됐을 때 직원을 무리하게 채용하면서 사무실의 체적을 늘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데 만약 여러 건축 팀과 지속적으로 협업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놓으면, 큰 프로젝트가 생길 때 뭉쳐서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요? 크레딧과 규모에 대한 위험 부담을 줄이면서 창작의 시너지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김: 협업이 말처럼 쉽지 않은 환경에서 두 분은 조직에 관한 시도를 계속 해가고 계시네요. 개별적이면서도 함께할 수 있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것을​ 우선순위로 설정하셨는지 궁금해요.

박: 협업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각자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탑재되어야 해요. 예를 들어, 내가 부족한 부분을 상대방에게 배우기도 하고, 반대로 알려주기도 하면서 같이 성장하는 프로세스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거죠.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그걸 바탕에 계속 두는 게 참 어려워요. 

권: 역할을 나누는 방식의 협업이 크레딧에 관한 영역에서 모호한 부분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공동 창작이라는 방식을 선택했어요. 그 시스템 안에서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수행하다 보면 각자 독립적인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개인 작업과 공동 작업을 오가다 보면, 우리의 건축 언어가 변형되기도 하고 세분화되기도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하는 중이고요. 현재로서는 둘 사이에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여러 시도와 실패를 해보려 해요.

 

 

권경민, 박천강은 4월호에서 김우상, 이대규(카인드건축 공동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권경민, 박천강
합사는 권경민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던 권경민과 박천강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던 박천강이 만든 공동사무실이다. 문화적, 역사적 축적으로서의 건축에 관심이 있으며, 기하학적 형태와 건축 요소, 재료 등 건축물의 객관적 실체와 그 경험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며 작업하고 있다. 함께한 작업으로는 신선놀음(프로젝트 팀 문지방, 2014), 에이랜드 방콕(2018), 시흥 LDK Lab(정이삭 협업, 2018), 아모레 성수(2019), 현재 진행 중인 심원, B&O 영종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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